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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에베레스트 정상 오른 넷 중 하나는 죽었다는데...

by 이윤기 201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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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은 저의 오랜 여행 계획 중 하나입니다.  오래 전부터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목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막상 히말라야로 떠날 기회를 잡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냥 산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꿈이지만 좀 더 큰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어 합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1996년 5월 세계적인 등반가 '로브 홀'이 이끄는 가이드 등반대 '어드벤처 컨설턴츠 팀'의 고객 여덟 명 중 한 명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미국 산악인이 존 크라카우어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은 그가 1996년 히말라야 등반에 참가하여 겪은 일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담아낸 산행기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산행기로만 끝나지 않은 것은 그와 함께 히말라야 최고봉에 올랐던 동료 열두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존 크라카우어는 그 사고의 과정을 생생한 기록으로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오른 다섯 명의 동료들 가운데 홀을 포함한 네 사람이 우리가 아직 그 봉우리 높은 곳에 있는 동안 아무 예고 없이 불어 닥쳐 온 맹렬한 폭풍 속에서 사망했다. 내가 베이스캠프로 내려올 즈음 네 팀의 등반대에서 아홉 명이 사망했으며, 그 달이 가기 전에 다시 세 명이 더 사망했다."(본문 중에서)

책을 들고나면 소설과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좀처럼 책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초고는 그가 몸담고 있는 잡지 <아웃사이더>에 연재되었지만, 그는 잡지에 연재된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고 부족한 지면 때문에 못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당시 산에서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증언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건의 주역들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하고 베이스캠프의 무선교신 대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글이 '생생하고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의 정직성을 갖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서면 어떤 기분일까?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바람대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참사의 충격적인 현장'으로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설처럼 독자를 사로잡는 이 책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나는 세계의 꼭대기에서 한 발로는 중국 땅을, 또 한 발로는 네팔 땅을 딛은 채 바람을 막기 위해 한쪽 어깨를 숙이고 내 산소마스크에 달라붙은 얼음을 떼어내고는 드넓은 티베트 땅을 멍하니 내려다봤다."(본문 중에서)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그 실현가능성은 차지하고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의 모습을 비워보았을 만한 장면입니다. 물론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이 봉우리를 밟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만.

또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많은 사람들이 늘 이 곳에 오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산을 오르는 모든 사람들이 늘 죽음을 목전에 둔 위험을 각오하고 있으며 1996년 5월 10일 이른 오후에 히말라야 정상에 오른 '존 크라카우어'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57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지난 사흘간 먹은 것이라고는 라면 국물 한 공기와 M&M 땅콩 한 줌뿐이었고, 그나마 안 넘어가는 걸 억지로 넘겼다.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심한 기침을 해댄 끝에 이제는 숨 한 번 쉴 때마다 양쪽 갈빗대에서 격렬한 통증이 일곤 했다. 해발 8848미터의 대류권 속에서 아주 적은 양의 산소만 뇌에 흘러들어 오는 바람에 내 사고능력은 웬만한 어린애만도 못했다."(본문 중에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세계 최고봉우리에 오른 희열과 기쁨이 아니라 당시 그는 추위와 피로 밖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의 정상에서 채 5분도 머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하산을 시작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5월 한 낮에 살인적이 폭풍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암시해주는 징후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존 크라카우어는 무사히 산을 내려왔지만 정상에서 불과 130미터 위쪽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국기를 펼쳐들고 사진을 찍던 동료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습니다. 불과 1~2분의 짧은 시간이 생사를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 1996년 존 크라카우어가 참여한 에베레스트 상업원정대 
ⓒ 황금가지  에베레스트 

불과 1~2분 사이에 생사가 갈라지는 에베레스트 등정

저자인 존 크라카우어가 참여한 상업 등반대를 이끌었던 산악인 로브 홀은 1980년 열아홉 살에 히말라야의 6795미터 다블람 능선 등반에 참여하였으며, 10년 후에는 네 번째 도전 만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에베레스트 등반 가이드 회사를 설립한 로브 홀은 1990년부터 5년 동안 서른 아홉명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려 보냈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으로 처음 에베레스트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이후 20년 동안 올라간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숫자라는 것입니다.

