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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장난감 총, 칼로 악당을 물리치고 싶은 아이들 마음

by 이윤기 2009.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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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추콥스키 동화집 <악어>

러시아 어린이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코르네이 추콥스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러시아 아이들의 언어 세계와 동화, 동시에 대하여 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라고 하는 책을 통해서 입니다.

당시 이 책 서평 기사를 작성하면서 김광석이 부른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아이들이 쓴 동시에 곡을 붙인 백창우가 만든 어린이 노래, 아이들의 입말을 들어주는 박문희 선생님의 마주이야기 교육, 이오덕 선생님의 삶이 담긴 글쓰기 교육은 어쩌면 추콥스키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 일이 있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80년 전 러시아 아동문학가였던 추콥스키와 비슷한 생각으로 아이들이 쓰는 글과 말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하였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해 보았지요. 실제로 러시아 어린이들에게 '추코' 아저씨는 우리나라의 방정환과 같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쓰는 말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입말과 동화, 동시를 이해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이한테서 배운다'는 밝고 낙천적인 교육사상이 담겨있었습니다. 1925년에 쓰인 이 책은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린이 이 언어발달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국내에 번역 출간 된 <악어>는 러시아 어린이의 언어 세계에 대한 탁월한 연구자였던 추콥스키가 처음 쓴 동화 작품입니다. 어린이 교육 분야에도 관심 있는 제가 추콥스키가 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라는 책을 읽고 워낙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해 내놓은 <악어>를 주저 없이 고르게 되었습니다.


추콥스키 동화집 <악어>에는 대표작품 악어를 비롯하여 10편의 동시와 동화가 함께 묶여있습니다. 그 중 1916년에 처음 발표한 <악어>는 “러시아 아이들은 추코 아저씨의 <악어>와 더불어 큰다”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악어를 읽었을 때의 첫 느낌은 김광석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처럼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된 기분이었습니다. 아마 추콥스키가 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읽지 않았다면 논리적 설명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마구 자유자재로 전개되는 것에 더 많이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추콥스키는 아이들의 언어발달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특징을 ‘기발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쓴 동화 <악어>에도 기발함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에 나타난 악어는 개도 삼켜버리고, 경찰도 삼켜버리고, 장화와 칼도 모두 삼켜 버립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악어를 물리치는 것은 꼬마 ‘바냐 바실리치코프’입니다. 바냐 바실리치코프는 어이없게도 장난감 칼을 번쩍 들고 이렇게 말 합니다.

“너는 사람들을 먹어 치우는 악당이야. 그 벌로 내 칼이 네 목을 칠 것이다.”

그러자 악어가 무릎을 꿇고, “네가 이겼다”하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어가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네가 이겼다. 나를 죽이지 마라, 바냐 바실리치코프 ! 내 악어 새끼들을 불쌍히 여겨 줘. 새끼들이 나일강에서 물장구치며 기다리고 있어. 울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나를 애들한테 보내 줘, 바냐. 그러면 너에게 꿀 과자를 줄께.”

장난감 칼, 장난감 총을 가지 아이들은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 볼 것 입니다. 나쁜 악당이 나타나면 자신이 가진 장난감 총이나 칼을 가지고 무찌르는 상상을 하곤 하지요. 실제로 어떤 나라의 좀 모자라는 강도는 장난감 총으로 위협하는 아이에게 쫓겨 도망을 친 일도 있다고 합니다.

악어를 물리치고 도시를 구한 ‘바냐’에게 사람들은 상을 주자고 합니다. 어떤 상을 주었을까요? 사람들이 바냐에게 준 상을 모두 아이들이 받고 싶어 하는 상입니다.

“바냐에게 상으로 포도 100파운드, 오렌지 잼 100파운드, 초코릿 100파운드, 아이스크림 1000인분을 줘야만 해.”

아이들이 추코 아저씨의 동화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 이런 ‘기발함’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 어른들은 <악어>를 싫어했었다고 합니다. 당시만 하여도 아이들에게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합니다.

“악어가 터키 말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고, 우리에 갇힌 동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동물들이 페테르부르그를 공격하고, 모두가 벌벌 떠는데 어린 바냐가 장난감 칼과 총으로 악어와 동물들을 물리치고 동물들과 평화 협정을 맺고.......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당시 러시아 문학 이론가들과 교사들은 대부분 환상적인 <악어> 내용이 아이들의 교육과 현실인식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추콥스키를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과 달리 책을 읽는 아이들은 ‘기발함’이 가득한 <악어>의 환상적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감한 주인공 ‘바냐’가 되어 악어와 동물들을 물리치는 모험에 빠져들었던 것이지요.

추콥스키는 어린이의 언어 발달은 ‘기발함’에서 출발하여, 입말을 중심으로 말을 익히고 점점 더 많은 단어를 상요하면서 어휘력이 풍부해지는 과정을 밟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말을 잘 가르치는 것은 어린이들이 생각을 잘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기발한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추콥스키 동화는 의인 동화 성격이 강하고 환상성과 현실성이 뒤섞여 있다고 합니다.

“동물들과 곤충들이 말하는 것은 기본이고, 곰이 자전거를 타고, 모기가 풍선을 타고, 사자가 자동차를 타고, 두꺼비가 빗자루를 타고 다닌다. 고양이가 꿀꿀대고, 돼지가 야옹거리고, 오리가 개굴대고, 참새가 음매 울고, 뻐꾸기가 멍멍 짖고  심지어 바다가 불길에 휩싸여 고래가 바다에서 뛰쳐나오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뒤죽박죽시, 무의미시, 장난시로 여겨지기도 했고, 소비에트 시기에는 ‘추콥스키주의’의 비판을 받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추콥스키 자신은 어른들이 보기에 무의미한 것들이 어린이 발달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사물과 사물의 정확한 관계를 알면 알수록 놀이로 그것을 어긋나게 만드는 것을 더 재미있고 우습게 느낀다는 것이지요. 마치 김광석 노래처럼 말입니다.

그는, 아이들이 뒤죽박죽시, 허무맹랑한 이야기, 옛날이야기,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삶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강화하기 때문에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유용한 지적 도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양철북 출판사가 번역 출간한 추콥스키 동화집① <악어>에 실린 10편의 동화와 동시는 추콥스키가 강조한 아이들의 언어발달, 그리고 자신이 주창한 동화와 동시를 쓰는 원칙을 잘 살려 쓴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악어 - 10점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바스녜초프·카녭스키·코나셰비치·스테예프 그림, 이항재 옮김/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