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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자전거, 수영 그리고 사랑도 학교에서 배운다

by 이윤기 201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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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무터킨더 박성숙이 쓴 <독일교육 이야기>

지난 봄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통해 교육문제에 관심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독일 교육을 소개하여 화제가 되었던 Daum 파워블로거 무터킨더 박성숙의 두 번째 책 <독일교육 이야기>입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을 때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독일학교에서는 선행학습과 예습을 금지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바로 "예습, 복습을 충실히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예습을 하고 와서 다른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저하시키는 부작용 때문에 교사를 무시하는 공무집행 방해(?)로도 취급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결국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가 책임진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 <독일교육 이야기>를 읽어보니 독일학교는 학습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사교육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많은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중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는 바로 자전거타기입니다.

 

"자전거 타는 데도 면허증이 필요하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척 생소해서 웃음까지 났다.......알고 보니 독일에서 학교에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면허증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은 법적으로 면허가 없는 어린이는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도록 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독일 초등학교 아이들은 자전거 면허를 따기 위해 몇 달 동안 일주일에 두 시간씩 거리로 나가 연습을 하고, 학교로 파견 나온 교통경찰관이 아이들의 실습을 담당한답니다.

아울러 그냥 단순히 자전거타기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의 부위와 명칭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며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직접 자전거를 고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자전거 면허증을 딴다

또한 운전면허 필기시험 내용과 유사한 교통법규를 배운 후에야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면허증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곳에서나 마음대로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면허증을 받기 전에는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고 끌고 가야 한다. 이미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아이라도 학교까지 타고 가려면 반드시 부모가 동반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

대부분 초등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지만, 학교에서 교통법규를 정확히 익혀서 면허를 따야만 마음대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이 아니면 대부분 수신호 같은 것을 익히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자전거 면허를 따기 위해 반드시 수신호를 익혀야 한다는군요.

교통선진국은 도로 사정이 좋다거나 성능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입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중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두 번째는 수영입니다. 독일에서 영어는 선택과목이지만 체육은 필수과목이라고 합니다. 특히 수영수업은 모든 아이들이 인명요원 수준으로 익힌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2, 3학년부터 시작하는 수영수업은 8, 9학년까지 계속된다. 정확하게 시작하고 끝나는 학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수영 수업의 마지막 단계인 인명구조를 배우고 시험에 합격해서 자격증을 받으면 마치게 된다." (본문 중에서)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학교에서 배운 실력으로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고 졸업을 한다는 것입니다. 수영수업은 시립이나 사설 수영장에서 오전시간에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독일 수영장은 학교수업에 이용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수영, 대부분 인명구조 자격증 취득

다이빙 시설이 갖추어진 큰 수영장이 필요한 고학년은 학교버스로 수영수업을 다니며, 초등학교 교사나 체육교사는 모두 수영지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수영강사도 없다는 겁니다.

같은 시간, 우리나라 수영장은 주부들로 가득합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지 못한 주부들이 뒤늦게 다이어트와 운동을 겸해서 수영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여름방학에 피서 삼아 물놀이를 하러 수영장에 가는 것이 고작입니다.

독일에서는 건강과 안전을 위한 교육, 그리고 여가활용을 통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학교에서 수영을 가르친다는군요.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초등학교 2~3학년부터 수영을 가르치지만 학교에 아이들만을 위한 수영장을 비롯한 특별 시설을 두는 곳은 없다고 합니다.

그냥 동네 수영장을 이용하고 거리에서 자전거를 배운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만을 위한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얼마든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영과 자전거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한국에서는 학교가 책임질 공부도 학원에 의지하다 보니 수영이나 자전거 같은 과목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였더군요.

한국에서는 의무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점심을 무상급식으로 하자는 것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수두룩한 상황인데, 어떤 학부모가 감히(?) 학교에서 자전거나 수영도 의무교육으로 책임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독일에서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로버트 풀검의 책제목처럼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은 대부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대부분을 '학원'에서 배워야 하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환경이지요.

▲ <꼴찌도 행복한 교실> 저자 강연회에서 만난 무터킨더 박성숙님


사랑도 학교에서 가르친다

성교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만으로도 책임있는 성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보통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성교육을 받기 시작하는데, "숨기지 않고 구체적이고도 분명하게 성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준다"고 합다.

