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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오늘 걱정 내일로 미루고 행복하게 사는 법

by 이윤기 200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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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샤일라 오흐가 쓴 <2인조 가족>

샤일라 오흐가 쓴 <2인조 가족>은 가난에 주눅 들지 않는 자존감 강한 사춘기 소녀 야나와 늘 괴변을 늘어놓고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새로운 일을 꾸미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할아버지가 유쾌, 상쾌, 통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발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익살꾼입니다. 우편배달부를 기절시키고, 집으로 찾아 온 사회복지위원회 공무원을 혼줄을 빼놓고, 청소년보호국 공무원을 기절시키고, 국장의 몸을 깨무는 기묘한 행동을 벌입니다.

그렇지만, 이 2인조 가족은 늘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살아가는 가난뱅이 일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독특합니다. 임대주택 지하실에서도 세계 역사에 나오는 건축물의 특징을 발견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집은 엄청나게 넓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우리 집은 세계사에 존재했던 모든 중요한 건축물의 특징을 조금씩은 다 갖추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집은 콜로세움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베니스 제노바 공화국 총독 관저처럼 천장이 높고, 발할라 궁전만큼이나 황량하고, 도시 변두리의 주택가처럼 황폐하고 황의 무덤처럼 서늘하고 음침했다.” (본문 중에서)

야나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듯 보이는 이 집은 사실 한 임대주택의 지하실 일 뿐입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임대 주택 지하실에는 폐지를 수집하면서 건져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책들, 낡아빠진 찬장, 오래된 식탁, 삐거덕거리는 침대가 놓여 있는 초라한 공간일 뿐입니다.

“내가 발에 신고 다니는 것은 신발이라기보다, 온갖 접착제 제품을 모아 놓은 걸어 다니는 접착제 종합세트에 가까웠다. 내 신발은 그야말로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본문 중에서)

가난하지만, 주눅 들지 않는 자존감

야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폐지와 고철을 수집하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다른 가족이 없는 ‘조손가정’입니다. 다행히 야나는 공부를 잘 합니다. 한 시간에 10크로네를 받고,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를 김나지움에 입학시키는 과외교사 일을 합니다.

낡아 빠진 옷과 덕지덕지 접착제를 붙이고, 구멍을 기운 팬티스타킹에 군용모직 양말을 신고다니는 그녀는 학교에서 놀림감이 될 법도 합니다만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누구도 등 뒤에서 야나를 비웃을 수 없는 이유는 첫째 그래 봐야 그녀가 콧방귀도 뀌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녀가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도 거뜬하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복권에라도 당첨되어 좋은 옷도 사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하고 바라고, 같은 반 남자아이 ‘이르카’와 근사한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 하고 달콤한 첫 키스를 꿈꾸는 사춘기 소녀일 뿐입니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가난하지만, 주눅 들지 않고 사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사춘기가 된 소녀는 이제 그 가난이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와 소녀의 대화는 이렇습니다.

“등 좀 꼿꼿하게 펴. 너 곱사등이가 되고 싶니? 왜 그렇게 구부정한 자세로 다니니?”

“눈치 없이 가슴이 자꾸만 커져서 그래. 남들 눈에 안 띄게 하려고, 구부정하게 다니는 거야.”

야나는 등을 꼿꼿하게 폈다간 단추가 모두 튕겨나갈 것 같은 낡은 셔츠를 입고 구부정하게 다닙니다. 사춘기를 맞은 야나는 점점 가난에 대하여 눈 뜨기 시작하고, 돈이 많아 좋은 옷과 신발 그리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야나’가 할아버지 말고 마음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는 바로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자신입니다. 그녀는 ‘나의 목소리’들과 대화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어느 날부터 바로 내면의 목소리들이 ‘야나’에게 가난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복권’을 사라고 부추깁니다.

