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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신라면블랙, 25년 고객사랑 2.5배 비싼 라면으로 보답?

by 이윤기 201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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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혁명', 존 로빈스가 쓴 책 제목입니다. 이 책은 제게도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존 로빈스가 쓴 <음식혁명>은 제가 육식을 거부하고 낮은 수준이지만 채식주의자로 살기로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준 책 중 한 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식문화에서 진짜 음식혁명은 라면일지도 모릅니다. 밥 말고 가장 간편하게 밥을 대신할 수 있는 음식, 빵도 있고, 우동도 있고, 자장면도 있지만 그 중에도 가장 편리한 것은 역시 라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민들에게 외식의 대표음식은 자장면이었고, 집에서 먹는 별미의 대표음식은 바로 라면이었습니다. 처음엔 쌀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특별한 음식이었지만, 값싼 수입밀가루가 쏟아져 들어오고 수출 100억 달러가 넘으면서부터는 서민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음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라면 끓여 먹으며 연습해 챔피언이 되기도 했고, 라면 먹으며 달리기 연습을 해 아시안 게임을 제패하기도 하였지요. 아무튼 라면이 밥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친숙한 국민음식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도 해외여행 떠날 때, 된장, 고추장은 안 챙겨도 라면은 꼭 챙겨가더군요.  
  


 
50년 서민 '사랑'독차지, 제2의 쌀, 국민 식품 라면?

그중에서도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세계 여러 나라 식품점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 라면 중 하나가 바로 '농심'에서 판매하고 있는 '신라면'입니다.

최근 이 회사에서 자사의 대표브랜드 라면인 '신라면' 25주년을 기념하여 신라면 블랙(Black)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하였습니다. 소비자들은 서민물가 불안을 틈타 라면회사가 라면값을 인상시키기 위하여 유사제품을 높은 가격에 출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새로 출신된 '신라면 블랙'은 신라면의 2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라면의 경우 권장소비자가격이 없어지고 판매가격표시제품에 해당되어 소비자들이 슈퍼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가격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22일 제가 사는 경남 마산의 한 동네에 있는 작은 마트에서는 신라면 5봉 1팩이 2800원, 신라면 블랙 1팩은 5600원에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1개당 가격은 신라면 560원, 신라면 블랙 1400원입니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새로 출시되었다고는 하지만 가격은 소비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기존 제품 가격에서 무려 250%가 인상된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라면 맛이 얼마나 달라졌기에 종전 가격에서 250%나 비싼 새로운 라면을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두 종류 라면을 함께 끓여 후배 실무자들과 같이 맛을 비교해보았습니다.

                                       ▲ 신라면과 신라면블랙 우골분말 스프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딱 봐도 알겠네 어느 게 비싼 라면인지

사람들 눈썰미와 입맛이 참 기가 막히더군요. 라면 국물만 보고도 기존의 신라면과 새로 나온 신라면 블랙을 딱 알아보더군요.  

"이게 비싼 거지요? 딱 봐도 알겠네."
"라면 맛을 비교해보라니까?"
"음~ 이건 옛날 신라면이고…. 이쪽 게 국물이 더 진한데요. 사골 국물맛이 나요."
"아냐 이거 사리곰탕면(이 회사 다른 제품) 맛이 나는데요. 사리곰탕면이랑 섞었나?"
"쇠고기 분말 스프 맛이네."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습니다. 7명 중에서 2명을 빼고는 모두 새로 나온 '신라면 블랙'이 더 맛이 좋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가격이 2배 넘게 비싸다는 이야기에는 모두 "와 너무하다"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신라면 + 사리곰탕면 맛인데 뭐가 2.5배나 비싸?"
"말도 안 돼요. 맛은 괜찮은데 너무 비싸다."
"라면 값 올리려고 만들었네 뭐."

신라면 보다 2배 넘게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더 맛있는 라면을 사 먹겠냐고 물었더니 다들 "글쎄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거 수입 쇠고기로 만들었을 텐데 광우병 걸리면 어쩔려구?"하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신라면 25주년을 기념으로 발매된 신라면 BLACK' 봉지에는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 우골을 듬뿍 함유하고 있어 원기회복에 좋은 우골보양식사입니다.
▲ 설렁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인 영향균형을 갖춘 제품입니다.

'설렁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광고 문구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골 스프 한 봉지에 어떻게 설렁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담길 수 있을까요? 설렁탕집 사장님이나 주방장님이 보시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겁니다.

 

                                                  ▲ 신라면(위)과 신라면블랙(아래) 영양성분표  


영양성분 별로 안 다른데...'이상적인 영향 균형'을 갖췄다고?

