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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여행 연수

내원사, 산사에서 즐기는 차 한잔의 기쁨

by 이윤기 2010.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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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내원사를 다녀왔습니다. 천성산을 알게 된 것은 지율스님 때문입니다. 지율스님은 2003년 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300일 넘게 청와대 등에서 단식 농성을 하며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의 문제점을 제기하였습니다.

지율스님의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단식 농성'과 시민단체들이 이른바 '도롱룡' 소송이 없었다면 천성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고속철도 터널 반대 운동을 마음으로 행동으로 지지하면서 여러 자료와 언론 보도를 통해 천성산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막상 적당한 기회가 없어서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난 봄에 천성산으로 등산을 다녀온 후배의 자랑(산상 습지와 초원 그리고 바위들)을 들으며 모임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등산계획을 세웠습니다.

여름 장마 때문에 한 차례 모임 날짜를 바꾼 끝에 지난 주말에 천성산 내원사 입구에 민박집을 구해서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첫 날 저녁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정치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침에 천성산 등산을 하기로 하였으나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내원사까지 산책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왕복 5km가 넘는 길이라 짧지 않은 산책길이었습니다. 내원사가는 길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참 좋습니다. 진입로가 좁고 주차공간이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계곡은 한 여름 더위를 피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매표소에서부터 내원사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크고 작은 바위와 하늘을 떠 받치는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큰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천성산은 해발 1000미터에 못미치는데도, 계곡은 마치 지리산 대원사나 쌍계사 계곡을 연상시킬만큼 깊고 길게 이어집니다.

마침 산지니출판사 블로그에 내원사 계곡으로 야유회 다녀 온 글(올 여름 휴가는 양산 내원사 계곡 어때요? )이 포스팅 되었더군요. 멋진 사진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계곡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날, 느즈막히 일어나 당초 계획하였던 천성산 정상과 화엄늪 등산 계획을 포기하고 내원사까지 '게으른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내원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고 수행을 하는 절이라 대웅전이 속한 건물과 그 앞마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 되어 있었습니다.

쉬엄쉬엄 걸어서 내원사에 도착했는데, 마침 대웅전 건너편 마당에서 스님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걷기 명상'을 하는 거라고 하였지만, 걷는 속도로 보아 명상이라기 보다는 운동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대웅전 옆 툇마루에 않아 흔히 볼 수 없는 스님들의 수행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았습니다. 



스님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 가신 후에 대웅전 옆에 차방이 눈에 띄었습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리지 않고 차를 마시고 가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짝이 잘 맞지는 않았지만 여러 셋트의 다기와 다양한 종류의 차 그리고 전기포트가 모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민박집으로 출발하려던 걸음을 돌려 모두 등산화를 벗고 차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당에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절집 차방은 참 시원하였습니다. 내원사 계곡에서 시작된 바람이 참 시원하였습니다.


▲ 작년 여름에 친한 벗 둘을 잇따라 보낸 친구들이라 이 글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 마루 한 켠에 다기셋트와 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친구 하나가 연꽃차를 준비하여 차방에 둘러 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아스름한 연꽃향이 베어나오는 차맛도 좋았고, 내원사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좋았습니다. 어디 그 뿐이었던가요? 차방에 앉아서 바라보는 천성산의 경관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모두 공짜였으니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참 좋다", "참 편안하다" 고 다들 좋아라 하였습니다. 사용한 다기를 깨끗히 씻어 제자리에 두고 나왔습니다. 다음 사람을 위하여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남지 않도록 잘 정리하고 나왔습니다. 모두들 '다음에 꼭 다시오자'는 이야기도 잊지 않더군요.

요즘은 절집 인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 한 잔으로 놀랍도록 기분 좋은 여행이 되었답니다. 이 글 읽고 많은 사람들이 내원사로 몰려가 고요한 산사의 '차방'이 없어지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