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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8.03.22 인터넷에서 옛애인 이름 검색...당신은 안해 봤나요?
  2. 2016.08.17 산속 오두막...야마오 산세이의 흔적을 찾아가다 (5)
  3. 2016.06.24 야쿠시마 원시림,,,숲의 시원은 이끼
  4. 2016.02.12 일본에서 자전거 타기...한국과 다른점 (19)
  5. 2016.02.11 일본 애플스토어...허탈하게 돌아선 까닭? (1)
  6. 2016.02.02 일본 여행, 후쿠오카~ 우레시노 온천 맛집 (2)
  7. 2016.02.01 후쿠오카에서 우레시노 온천 다녀오기 (2)
  8. 2016.01.29 후쿠오카에서 자전거 타고 여행하기 (3)
  9. 2016.01.26 카멜리아 타고 자전거로 일본 다녀오기 (1)
  10. 2015.11.19 체인점 같지 않은 가고시마 소바 후키아게앙 (2)
  11. 2015.09.03 일본 천황은 '항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1)
  12. 2015.07.24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자취를 돌아보는 가고시마 여행
  13. 2015.07.22 가고시마 역전 포장마차 '야타이무라'
  14. 2015.06.24 수상한 자전거 여행가를 만나 영감을 얻었습니다
  15. 2015.05.26 천년 연하 커플...오백년 만에 만나 천년해로
  16. 2015.05.07 7200살 먹은 노인 상상이나 해봤나? (1)
  17. 2015.04.24 7200년 된 삼나무 조몬스기...성스러운 노인에게 (2)
  18. 2015.04.23 시간의 숲에서 깨닫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19. 2015.02.02 대마도 영유권 주장에 반대하는 까닭? (11)
  20. 2015.01.27 대마도...장엄한 바다 풍광 쓰쓰자키 전망대

인터넷에서 옛애인 이름 검색...당신은 안해 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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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관계에 서툰 남자 엣세이, 호무라 히로시가 쓴 <세계음치>


순전히 <세계음치>라는 제목 때문에 고른 책입니다. 저자 호무라 히로시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세계음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 음치인지, 음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서 구입한 책입니다. 


음치의 세계가 궁금했던 것은 제가 '음치'이기 때문입니다. 박자를 못 맞추고 높낮이를 무시하고 겨우 가사만 틀리지 않게 부를 수 있는 이른바 '음치'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못하지만 듣는 것도 즐겨하지 않습니다.


차를 운전 할 때도 음악보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최근에는 팟캐스트를 골라 듣습니다. TV를 봐도 음악 방송보다는 여럿이 나와 수다 떠는 예능프로그램을 더 좋아합니다. 노래를 못 부르면 많이 듣기라도 해야 좀 나아질텐데, 듣는 것조차 싫어하니 음치 탈출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세계음치>는 저 같이 노래를 못 부르는 사연이 담긴 책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받아들고 '세계음치 '이야기가 나오는 단락을 찾아 먼저 읽었습니다. 목차가 없는 수필집이라 여러 차례 책장을 주르륵 넘기면서 일부러 '세계음치' 찾았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노래 못 부르는 음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제가 보기엔 노래 못하는 '음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실망스런 마음이 들어 읽지 않은 책을 모아두는 책꽂이에 올려놨습니다. 한 1년쯤 세월이 흐른 지난 일요일 읽지 않은 책들을 뒤적이다가 <세계음치>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음치'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 싶어 펼쳤습니다.


노래 못하는 음치 아니라 세계와 관계 서툰 음치 이야기


1년도 넘게 지났지만 역시나 제 관심은 '음치'에 있었기에 '세계음치'부터 찾아 읽었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읽어보니 노래를 세계에서 제일 못하는 음치가 아니라 세계(상)와 관계 맺기를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세계음치'라고 하였더군요.

"지난 번에 <세계음치>라는 제목으로 '자연스러움'을 지니지 못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괴로움에 관해 썼다. 술자리와 초밥 가게 카운터를 예로 들었기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타인과의 거리감을 가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만이 '세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본문 중에서)

세상과의 관계 맺기가 서투르고 특히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특히 서투른데 그 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계와의 관계 맺기도 서툴다고 하더군요. 저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몇 년 전에 집에 놀러온 친구가 "공기가 안 좋네, 창문 열게" 하더니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지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 곳에 산 지 14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내방 창문이 열리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방에 창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창이 열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공기가 나빠 숨쉬기 힘들었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창을 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본문 중에서)


왜 한 번도 창문을 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귀찮아서도 아니고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나는 창문으로부터 가로막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5년 동안이나 그 방에 살고 있으면서 한 번도 창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15년 동안 창문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세계음치'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창문을 열고 닫는 일 뿐만 아니라 그는 매사가 남보다 늦기 때문에 심지어 여름옷을 꺼내 입는 것도 남들보다 하루가 늦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름 옷을 입은 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름옷을 꺼내 입는다는 것이지요.


흔히 사람들은 그가 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는 끝없이 남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여름옷을 입기 시작하지만 그는 남들이 여름옷을 입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스스로 '자연스러움을 빼앗긴 사람'이라고 말 합니다. 그는 세계와 단절된 '세계음치'라는 겁니다. 노래와 단절된 노래음치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세계음치>를 쓴 호무라 히로시는 단카 시인이자, 평론가이면서 에세이와 그림 책 번역 등 여러 활동을 하는 작가입니다. <세계음치>는 저자가 니혼게자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저자의 자기소개를 볼까요?


"나는 현재 38세로 회사 명함에는 과장대리라고 직함이 적혀있고, 벤치프레스로 107.5킬로를 든 적이 있으며, 몇 권인가 책을 냈고, 닛케이 신문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세계음치>에 담긴 에세이들은 대부분 저자의 자기 이야기입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미혼으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샐러리맨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하고 위화감을 느끼면서 보내는 한심한(?) 일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초밥가게에서는 정작 먹고 싶은데도 먹고 싶은 것을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밤중에 침대를 더럽혀가며 과자빵을 탐닉하며, 마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낫는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녹즙 비타민을 복용하고, 어느 날은 인터넷에서 그동안 사귀었던 옛 애인의 이름을 차례대로 검색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몇 가지 예를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건강검진에서 중성지방 수치가 엄청나게 높게 나왔지만 단팥빵 앙금을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거나 자기계발서를 읽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책을 사 모은다거나 비타민을 먹어도 몸이 좋아지는 것 같지 않은데도 먹어두는 일. 경험해 보시지 않았는지요?


인터넷에서 옛 애인 이름 검색해보셨나요?


