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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지금 이곳에서 여행하듯이 오늘을 산다면?

by 이윤기 201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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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김영주가 쓴 두 번째 머무는 여행 <토스카나>

"기사 한 편을 쓰는 데는 보통 5~6장의 그림이 필요하다."

몇년 전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강의로도 유명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부산경남지역 뉴스게릴라들과 만나는 지역투어 특강 때 한 말이다. 글쓰기는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 여러 장의 그림들이 있을 때 비로소 생생한 묘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김영주가 쓴 <토스카나>는 시종일관 마치 함께 보고 있는 듯한 생생한 묘사로 가득한 여행기이다.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만큼 장면 묘사가 빼어나다.

"나지막한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대신 우렁차게 뻗은 침엽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오르막과 내리막 안에서 여전히 굽이져 도는 길의 방향에 따라 태양 빛은 어두워지고 또 밝아졌다. 창문을 다 열고 흙과 나무들의 냄새를 맡았다. 길쭉한 나무줄기의 틈새로 햇빛이 가늘게 들어온다. 활짝 열려진 가슴으로 사랑이, 두근거리는 사랑이 들어온다." -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아레초에서 시에나로 향하는 국도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만난 풍경을 이렇듯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빼어난 감수성과 글로 옮길 수 있는 전문성을 지녔다.

토스카나가 가르쳐준 '느림의 아름다움'

여행사 패키지 상품과는 전혀 다른 그녀만이 가진 독특한 여행 방식은 이른바 '머무는 여행'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미, 지난해 6월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머문 여행기록을 책으로 내놓은 바 있다. 두 번째 책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머무르며 여행한 기록이다.


그러나 여느 여행자들의 여행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가 쓴 글을 여행에세이라고 소개하였는데, 정보가 가득 담긴 여행 책과는 많이 다른 책이다. (물론, 이 책에도 부록으로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토스카나' 여행 정보를 빼곡히 담아놓았다) 지은이의 빼어난 글 솜씨는 여러 잡지사 기자와 편집장을 거치면서 숙련된 재주임에 틀림이 없다.

그녀가 쓴 <토스카나>가 다른 여행기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여행기를 적은 책들은 여행이 목적이고, 다녀온 여행을 기록하여 책으로 낸다. 그러나 김영주가 쓴 <토스카나>는 책이 목적이고, 책을 쓰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다녀온 여행기록이다.

심지어 잘 머물기 위하여, 토스카나를 잘 아는 전문가들과 함께 답사까지 다녀오는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서 씌어진 여행기이다. 그렇다고 하여 출판을 위한 상업적 성공을 위하여 씌어진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난제에도 불구하고 토스카나는 내 심장에 철썩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오로지 본능으로 '그곳'이 떠올랐다는, 그 어떤 운명적인 힘을 믿으며, 나는 아마도, 반드시, 토스카나에서 뭔가를 보고 느낄 것이라는 확신에 도박하듯 모든 것을 걸었다." -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5년 전 취재를 위해 4일간 머물렀던 피렌체에 대한 경험뿐이었지만, 2005년 3월 캘리포니아 여행이 끝나갈 쯤 아주 자연스럽게 '토스카나'를 다음 여행지로 떠올렸다고 한다. 그녀가 토스카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행 준비를 시작하며 그녀 방에는 토스카나가 나오는 대형지도가 붙여지고, 아마존 닷컴에서 토스카나가 나오는 각종 책을 구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CD플레이어에는 아드레아 보첼리의 '토스카나' CD가 꽂힘으로써 청각적 영감을 불러들였다고 한다.

용산전자상가와 인터넷을 뒤져 이탈리아 영화를 구하고, 여행 이탈리아어 회화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하이킹을 위해 자전거 연습을 시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요리도 익혔다. 한 마디로 그녀는 '토스카나'에 올~인 하였다.

