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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한 끼 때우는 삶으로는 제 명대로 못산다

by 이윤기 201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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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양홍관이 쓴 <생명, 꽃피어나는 소식>

70년대와 80년대를 감옥에서 보내면서 쓴 편지를 묶어 책으로 출간하여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다.

92년부터 97년까지 감옥생활을 하면서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책 <야생초편지>도 2002년에 출간하여 소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진 베스트셀러 반열에는 들지 못하였지만, <서준식 옥중서한>, <김대중 옥중서한>, <안중근 자서전> 등도 꽤 알려진 책이다. 외국사람으로는 베트남 독립투쟁의 영웅 호치민의 옥중일기 <옥중에 자유인 머물다>도 있다.

80년대 운동권들에게 널리 읽혔던, 그람시의 <옥중수고>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서로 잘 알려진 책이며, 그가 쓴 서간집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이탈리아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옥중서신, 감옥에서의 깨달음

한편, 국내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감옥살이를 하였던, 비전향 장기수들의 감옥살이를 기록한 책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역사는 한 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 등이 비전향 장기수들의 체험담이거나 그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감옥에서 쓴 글을 묶어낸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진 경우는 대체로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보인다. 대부분 독재정권 혹은 식민지 정부, 파시스트 정권 등에 의해서 비롯된 부당한 징역을 살고 있는 이들이거나 혹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고난을 선택한 이들의 삶이 담겨있다.

아울러 독자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전해주는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적인 삶이 담겨있다. 그래서 옥중에서 쓰인 여러 책들은 지은이의 정치, 사상의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자들도 사람과 자연 그리고 온 생명을 대하는 따뜻하고 애절한 마음에는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양홍관이 쓴 책 <생명, 꽃피어나는 소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은이 양홍관은 1992년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이른바 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으로 구속되어 1998년 광복절 특사로 7년 만에 가석방되기까지 감옥 생활을 하면서 아내에게 보낸 '옥중서신'을 엮어 낸 책이다.


생명주의 사상가로서 깨달음의 여정

책의 서문에는 특이하게 지은이의 살아온 이야기가 소개되어있다. 살아온 이야기는 그냥 연대기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50여 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의식화 과정과 다양한 사상적 변화발전 과정을 거쳐 생명주의자가 되기까지 사상의식의 변화과정이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은이는 자신이 쓴 책을 '생명주의 사상가'로서 깨달음의 여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학과 유학철학을 익히고 예수님을 섬기고 부처님을 의지하면서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주체사상, 생명사상가로 성장하였고,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좌우명 속에 살아온 제가 7년간 0.72평 감옥에서 생명주의 사상가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한 희망 찾기, 깨달음의 여정입니다." - 서문 중에서

감옥 생활을 마친 후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생명주의 사상가로서 실천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2000년부터 남양주와 양평에서 생명살림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2004년부터 생태농장 초록향기를 가꾸고 있다. 현재 생명살림 마음문화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생명평화결사운영위원, 생명 협동 평화재단 준비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한다.

양홍관이 쓴 <생명 꽃피어나는 소식>은 1992년 10월 28일부터 1997년 4월 15일 사이에 그의 아내에게 쓴 79편의 편지글을 묶은 책이다. 아내에 대한 부정(夫情)과 아이에 대한 부정(父情)이 물씬 배어나는 편지글들 속에는 가족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평생 '투사'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한 운동가가 감옥 밖에 있는 가장 가까운 동지와 함께 나누는 '사상학습'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선, 징역살이를 하는 운동가로서 바깥세상에서 더욱더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구도자와 같은 삶의 모습이 여러 군데 드러난다.

아내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는 냉수마찰과 세수, 단전호흡, 체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요가, 참선으로 이어지는 규칙적인 일상생활과 1000일 기도와 같은 것들이다. 1000일 기도는 하루 1000배의 절을 하면서 1000일 동안 기도하고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1000일 기도의 첫 1년 동안 생명주의 사상이론 확립, 남북의 화해와 협력, 가정의 평화와 축복을 위하여 절을 하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감옥 밖의 동지인 아내에게도 늘 치열하게 살면서 몸 챙기기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 것, 그리고 좋은 교사가 될 것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당부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감옥살이를 일컬어 '목표 집중생활'이라고 하였다.

징역살이는 '구도자의 삶'

그가 이토록 '목표 집중생활'에 매달렸던 것은 "옥살이는 자기와의 싸움이 거의 전부일 뿐만 아니라 처절히 혼자 있도록 강요하는 곳이기 때문에 먼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함"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93년 1월에 쓴 편지에는 그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평상의 안일함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늘 깨어있는 성실한 삶을 위하여 매 요일을 의미 있는 날로 정하여 생활하기로 한 약속이 담긴 편지가 있다.

월요일은 : 성실함의 날
화요일은 : 진지함의 날
수요일은 : 인욕의 날
목요일은 : 사랑의 날
금요일은 : 정의의 날
토요일은 : 자유의 날
일요일은 : 생명의 날

그는 살아가는 나날의 의미를 정하면 일상에 묻힌 안일로부터 벗어나 '늘 푸르른 소나무같이' 살 수 있을 것이라며, 감옥 생활에서도 삶의 성실함을 잃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준다.

맑은 정신과 생활의 건강함을 위한 '밥'

93년 여름 무렵에 쓴 편지에는 생명사상가로서 아내에게 제안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한 식생활' 방안이 나와 있다. 그는 몸의 생태를 생기 있게 가지고 있어야 매사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넉넉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맑은 정신과 생활의 건강함을 위해서는 먹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살아있는 음식을 먹자는 것이지요. 먹는 것은 배를 불리 우는 행위를 넘어 남의 생명을 죽여 제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먹은 다음에는 그 힘으로 새 생명들을 키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그저 한 끼 때우는 사람들은 삶 또한 한 끼 때우는 그런 삶을 살다가 제 명에 못살고 죽는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식사규범을 정하여 생활하였다고 한다.

첫째, 소중히 먹자.
둘째, 제 때에 먹자.
셋째, 적게 먹자.
넷째, 더불어 먹자.
다섯째, 먹고 갚자.

독자들 역시 오늘 나의 밥상은 그저 한 끼 때우는 밥상이었는지, 아니면 뭇 생명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숭고한 의식이 담긴 밥상이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밥을 먹음으로 다른 생명을 죽여 제 생명을 살렸으니, 새로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어떤 보탬이 되는 일을 하였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그래야 밥값을 하는 것이리라.

양홍관은 징역살이와 생명사상 공부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생명(존재)들이 스스로 보물임을 깨우치도록 도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도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스스로 자기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비교가치에 입각하여 세상을 사는 것으로 하여 보물을 쓰레기로 상대적으로 가치평가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잃고 살지요. 상대적 가치를 끊어내는 일,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구도자의 길입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생명사상가로서 이러한 삶이 예수의 삶, 부처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고유가치'를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7년 감옥살이 동안 치열한 '목표 집중생활'을 하며, 생명사상가로 거듭나는 지은이의 삶은 느슨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을 비춰보기에 좋은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 꽃피어나는 소식 - 10점
양홍관 지음, 김철성 그림/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