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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당신과 다르다고 고장 난 사람 취급 마시라 !

by 이윤기 201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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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너선 무니가 쓴 <숏버스>

<숏버스>는 우리에게 매우 낯선 제목입니다. 아니 오히려 제 작년에 개봉한 ‘숏버스’라는 같은 제목의 영화 때문에 자칫 오해하기 딱 쉬운 제목이기도 합니다.

'숏버스(short bus)'는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스쿨버스를 말한답니다. 미국에서 장애인교육법이 제정되면서 많은 장애인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통합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장애 아이들만 따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타고 다닌 특수학급용 스쿨버스는 일반 스쿨버스보다 길이가 짧아서 숏버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아와 비장애가가 분리하여 교육받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토이고, 비장애아들은 스쿨버스를 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주 생소한 이름이지요.

'숏버스'의 저자 조너선 무니는 열두 살까지 글을 읽지 못하는 읽기 장애(난독증)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말에 주의력 결핍으로 학습장애 진단을 받았고, 숏버스를 타고 다니며 특수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읽기 시간에 도망쳐 나와 화장실에 숨어 있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6학년 때는 잠시 학교를 그만두었고 열두 살 무렵에는 자살을 생각했다. 고등학교 진학 상담 교사는 나 같은 애들은 결국 햄버거에 넣는 고기나 뒤집게 돌 거라고 말했다.”

그는 용케도 장애를 이겨 내고 2000년에 아이비리그 명문 브라운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장애학과 사회변화 분야에서 트루먼 장학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읽기 장애를 극복한 특별한(?) 성공

대학 졸업한 후에는 장애라는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한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학습장애 학생을 위한 비영리 단체 활동가로 그리고 인기 강연자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기 강사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은 꿈꾸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늘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념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강연을 다니며 숏버스를 타는 아이와 부모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이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키워나갔습니다. 마침내 자신과 마찬가지로 ‘숏버스’를 타는(탔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2003년, 조너선 무니는 중고 숏버스를 구입해서 직접 운전을 하여 미국 전역(약 5만 6000킬로미터)을 여행합니다. 이 책은 숏버스 여행에서 만난 학습장애, 신체장애, 지적장애 등을 가진 13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숏버스는 장애인이 겪는 차별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묶이는 하나의 총체적 상징인 셈입니다. 조너선 무니는 쇼버스 여행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숏버스 여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덟 살 소녀, 메인 주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는 예술가, 텔레파시하는 닭을 키우는 불가사의 박물관 관장,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공연 예술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뭘까요?

그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장애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 구조물’이라는 확신을 굳혀갑니다. 19세기에 태동한 정신의학이 많은 사람들을 ‘병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의학 영역의 변화가 결국은 ADHD와 같은 질병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 비인습적, 일탕적 행동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사회는 일탈 행동을 비도적적인 것이 아니라 병으로 간주한다.......질병의 범주가 크게 확산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자다. 창녀들은 병자다. 동성애자들은 병자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병자다. 그렇게 해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들도 병자가 되었다.”

저자가 숏버스 여행에서 만난 ‘켄트 로버츠’도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발달/ 행동 장애인 ADD 판정을 받았으며,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한편, 그는 SAT에서 1600점 만점을 받았고 직관력이 뛰어난 데다 반항적인 기질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삶에 관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시와 책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코미디 공연을 기획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기고 합니다. 저자 조너선 무니는 켄트 로버츠를 만나면서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켄트는 ADHD로 낙인찍힌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ADHD를 갖고 있는 것일까? 시시한 말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이 질문은 켄트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문화에서 ADHD가 갖는 사회적 기능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무니는 1950년대 이전만 해도 미국에는 ADHD라는 용어자체가 없었는데, 지금 미국에서는 한 해 1500만 명 이상이 ADHD 진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주의력부족, 활동과잉, 충동적 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 붙이는 세련된 진단명이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그는 켄트의 경우 공연을 할 때면 ADHD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다만 책상에 앉아 있을 때에 ADHD라는 장애가 드러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따라서 켄트에게서 ADHD라고 하는 증상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습적이고 수량화 할 수 있는 종류의 질병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주의력 결핍, 활동과잉, 충동적 성향은 병이 아니다

켄트가 24시간 동안 코미디 공연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주의를 집중하고 공연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ADHD 아동이 닌텐도 게임을 할 때는 전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켄트는 세상에 적응하고 싶은 욕구와 개인적 자유에 대한 욕구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1920년대 미국에서는 간질 환자인 여성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은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대법원은 불임시술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미국 전역에서 강제불임시술이 정당화되었던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 세월이 지났지만 기묘한 외모나 예외적 신체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차별 받거나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신체, 정상적인 신체라는 ‘이상’이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학교와 사회가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성적으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우리와 외모가 다른 사람들을 마치 고장 난 사람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킵니다. 우리는  그들을 고쳐서 우리와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당신과 다르다고 고장 난 사람 취급하지 마시라 !

그는,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사람들을 갈라 놓은데는 미국의 경제변화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거라고 추정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 사회는 제조업 경제에서 서비스 경제로 이행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 영역도 전례없이 활기를 띠었다. 심리학자, 의사, 사회복지사, 교육자가 크게 늘었다........이런 사회복지 경제는 원재료로 쿠키(정신지체, 트랜스젠더)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고객인자가 필요한 것이다.” (본문 중에서)

조너선 무니는 성적 소수자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사회의 냉담한 반응뿐만 아니라 범죄와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현실을 한 번 떠올려보라고 말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다른 사람의 신체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숏버스> 여행을 통해  다운증후군이나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들도 비슷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 보여줍니다. 조너선 무니는 다수의 사람들과 조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한 채, 예외적인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 공간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 혼자 말을 하는 아이,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맞추지 못하는 사람, 끊임없이 시간을 재는 좀 다른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숨 막히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숏버스 - 10점
조너선 무니 지음, 전미영 옮김/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