"1996년, 홀의 고객들이 그의 안내를 받아 세계의 지붕으로 올라가려면 1인당 6만5000달러라는 거금을 내야했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해 봐도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리고 네팔까지 날아가는 항공 요금과 개인 장비를 구입하는 비용은 각자가 따로 부담해야 했다."(본문 중에서)

존 크라카우어가 쓴 <희박한 공기속으로>에 따르면 에베레스트는 상업등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세계 최고봉은 강인한 체력과 탁월한 등반 능력을 가진 산악인들만 오르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1993년의 어떤 날은 단 하루에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기도 하였답니다. 존 크라카우어가가 참가한 로브 홀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을 때도 비슷한 시기에도 여러 나라 원정대들 동시에 정상등정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로브 홀과 같은 상업원정대도 있었고, 또 국가적 지원을 받으며 원정대를 조직한 경우도 있었으며, 우체국 직원으로 야근을 하며 등반비용을 모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화스러운 뉴욕 생활에 사용하던 가전제품을 몽땅 챙겨 등반에 나선 백만장자 산악인도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벌어지기도 하고 존 크라카우어 역시 정상 등정 길과 하산 길에 해발 8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1시간 이상씩 기다리기도 합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는 심각한 교통체증(?)이 생긴다

오늘날 에베레스트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 되었으며, 돈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들에 비하여 훨씬 어려운 과정을 거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부자들이 더 유리합니다.

그러나 정상 도전을 앞둔 시점에서 자연이 주는 험난한 조건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어려움이 닥칠 수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난관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한 조각의 엷은 구름이 정상을 덮으면서 악몽은 시작되었다. 캠프까지 불과 수백 미터를 남겨두고 눈 폭풍이 하산하는 사람들을 때렸다. 강풍과 눈보라로 체감온도는 영하 70도까지 떨어지고 평지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산소량에 허덕이며 사람들은 남은 생을 위하여 싸웠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는 너무 강하고 냉엄했다. 18명의 남녀가 그 산위에서 조난당했다. 캠프에서 불과 4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사우스 콜을 헤매면서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본문 중에서)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후반부는 열두 명의 남녀 산악인이 안타깝게 죽어가는 과정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8000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에 고립되어 죽음이 눈앞에 닥친 안타까운 상황에서 무전기로 고향에 있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죽어가는 산악인 로브 홀의 죽음은 독자들을 더욱 마음 아프게 합니다. 

존 크라카우어가 기진맥진한 몸으로 쓰러져 있었던 텐트에서 불과 3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눈보라에 파묻혀 죽어간 일본 여성 산악인 남바 야스코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8000미터가 넘는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입니다. 눈과 폭풍이라는 재앙을 만나면 누구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1921년에서 1996년 5월 사이에 총인원 630명이 정상을 밟았는데 그 중에서 144명이 사망했으니 대략 정상을 정복한 네 명에 한 명 꼴로 사망한 셈이다. 그런데 지난봄에는 정상을 밟은 총인원이 84명이고 사망자는 12명이니 일곱 명에 한 명 꼴로 사망한 셈이다."(본문 중에서)

하루 밤 사이에 열두 명이 죽은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통계적으로만 따지면 그 해에 특별히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하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있지만 정상에 오르는 일은 네 명에 한 명 꼴로 죽어가는 매우 위험한 일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진실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일이 유달리 위험한 일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올라가든 초보자든 아니면 국제적인 수준의 베테랑급 산악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렇다."(본문 중에서)

존 크라카우어는 에베레스트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엘리트 산악인이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기회가 눈앞에 보일 때면 놀라우리만큼 쉽게 올바른 판단에서 등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는 1996년에 에베레스트에서 일어난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열두 명이 목숨을 잃은 바로 다음에도 다른 원정대는 여전히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출발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1996년 5월 10일의 불행한 사고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에베레스트 등정 역사,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는 에베레스트와 주변 산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세르파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아울러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팔 공항에서부터 시작하여 베이스캠프, 제 1캠프, 제 2 캠프, 제 3 캠프, 제 4캠프를 그쳐 정상에 오를 때까지 고도적응과 험준한 지형을 통과하기 위한 고정밧줄 설치 같은 등반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정상부근에서 산소통을 사용하고도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희박한 공기 속으로>인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길동무가 될 만한 책입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 10점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