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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평화를 가르치지 않으면 폭력만 배운다.

by 이윤기 200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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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콜먼 맥카시가 쓴 <19년간의 평화수업> 기록

자율과 경쟁을 통해 교육을 살리겠다는 2MB 정부의 교육정책이 학교와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우열반을 편성해 학생을 서열화 시키고, 일제고사 부활, 자율형 사립고와 기숙형 공립고를 설립해 학교 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당국자와 교육 관료들은 경쟁 중심 교육정책으로 학교와 학생을 서로 싸워 이겨야만 하는 경쟁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공정하지도 않은 경쟁을 통해 시험점수가 성패를 좌우하는 무한경쟁으로 아이들을 몰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을 이겨야 성공할 수 있는 이기주의자를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경쟁과 양육강식의 폭력이 난무하는 입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 학교에서는 여러 차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그런 미국 학교에서  정식교사도 아니면서 ‘평화’를 가르쳐온 사람이 있다. <19년간의 평화수업>을 쓴 콜먼 맥카시가 바로 그 사람이다.

1982년 가을학기부터 자신의 두 아이가 다니는 ‘담장없는 학교’(School Without Walls)에서 시작한 그의 평화수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맥카시가 평화수업을 처음 시작한 ‘담장없는 학교’는 백악관에서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로 300여명의 학생이 있는 공립고등학교다. “공립학교이지만, 일반 고등학교와 달리 체험학습과 살아있는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학생중인의 열린교육을 하는 진보적인 대안학교”였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담장없는 학교에서 시작된 그의 ‘평화수업’은 소년원, 가난한 공립학교, 부유한 지역의 사립학교, 여러 대학교 로스쿨 등에서 5천명이 넘는 학생들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지난 2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엮어낸 감동적인 평화이야기와 재미나고 독특한 수업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화를 배워야 스스로 평화가 될 수 있다.

<19년간의 평화수업>은 왜 평화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평화가 얼마나 아름답고 힘이 센지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책이다. 20년이 넘도록 평화교육을 해온 맥카시는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지 않으면 폭력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지 않으면 누군가 우리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르칠 것 입니다.”(본문 중에서)

글자를 가르치고 배우지 않으면 글을 읽을 수 없는 것처럼, 평화 역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아무도 평화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평화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사랑하기는 점점 더 쉬워지고 미워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 사랑의 힘과 진실의 힘, 정의의 힘, 부패한 권력에 조직적으로 맞서는 힘, 이런 힘들이 올바른 것이 되고 반대로 주먹, 총, 무기, 폭탄의 힘은 비정산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 (본문 중에서)

콜먼 맥카시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평화수업을 해왔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평화문제는 늘 우리가까이 있다고 한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삶속에, 날마다 3만 5천 명의 아이들이 질병으로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아이들의 삶속에, 약 35개의 전쟁과 분쟁으로 매달 4만 명 이상 죽어가는 현장에, 그리고 매일매일 7억 달러의 돈을 군대를 유지하는 데 쓴 미국 국방부에도 있다고 한다.

매일 7억 달러는 1초당 8천 달러씩을 전쟁을 위해 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평화봉사단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예산의 3배가 넘는 돈이 매일 매일 미국 국방비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쟁과 폭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 수 있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수백 년 전에 평화로운 곳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 시작이다.

<19년간의 평화수업>은 그의 오랜 경험 중에서, 특히 2000년 가을 학기 동안 6곳에서 이루어진 평화수업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고 있다. 소년원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로스쿨에 이르기까지 9월부터 12월까지 수업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재미있고 인상 깊은 사례들을 소개해본다.

맥카시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갖는 것이 평화를 배우는 첫 걸음이라고 워싱턴 센터에서의 평화수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수업 교재로 사용될 책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책값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얼마를 내야 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하죠?”
“자네가 결정하게나”
“만일 제가 교재 두 권을 20달러에 사고, 누군가는 40달러에 산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건 그 사람들의 선택이지, 그들이 결정한 것이지. 그러니 이제는 자네가 결정하게.”
“만약 우리가 한 푼도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것도 자네가 결정하게나”
“선생님은 이 수업의 교수이고, 교재의 값을 결정하는 것은 교수의 역할입니다.”
“아무튼 자네가 결정하게나.”

첫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은 25달러에서 45달러까지 스스로 결정한 책값을 냈다고 한다. 그 중 어떤 학생은 책을 꼼꼼히 읽어본 뒤에, 또 다른 어떤 학생은 한 학기 강의를 마친 후에 값을 내겠다고 하였단다. 지은이는 학생들 모두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난생 처음 스스로 책값을 결정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평화는 그렇게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가지는 것에 익숙해짐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

담장없는 학교에서 첫 평화수업이 있던 날, 맥카시는 학생들과 ‘빨간 자동차, 녹색자동차’ 게임을 한다. 진지한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교실에서 나가서 학교 앞 도로에 지나가는 빨간자동차와 녹색자동차 수를 가능한 가장 정확하게 세어오라고 시킨다는 것이다.

한번은 미드웨스트 대학 언론대학원 학생들과 특강을 하는 날에도 같은 게임을 하였단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이었는데 학생들에게 빨간 자동차와 녹색 자동차를 세어오라고 한 것이다. 폭우 속에서도 학생들은 20분 동안이나 시키는 대로 했고 결국 비에 흠뻑 젖은 채 강의실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동차를 세고 온 학생들과 주고받는 대화다.

“자동차를 세는 일이 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나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동차 수를 세는 일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왜 숫자를 셌나요? 왜 현관으로 갔지요? 왜 내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지요?”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비가 심하게 쏟아지는 날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자동차 수를 세어 오라고 하면, 아무리 순한 양이라도 거부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부당한 요구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것을 가르친 것이다.