연하장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받은 연하장에는 답장을 하고, 받은 연하장 숫자를 세면서 관계를 가늠하거나 어느 날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에 당황하거나 마트에서 할인 상품을 손에 들고 작은 이득을 계산하느라 망설였던 경험은 혹시 없으신가요? 병원에서 수액이 떨어져 갈 때 간호사를 부를까 말까 망설여본 경험은 해보셨나요?


많은 일본 독자들이 호무라 히로시가 쓴 이런 에세이를 읽으면서 자기 이야기와 닮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것이 잠자는 것이라거나 15년 동안 창문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은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저 역시 15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15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을 이사를 할 때마다 모시고 다닌다거나 어떤 물건은 어느 장소에 둬야 안심이 된다거나 어떤 물건을 잃어버리면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잃어버린 장면을 추적한다거나 심지어 끝내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똑같은 물건을 사야 직성이 풀리기도 합니다.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지요?


<세계음치>에 공감하는 까닭은 처음 읽을 때는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들인데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노래 못하는 음치들을 위로 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세계와 교감하는데 서투른 사람들을 위로 하는 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은 기겁하는 자기만의 단점이 있지만, 그걸 고치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나만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됩니다. "독신, 38세, 외동, 부모와 동거, 총무과장대리"로 살아가는 단카 시인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단카는 5.7.5.7.7의 음수율을 가진 31자의 정형시로서 대대로 일본인의 마음을 담아온 전통적인 서정시"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마음에 문을 두드리는 여러 편의 단카 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된장국이란 소중한 것이로다. 그저 덧없는 이번 세상에서만 먹는다 생각하면"


"초장기 일기예보에 따르자면, 일억 년 후의 내 생일의 날씨는 구름이 낀다네요."


"장어가 오고 오징어 문어 오고, 다시 장어가 오고 다음 빈 접시, 다음 참치 집어야지"


"내버려 진 채로 홀로 남은 안경이 모래밭에서 내리쬐는 빛 줄기 바라다보는 구월"


"밥 먹고 먹는 약 종류 열한가지 모두 열세 알, 하나 부족하구나 말하며 한숨짓다"


"아픔을 안고 세상의 바깥쪽에 서 있는 나와 붉은 속눈썹 안으로 말고 있는 석산꽃"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일본 사람들은 이런 단카 시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에세이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유명한 단카 시인들의 작품과 저자가 쓴 단카 시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건 '덤'인 것 같습니다. 그냥 "나답게 사는 것"이 힘겨울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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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오두막...야마오 산세이의 흔적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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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 여행기② 야마오 산세이 생가 방문


지난 5월 중순(13~16일)에 다녀온 야쿠시마 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작년 4월에 이어 두 번째 야쿠시마 여행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짜면서 준비를 맡은 여행사 측에 여러 차례 야마오 산세이 생가 방문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행사측에서 사전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야마오 하루미 여사와 만나는 일정 같은 것은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행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준비해 줄것이라고 믿었던 제탓이지요. 


아무튼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아도 야마오 산세이가 살던 집이라도 보고 싶다고 부탁하였지만, 섬 일주 여행과 바다 거북 산란 관찰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그마저도 무산되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쓴 책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책에 수없이 자주 등장하는 그가 살던 오막살이 집을 직접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상상했던 그의 집을 직접 눈으로 보고나면 책을 다시 읽을 때 그 느낌이 온전히 살아날 수 있으리가 기대하였던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꼭 들러리라 다짐했었답니다. 


셋째 날 밤 바다거북 산란 관찰을 하고 '안보'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면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소식이 가이드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야쿠시마는 작은 공항이라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유도전파를 발사하여 착륙을 유도하는 '계기착륙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착륙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더군요. 


만약 야쿠시마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야말로 낭패인 것이 대부분 직장인들이라 일정을 연장하면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항공편이 예정대로 운항되어도 아침 시간에 3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습니다. 



숙소에서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야마오 산세이 생가에 같이 갈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일본에는 앞좌석에 두 명이 탈 수 있는 택시가 있어 모두 다섯 명이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집에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여행 전에 추천한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었던 두 사람과 호기심 많은 한 사람 그리고 일본어를 잘 하는 한 분이 저와 동행을 해주었습니다. 


숙소에서 야마오 산세이 생가까지는 지도상으로 약 30km 거리인데 택시로 1시간 가량 걸렸습니다. 야쿠시마는 편도 1차선도로이고, 제한 속도가 60km이기 때문에 거리가 길지 않은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었습니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출퇴근 시간 차량 정체가 없으면 약 30분 정도 야마오 산세이 생가를 둘러보고 야쿠시마 공항에서 일행들과 만날 수 있겠더군요. 


다행히 야마오 산세이 생가에 갈 때는 택시가 예상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덕분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택시는 다시 공항까지 타고 가기로 하였기 때문에 택시 기사와 함께 야마오 산세이 선생의 집을 살펴보았습니다. 



택시 기사에 따르면 "하루미 여사는 나이가 많아 산 아래 잇소 마을에서 산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집을 둘러보니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뚜렷하였습니다. 처마 밑에 빨래건조대에는 옷이 널려 있었고, 안채에는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여러 번 읽었던 목욕탕 물을 데우는 아궁이를 직접 본 것도 반가웠고, 야마오 산세이가 공부하고 기도하고 사색하던 서재을 살펴본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서재가 있는 별채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유난히 아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서재 입구에 앉아서 그가 쓴 책 <여기에 사는 즐거움> 책 표지에 있는 사진과 똑같은 포즈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책을 읽은 일행들도, 책을 읽지 않은 일행들도 그 책을 들고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루미 여사를 만났으면 싸인이라도 받고 싶어 책을 가져 갔었는데 아쉽게도 그녀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서재에는 여전히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주인이 없는 빈집이라 방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벽에는 시가 쓰인 액자가 걸려있고 플라스틱 상자에는 분류된 책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배우 박용우가 나오는 <시간의 숲>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국 배우 박용우와 일본 여배우 타카키 리나가 야마오 하루미 여사가를 만나 생전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이 작은 오두막을 중심으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쓰며 무려 여덟 명의 아들딸을 키워냈다. 그는 직접 지게를 지고 가족들의 똥을 실어 나르며 천연의 퇴비를 만들고, 찻잎 하나하나를 덖어 최고의 녹차를 만들고, 이웃 사람들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아들과 바다낚시를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하였습니다. 