한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인 영향균형을 갖춘 제품'이라는 광고 문구 역시 소비자들을 우습게 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신라면과 신라면 블랙의 영양성분표를 보면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신라면 블랙은 열량 545칼로리, 탄수화물 84g, 지방 17g, 단백질 14g, 칼슘 177mg 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값도 안 되는 기존 신라면은 어떨까요?

기존 신라면은 열량 505칼로리, 탄수화물 78g, 지방 17g, 단백질 10g, 칼슘 143mg 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면 1봉지에 포함된 탄수화물 10g, 단백질 4g 그리고 칼슘34mg의 차이가 이상적인(?) 영향균형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일까요?

기가 막힌 과장광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격이 2.5배나 비싼 신라면 블랙에 지방과 칼슘 함량이 높은 것은 소뼈를 갈아 넣어 동물성 단백질과 칼슘 함량이 높아진 것에 불과합니다. 가격에 비하여 성분 함량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많은 식품전문가들이 동물성 단백질과 칼슘 섭취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두 라면을 동시에 먹어 보고 신라면블랙이 더 맛있다고 느낀 사람들은 '동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지방'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고기 맛을 더 맛있는 맛(?)으로 기억하고 있는 뇌가 일으키는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신라면 블랙> 원재료명 및 원산지

- 소맥분(호주산, 미국산), 팜유(말레이시아산) 감자전분, 변성전분, 난각칼슘, 정제염, 야채풍미액, 면류첨가알칼리제(산도조절제) 혼합제제(산도조절제), 올리고녹차풍미액, 비타민B2
스프류 - 사골분말, 육수맛조미베이스, 우거지추출물분말, 정제염, 버섯야채조미분, 마늘추출물분말, 콩나물추출물분말, 무국베이스, 간장분말, 포도당, 볶음양념분, 조미홍고추분말, 양파풍미분, 양지무베이스분말, 칠리맛풍미분, 우골조미분말, 후추가루, 조미아미노산간장분말, 분말카라멜(카라멜색소, 물엿분말), 5-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 매운맛조미분, 호박산이나트륨, 표고버섯분말, 생강추출물분말, 소고기수육, 건표고버섯, 건마늘, 대파, 조미건조홍고추링 {소맥분(밀), 탈지대두(대두), 돈지(돼지고기),유당(우유), 난각칼슘(계란)}

<신라면> 원재료명 및 원산지
- 소맥분(미국산, 호주산), 팜유, 전분, 난각칼슘, 야채조미추출물, 정제염, 면류첨가알카리제(산도조절제), 혼합제제(산도조절제), 올리고녹차풍미액, 비타민B2
스프류 - 정제염, 소고기맛베이스, 육수맛조미베이스, 정백당, 볶음양념분, 간장분말, 조미소고기분말, 마늘발효조미분, 분말된장, 마늘베이스, 조미양념분, 조미홍고추분말, 후추가루, 복합양념분, 칠리맛풍미분, 우골마늘조미분, 조미아미노산강장분말, 조미효모분말, 매운맛조미분, 향미증진제, 양파풍미분, 돈골조미분말, 후추추출물분말, 발효표고조미분, 분말카라멜(카라멜색소, 물엿분말), 생강추출물분말, 표고버섯분말, 후추풍미분말, 진한맛조미분, 건파, 건표고버섯, 건당근, 건고추  {소맥분(밀), 탈지대두(대두), 돈지(돼지고기), 난각칼슘(계란)}


위 식품 첨가물 표시에서 보시는 것처럼 신라면과 신라면블랙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면의 경우 신라면 블랙에 감자전분이 들어있는 정도의 차이 밖에는 없으며, 스프는 라면을 끓일 때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우골조미분말'과 쇠고기 수육(얇은 쇠고기 조각 몇 개), 건표고버섯이 고작입니다. 홍보팀에 확인해보니, 이 쇠고기들의 원산지도 한우가 아니라, 호주산이더군요.

문제는 이런 정도의 원재료 변화로 2.5배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할 만한 혁신적인 제품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분표와 영양성분을 살펴보면 '프리미엄급' 라면이라는 광고가 무색합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라면은 그래봐야 라면일 뿐'입니다.

2007년부터 MSG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광고문구가 있기는 하지만 산도조절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첨가물이 그냥 들어가 있는 국민대표 가공식품일 뿐입니다. 25년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은 회사가 '신라면 출시 25주년을 기념'하여 고객들의 사랑을 2.5배나 비싼 신제품으로 보답하는 것은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 5월 2일 오마이뉴스 기사로 송고하였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