남용하는 모욕적인 권력에 협조하지 않기, 어리석은 행동을 강요할 때 당당하게 ‘아니오’ 라고 말하기, 군대를 끌어들이는 것, 전쟁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할 때 ‘아니로’라고 하기, 협력보다 경쟁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기, 폭력이 평화를 가지고 온다고 주장할 때, ‘아니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10월, 한국에는 경쟁이 학생들의 성적과 능력을 더 향상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평화는 옳지 않은 일에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당당하게 맞설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기념 시험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연설문은 모든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그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나선 첫 번째 지도자였다는 사실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연설은 어떤 교과서에도 실려 있지 않다고 한다.

루터 킹은 전쟁을 반대하는 연설에서 “오늘날 이 세상에서 폭력을 가장 많이 퍼뜨리는 주범은 바로 미국정부”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미국 학생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맥카시는 이런 학생들을 위하여 ‘마틴 루터 킹 기념 시험’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독자들도 이 시험에 한 번 참여해보시라.

중국 1945-46/ 한국 1950-53/ 중국 1950-53/ 과테말라 1954/ 인도네시아 1958/ 쿠바 1959-60/ 과테말라 1960/ 콩고 1964/ 페루 1965/ 라오스 1964-73/ 베트남 1961-73/ 캄보디아 1969-70/ 과테말라 1967-69/ 그라나다 1983/ 리비아 1986/ 엘살바도르 1980/ 니카라과 1980/ 파나마 1989/ 이라크 1991-99/ 수단 1998/ 아프가니스탄 1998/ 유고슬라비아 1999

위 목록은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의회로부터 승인과 지원을 바다 전쟁에 참가했던 나라들이다. 위나라들 가운데 미국이 참전하여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인권 상황이 좋아진 나라는 몇 개일까?

너무 어려운가? 다행이 맥카시는 객관식 5지선다형으로 문제를 냈다. 보기를 보고 정답을 찾아보시라.
①0  ②제로 ③ 전혀 없다 ④ 하나도 없다. ⑤-1과 +1 사이의 정수

목록은 역사학자 윌리엄 블럼이 정리한 것인데,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08 이라크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마틴 루터 킹은 “해마다 사회 개선 프로그램보다 국방비에 더 많은 예산을 쓰고 있는 나라(미국)야 말로 정신적 파멸로 치닫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고 한다.

2001년 미국 국방예산은 2천8백78억 달러, 국방기금 까지 합치면 전쟁을 위해 쓰는 국방부의 그 해 총 예산은 무려 3천90억 달러인데, 어마어마한 이 돈은 보통 사람에게는 수치에 불과하다. 3천90억 달러는 날마다 8억 달러, 1초에 약 9천 달러를 전쟁을 위해 쓸 수 있는 엄청난 예산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마틴 루터 킹 기념 시험을 통해, 자신들의 조국이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 특정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구체적 자료를 가지고 평화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단순 봉사로는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

맥카시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빈민가 초등학교에 찾아가 자원봉사활동을 하게하고, 노숙자를 위한 사회봉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하며, 불평등한 교육구조와 도시 흑인 빈민문화를 다룬 책을 읽고 토론하게 한다. 그러나 단순한 봉사에 그치는 것으로는 평화교육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숙자를 위한 여러 사회프로그램 대신 더 많은 무기 생산을 위해 돈을 쏟아 붓는 국회 정책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음식을 대접하는 아름다운 행위도 게으른 자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정치적 구조가 이러한 빈곤을 악순환시키는지 배워야한다. 정치학의 진정한 정의, 곧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누가 결정하는가에 대해서도 배워야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맥카시의 평화수업은 ‘환대의 집’을 운영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평생을 살았던 도로시 데이의 삶을 배울 뿐만 아니라 그의 뜻을 이어받아 평화 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교실 수업에 초대하기도 한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과 만나기도 하며, 폭력적인 맥도널드 식사 대신에 평화를 향하는 비폭력 식사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그가 만든 사형제도에 대한 23개 문항의 O X 퀴즈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판결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민족이 사형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실제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조셉 브라운’과 같은 사형수를 수업에 초대하여 학생들과 직접 만나게 한다.

폭력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책과 다큐멘터리가 그의 수업에 사용된다. 그의 수업에는 성적이 없다. 그는 학생들에게 수료와 낙제로만 평가한다. 그는 성적표가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느냐 하는 것이라고 만 한다.

심지어 그는 수업준비가 되지 않은 채 강의실에서 시간을 때운 날은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돌려주기도 한다. 그의 이런 행동은 모두 학생들에게 ‘평화’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도록, 곧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는 어떤 꽃은 조금 늦게 피기 때문에 교사가 볼 수 없는 먼 곳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년간의 평화수업>에는 맥카시와의 평화수업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여러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있다. 폭력 대신에 평화를 배운 아이들은 ‘비폭력’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는 아름다운 사례들이다. 아울러 지은이는 더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서 평화의 꽃을 피우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하고 있다.

다음은 지은이가 독자들의 마음에 새기기 위하여 소개하는 평화를 위한 수학공식이다.

“평화가 없는 곳에 평화를 더하기, 폭력을 보게 되면 폭력을 빼기,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곱하기, 미워할 수밖에 없을 때 미움을 나누기.”


아직, 평화교육의 터전이 척박한 우리사회의 교사와 활동가들에게, 평화를 원해서 스스로 먼저 평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변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 보여주는 생기발랄한 책이다.

<19년간의 평화수업> 콜먼 맥카시 지음, 이철우 옮김 - 책으로여는세상/ 288쪽,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