작은 오두막에서 여덟 명의 아들딸을 키워낸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인데, 그중에는 죽은 친구의 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오두막이 있는 곳은 지금도 오지인데,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폐촌에서 자연에 기대어 아이들을 키워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밤에 홀로 글을 썼고, 그 글들은 자연과 공존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지은 작은 오두막집 별채에서 그는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과 회귀하는 시간에 관해 사유하였고, 그의 사유는 책으로 강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인간은 본래 물과 빛, 흙과 공기에 속해 있는 생물이다. 인간이 아무리 인류 문명과 문화를 뽐내며 독립된 개인임을 자랑하고 의식을 가진 존재인 점을 내세워도 그 생명의 본질은 물과 빛에 속하고, 흙과 공기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인간은 제멋대로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뻐기고 있지만 지금 와서 분명해진 것은 돌도 또한 영장류이고, 풀이나 나비도, 원숭이나 사슴 또한 영장류라는 것이다." - 여기에 사는 즐거운 중에서 



예컨대 야쿠시마의 깊은 숲 속에 조몬시대로부터 시작해서 7200년을 살아온 삼나무 '조몬스기'와 비교해보면 제아무리 잘난 인간도 오히려 삼나무 한 그루보다 하잘 것 없는 존재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자연을 대하는 삶의 자세, 마음가짐은 세상 만물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는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를 '가미'라고 부릅니다. 그는 신을 천국에만 가둬 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며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다 가미다. 왜냐하면 가미란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진심으로 좋았다고 느끼는 것을 통틀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실제로 야마오 산세이는 야쿠시마의 숲과 바다에서 만나는 풀, 나무, 바위, 돌, 이끼, 곤충들에게서 가미를 찾아냅니다. 풀과 나무와 바위와 돌과 곤충들에게 가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과도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뛰어난 영성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공부하고 사색하고 글을 쓰던 오두막집을 둘러보면서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읽었던 인간의 시간에 대해 쓴 글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시간을 직선의 시간, 회귀의 시간 그리고 무의 시간으로 구분하면서 사람들은 주로 직선의 시간에만 주목하며 회귀의 시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합니다. 


"그 하나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곧바로 나아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결코 뒤로 돌아설 수 없는, 불가역적인 '직선의 시간'으로 우리 문명의 시간은 이 시간에 지배되고 있다. 문명 특히 과학 기술 문명이 결코 뒤로 돌아가는 일 없이 앞으로 진보해 가는 것은 문명이란 처음부터 진보하는 것을 숙명으로 하는 직진하는 시간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렇게  직진하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그 존재를 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바로 회귀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밤낮이 바뀌듯이 계절이 바뀌듯이 회귀하는 시간들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지구의 자전에 따라, 아침과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지구의 공전에 따라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일 년이 된다. 아침과 낮과 밤으로 회귀하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로 회귀하는 시간은 태양계가 안정돼 있는 한 영원히 반복될 자연 시간으로 우리 개개인의 생명이나 가족이라는 집단도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순환을 한다는 점에서 이 회귀하는 시간 안에 있다."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중에서


예컨대 인간의 삶을 놓고 보면 태어나서 죽음으로 향해 가는 혹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는 직선의 시간이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아버지의 삶이 아들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삶이 딸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세대를 이어가며 마치 아침과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회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마오 하루미 여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여전히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만, 짧은 시간동안이나마 야마오 산세가 살던 오두막을 둘러 본 것은 큰 기쁨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가 쓴 책을 읽을 때마다 직접 눈으로 보고왔던 집과 마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쿠시마에 가려거든 꼭 야마오 산세이가 쓴 책들을 읽고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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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6.08.22 18:1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쉬움은 있었지만...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잘 보고갑니다.

    늘 건강하세요^^

  2. 2017.03.01 17:32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이윤기 2017.03.02 16:59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지금은 조금씩 폐허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ㅠㅠ

  3. 야쿠르 2018.08.09 10:49 address edit & del reply

    글 잘읽었습니다.
    저도 1주전에 야쿠시마를 다녀왔는데 마음은 여전히 야쿠시마에 있습니다.
    추천하신 책을 읽고싶어 검색을 해보니 어디에서도 구할수가 없네요.
    혹시 구할수있는 경로를 아시는지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여쩌봅니다.

  4. 2021.03.27 18:0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야쿠시마 원시림,,,숲의 시원은 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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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 여행기① 화강암 섬, 원령공주의 숲은 이끼로 뒤덮혔다


작년 4월에 이어  지난 5월 13 - 16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삼나무로 추정되는 조몬스기가 있는 야쿠시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의 70주년을 기념하면서 회원들과 야쿠시마까지 조몬스기를 보러 갔다 온 일을 두고 마치 친일 행위라고 한 것처럼 '견강부회'하는 사람이 있어 거슬리기는 합니다만, 여행기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일본 여행도 쉬운 일이 아닌데, 후쿠오카 최남단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이나 가야하는 야쿠시마를 다시 다녀왔습니다.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간 것은 아니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루 1번 있는 일본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야쿠시마까지 곧장 갔습니다. 시간을 아낄 수 있었던 대신 비용은 많이들었지요. 


올해는 제가 일하는 YMCA 창립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회원들과 야쿠시마로 여행을 겸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야쿠시마라는 작은 섬을 세계에 알린 조몬스기를 보러 갔습니다. 이 나무에 일본 군국주의의 혼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고 추정 수령 7200년을 자랑하는 조몬스기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 먼 남쪽 작은섬을 찾아가지는 않았겠지요. 




야쿠시마까지 가는 교통편은 작년보다 더 불편해졌습니다. 작년에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낮 12시에 출발하는 비행편이 있어서 아침에 한국을 출발하여 야쿠시마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오후 2시 20분으로 시간이 바뀌었더군요. 그나마 비행기 연착으로 30분쯤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야쿠시마 항공편 운행 시간...작년보다 더 불편해져


야쿠시마까지 가는데 꼬박 하루가 다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여간 불편하고 아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상점들도 문을 닫기 시작하는 작은 섬이라 오후 4시쯤 도착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야쿠스기 자연관으로 달려 갔습니다만, 오후 5시 폐관시간에 쫓겨 고작 30분만에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가야 했답니다. 작년처럼 오전에 후쿠오카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면 훨씬 여유로운 일정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작년에는 야쿠시마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셋째 날 아침일찍 가고시마로 나와서 1박 2일 보냈습니다만, 이번엔 3박 4일 일정을 모두 야쿠시마에서만 보냈습니다. 덕분에 작년에 못가봤던 기겐스기와 야쿠스기랜드 그리고 센비로 폭포를 비롯한 야쿠시마의 여러 폭포들과 바다 거북 산란광경까지 보고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역시 긴고 긴 역사의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야쿠시마 삼나무들이 살고 있는 그 숲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쿠시마는 1년 365일 중에 366일 비가 내린다고 할 만큼 비가 많이 내리는 섬입니다. 이 섬의 산속 강우량은 연간 8000 ~ 10000㎜입니다. 10000㎜가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그대로 고인다면 무려 10미터 높이가 되는 것이지요. 


