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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유럽 연수

주민참여의 눈으로 본 영국과 프랑스의 지방자치 ①

by 이윤기 2008.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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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금지하지 않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관한 NGO 해외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여 2002년 9월 14일부터 21일까지 7박 8일의 일정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지방자치단체 3곳( 런던의 타워핸릿, 버밍햄 인근의 설리헐시, 파리의 16구청)그리고 3곳의 지역주민조직(타워핸릿의 여성단체, 청소년단체 그리고 16구청의 끌리스)을 방문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세계적인 제 3세계 지원단체인 CCFD를 방문하였으며, 환경운동가인 ‘뷔송’변호사의 ‘프랑스의 지방자치제도’에 관한 특강을 듣게 되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주관한 이번 해외연수프로그램에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추천을 받아 참여하였으며, 전국에서 12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3명의 공무원이 함께 ‘유럽지방자치연수’라는 주제로 영국과 프랑스를 다녀왔다. 

역사성, 지역성을 담아내는 획일화되지 않은 제도

영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중세에 출현한 교구(parish)를 기원으로 볼 수 있으며 성문법을 토대로 종합적인 지방정부가 탄생한 것이 이미 19세기 말 경이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지방자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제도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소위 한국의 지방자치를 기관대립형이라고 하는데 영국은 기관통합형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의회에서 시장을 뽑는, 즉 지방의회가 의결기관이면서 동시에 집행기관으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가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갖고서 집행기관보다 우위에서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방문지였던 Solihull 은 영국 서북부에 위치한 인구 20만 명의 중소도시이며, 인근에 인구 100만명 규모의 버밍햄(영국의 제2 도시) 이 있다. 영국의 지방정부의 조직구조는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조차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구조(스코트랜드- 리젼, 디스트릭와, 잉글랜드 -카운, 디스트릭, 대도시 - 바러, 농촌지역- 교구)를 가지고 있는데, 대략 450개정도의 지방정부가 있다. 

전국이 획일적으로 똑 같은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성, 현재의 실정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지방정부의 공무원들조차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이지만 다양한 주민의 욕구를 반영하고 역사적,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는 조례 하나 변변히 없으며, 간혹 주민의 복리를 위한 새로운 조례를 하나 제안하기라도 하면, 조례 자체의 필요성보다는 상위법에 근거가 있는지?, 타시도 입법사례가 있는지를 놓고 먼저 설전을 벌이고, 좀처럼 다른 지역에 사례가 없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참 많이 달랐다. 

전남도청 소속으로 영국의 버밍햄 대학에서 지방자치제도를 공부하고 있는 공무원 송영종씨는 간담회에서“ 영국의 지방정부는 권한이 막강하다. 법이 금지하지 않는 일은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 세금을 걷을 수도 있다.”고 강조하였다. 

마치 우리나라는 지방정부가 권한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비쳤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법도 법이 금지하지 않는 일은 조례로 제정(대법원 판례)하여 시행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지방정부들은 ‘남들처럼, 남과 같이’ 해야한다고 믿기 때문에 권한이 있어도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주민의 욕구를 담아내고 역사적,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지방자치제도와 구조가 지역마다 다르지만, 서로 다른 제도와 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참여하는 주민이 진정한 지역의 ‘주민’이다. 

일선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실무자로서 늘 안타까운 것은 지방자치가 제도로는 도입되었지만 반쪽의 지방자치일 뿐이며, 결국 주민참여를 이루어내는 일이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행정정보공개운동, 지방자치주민참여단, 의정지기단, 주민자치대학 등 일련의 프로그램들도 역시 지방자치라는 제도에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중의 하나였다. 그런데도 이 일은 늘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시도에 비하여 주민의 자발적 참여는 일어나지 않고 더군다나 공익적 참여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되어있다. 

