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역주행 시대, 똥물은 그냥 맑아지지 않는다

by 이윤기 2009. 8. 3.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서평]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특강>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주행의 시대에 가장 주목 받는 역사학자 중 한 명이 바로 한홍구 교수입니다.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 자주 그가 쓴 글과 인터뷰 기사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주행의 시대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불안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답을 구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김대중 정부 10년을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줄 알았더니, 김영삼 정부 5년까지 포함하여 문민정부 이전 군사정부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광란하는 듯합니다.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날치기 악법을 일사부재리의 원칙마저 짓밟으며 통과시키고, 파업노동자들의 목을 죄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일을 마구잡이로 일삼고 있습니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흥미진진하고 날카로운 해석을 담은 책 <대한민국사 4권>을 썼던 한홍구 교수의 <특강>은 바로 이 험난한 시대를 명쾌하게 해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길잡이를 자처하는 책 입니다.

<특강>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주최하여 모두 8강좌로 진행된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강좌’를 다듬어 엮은 책 입니다. ‘대한민국사 강좌’는 2008년 5월 촛불정국 이후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재해석하기 위한 기획 강의였다고 합니다.

2008년 10월 13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된 ‘대한민국사 강좌’는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조작 간첩 사건, 토건국가의 역사, 제헌헌법, 괴담의 생산과 유통 소비, 친일경찰의 뿌리를 이어받은 한국경찰, 교육문제, 촛불의 역사성과 의미 등을 주제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명박, 괴담, 밥솥 시리즈

<특강> 제 1강의 주제는 ‘역사의 내전,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입니다. 제 1강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밥솥시리즈입니다.


“박정희가 열심히 일해서 밥솥을 하나 장만했어요. 그리고 밥을 지어놓고 죽었습니다. 전두환이 들어서서 퍼 먹었죠. 그 다음에 노태우가 보니까 밥은 전두환이 다 퍼 먹어서 누룽지를 긁어 먹었습니다. 김영삼이 밥솥을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거든요. 박박 긁다가 솥단지를 깨먹었어요. 김대중이 들어서서 외국 돈도 빌리고 카드빚도 내서 전기밥솥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무현은 110V냐, 220V냐 코드만 만지작거리다가 밥을 못 지었어요. 국민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이명박이 나타나서 ‘밥은 내가 해줄게. 내가 금방 지을 수 있어’하고 그 전기밥솥을 장작불 위에 딱 올려놓았다는 거 아닙니까.” (본문 중에서)

한홍구는 보수 세력의 놀랄만한 무능력을 밥솥시리즈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쇠고기협상, 환율문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일 하다보니 보수 세력들이 ‘말 안 들으면 잡아다가 줘 패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정권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무능한 보수는 정권을 잡자마자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하고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학교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 입니다.

“민주화되면서 방송이 정권의 손아귀를 벗어나 독립성을 회복하고, 교육도 전교조가 생기면서 많이 달라졌죠. 주먹으로 팰 수 도 없고 정권 유지의 버팀목이었던 방송과 교육을 놓쳐버리니까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겁니다.”(본문 중에서)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 떠난 교사,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처벌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일이나 세계적인 망신에도 불구하고 엉터리 표결로 미디어법 통과시키는 것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 입니다.

말하자면, 교육과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면 유지할 수 없는 정권이라는 것 입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장비를 확충하고, 서울광장에 차벽을 설치하고, 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의 위기

그럼,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역사학자 한홍구는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하긴 했는데 어떤 민주화입니까? 구시대와 폼 나게 단절한 것이 아니라, 구시대를 다 살려놓고 그 똥물이 가득 찬 통에다 계속 새 물을 부었습니다. 언젠가는 맑아지겠지 하면서요. 그러나 보니 구체제의 오물은 그대로 남겨둔 체 절차적 민주화만 이루어졌어요.” (본문 중에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가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말 합니다. 탄핵 자체는 반민주적 해위였는데,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 절차만 남은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었다는 것이지요.

위기를 맡은 국민들을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안겨줌으로써 민주화의 위기에서 벗어나오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행정수도 문제로 부딪히지만 대개혁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결국 수구세력들에게 200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대반격의 기회를 내주게 되는데, 한홍구 교수는 그 첫 번째 사건이 바로 ‘뉴라이트’의 등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뉴라이트를 수구세력의 ‘구원투수’라고 비유하였더군요.

뉴라이트의 면면을 보면 과거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류근일, 이재오, 김문수, 차명진, 송복, 심재철, 김진홍, 서경석 등과 같이 운동권 출신이 권력에 안긴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모두 개별적으로 포섭된 경우라고 합니다.

친일파, 건국공신 그리고 뉴라이트

그런데, 뉴라이트의 경우는 새로운 간판아래 몸값을 불리면서 집단적으로 등장하였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그는, 뉴라이트의 등장을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진단합니다.

