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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진보가 밥 먹여준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by 이윤기 201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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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3년을 보내는 동안 민주정부 10년의 역사가 물거품이 되는 듯하여 답답하고 불쾌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촛불도 들고 거리에도 나서보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워도 보았지만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되었고, 4대강은 모두 파헤쳐졌으며 민주주의를 거꾸로 후퇴시키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연말 불쾌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386세대들에게 희망의 메신저를 전하는 두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오연호 기자와 조국 교수입니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진보집권플랜>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는 가치를 정립하고, 그 가치를 실현할 세력을 형성하여 세상을 바꾸자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그런 책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면 이미 절반은 성공하였습니다. 직업 좋고, 글 잘 쓰고, 키 크고 잘 생긴데다가 진보적이기까지 한 조국 교수는 단숨에 '스타 강사'가 되었고, 진보, 개혁세력의 집권 플랜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으며, <진보집권플랜> 북 콘서트는 전국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두 남자가 먼저 시작한 진보집권의 꿈

제가 좋아하는 대안학교 교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아름다운 꿈꾸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자고 하는 노래입니다. 오연호와 조국, 두 남자가 꾸기 시작한 진보집권의 꿈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조국 교수는 진보집권의 꿈은 '진보가 밥 먹여주냐?'는 질문에 진보가 밥 먹여 줄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밥의 문제라 함은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문제, 즉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문제입니다. 진보 개혁 진영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비전, 정책,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진보가 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수구, 보수보다 더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건강보험 개혁을 통한 준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대중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의 위기는 진보, 개혁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을 자제하면서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꺼버렸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진보적 개혁의제를 포기하면서 상상력마저 쪼그라들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진보, 개혁 진영이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보이던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듯이 과거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마음으로 '생활좌파'를 제도화하는 운동을 선도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시장임금을 넘어 사회임금으로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확 띈 단어는 바로 '사회임금'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는 임금이라고 하면 직장에서 일하고 받는 시장임금만을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장임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 일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금=시장임금'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의 경우에도 가장 1차적인 활동은 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국 교수는 '사회임금'을 주장합니다.

"유럽에서는 국민의 70~80퍼센트가 큰 부담없이 평생 임대 주택에서 살 수 있어요.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희귀한 일이고, 대학등록금도 매우 낮아서 교육비 부담이 적죠. 그리고 무상의료 범위가 넓기 때문에 중병이 들었다고 해서 집안이 의료비로 거들 나는 일은 없어요. 이들 나라의 시민은 시장임금 외에 사회임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사회임금을 말하는 학자나 정치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다고 생각됩니다. 준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무상급식, 무상교육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임금에 해당되는 것들이지요.

오세훈 서울시장 덕분에 6·2 지방선거 이후에도 '무상급식'이 계속 정치, 사회적 이슈로 주목 받고 있으니 사회임금을 높이자는 <진보집권플랜>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구에서 이런 사회임금을 확보하고 복지국가를 이루었을 때보다 지금 우리의 경제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예산이 없어서 복지수준을 높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4대강과 같은 예산을 줄이고,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은 조금만 늘려도 부자들의 세금부담을 늘리고 탈세를 막아 세수를 높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민주화운동권은 권력이 없을 때에도 대중이 공감하는 가치를 가지고 권력에 맞서서 승리하였던 경험이 있으니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알리고 참여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일자리와 관련한 집권 플랜 역시 신선합니다. 2000년 벨기에가 실시한 '로제타 플랜'이라는 것도 솔깃합니다. 민간기업의 3퍼센트 청년의무고용제라고 하는데, 공공기관과 공기업으로부터 시작해 민간기업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혼모 출신 대통령의 눈에 띄는 보육정책

눈에 확 띄는 사례는 미첼 바첼리트 칠레 대통령의 보육정책입니다. 미혼모 출신이 어떻게 대통령까지 되었는지도 참 궁금합니다만, 재임기간에 참 엄청난 일을 했더군요.