“나로서는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살면서 한 번쯤은 희망을, 하잘 것 없고 볼 폼 없는 희망이라도 하나쯤 간직하고 싶었다. 고작해야 한 달 밖에 가지 않을 희망이라도 좋았다.” (본문 중에서)

오랫동안 복권을 사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있던 ‘야나’는 마침내 할아버지에게 복권을 살 수 있도록 10크로네를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 건 우리에게 전혀 필요가 없어! 일단 복권을 사면 우리에겐 필요도 없는데 덜컥 당첨이 될 거야”
“하지만, 난 당첨이 됐으면 좋겠어. 내 말 알겠어?”
“왜 우리가 당첨이 되어야 하는데? 우린 그런 거 필요 없어. 바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 없는 거야”

돈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물건

복권에 당첨되면 신발, 옷, 치마, 팬티스타킹, 매니큐어, 발톱미용, 장신구, 샴페인, 치즈 바른 마른 빵을 사고 싶은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복권 당첨금이 필요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살면서 꺼려왔던 것이 바로 그 저금통장이라는 거야. 그놈의 것은 유치한 욕구와 천박한 욕망을 부추기거든. 넌 돈이 생기면 기름진 음식을 사 먹겠지. 그러면 동맥 경화 때문에 머리가 나빠질 거야. 새 신발을 사 신으면, 엄지발가락이 흉하게 망가질 거고. 레이스 달린 나일론 팬티를 사 입으면, 암에 걸리겠지. 그러다 어느 날 돈이 사라지면, 넌 아직도 네게 필요한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돈 이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물건이야!” (본문 중에서)

돈에 대한 할아버지의 철학은 궤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름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돈이 사람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복권이 당첨 되더라도 맘 편히 술을 마셔 없애기 좋을 금액만 당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복권에 당첨되어 받은 돈으로 ‘야나’에게 몸에 맞지도 않는 속옷 두 벌을 사주고 자신이 죽으면 묻힐 관을 사고 나머지 돈은 모두 술을 마셔버립니다. 술은 마신 할아버지는 광장의 동상에 올라가 소란을 피웁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그는, 양로원에 보내지기 전에 사고를 저질러 감옥에 가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세상 일이 그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아 손녀 ‘야나’와 헤어지게 됩니다. 그는 양로원으로 ‘야나'는 기숙사로 보내지는데 이 기숙사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고아원과 비슷한 곳 입니다.

야나와 할버지는 서로가 양로원 생활과 기숙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마음에 없는 편지를 주고받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양로원에서 온갖 기괴한 일은 벌인 할아버지는 양로원에서 빠져나온 기숙사에서 ‘야나’를 탈출 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숨겨진 비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남남

이 과정에서 손녀는 할아버지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충격적인 사실 조차 평소 할아버지에게 배운 낙관적인 사고로 이겨냅니다.

“바넥(할아버지) 씨를 성인으로 생각할 건 없어. 인간적으로 보면, 그가 남의 아이인 너를 입양해 키워준 것은 감동적인 행위야. 그런데 청소년보호국에서 내게 보낸 편지가 여기 있어. 그 당시에 맺은 입약계약이 자칫하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구나. 바넥 씨가 청소년 여자아이를 적절하게 보살필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라는 거야.” (본문 중에서)

그러나, ‘야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지만, 자신과 할아버지 사이는 우연한 친척관계나 유전으로 물려받은 눈의 색깔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손녀는 앞으로 자신이 할아버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함께 깨닫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노인네인 할아버지 ‘바넥’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야나'를 위해 온갖 일을 꾸미는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인물입니다.

그는 “참된 우아함이 머물 곳은 우리 영혼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진 가난하지만, 가난을 힘겹게 여기지 않는 자존감 강한 사람입니다. 소설 속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사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 태어난 인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거나 고작해야 걱정을 사서 하지 말고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라”고 합니다만, 천하의 낙천주의자 할아버지는 “오늘 걱정을 내일로 미루라”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늘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청소년들에게 행복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재미있고 독특한 성장소설입니다. 지은이 샤일라 오흐는 <2인조 가족>으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다음 작품인 <돈 벌기는 너무 힘들어>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2인조 가족 - 10점
샤일라 오흐 지음, 신홍민 옮김/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