1년에 10미터씩 비가 오는 섬, 야쿠시마


하지만 작년 4월 2박 3일 동안 야쿠시마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구름도 없는 맑은 날이 사흘이나 이어졌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야쿠스기 숲에서 경험하는 신비감은 다큐멘터리나 사진을 볼 때보다 덜 하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사흘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그때문인지 작년에 비해 숲은 신비감이 훨씬 더 하였고 특히 이끼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가득 넘쳐 났습니다. 


비 때문에 조몬스기까지 가는 길도 훨씬 멀고 힘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비해 왕복 2시간은 더 걸렸습니다. 작년엔 각종 안내 자료에 나온 시간보다 훨씬 빨리 조몬스기까지 다녀왔는데, 올해는 안내 자료에 나오는 평균 시간보다 1시간쯤 더 걸렸습니다.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작년에는 4시 20분에 산을 내려가는 막차를 탔는데, 올해는 5월부터 버스 시간이 늘어 난 덕분에 6시에 운행을 마치는 막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작년에 산행을 잘 한면도 있지만 비가 오지 않아 시간이 훨씬 단축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어군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조몬스기까지 가는 숲길을 걸으며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이 숲의 진짜 주인은 조몬스기나 수령 1000년 이상의 야쿠스기들이 아니라 바로 '이끼'더라는 겁니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려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만, 대신 숲을 가득 메운 이끼들은 빗물을 잔뜩 머금고 생기가 넘쳐나더군요. 


숲 가득한 이끼들을 바라보며 11시간을 걷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바로 주인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야쿠시마는 바닷 속에 있는 화강암 바위들이 융기하면서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이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3000년이 더 지난 야쿠스기들이 살고 있는 것도 다른 곳에 비해 토양이 척박하여 빨리 자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야말로 흙 한줌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섬이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처음 자라난 생명체는 거대한 삼나무가 아니라 어쩌면 작고 약한 '이끼'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이끼들이 마치 흙을 대신하여 다른 생명체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 하였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수경재배가 이루어진 셈인데, 그때 씨앗을 품고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 바로 이끼였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야쿠시마 삼나무를 비롯한 생명의 기원은 이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수만 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끼'들은 생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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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자전거 타기...한국과 다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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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전거 답사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점을 정리해 봅니다. 올해 한일 자전거 국토순례를 계획대로 진행하거나 혹은 일본에서 출발하는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할 수 있을지 점검해보는 답사 여행이었는데, 막상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보니 우리나라와 다른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예상하시는대로 우리나라보다는 자전거를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후쿠오카 답사 여행을 계기로 그동안 3~4차례 자전거로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일본 도심에서 만나는 자전거들은 대부분 생활자전거였습니다. 


일본은 생활자전거 천국...우리나라는 MTB가 대세


우리나라는 도심에서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도 대부분 MTB혹은 유사 MTB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도심 거리를 다니는 자전거는 대부분 생활자전거들입니다. 장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도 많고 젊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중에는 미니벨로도 많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싼 MTB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전거 타기가 활성화된 나라일수록 생활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심 곳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두 번째 특성은 도심 곳곳에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역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심 곳곳에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시내에는 유료로 자전거를 맡기는 안전한 주차장들도 많았습니다. 도심지를 벗어난 비교적 한적한  동네에서는 그냥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쉽고 편하게 세울 수 있었습니다. 



보도로 다니는 자전거, 보행자와 잘 어울려다닌다


세 번째 특성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보도를 이용하는데, 보도에는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자전거와 보행자가 부딪히지 않고 서로 잘 어울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보도를 쪼개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도 자전거와 보행자가 서로 각자의 길을 잘 지키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보행자와 자전거 구분이 없는 보도에서도 서로 잘 피해서 다니더군요. 자세히 관찰해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속도를 잘 조절하면서 보행자를 보호하면서 다닌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아무튼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웬만한 도심에서는 자전거 도로를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데도 도로에서는 자전거와 자동차가 서로 잘 어울려다니고, 보도에서는 자전거와 사람이 서로 잘 어울려서 다니더군요. 



보도로 다니는 자전거, 신호등 꼬박꼬박 지킨다


네 번째 특징은 보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신호등을 아주 잘 지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심의 자동차 도로는 물론이고, 도심의 이면도로에도 보행자 신호등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빌딩이나 주택, 상가들이 있는 이면도로에서 간선도로로 연결되는 곳에는 대부분 보행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왕복 2차선 같은 좁은 길도 어김없이 보행자 신호등이 있어서 오히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면도로 혹은 이면 도로와 간선도로가 만나는 교차 지점에 있는 보행자 신호를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전거도 꼬박꼬박 지키면서 다니더군요. 자전거가 보행속도보다 2~3배는 빠르기 때문에 간선도로와 이면도로 교차점 마다 있는 보행신호등이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하였는데, 모든 자전거들이 신호등을 지키면서 다녔 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간선도로와 이면도로가 만나는 곳에는 보행신호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보통 자전거를 타고 보도를 주행할 때는 보행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거나 자동차가 없는 곳에서는 보행 신호등을 무시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일본에서는 꼬박꼬박 신호등을 지키고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혼잡한 도심 구간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의 속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자전거가 조금 앞서 가도 보행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다보면 걸어오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답니다. 



자동차는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한결 같은 대답이 "차가 무서워서 자전거를 못타겠다"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은 한 번도 자동차를 타고가는 운전자가 자전거를 위협하거나 창문을 내리고 욕을 퍼붓는 일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자전거를 타면 아슬아슬하게 자전거를 위협하는 차들이 수두룩합니다. 많이 나아지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여전히 창문을 내리고 욕을 퍼붓는 경우도 더러 있구요. 


일본에서 몇 차례 자전거 투어를 하였습니다만, 보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차도 가장자리로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절대로 자동차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자전거가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동차가 속도를 줄이고 기다려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좁은 시골 국고에서 20명 가까운 인원이 한 줄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뒤 따라 오던 트럭과 승용차들이 비켜달라고 크락숀을 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전거가 비켜줄 때까지 속도를 늦추고 뒤따라오더군요. 


확실히 자동차보다 보행자와 자전거를 우선하고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공영자전거를 보급하거나 4대강에 자전거길을 만들고 국토대종주 자전거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동차보다 보행자와 자전거를 우선하는 교통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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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지 2016.02.12 13:4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자전거 답사 여행이라..... 오, 멋지네요...
    역시 자전거족이 많은 일본 답습니다...시스템이 잘 되어 있네요...
    하아...한국은 여기저기서 자전거 도시 만든다고 하더니 중간에 전부 방치 중이라 아쉬워요.

    • 이윤기 2016.02.16 09:24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창원도 시장이 바뀌고 나니...공영자전거 누비자와 자전거 활성화 정책에 대한 공무원들의 관심도 팍팍 줄어드는게 느껴지네요.

