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빅뉴스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재산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한 일입니다. 오늘은 억만장자 부자들의 기부행위에 대하여 한 번 다르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중심이 된 ‘기빙 플레지(기부서약) 캠페인이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제안에 호응하여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 록펠러 가문의 데이비드 록펠러, 마이클 블룸브그 뉴욕시장, 오러클의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 시엔엔 창업자 테드 터너 등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이 서약을 주도한 워런 버핏은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70~80여명의 부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재산기부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 가운데 38명이 자필 서명의 편지를 보내왔다고 공개하였니다.
기부보다 세금 많이내야 소득재분배
포브스에 따르면 이들 40명이 재산의 절반만 내놔도 최소 1500억 달러, 우리돈으로 17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리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다음달 중국 갑부들과 만찬 회동을 하고, 내년에는 인도의 억만장자들과도 만나 재산 기부운동을 전세계로 확대시켜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내 신문과 방송을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이 앞 다투어 이들의 ‘아름다운 기부’를 보도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만, 한편에는 비판적인 보도도 나오고 있네요.
▲억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하는 기부서약(더 기빙플레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그리고 이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시엔엔 창업자 테드 터너,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창업자 래리 앨리슨,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등 미국의 억만장자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순)
그들이 적게 벌었으면 덜 가난해졌을 것...
며칠전 한겨레신문 보도를 보니 과연 이들의 기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파블로 아이젠버그라고 하는 공공정책연구소 연구원은 기부 방식의 변화가 없으면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억만장자들의 기부가 주로 대학과 병원, 의료단체, 문화예술기관 등에 집중되고 있으며 사회단체나 풀뿌리운동 빈민과 소수인을 위한 NGO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건강 보건 분야의 기부는 주로 큰 병원이나 대학이 독차지 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미국의 경우 기부액 대부분이 세금혜택을 받기 때문에 부자들은 기부와 세금 중에서 유리한 쪽은 선택하는 것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억만장자들의 기부는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돈을 어디에 사용할지를 극소수 부자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소득재분배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게 하고 정부가 집행하는 훨씬 바람직한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기부에 참여한 억만장자들은 “누군가는 이를 책임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기부는 주는 이에게 더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많이 벌어서 많이 가진자들이 누리는 즐거움이 기부라는 말이겠지요. 그래서 실제 기부를 할 때도 정작 돈이 꼭 필요한 곳 보다 자신들이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곳,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을 수 있는 곳에 기부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김밥장사를 해서 평생모은 재산을 기부하면서 자신과 같은 가난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데 써 달라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어렵게 모은 돈을 대부분 대학에 기부하더군요.
아직 부자들이 기부에 인색한 우리나라 현실을 놓고 보면 섣부른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만 많이 벌어서 기부하는 것보다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 있습니다.
아울러 게이츠와 워런 버핏 같은 억만장자들이 좀 더 적게 벌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덜 가난해졌을거라는 주장 역시 외면하기가 어렵습니다.
빌 게이츠가 억만장자가 된 것은 윈도우로 대표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각종 프로그램 비싸게 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고, 워런 버핏이 부자가 된 것도 다른 누군가가 투자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지요.
투자의 귀재라고 하는데, 투자의 귀재와 투기의 귀재가 엄밀하게 구분이 될 수 있을까요?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한다면, 악착같이 벌어서 자기만족적인 기부를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적게 벌면(노동자들에게 월급도 많이주고...하청업체에도 적정이윤을 보장해주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덜 가난해질 수 있겠지요.
기부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 숨기지 않고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더 존경 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애초에 막대한 초과이윤을 남기지 않는 기업구조를 가진 사회적기업가들이 존경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