"2006년 집권 후 0~4세 아동에 대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임기 중 하루 2.5개씩 총 3500개의 국립보육시설을 만들었어요. 칠레는 1인당 GDP가 약 1만 5000달러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보육문제만 해결된 것이 아니라 국공립 보육시설이 늘어나면서 고용창출이 되었고,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출산율까지 늘었다는 겁니다. 복지정책으로 동시에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더군요.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합니다. 조국 교수는 '사회임금'을 확대하는 것과 동시에 비정규직 철폐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쟁취하자고 제안합니다.

"한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임금이 반 토막 나거든요.......법철학적으로 보더라도 이는 정의의 원칙에 반하는 겁니다."

또 기업 정책에 있어서는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재벌의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등은 엄정한 법 집행만으로도 상당부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미국의 엔론 분식회계 사건에서 분식회계 규모는 우리 돈으로 1조 5000억 원에 달했는데, 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징역 24년 4월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미국 법체계가 반기업적이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걸까요?"

그가 전해주는 미국 엔론 사례는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준법경영과 사회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것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재벌의 편법 상속 역시, 재산과 기업지배권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였습니다. 막연하게 재벌해체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불법경영이나 불법상속을 철저하게 막고, 세습경영을 인정하는 대신에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


노조의 경영참가, 산업민주주의 정착시켜야

특히 노조의 경영참가를 통해 '산업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는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나아가서 기업의 경영권과 자본이 노동자에게 있는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주택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주택가격을 떨어뜨려야 할 뿐만 아니라 진보, 개혁 세력의 재개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합니다.

"원주민 대다수를 쫓아내고 고급 아파트를 세우는 방식의 재개발이 옳은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재개발해야 옳은가에 대해서 미리미리 고민하고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중의 욕망을 직시하면서 욕망을 부정하지 말고 공정, 평등, 연대 등 진보의 가치에 따라 내용과 방향을 재설정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진보, 개혁진영이 집권하면 개혁입법과 사회, 경제적 민주화라고 하는 이중전선을 만들어야 하고, 진보, 개혁진영이 집권하면 교육, 일자리, 의료가 좋아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교육개혁을 위한 조국 교수의 플랜은 학력차별금지법 제정, 지역균형선발제와 계층균형 선발제를 도입을 강조합니다. 아울러 서울대 분할, 지방대학 통폐합, 반값 등록금, 사교육 축소 및 공교육 확대를 주장합니다.

정연주 사장 시절 KBS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 대학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더니 여러 대학 출신이 골고루 뽑히더라는 겁니다. 학력차별금지법을 민간기업으로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반값등록금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1년에 대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 총액이 13조 원인데, 장학금 수혜자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정부가 3~4조원의 예산을 지원하면 등록금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소득별로 등록금을 차등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사학재단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력차별 금지법, 반값 등록금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을 완화시키는 것은 공교육을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하자고 합니다. 공교육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교사 수를 대폭 늘려 사교육 종사자들을 흡수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질적으로는 결국은 대학을 안 나와도 일자리를 구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남북관계를 바로 보는 시각은 아주 명쾌합니다. 이명박 정부와 같이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등 비현실적은 강경책은 북한 경제를 중국에 편입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남측 중소기업 입장에서 개성공단은 수지맞는 장사였으며, 햇볕 정책은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선투자라는 것입니다.

돈을 줘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북한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남한은 북한의 시장과 인력이 꼭 필요하도록 하자더군요.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자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대미외교, FTA와 국제 무역, 그리고 검찰 개혁 등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만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네요. 또한 진보, 개혁진영에 속해있는 여러 예비 후보들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기억하시다시피, 진보, 개혁세력에게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루어내지 못한 것을 제대로 이루어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꿈이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였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이렇게 하면 정말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가장 깊이 새기고 싶은 한 구절 더 소개합니다.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진보집권플랜 - 10점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