  2. 空空(공공) 2016.02.13 14: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는 생활 자전거 탈수 있는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듯 합니다

    • 이윤기 2016.02.16 09:23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렇습니다.
      창원은 잘 되어 있던 자전거 도로를 왜려 없애거나 보도 겸용으로 후퇴시키고 있기도 합니다.

  3. 글루미 데이 2016.02.13 15:44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의 자전거는 위험하지 않고 지극히 실용적이더군요. 우산까지 장착하고 다니고 골목까지 턱이나 땜질틈이 없어 안전하고..그런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자전거타고 종횡무진하겠습니다.

    • 이윤기 2016.02.16 09:22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렇지요...저는 역시 자동차가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마산 청보리 2016.02.14 09:3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읽었습니다. 담엔 일본! 같이 갑시다.^^

    • 이윤기 2016.02.16 09:21 신고 address edit & del

      좋습니다.
      언제 날 한 번 잡읍시다 ~
      가까운 대마도부터 셋이 함 갈까요?

  5. 개똥 2016.02.15 05:54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도 일본처럼쓰레기버림 죽여 질서안지킴죽여!이러면 1년도안걸려 일본처럼됨 무서울일본×

  6. *저녁노을* 2016.02.16 06:3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겠군요.
    잘 보고갑니다.

    • 이윤기 2016.02.16 09:20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오랜만입니다. 저녁노을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7. 뉴리뷰 2016.02.16 12: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은 자전거 문화가 정착이 되어있네요!!

  8. ひかり 2016.02.16 22:04 address edit & del reply

    자전거가 차를 위협함..운전하다보면 대놓고 가운데로 ...무섭다..
    자전거도 시골 할배들 타는 자전거들이라 빨리ㅡ달리지 않아서그렇지..
    한구같이 오토바이 속도로 달리면 일본에서는 죽는다...

  9. 일본유학생 2016.03.05 22:04 address edit & del reply

    대신 문제는...
    일본은 자전거 사면 등록도 해야하고
    주차하면 주차비내야하고
    아무곳에나 자전거 두면 자전거 끌려간다는 사실...ㅋ

    • 이윤기 2016.03.10 08:35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런 질서가 필요한 것 같아요 ㅎㅎ

  10. 김규태 2016.03.16 09:13 address edit & del reply

    우연히 자전거 관련글을 검색하다가 들어와서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하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몇자 올립니다
    일본도 2010년쯤부터 자전거 관련 법규 정비가 매우 많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화된 것중에 하나가 자전거의 보도 통행금지입니다
    다만 필자께서 느끼신거처럼 아무문제없이 물흐르듯이 흐르는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에게 피해받지 않으려는 그들의 국민성때문이겠지요
    사진에서처럼 저렇게 보도를 이용해 자전거 주행을 하신것은 법규 위반입니다
    게다가 사진상에는 자전거통행금지라는 표지판이 버젓이 서있네요
    보도에서 자전거도로와 구분되어있지 않다면 차도로 가는게 정확한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있는 보행자 자전거 겸용도로 자체가 이상한 구조이긴 합니다
    여타 다른 유럽이나 자전거가 활성화 되어있는 나라에는 도로에 표식을 하여서 자전거와 차가 도로를 나눠쓰도록 되어있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보행자와 자전거가 보도를 나눠쓰는 말도 안되는 구조죠
    법률상으론 자전거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아닌 이상 도로 주행을 하게 되어있는데 말입니다(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그냥 자전거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보도를 반나눠서 칠을 하고 겸용도로를 만들어 보여주기식으로 만든것입니다
    언제쯤 제대로 된 자전거 탈 환경이 될런지 심히 의문스럽긴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자전거를 위협하지 않는 환경.. 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윤기 2016.03.24 10:28 신고 address edit & del

      정확하고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자전거 통행금지 표지판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몰랐네예
      다음부터 표지판을 잘 살펴야겠습니다. ^^*

  11. ㅛㅛ 2016.09.07 10:08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과 한국이 다른점 은퇴시기가 20년 빠르다 은퇴자산이 없다 부동산에 80% 묶여있다 그리고 빚이 많다 또한 소득이 적다 이것이 일본과 다른점이다 ㅎㅎ 또있네 남북이 분단되어 있어서 섬나라라는건 같고 일본영토가 남한의 10배정도 될거다 인구는 3배가 많고 그리고 방산비리 떡검이 한국이 100배정도 많고 부동산가격이 일본이 싸다 또 자영업자 비중이 한국 24% 일본 11% 이상입니다

일본 애플스토어...허탈하게 돌아선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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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자전거 답사 여행을 다녀오면서 숙소에서 멀지 않은 텐진역 근처에 있는 애플샵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이폰6가 출시될 당시 일본에서 아이폰을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우레시노 온천에 가는 날 차표를 예매하고 남는 시간 동안 텐진 역 근처를 둘러보았습니다. 


텐진역 근처에는 다양한 쇼핑몰들이 몰려있었지만, 이른 아침이라 매장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거나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레시노에 다녀와서 저녁 때 숙소로 가기 전에 둘러 볼 만한 곳으로 애플샵과 전자상가 두 곳을 정해두었습니다. 애플샵이 첫 번째 쇼핑 장소로 손꼽힌 것은 혹시라도 국내보다 가격이 싸면 아이폰6S와 아이패드를 사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제대하는 아들 녀석이 제 아이폰6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한국보다 싸게 살 수 있으면 저도 아이폰 6S 언락폰을 사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애플 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몇몇이 앞장을 서자 일행들 모두 애플스토어로 함께 갔습니다. 마침 저녁 식사를 하려고 봐둔 식당도 애플샵 근처였기 때문에 다같이 애플스토어에 먼저 들렀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아이폰6가 출시되었을 때 일본을 자주 가는 지인들에게 구매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인터넷 구매후기 중에는 아이폰6를 구입하러 후쿠오카를 다녀왔다는 자랑도 있었습니다. 


애플의 가격 정책으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게 출시 되었던 데다가 당시 엔화 환율이 낮아서 일본에서 구입하면 국내보다 20만원 정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일본 직구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일본내 품귀현상까지 벌어졌습니다. 


