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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아버지가 일으킨 차례와 제사 혁명

by 이윤기 2008.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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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 평등, 우리집 추석 차례지내기 

추석과 설 명절을 지낼 때면, 차례 음식 만들고, 상 차리고, 설거지에 연휴를 다 보내는 며느리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잊습니다. 양성이 모두 평등하게 지내는 명절이야기가 여전히 주요한 뉴스로 회자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더 많은 가정이 바뀌어야 하는가 봅니다. 

내년이면 칠순이 되시는 제 아버지가 앞장서서 만들어가는 ‘평등 명절 보내기’를 소개합니다. 저희 집은 딸이 귀합니다. 제 형제는 2남 1녀이고, 저와 아들 형제를 남동생은 아들을 두었습니다. 여동생이 결혼을 한 후 저희 집에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제수씨만 여자입니다.  말하자면, 여자들만 차례와 제사준비를 도맡아 하기는 힘든 가족구성이라는 뜻입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가사노동을 나누어하셨습니다. 물론 똑 같이 나눈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더 많이 하시긴 하였지만, 친구들 집과는 달리 아버지가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가끔은 요리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저희 형제들 역시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거들었구요.
 

이미 수년전부터 저희 집은 명절 차례 준비를 가족들이 모두 나누어서 합니다. 차례상을 준비하기 위한 장보기는 아버지 몫이고, 나물을 준비하는 것은 어머니 몫입니다. 제 아내는 전과 튀김을 준비하는데, 중5, 초5 아들 둘이 곁에서 거들어야 합니다. 대형 프라이팬을 꺼내오고, 요리가 끝나면 청소해서 제 자리에 두는 것은 제 몫입니다. 

차례 음식을 준비하다 모자라는 재료가 있으면, 시장을 다녀오는 것도 제 몫이구요. 이번 추석에는 송편 빚는 일을 저와 아버지, 그리고 제 아들 둘이서 맡았습니다. 솥에 찌는 일만 어머니께서 도와주셨지요. 가족이 모여 여러 차례 반복하는 명절 식사 후 설겆이 역시 며느리와 아들들이 번갈아 가며 하도록 하십니다.  

아들, 며느리 차별 없는 우리집 차례 예법

여전히 전통(?)예법을 지키는 많은 가정에서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한 여성들은 차례에서 배제됩니다. 제 처가만 하여도 며느리와 딸들은 그저 먼발치에서 남자들이 차례지내는 모습을 구경만 할 뿐이니까요. 



그런데, 저희 집 차례는 조금 다릅니다. 제관이신 아버지께서 분향과 광신을 하고, 남여구분 없이, 며느리 딸 그리고 사위도 구분 없이 모든 식구들이 함께 인사(절)를 올립니다. 다같이 첫 인사를 드린 후에는 부모님부터 차례대로 잔을 올리는데 이때도 다른 집과는 조금 다릅니다.
 

부부나 형제가 함께 잔을 올립니다. 아버지께서는 “만약 차례 상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와서 앉아 계신다면, 아들한테만 인사를 받고 기뻐 하실리가 없다”고 하십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모두 잔을 드리고 인사를 드리면 더 좋아 할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두 분이 어머니와 나란히 잔을 올리고 절을 하십니다. 

부모님 다음엔 저희 부부와 동생부부도 함께 잔을 올리고, 다음엔 제 아들 형제가 나란히 앉아서 잔을 올리도록 하십니다. 소위 종손이 제 큰아들과 작은 아들을 차별하지 않기 위하여 두 형제를 나란히 앉혀서 잔을 올리게 하신답니다. 

가끔 결혼을 한 여동생 내외가 참석하는 명절이 아닌 제사 때는 종손인 제 아들 순번이 뒤로 밀립니다. 여동생 내외가 먼저 절을 올린 후에 아들 형제 순서가 된답니다. 직계 남자와 맏아들을 중심으로 되어있는 제사 예절을 확~ 바꾸신 것이지요. 

생일은 날짜 바꿔 지내는데, 제사는 왜 못 바꾸나? 

올해는 추석 연휴가 짧았다고는 하지만, 설과 추석에 지내는 명절 차례는 최소한 3일 연휴가 보장되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한 샘입니다. 그렇지만, 조상님들이 돌아가신 날에 맞추어 지내는 기제사는 대부분 주중에 지내기 때문에 제사준비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을 다니는 아내는 제사 준비 때문에 휴가를 낼 때도 있었고, 제사 다음날에는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해야 하였습니다. “이런 불편한 풍습을 그대로두면 결국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없어질 수밖에 없다” 고 생각하신 제 아버지께서 제사 날짜를 모두 토요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어느 해 설날 아침, 아버지께서는 “살아있는 사람 생일도 모두 날짜를 바꾸어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바꾸는데, 제사도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해부터 저희 집 제사는 원래 조상님이 돌아가신 날에 앞선 토요일로 모두 바뀌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8~9시 사이에 제사를 지낸 후에 가족 모두가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여유로운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음 날 출근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습니다. 

저희 아버지의 혁명(?)적인 변화를 전해들은 제 친구들과 동료들 여럿이 집에 가서 부모님들을 설득해보았지만 실패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제사를 토요일로 바꾸었다는 집은 더러 생겨났습니다. 실패한 지인들 중엔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자기는 꼭 그렇게 바꾸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제사와 차례상에 바나나를 써도 되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가, 결국 바나나는 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 문제에 대한 제 아버지 생각은 "사람이 먹는 음식은 어떤 것도 무방하다."입니다. 모든 예법은 시대 변화와 흐름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제 아버지 생각이십니다.

차례와 제사가 번거롭고 힘들다구요? 발상을 바꾸고 가족이 모두 일을  한 번 나누어보세요.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