즐거운 일의 크기는 무엇으로 결정되나?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대한 그녀 생각은 참 낙관적이고 공평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과정에는 결코 '즐거움'만이 허락되지 않는다. 어쩌면 '즐겁지 않은 일'의 정도에 따라 나중에 올 '즐거운 일'의 크기가 결정되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해오면서 어느새 내 몸속에 세포처럼 뿌리박힌 믿음이다." -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김영주가 다녀온 그 이름도 생소한 토스카나는 어디에 있을까? 토스카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녀가 받았던 질문이라고 한다. 토스카나는 도시이름인가요? 아니면 나라 이름인가요? 대게는 해외여행도 꽤 많이 하고 나름대로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하였던 질문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토스카나는 우리들에게 대체로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었던 것이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스무 개 지방 중 하나이다. 수도는 피렌체, 넓이는 20,990평방킬로미터, 인구는 약 3백 60만 명, 뛰어난 자연과 예술적 소유물을 가진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방으로 손꼽힌다. 유네스코는 1982년부터 2004년까지 피렌체, 시에나, 산 지미냐노, 피엔차, 발 도르치아의 역사적 중심가와 피사의 대성당 광장 등 여섯 곳을 보호지역으로 선정했다." -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토스카나는 우리나라 강원도 경상도와 같은 이름이다. 그리고 그 지방의 중심도시가 바로 피렌체이다. 유네스코가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토스카나에서 2000년은 흔한 역사이다. 여러 도시들의 역사가 기원전부터 시작되고 곳곳에는 미술품과도 같은 빼어난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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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nebbia di settembre by francesco sgroi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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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ld Bridge by J.Salmora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Monteriggioni in HDR
Monteriggioni in HDR by Paolo.Sammicheli.ipernity.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여행과 일상이 만나는 '머무는 여행'

그녀는 머무는 여행의 매력을 "시골 언덕에 있는 수백 년 된 농가의 안락한 방안에서 책을 읽고 밥을 해먹는 재미"에 있다고 한다. 그녀는 머무는 여행을 위하여 한 달간 토스카나 여행을 하면서 숙소를 정하는데 결정적으로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아니 그녀가 떠나는 머무는 여행은 숙소만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모든 것이 열려있었다.

<토스카나>에서 첫 번째 숙소는 프라토 중심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두 번째는 민가가 있는 '시골농가', 세 번째 숙소는 인적 없는 숲 속 '빌라', 네 번째는 B&B(침대와 아침식사), 그리고 마지막에는 룽가르노 스위트라는 고급 호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지은이는 각각 전혀 다른 조건을 가진 방을 출발하여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후에 방으로 다시 돌아와 쉬고 생각하고, 읽고 기록하고 먹고 잠자는 여행을 지속한다. 그녀가 머무는 여행을 즐기는 것은 사람과 자연 그리고 도시가 주는 느낌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행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을 만큼 따뜻하게 만난다. 그녀가 만나는 자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연을 만난다. 지은이의 빼어난 글 솜씨는 그녀가 가진 '따뜻한 가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 지미냐노를 여행하던 날, 하프를 연주하는 거리 악사의 음악에 매료되어 시디 한 장을 사기 위하여 사람들이 다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주요관광지를 둘러 볼 시간에 광장 구석에서 하프 뜯는 남자에게 정신이 팔려 시간을 다 보낸다. 그렇지만 그녀는 손해 날 것이 없다고 한다.

"일 년 후 아니 십 년 후, 어떤 기억이 더 남게 될까. 떠올릴 수 없는 과거 시간은 잃어버린 것과 같다. 가슴에 새겨진 장면은 퇴색되지 않는 추억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김영주가 쓴 머무는 여행 <토스카나>에는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다. 스스로 비전문가라고 자처하였지만, 진짜 음악과 미술의 문외한이 보기에 그녀는 충분히 전문가였다. 지은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들을 수 있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다. 어느 날은 모짜르트를 또 어느 날은 안드레아 보첼리를.….

가슴에 새겨진 장면은 퇴색되지 않는 '추억'으로

지은이는 책을 읽는 독자들을 위하여 토스카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작품들에 대하여도 철저한 준비만으로 해낼 수 없는 해설을 덧붙여 준다. 그 해설은 오롯이 그녀가 예술작품을 만나는 느낌을 전하기 때문에 판에 박힌 가이드의 설명과는 아주 다르다.

<토스카나>로 두 번째, 머무는 여행을 다녀온 김영주는 "천천히 살아가는 딱 그만큼 아름다운 세상 구경을 더 할 수 있다"고 한다.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그래서 영원히 추구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이것이 행복이다, 라고 고개를 낮추면 한없이 높고 눈부신 그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 본문 중에서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이지만, 책을 써야한다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거는 역사고 내일은 신비이며 오늘은 선물"이라고 한다. 멀리 있는 빼어난 경치와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 머무는 이곳에서 오늘을 여행을 하듯이 산다면 우리는 늘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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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 10점
김영주 지음/안그라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