아이폰 일본이 싸다는 건 옛말


급기야 일본 앱스토어가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판매가격을  8000엔 가까이 인상 하면서 일본 직구에 대한 가격 매력이 사라졌다고 하지요. 어쨌든 이런 소문을 한 번씩 귀동냥은 했던 터라 후쿠오카 앱스토어에 가서 아이폰과 아애패드 가격을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해외 데이터로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애플 매장에 들어가서 카카오톡 음성 채팅으로 국내 지인들과 통화를 좀 하고 최신 아이패드, 맥북, 맥북프로 등을 구경하였습니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아이폰6S였기 때문에 매장에 있는 점원에게 아이폰 6S의 가격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전시된 아이폰의 화면을 옆으로 넘기고 1~2번 터치를 하더니 가격표를 열어서 보여주더군요. 16GB 98,800엔, 64GB는 110,800엔, 128GB는 122,800엔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외국인으로 면세 구입을 하면 세금은 제외한다고 해도  국내에서 언락폰을 구입하는 것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아이폰6S 64GB 모델의 경우 환율 계산을 하면 국내 가격이나 일본 앱스토어나 가격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소비세는 안 낸다고 쳐도 가격 차이가 2만 원 정도 밖에 안되는데다가 AS까지 감안하면 일본에서 사야 할 까닭이 하나도 없겠더군요.   




아이폰6S 64GB의 경우 한국 앱스토어에서 1,060,0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일본 앱스토어 판매가격도 환율을 적용하면 1,030,000원 정도 되더군요. 이 정도 차액이라면 AS만 생각해도 한국에서 사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이폰을 일본에서 사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모두 옛말이더군요. 그동안 엔화 환율도 오르고 애플의 가격 정책도 바뀌면서 일본 직구의 매력이 완전히 사라졌더군요. 결국 12명이 우루루 일본 앱스토어 몰려갔지만 모두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습니다. 뭐 추호도 애국심같은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사 봐야 가격이 싸지 않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 하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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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空空(공공) 2016.02.11 09:5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요새는 직접 가지 않고 직구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부대 비용 잘 따져 봐야 합니다 ㅎㅎ

일본 여행, 후쿠오카~ 우레시노 온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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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一(코메이치 치하야 점)


짧게 다녀 온 일본 자전거 여행, 나름 맛집을 찾아 여러 식당을 골라 다녔습니다만 추천 할 만한 곳은 딱 세 곳입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치 않았던 카멜리아호의 중식 뷔페도 가성비가 아주 높았습니다. 


첫날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점심을 먹었던 식당 米一(코메이치 치하야 점)은 체인점이었습니다만, 나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은 뭘 먹어도 맛있을 수 밖에 없었지요. 



뉴 가이아 돔 마에 호텔에서 출발하여 시카노섬(원래는 시카노섬까지 라이딩을 할 계획이었음)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입니다. 후쿠오카히가시 도요다 자동차 판매점 건너편에 있는 식당인데, 돈까스와 덮밥 같은 메뉴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대부분 겨울 요리인 굴튀김 요리를 특대로 주문하였습니다. 밥과 함께 맥주도 1잔씩 주문하였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맥주를 팔지 않는다"고 하더니 맥주를 갖다 주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겠더군요. 카멜리아호에서 아침을 컵라면으로 해결하였기 때문에 점심은 가급적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식당입니다. 


보통 12시로 정해진 점심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식당에 갔습니다만, 빈 자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 일행이 주문을 마치고 나니 빈 자리가 없어서 대기하는 손님이 생기더군요. 체인점이긴 하지만 나름 맛있는 식당인듯 하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바로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릴 수가 없겠더군요. 



도진마치 역전 시장 통 골목에 있는 밥집 + 술집 '染巣坊(소메수보)'


저녁 식사는 첫날 라이딩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을 골랐습니다. 전철 도진마치역 앞에는 시장이 있는데 시장 통에 있는 식당을 둘러보다가  밥집 + 술집인 '染巣坊(소메수보)'를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식당 벽에는 스모 선수들의 손바닥 도장과 싸인들이 액자로 만들어 걸려 있었습니다.  다른쪽 벽에는 스모 선수들 사진도 걸려있더군요. 액자에 있는 스모 선수들이 모두 이 식당을 다녀 간 것인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 



여기 식당에는 여러 가지 메뉴가 있었는데 덮밥과 라멘 그리고 짬뽕을 시켜서 나눠 먹었습니다. 맛있는 순서를 매기라면 덮밥, 짬뽕, 라멘 순서입니다. 덮밥이 가장 많이 좋았습니다. 라멘은 전문점에 비하여 맛이 떨어지고 국물은 많이 짜더군요. 대신 짬뽕은 라면만큼 짜지 않고 맛도 좋았습니다. 


이 곳은 동네 단골들이 많은 밥집 + 술집이었습니다. 주방을 마주보는 테이블에는 주로 단골들이 앉아서 혼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 TV를 보더군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던 것은 옆 자리에 않은 사람들 끼리 그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희 일행 12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손님 두 사람을 자리를 양보하고 나가더군요. 남은 손님들과 새로 온 손님들도 가게 주인과 인사를 나누는 폼새나 가게에 키핑 해놨던 술을 꺼내 마시는 것으로 봐서는 단골(?) 손님이 분명한데, 같이 나란히 앉은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한국 사람이 보기엔 참 이상하더군요. 


그날 저녁 이 가게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은 저희 일행이었습니다. 시장통과 마을 주택가 사이에 있는 이 조그만 식당은 퇴근 길에 들러 저녁 식사와 함께 간단하게 술 한 잔하고 가는 곳인듯 하였습니다. 


저희 일행은 정종과 소주 그리고 맥주를 나눠 마시느라 안주도 몇 가지 시켰는데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야채와 돼지고기를 볶아 만든 안주는 맥주나 정종에 잘 어울렸습니다. 

 


아들인 것으로 짐작되는 젊은 남자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나이든 아주머니가 써빙을 하더군요.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끼리는 모자간에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국 식당이라면 12명 정도가 들이닥쳐도 당황하지 않을텐데, 이곳은 저희 일행 12명이 자리를 잡고 않아 약간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더군요. 



저녁을 먹고 골목 길에 서 있는 간판 앞에서 인증샷을 남겼습니다. 다음에 후쿠오카에 가서 도진마치 역 부근에 숙소를 정하게 된다면 가볍게 술 한잔하고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기억해두기로 하였습니다. 


우레시노 온천 손두부 '소안 요코초'


세번 째 맛집은 후쿠오카가 아니라 사가현 우레시노 온천에 있는 식당입니다. 관광안내소에서 우레시노 온천에 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팜플렛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곳 입니다. 우레시노 온천에 있는 여러 맛있는 식당들이 소개 되어 있더군요. 


팜플렛에는 다양한 메뉴가 소개 되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의 눈길을 끄는 식당은 온천 손두부였습니다. 온천손두부를 파는 식당도 몇 군데가 있었는데, 저희는 현지 마을 분의 추천을 받아 '소안 요코초' 를 선택하였습니다. 