솔직히 이번 연수의 방문 일정을 통하여 살펴본 바로는 영국이건 프랑스건 제도에 있어서 우리보다 월등하게 나은 주민참여의 장치(형식)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참여의 장치가 운영되는 내용에 있어서는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우리의 경우 최근에 와서 약간 달라진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이 각종 위원회에 주민을 참여시키기는 하지만 소위 관변단체인사들이 지역주민을 대표하고 있으며, 그나마 ‘자문기구’로서의 역할 밖에 할 수 없고 공무원들이 짜놓은 틀과 시나리오에 따라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반면에 이번에 방문한 두 나라의 경우 실질적인 주민참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위원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계획을 수립하고 의견을 반영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차이가 확연하였다. 예컨대, Solihull의 무주택자 프로그램의 경우 지역주민은 단순히 소식지를 받아보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쪽지를 보내는 일,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장기발전계획을 세우는 일에는 학교, 병원, 경찰, Solihull Council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 섹터(자원봉사, 자선단체), 사업자단체(공항, 무역센타, 대형전시장)의 참여가 보장되며,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하여 ‘분쟁이나 갈등을 조정하고 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Solihull Council의 공무원인 번스씨는 이러한 계획이 의원이 바뀌거나 집권정당이 바뀌면 달라지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방법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인 비젼과 골격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계획의 주인(역)은 지역주민이기 때문에 이 계획에 대한 평가는 주민들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환경이나 외부의 힘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여 필요한 사항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쉽게 변화될 수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요구조사와 다양한 지역현안에 대해 1년에 최소 4번 이상 이루어지는 씨티즌 패널을 통한 사회조사(주민만족도)제도,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개최되는 야간의회 활동 등은 주민참여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중의 일부이다. 

공무원인 송영종씨는 영국의 주민참여에 대하여 “District Council과 Paristh Council은 경쟁적으로 주민참여를 개발하고 있다. ‘리스닝 데이’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고, 정책결정에 반드시 주민들을 참여시킨다. 포럼 개최를 통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한가지 주제로 2-3일씩 토론을 개최하기도 한다. 새로운 정책에 대하여 반드시 주민들에게 알리고 의견을 수렴하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틀어 놓았다. 

그런데, 주민참여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실질적인 주민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도 지방의원선거의 투표율은 30%이내(중앙선거 50% 이내) 이다.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경험은 별로 다르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낮은 투표율과 높은 주민참여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런 의문은 연수가 끝나갈 무렵 ‘뷔송’변호사의 ‘프랑스의 지방자치제도’에 관한 특강을 통하여 해소되었는데, 그는 “UN 경제사회위원회에서도 보장된 NGO의 세 가지 권리가 있는데, 정보접근의 권리, 공적 토론참여의 권리와 기능, 사법제도에 참여"라고 강조하여 제도적인 주민참여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오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하여 “지역주민의 의견수렴해서(주민이 참여하여)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야 주민의 반대에 부딪치는 일없이 원만하게 행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의식이 공유”되고 있다고 하였다. 

이들 두 나라가 우리와 확연하게 다른 점은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를 통하여, ‘권리 위에 잠자지 않는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하는 주민이 ‘주민참여’의 중심에서 지역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는 70%의 주민이 아니라, 투표라는 소극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나머지 70%를 ‘주민’으로 인정하며, 그 중에서도 시간을 내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고 공청회에 참여하고 주민토론회에 참여하여 발언하고 의견을 내놓는 적극적인 주민을 ‘주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참여형 주민’들을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민’으로 인정하는 사회 사적 경험과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이었다. 우리사회에서는 공익을 위하여 지방자치에 참여하고자하는 ‘참여형 주민’들의 대표성이 늘 위협받고, 의심받고 있다. 

시민운동가로서 다양한 주민참여를 시도할 때마다, 시정에 관하여 시나 의회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 때마다, 지역주민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제안할 때마다 늘 우리는 “너희들이 무슨 시민의 대표냐?”하는 질문을 받게된다. 

이러한 말속에는 늘 ‘지역주민이 직접 선출한 우리가 대표(50% 주민)’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법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민의 공익을 위한 소송을 시민단체가 제기하게되면 늘 ‘원고부적격’으로 소송 조차해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참여하는 주민보다 침묵하는 주민,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주민들의 대표성을 기계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참여형 주민’의 대표성을 인정하는 토양에서 진정한(활발한) 주민참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활발한 주민참여의 진정한 동력은 (공익을 위해) 지역사회에 참여하고자 애쓰는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그들을 진정한 지역사회의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을 주민참여의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공무원과 의원들과 지역사회의 문화와 시민의식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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