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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마요네즈병만 있어도 멋진 정원 꾸밀 수 있다

by 이윤기 201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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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식물학자 윤경은 교수가 쓴 <우리집 정원 만들기>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누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정원을 담고 살아간다. 어쩌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자연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막상 아름다운 정원을 갖기에는 돈과 시간, 직장 같은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꿈꾸며 산다. 돈이 조금 더 생기면, 시간이 조금 더 생기면,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살겠다고. 그렇지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원'은 한가하고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들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윤경은 교수가 소개하는 '에밀리 반스' 이야기를 듣고 보면, 어쩌면 정원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와 이웃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만나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로 정원이나 여성을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글로 펼쳐내는 에밀리 반스가 제일 처음 가졌던 정원은 고구마 조각이 담겼던 자그마한 마요네즈 병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는 빈 마요네즈 병에 물을 채워 이쑤시개를 얼기설기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가느다란 고구마를 한 토막 올려놓고 에밀리와 남동생에게 관찰하라고 하였다. 여름이 되자 작은 고구마 토막에서 움튼 줄기와 잎은 부엌의 창문에 커튼을 드리울 정도가 되었다. 고구마 정원은 보잘것없었던 작은 부엌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었고,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도 이전과 달리 평온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느낌이었다." - 본문 중에서

그녀에게 넘치는 창의력을 심어준 것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고구마 넝쿨 정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경은 교수는 제자들에게 늘 결혼해서 부모가 되면 환경에 구애받지 말고 꽃밭을 만들어 가꾸라고 이른단다.

에밀리 반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영화 <레옹>에서 주인공 레옹이 늘 들고 다니던 화분, 마틸다와 함께 호텔방을 옮겨 다니면서도 창 밖에 내어놓고 햇빛을 쬐이게 하던 그 화분이 떠올랐다. 어쩌면 화분 하나 뿐인 그 '정원'은 마틸다와 더불어 킬러였던 레옹에게 새로운 삶을 발견하는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경은 교수가 쓴 <우리집 정원 만들기>는 중국 상해의 '예원'이나 우리나라 고궁 같은 정원 혹은 도심 가운데 옛정취가 물씬 풍기게 지어진 한정식집이나 전통찻집 같이 보통 사람들이 마음속에만 담고 사는 정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포위된 우리집에, 주택이나 아파트에 혹은 건물과 건물사이의 자투리땅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비밀'이 담긴 책이다.

윤경은 교수가 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또 다른 한 구절이 있었다.

"이웃집 큰 나무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내가 심지 않은 크고 보기 좋은 나무를 내 정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담 가까이에 덩굴 식물이나 키가 크면서 가늘게 자라는 나무를 심으면 담 너머 큰 나무도 우리 집 정원으로 편입 된다. 운이 좋으면 거리의 가로수나 멀리 있는 풍경까지 끌어들일 수도 있으므로 내 집의 땅만 보지 말고 주변 환경을 잘 관찰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사실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정원이 있는 집을 갖는 꿈을 포기한 지 오래기 때문에 늘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평생을 보낸 식물학자에게서 나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받는 듯하여 기뻤다.

땅 값이 더 싼 도시외곽으로 갈 수 없다면, 도심지에서 적당한 공원이나 녹지가 인접해 있는 곳, 혹은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이 있는 대학 옆에 가서 살면서 수 만평되는 넓은 '정원'을 누리며 살겠다는 꿈을 꾸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웃집 나무가 우리집 정원수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옆집 정원수가 담장을 넘어온다고 혹은 이웃집 나무가 우리집 마당에 그늘을 만든다고 싸우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책 속에는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는 정호승 시인의 싯구 같은 이야기도 있다.

"양지바른 정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물에 가려진 곳, 큰 나무가 그늘을 드리는 곳에도 아름다운 정원을 꾸밀 수 있다. 그늘 정원은 식물의 질감 특성을 살린 녹색의 시원함으로 조용하면서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꽃과 나무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이 책에는 평생을 꽃과 나무와 함께 살아온 윤경은 교수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도 곳곳에 숨어있다.

봄소식을 먼저 전한다는 노루귀를 눈에 잘 띄는 뜰 한가운데 심었는데, 그 자리가 하필 햇빛이 유난히 잘 드는 곳이라 몇 해가 지나도록 제대로 꽃을 못 피우고 있었단다. 반면 양지식물인 동자꽃은 몇 해 잘 피었는데, 가까이에 심었던 홍매화가 자라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하면서 빛을 막아 콩나물같이 목이 길어지고 연약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식물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 역시 멋진 꽃을 피울 만한 재목이라도 적당한 곳에 있지 않으면 제 능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본문 중에서

자연과 만났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윤경은 교수가 쓴 책 <우리집 정원 만들기>를 읽으면서 사람은 한 분야에 매달려 바른 길로 정진하면 대게는 비슷한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한 인간들에게 식물학자가 전해주는 또 다른 지혜의 말씀이다.

"원예 활동이란 언뜻 내가 원하는 식물을 내 뜰 안에 심는 작업이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주어진 대자연의 조건 아래에서 약간의 조작만 가능할 뿐이다." - 본문 중에서

사실 화분 하나를 키우든, 큰 나무를 키우든, 혹은 더 규모 큰 대형정원을 가꾸든, 아니면 농사를 짓든, 과실나무를 키우든, 실은 자연이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정원을 가꾸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약간의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꽃이나 나무 뿐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일도 대자연의 조건 아래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지은이 윤경은 교수는 가끔 찾아와 식물을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식물생리학에서 배웠듯이 빛, 온도, 수분, 토용 조건을 잘 맞춰주고, 특히 물을 많이 주지 않으면 된다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이 대답이 얼마나 막연한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정원 가꾸기를 배우는 길라잡이 실용서

여기까지 서평을 읽다보면, 혹 윤경은 교수가 쓴 책 <우리집 정원 만들기>가 마치 식물학자가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긴 수필이 아닌가하고 오해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책은 화분 하나에서부터 넓은 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원을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전해주는 실용서라 할 만한 책이다. 실내 식물의 공기정화능력, 실내식물 선택요령, 해충 제거방법, 건강진단법, 실내정원꾸미기, 발코니 정원 만드는 법, 연못 만드는 법, 정원디자인하기와 같은 '우리집 정원 만들기'를 위한 실용지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책에는 한 평 남짓한 소박한 실내정원이나 발코니 정원,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는 손바닥 정원, 그리고 수확의 재미를 주는 채소정원을 꾸미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땅을 가진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장미정원, 꽃밭 만들기, 나무 정원, 잔디정원 꾸미기, 그늘정원, 연꽃과 물고기가 있는 습지정원 꾸미기도 소개되어 있다.

마당을 정원으로 꾸미기 위한 사전조사와 정원 디자인 그리고 정원 작업 체크리스트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뿐만 아니라 식물 키우기를 위한 기본 지식인 햇빛, 온도, 수분, 토양 이야기와 좋은 흙 만들기, 씨뿌리기, 영양관리와 같은 재배기술 그리고 유기농사 요령과 같은 정원 가꾸기와 친환경 텃밭농사에 꼭 필요한 지식이 담겨있다.

윤경은 교수는 자신이 쓴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은 어디까지나 참고서일 뿐이며 상황에 따라 식물을 키우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부딪쳐 보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