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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기도하는 혁명가 예수의 생애

by 이윤기 2010.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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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김규항이 쓴 <예수전>

지승호, 김규항 인터뷰집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읽으면서 김규항의 전작 <예수전>을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에 포함시켰다. 이 인터뷰집에서 좌파 김규항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영성’을 이야기한다.

관련기사 : 2010/06/16 - 진보 구별, 자식 교육시키는 것 보면 알아

그는, 진보주의 운동 좌파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를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며,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을 ‘혁명’이라 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우는 것은 ‘영성’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는 만드는 세상은 위험하다고까지 한다. 물론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에게서 얻는 심리적 평온에만 기대는 것도 틀렸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에서 좌파와 기독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좌파 김규항이 기도와 영성을 말하고, 그가 예수의 말을 ‘傳’한다고 하니 놀라운 마음에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수, 영혼의 구원자인가? 정치적 구원자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예수는 영혼의 구원자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너와 가족이 구원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뿐만 아니라 영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다.

아울러 한국 교회에서 예수는 아울러 예수는 기독교인들의 세속적 욕망을 신에게 청탁하는 매우 유능한 중계인이 되어버렸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부와 건강과 지혜와 그리고 사랑까지도 그의 이름을 받들어 신에게 청탁하는 일을 자연스러운 기도로 믿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 신탁이라고 하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남들보다 나를 더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전부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탁 속에 남을 못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없지만, 내 자식이 1등을 하면 누군가는 꼴등을 맡아야 하는 세상에서는 결국 나만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맞나? 하느님이 맞나?

김규항은 바로 이런 오해를 걷어내고 싶어 <예수전>을 썼다고 한다. 그는 예수가 살아 있을 당시에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복음을 전하였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가장 먼저 쓰이고 그 만큼 종교적 첨가도 적은 <마르코복음>을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울러 이 책에는 신을 ‘하느님’으로 표기하였는데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김규항은 그 까닭을 서문에 밝혀두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느님이라고 표기한 건 그게 보편적인 표기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있는 주요한 기독교 교단들, 즉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가운데 ‘하나님’을 사용하는 곳은 개신교뿐이다. 나머진 다 ‘하느님’이라 한다. 네 곳 가운데 세 곳이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건 보편적인 태도가 틀림없다.”

아마, 이렇게 정확하게 까닭을 밝혀두지 않았다면 아마 이 표기 때문에 <예수전> 전체가 매도당하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하나님’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하느님’이라고 표기하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부르는 개신교 기독교인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틀렸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하느님이라 부르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하느님(하나님)의 실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나님과 하느님을 두고 논쟁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 옮겨본다.

아무튼, ‘천하’의 김규항도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미리 여러 가지를 밝혀야 할 만큼 한국에서 기독교를 말하는 것, 예수를 말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민감한 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역사적 상황을 통해 예수를 보라 !

김규항은 <예수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오늘날의 관점에서만 예수를 바라보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당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예수의 모습에 주목해보라고 말한다.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던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란 이방인의 압제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다윗왕과 같은 하느님의 선정을 이루는 정치적 구원자를 뜻했다.”

말하자면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영혼의 구원자’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가 영혼의 구원자가 된 것은 “예수가 죽고 예수의 운동이 기독교라는 종교로 발전하고 교리가 정립” 된 이후라는 것이다.

결국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옮긴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 당시에 정치적 구원자라는 의미였으나 그가 죽은 후에 기독교라는 종교가 발전하면서 ‘영혼의 구원자’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는 것. 심지어 예수 당시에는 아직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출신성분과 출신지역?

책을 통해 알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출신성분을 사람을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출신 성분으로 개인의 계급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출신성분은 어떤가?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 당시 이스라엘에서 그의 출신 성분은 ‘메시아’로서는 역부족이다.

출신성분만이 아니다. 예수를 영혼의 구원자로 자리매김시킨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출신지역도 불편한 진실이었던 모양이다. 예수는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이다. 예수 당시 팔레스타인 땅의 중심지역은 ‘예루살램’ 성전이 있었던 유다지역이었다고 한다.

예수는 유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이다. 갈릴래아는 비옥한 농토가 많았고 어업이 활발하였지만, 정작 수확물은 유다 지역에 살던 지주들 차지였다고 한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지배계급과 로마의 이중적 착취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갔는데...외세의 침략으로 적지 않은 혼혈이 생겼던 지역...유다 사람들에 의해 심한 차별과 천대를 받았다.”

예수는 바로 가난과 차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절망감으로 저항의식을 키워가던 갈릴래아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김규항은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에서 예수가 배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적은 것은 억지스럽다고 평가한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지만 헤로데의 박혜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였다가 갈릴래아로 돌아오는 것으로, 루가복음에서는 그 부모가 갈릴래아에서 살다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서 예수를 낳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베들레헴 출신으로 기록된 것은 결국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메시아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에게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는 유다지역에서 출생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

그러나, 마태오복음이나 루가복음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배들레헴은 태어난 장소일 뿐 부모 살았고 예수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갈릴래아를 그의 출신지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항은 이런 점을 들어 예수는 영광의 왕으로서 메시아가 아니라 인민들의 고통스런 삶을 함께하는 메시아로서 예고되었다고 해석한다. 아울러 예수가 ‘교리 속의 메시아’가 된 역사적 기원을 밝히고 있다.

“325년 최초의 기독교인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에 있는 제 별장에 세계의 주요한 주교들을 모아 놓고 회유와 협박으로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이른바 니케아 공회의 이전까지 예수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는 의견보다 사람보다는 높지만 하느님보다는 낮은 존재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었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예수의 지위를 하느님과 같은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결정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해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규항이 쓴 <예수전>은 교리가 만들어 낸 신비한 예수 대신에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태어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예수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복원해내는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수의 공생애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가 병든 자들을 고친 일, 안식일을 거부한 이유, 제자들이 예수를 부인한 이유와 같은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예수의 삶을 새롭게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김규항은 독자들에게 이 책에 적힌 자신의 견해보다 그런 견해가 만들어지는 풍경에 주목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이 기존에 가진 종교적 지식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마르코복음>을 묵상하는 것처럼 독자들도 선입견을 걷어내고 <마르코복음>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예수전 - 10점
김규항 지음/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