점심 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더니 평일인데도 빈 자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저희 일행 말고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있었고 일본인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저희 일행들은 모두 추천 메뉴인 온천 손두부를 주문하고 술 안주로 고로케를 주문하였는데 특히 고로케가 아주 고소하고 맛이 좋았습니다. 따끈한 국물과 담백한 맛이 어울어진 손두부는 아주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온천 여행을 위한 추천 메뉴였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아울러 가격도 딱 좋았습니다. 1인분에 850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격 대비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였습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일본 소주를 한 잔씩 나눠 먹었습니다. 일본 식당에서는 소주를 시키면 따뜻한(혹은 차가운) 물을 같이주더군요. 25도인 소주에 물을 섞어 마실 수 있었습니다. 소주에 따뜻한 물을 섞어 먹어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따뜻한 물과 소주가 예상 밖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점심이 아니었다면, 우레시노 온천에서 하루 밤을 자고 올 수 있었다면 좀 더 맛있는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본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우레시노 온천을 다시 가게 될 가능성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레시노 온천을 가실 분들은 가급적 1박 2일로 계획을 세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넓은 창문으로 바다를 보며 즐기는 카멜리아호 뷔페


마지막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맛집(?)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카멜리아호에서 먹었던 점심 뷔페였습니다. 1인당 1000엔이라는 가격과 배에서 파는 음식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잠깐 망설였습니다. 


일행 중 2/3는 선실에서 컵라면과 주먹밥 등으로 점심을 떼웠고, 4명이서 뷔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별 기대없이 점심을 먹으러 갔었는데 밥과 10여 가지 요리들이 모두 먹을 만 했습니다. 


도시락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주먹밥이나 볶음면 보다는 카멜리아호 식당 밥이 훨씬 좋았습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바다를 보면서 먹는 점심 식사도 아주 호사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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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空空(공공) 2016.02.02 10:2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일본에선 양을 적게 줘서 돌아서면 배가 고팠던 기억이 납니다 ㅋ

    • 이윤기 2016.02.03 08:39 신고 address edit & del

      젊었을 때는 저도 양이 적다 싶었는데...나이가 드니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우레시노 온천 다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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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 후쿠오카로  자전거 여행을 갔습니다만 날씨가 너무 추워 계획 하였던 일정을 취소하고 온천을 하러 갔습니다. 후쿠오카 시내와 근처 바닷길을 달리는 라이딩 일정을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온천 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벳부, 유후인 등의 유명 온천을 다녀 오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12명이 단체로 움직이려다 보니 평일인데도 차표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터미널에 나가서 유후인 가는 차표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오전 차표가 모두 예매되어 우레시노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처음 가보는 장소이기도 하였고, 일본 3대 온천으로 손 꼽히는 장소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렀기 때문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차 출발 시간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근처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아침 산책을 하였습니다. 문을 열지 않은 애플샵과 신사 한 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떼우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텐진역 3층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우레시노행 시외버스는 공항을 거쳐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한국에서 가져간 드라마(응답하라 1988) 마지막 2회분을 보느라 차창 밖 풍경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였네요. 우레시노 온천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멀었습니다. 



텐진역에서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알고 갔는데, 막상 우레시노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2시간 가까이 지났더군요. 터미널에 있는 여행안내소에는 한글로 된 온천 소개 책자와 맛집 추천 팜플렛들이 있었습니다. 


우레시노의 첫 인상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일본의 3대 온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크고 복잡한 관광지를 연상하였습니다만, 전혀 반대의 느낌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운 평일이기는 하였지만 관광객은 물론이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우레시노는 30여개의 온천이 있는 작은 온천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온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걸어서 30분이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시내에 모여 있었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가게들도 한 십년 쯤 늦은 시간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재활용가게로 보이는 유행이 지난 물건들이 쇼윈도우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유후인이나 벳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온천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고른 온천은 와라쿠엔 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조건 중에서 '노천 온천'이 있어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른 장소입니다. 점심 먹는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이 '시이바산소' 온천을 소개해 주었습니다만, 걸어 가기엔 멀고 택시를 타고 가기엔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모아 마을에 있는 온천을 선택하였습니다. 


고급 온천...와라쿠엔...온천욕은 고작 30분


온천 여관 안내 팜플렛을 보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당일 입욕이 불가능한 곳도 많았습니다. 결국 예약 없이 당일 입욕이 가능한 곳 중에서 노천 온천과 사우나가 있는 곳을 고르다보니 '와라쿠엔'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온천에는 일본인 여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와라쿠엔을 찾는 일본인 여행객들은 저희처럼 잠깐 목욕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숙박을 하는 여행객들 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분들은 숙박을 하는 손님들을 훨씬 더 깍듯이 맞이 하더군요. 



저희 일행은 모두 12명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온천을 하러 들어가면서 2시간 후에 호텔 로비에서 그 보다 늦으면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각각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남자들은 모두 1시간을 넘기지 못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가장 늦게까지 있었던 2~3명도 1시간을 채우지 못하였고, 급한 사람들은 30분 만에 온천을 마치고 나가버리더군요. 입욕료가 1인당 1천엔이 넘으니 본전 생각이 날 만도 한데 정말 빨리 온천을 마치고 나가더니 할 일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습니다.  


와라쿠엔 같은 가격이 비싼 민간 온천 대신에 1인당 400엔이면 들어갈 수 있는 마을 공동온천 '시볼트 노유' 같은 곳을 그냥 지나친 것이 안타깝더군요. 저를 포함하여 목욕 시간이 짧은 남자들은 400엑 하는 '시볼트 노유' 정도가 딱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볼트 노유는 마을 공동 온천이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17세기에 하스노이케번이 운영하는 목욕탕으로 시작되었고, 다이쇼 시대(1924년)에는 독일인에 의해 '후루유 온천'으로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시설이 낡아 2005년에 해체하여 2010년에 다이쇼시대의 모습 그대로 재건축 하였다고 합니다. 혹시 다시 우레시노에 간다면, '시볼트 노유' 정도가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남자들 중에는 제가 가장 늦게 나온 축에 속하였는데, 먼저 나온 남자 동료들은 마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결국은 무료 족탕을 하는 곳에 모였습니다. 비싼 온천에 들어가서 30분만에 나온 남자들이 할 일이 없으니 옹기종기 무료 족탕에 모여 앉아 온천 물에 발을 담그고 '수다'를 떨게 된 것입니다.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족탕은 따뜻한 온천물이 나오는 족탕과 증기로 발을 따뜻하게 하는 족탕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온천수가 나오는 족탕은 생각만큼 물이 따뜻하지 않아서 오랫 동안 앉아 있어도 이마에 좀 처럼 땀이 베이지는 않았습니다. 