뉴라이트가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집권세력에 의해 의문시되면서 국가정체성이 손상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친일 역사청산에 대한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뉴라이트가 벌인 가장 적극적인 활동이 바로 ‘과거 청산’과 ‘교과서 문제’라는 것 입니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의 핵심은 바로 과거 친일파가 애국자로 ‘변신’에 성공한 역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집단과 친일파를 애국자로 인정하자는 집단이 부딪힌 역사적 사건입니다. 불과 6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분명해집니다.

1948년 8월 정부수립 당시만 하더라도 ‘친일청산’은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1949년에 일어난 ‘남로당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습격’, ‘백범 김구 암살’ 등을 통해 친일파의 반격이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대한민국이 이승만과 친일파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것 입니다.

결국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과 교과서문제는 이런 역사를 미화하기 위한 작업인것이지요. 그들은 친일의 흔적이 선명한 ‘광복절’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지우고, ‘건국’을 내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뉴라이트가 국가 정체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이라는 것이 한홍구의 주장입니다.

“이명박이 중국에 다녀오자마자 비서를 붙잡고 물어봤죠. 촛불집회의 배후를 물었죠.......거기에는 반드시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죠....... 내 마음에 안 드는 모든 나쁜 것은 다 배후가 있죠. 이게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입니다.” (본문 중에서)

국가보안법 정체성과 조작 간첩 사건

국가보안법 정체성에 의해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조작 간첩 사건’이라는 것 입니다. 실력 없는 수구세력들이 이른바 ‘간첩 전성시대’를 만들어 ‘배후’를 조작하여 정권을 지탱해온 것이 한국현대사라는 주장입니다.

역설적이게도 1970년대 이후 북한에서 보내는 간첩이 줄어드는 동안 남한에서는 새로운 간첩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간첩이 내려오지 않으니, 이른바 공안기구에 의해 남한에서 간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1970년대, 80년대에는 억울한 간첩들로 ‘간첩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어부간첩과 재일동포 간첩 사건들이 “간첩의 간자 하고도 상관없는” 억울한 간첩 사건이라는 것 입니다.

<특강>에서 한홍구 교수가 소개하는 어이없는 조작 간첩사건을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장면이 맛있다.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이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일, 군대생활에 대한 기억,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위치, 어부가 기억하고 있는 바다의 물 때, 마을 파출소 위치 이런 것들이 다 군사기밀 수집, 탐지에 해당된다는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하여 ‘고문’이 자행되었고, 악명 높은 이근안은 간첩(?)을 세 명이나 잡았다고 합니다. 모두 고문으로 간첩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이 분단 된 것 때문에 동포사회가 총련과 민단으로 나뉘어졌고, 총련에 속한 동포들과 만나면 간첩이 되었다는 겁니다. 한홍구 교수는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잡을 수 있는 간첩은 북과 관련된 간첩이나 조작 간첩,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야 하는 간첩뿐이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 미국이 보내는 간첩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국가보안법은 하루 빨리 없어지고, 진짜 간첩을 잡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한편, <특강>은 촛불 이후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키워드를 현대사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키워드 중 하나는 ‘토건국가’입니다. 일본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토건국가가 된 과정, 부동산 투기의 역사, 강남개발의 신화, 개발독재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의 경제위기는 마인드가 골수에 박힌, 토건국가 시대의 행동대장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토건국가 ‘마인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임시정부 강령, 제헌헌법에 민주주의의 ‘길’이 있었다

또 다른 키워드는 ‘헌법’입니다. 촛불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수 없이, 수 없이 강조하였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특강>에서 헌법정신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임시정부 건국강령과 제헌헌법에 담긴 사회 공공성을 우리 앞에 다시 내놓습니다. 이 나라가 원래부터 엉망이 아니었다는 것 입니다.

친일파들이 건국공신으로 둔갑하기 전만 하여도 온전하게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헌법적 토대가 충분하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는 제헌헌법에 담긴 사회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영화’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임시정부’와 ‘제헌헌법’이라고 단언합니다. 아울러 임시정부의 법통과 제헌헌법에 기초한 국가 정체성을 짓밟은 것이 바로 친일파 건국세력이라는 것 입니다.

또 다른 키워드는 ‘민주주의와 촛불’입니다. 그는 촛불을 통해 ‘민주주의를 직접 살아 본 세대’의 역동성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전쟁 끝나고 7년 만에 4.19가 일어났으며, 암흑과 같았던 유신 후에 불과 7년 박정희가 죽었고, 광주 학살 이후 7년 만에 6월 항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절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고 말 합니다. 미래의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내는 지금,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킵니다. 인물보다 원칙과 정책을 중심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국정원과 검찰을 개혁하고 과거사 청산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칙을 가진 사람, 법을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을 소탕하고 거기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따라 그 역할을 하는데 제 몸을 던지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바로 한홍구 교수의 원칙과 정책입니다. 그는 각자가 생각하는 원칙과 정책을 내걸고 여기에 만족하는 후보를 만들어 모든 것을 바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 합니다. 시간이 없어 그를 직접 만날 수 없었던 독자들과 함께 한홍구 교수의 <특강>을 통해 희망의 씨줄, 날줄을 함께 엮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특강 - 10점
한홍구 지음/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