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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칼럼

일흔 노인이 머리 감겨주는 이발소

by 이윤기 200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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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 불편해하면 일자리 잃어요"
나이든 사람 배려하는 방식 바뀌어야...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에서 머리를 예쁘게 만드는 것으로 바뀌면서 이발소는 점점 줄어들고 그만큼 미장원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파마나 염색을 하는 남자들도 쉽게 볼 수 있고 화장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더군요.

한때 '퇴폐 이발소' 문제가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를 무렵부터 많은 젊은 남자들이 미장원을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몇 번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른 적이 있습니다만 결국은 이발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결혼 이후 줄곧 동네 단골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릅니다.



아이 둘과 저 이렇게 셋이 늘 함께 이발소를 가곤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큰아이는 가끔 친구들처럼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기도 하지만, 얼마간 미장원에 다녀보고 최근에 다시 이발소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니는 동네 이발소는 오랜 경력의 이용사 한 분이 혼자서 운영하십니다. 평일에는 혼자서 일을 하여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주말에는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감겨 주고 하는 일을 혼자서 다 할 수 없어 머리 감겨 주는 이용 보조 아르바이트 한 사람과 함께 일을 합니다.

그런데 머리 감겨 주는 이용 보조하는 분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르바이트생과는 아주 다른데, 우선 나이가 굉장히 많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어르신입니다. 이 할아버지 알바가 처음 머리 감겨주는 일을 하러 오셨을 때, 저는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서른 살도 넘게 차이 나는 제가 나이 많은 어르신한테 머리를 맡기고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감겨주도록 있는 것이 여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드신 분에게 편안히 머리 감는 일을 맡기는 것도 거북하였지만, 손아귀 힘이 별로 없으신지 비누칠을 하고 두피를 문질러도 별로 시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차라리 제 머리는 제가 감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발소에 갔을 때 머리를 다 자르고 세면대로 가면서 이발소 사장님께 제 생각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장님 그냥 제 머리는 제가 감을게요. 젊은 사람이 나이 드신 어른에게 머리를 맡기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네요."

그랬더니, 사장님은 안 그래도 '우리 영감님' 오시고 나서 비슷한 이야기 하는 손님이 많다고 하시면서 그런 생각하지 말고 편안히 머리 감으라고 하시더군요.

"젊은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모두 우리 영감님한테 머리 안 감겠다고 하면, 결국 우리 영감님 일자리를 잃어요. 이발소 나와서 소일 삼아 아르바이트해서 용돈 벌어 쓰시는데, 젊은 사람들이 할아버지 머리 감겨주는 것이 부담스럽다, 싫다하면 결국 일자리 잃는 거지요."

이발소 사장님 말씀은 노인 일자리가 만들어지려면,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드신 분에게 서비스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많은 노인이 자식들한테 기대거나 국가에서 복지서비스를 받는 것보다 일자리 갖기를 더 원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부담스러워만 하면 일자리가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노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앞으로 서비스업에도 노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이발소에 가면 어르신이 머리를 감겨 주어도 군소리 않고 편안히 서비스를 받습니다.


※ 7월 3일자 경남도민일보에 쓴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