저자는 초등학교 3학년 둘째 아이가 학교 성교육 마무리 단계에서 받아온 프린트를 <독일학교 이야기>에 번역해서 소개해 놓았습니다. 근친 상간문제를 다루는 마지막 질문은 정말 충격적이더군요. 뿐만 아니라 '사랑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나머지 한 장은 차마 번역하기조차 껄끄러웠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 6학년이면 콘돔 사용법과 같은 피임법을 자세하게 배우며 학년이 올라가면 성인영화나 직접적인 출산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활용하는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자세하게 가르친다는 겁니다. 이런 과정은 성에 대한 수치심을 없앨 뿐만 아니라 성폭력이나 성희롱과 같은 범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과도하다 싶을 만큼 적나라하게 이루어지는 성교육이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14세가 되면 상대방이 미성년자이거나 3살 이상 나이가 많은 파트너가 아니면 법적으로 성관계가 허용된다고 합니다.

또 통계에 의하면 12%의 여성과 10%의 남성이 14세에 73%의 여성과 66%의 남성이 17세에 첫 경험을 할 만큼 개방적이지만, 미성년자의 임신과 출산, 낙태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십대의 성이 터부시되지 않는다. 어떤 성교육 자료에도 청소년기의 성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이 없다. 성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성병이나 원하지 않는 임신 등에서 안전할지 지식을 심어주는 것, 성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게 하는 것이 바로 독일 성교육의 핵심이다." (본문 중에서)

독일교육, 늦게 피어서 더 아름다운 꽃

무터킨더 박성숙이 쓴 <독일교육 이야기>를 읽어보면 독일교육은 '늦게 피는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1학년 말 즈음에야 겨우 막힘없이 글을 읽을 수 있지만, 4학년이면 우화 한편은 쓸 수 있는 작문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99%의 독일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ABCD부터 차례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한 학기가 다가도록 세월아 네월아 알파벳을 배우며 단어를 익히다가 읽기 쓰기 순으로 수업을 받는다." (본문 중에서)

처음엔 알파벳을 한 글자씩 이년이 넘도록 반복 또 반복하며 배우지만, 졸업학년인 4학년이 되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짤막한 글 한 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학년 동안 충분히 기초를 학습한 후에 3학년부터 작문을 배우기 시작하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든 시험은 작문위주로 바뀐다고 합니다.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사회, 과학까지도 작문 형식의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3학년에서 시작된 작문시험은 대학시험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수학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1년 내내 1부터 20까지의 숫자를 더했다 뺐다 하면서 보낸다는 겁니다. 세로로 계산하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또 3학년이 되면 한 자릿수 곱셈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하게 된답니다. 아울러 구구단을 외우지 않고 곱셈을 반복시키고, 나눗셈 역시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습이나 선행학습이 금지되어 있으니 세로 계산법이나 구구단을 가르쳐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절대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학교의) 당부였다. 손가락을 사용하든 발가락을 사용하든 막대기를 잘라 사용하든 계산기 외의 도구라면 상관하지 말고 보기만 하라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독일 학교에서 세로계산법이나 구구단은 아이들 머릿속에 자기만이 방법이 자리 잡고 익숙해지면 거의 마지막 단계에 배운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엔 간단한 문제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속도와 정확성이 놀라울 만큼 빨라지더라는 것입니다.

느리지만 기초가 튼튼한 교육, 생각하고 표현하는 교육

독일아이들은 저학년부터 수학적 사고를 기르는 교육을 받아 학년이 올라갈수록 원리를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문제 해결 방법을 증명하는데 주력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독일학교이야기>에 소개하고 있는 김나지움 11학년 수학 시험 답안지는 정말이지 독일어시험인지, 수학시험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독일의 미술수업을 들여다보면 수학시험이 독일어시험과 쉽게 구분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예능과목 조차도 글로써 자기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11학년이 미술 숙제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A4용지 3장 분량이 비평문을 써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음악 역시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유명한 음악을 들려준 후 비평문을 내도록 하였답니다. 어떤 분야라도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교육방식은 역사관을 배우는 역사교육, 철학적 사고를 배우는 철학교육이 모두 비슷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독일교육 이야기>에서 소개하는 토론과 아이디어 넘치는 발표로 이어지는 독일의 사회, 역사, 종교, 철학 교육 사례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울러 장애아 통합 교육을 하는 몬테소리학교, 자유를 사랑하는 발도로프 학교, 홈스쿨링을 금지 하는 독일 교육, 학생이 학생을 재판하는 학생법원 이야기도 모두 흥미로운 사례들입니다.

무터킨더가 소개하는 <독일교육 이야기>는 무상급식 예산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우리에겐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꼭 필요한 대부분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드는 꿈을 함께 키울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책입니다.


독일 교육 이야기 - 10점
박성숙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