무료 족탕에서 시간 떼우는 남자들


하지만 나무로 상자를 만들어서 무릎까지 상자 속에 넣고 있으면 따뜻한 수증기로 족탕을 하는 시설이 있었는데, 인공으로 물을 가열하여 수증기를 보내는 기계 시설이 되어 있어 온도가 높았습니다.  처음엔 일본 아줌마들이 앉아서 수다 떠는 모습을 지켜만 보다가 막상 한 명이 발을 넣어보더니 "아주 따뜻하고 좋다"고 하자 너도 나도 자리를 채워 않아 채험해 보았답니다. 


추운 날씨 탓일 수도 있겠지만 온천수 족탕 보다 증기 족탕이 더 따뜻하고 만족 스러웠습니다. 아래 사진으로 보는 것 처럼 6 ~7명 정도가 동시에 증기 족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2~3명이 앉아 있을 때가지는 온도가 낮아지지 않았지만 빈 자리 없이 꽉 채워 않으니 금새 온도가 낮아지더군요.  




일찍 온천에서 나온 남자들 10명은 마을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 모두 무료 족탕에 모였습니다. 족탕에 둘어 앉아 수다를 떨면서 여러 사람이 비싼 온천에서 서둘러 나온 것을 후회하면 2시간을 꽉 채우고 나오는 여자 동료들을 기다렸습니다. 


역시 목욕은 여자들이 체질 이더군요. 비싼 입욕료를 감안하면 여성들은 '와라쿠엔' 남성들은 대중목욕탕 '시볼트 노유'로 가야 되겠더군요. 


동북아시아에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한파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이 꽁꽁 얼어 붙었더군요. 대만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 간 것도 아닌데, 수 십명이 한파로 목숨을 잃었고, 일본도 수십년 만의 한파라고 하더군요. 결국 자전거 여행을 왔다가 온천을 가게 된 것은 추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취소하고 온천 여행을 다녀온 것에 일행 모두가 만족해하였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사가현까지 다녀오느라 왕복 3시간 30여 분을 차에서 보내야 했던 것은 아쉬웠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고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이고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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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空空(공공) 2016.02.01 11: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전 일본 온천을 한번도 못 가 봤네요 ㅎ
    날씨땜에 자전거 여행은 못하셨지만 즐거운 온천욕이 되셨군요^^

    • 이윤기 2016.02.03 08:39 신고 address edit & del

      다음엔 온천 여행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본 온천도 참 좋더라구요.

후쿠오카에서 자전거 타고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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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짧은 일정으로 후쿠오카를 다녀왔습니다. 모두 12명의 친구들과 한중일 청소년 자전거 평화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 차 후쿠오카에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수 십년 만의 한파와 비가 내리는 굿은 날씨 때문에 계획했던 자전거 투어를 모두 진행하지는 못하였습니다만, 여행 첫 날은 약 60km 정도를 자전거로 다녔습니다. 


스마트폰 GPS 데이타에는 하카타항에서 가이아 돔 마에 호텔까지 이동거리가 저장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하카타항에서 가이아 돔 마에 호텔까지 이동거리도 10km는 넘었을 것이기 때문에 60km 이상은 자전거를 탔을 것입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사전 준비를 많이 하였습니다만, 하카타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때는 약간 길을 헤맸습니다. 예상과 계획대로라면 30분이면 충분히 호텔까지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로는 1시간 이상 걸리더군요. 하카타항을 빠져 나올 때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크게 우회하였던 때문입니다. 


부산에서 밤에 출발하여 하카타항에 아침에 도착하는 배를 탔기 때문에 오전부터 자전거 라이딩을 여유있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였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첫째는 일본 입국 수속을 하는데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더 지체되었습니다. 큰 배를 타고 갔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승객들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고, 한 명 한 명 지문 저장과 사진 저장을 하는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습니다. 


아울러 하카타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때도 시간이 지체 되었고, 호텔에 짐을 맡기고 자전거 주행준비를 마치고 출발 할 때는 점심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습니다. 



후쿠오카 시내를 라이딩 할 때는 대부분 인도를 이용하였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주행 방향도 반대였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조심 자전거를 탔습니다. 겨울인데도 일본에는 생활자전거를 타고 보도로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도 주행은 여러가지로 불편하였습니다. 첫째는 노면이 고르지 못하여 마치 비포장길을 달리는 것처럼 자전거가 덜컹 거렸고, 미니벨로를 가져갔던 저는 자전거가 받는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흡수해야 하였습니다. 둘째는 보행자를 피해다니는 어려움 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잔뜩 웅크리고  자전거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각자 제 갈 길만 가고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를 피해다니는 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낯선 도시에서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면서부터 차도로 내려가서 도로 가장자리로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랬더니 한결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는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도로 가장자리를 달리는 자전거를 위협하거나 경음기를 울리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후쿠오카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안 단 한 번도 운전자가 자전거를 위협하거나 길을 재촉하면서 "빵빵"하고 경음기를 울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자전거가 도로 가장자리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자동차가 속도를 늦추고 기다려주더군요. 



확실히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보행자 우선, 자전거 우선이라는 교통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자전거에 대해서만 관대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 끼리도 경음기로 경적을 울리면서 서로 차선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답니다. 


일본의 도로에도 자동차가 많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확실히 더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겠더군요. 우리나라처럼 무늬만 자전거 도로인 엉터리 자전거 도로를 만들지 않아도 자동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서로 잘 섞여 다니고 있었습니다. 




목적지까지 꼭 갔다와야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유로운 주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하카타 만을 따라서 바다길로 이동하여 다리로 연결된 섬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달릴 예정이었습니다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더군다나 기온까지 많이 떨어지는 바람에 중간에 숙소로 되돌아 왔습니다. 


GPS 주행기록이 다른 것은 숙소로 돌아올 때 선두와 후미가 헤어져서 도착시간이 상당히 많이 달랐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추운 날씨와 굿은 날씨 때문에 중간중간 자전거를 세워놓고 구경을 하거나 어디를 둘러볼 수 없었던 것과 대부분 구간이 시해 주행이라 확실히 즐거움이 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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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空空(공공) 2016.01.29 10:1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확실히 일본은 공중 도덕만큼은 잘 지키는것 같습니다

  2. 참교육 2016.02.01 04:5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놀랍습니다. 이제 Y일 많이 맡게 되면 자전거 투어 원하는대로 못해 어쩌지요?...ㅎ

    • 이윤기 2016.02.01 08:4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안 그래도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책임을 맡으려니 여러가지로 걱정이 많습니다.

카멜리아 타고 자전거로 일본 다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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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부산에서 카멜리아호를 타고 일본 후쿠오카에 다녀왔습니다. 한중일 청소년 자전거 평화 순례를 준비하는 사전 답사 모임으로 후쿠오카에서 2박 3일을 지내고 돌아왔습니다. 


후쿠오카로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는 방법도 있고, 쾌속선을 타는 방법도 있는데, 이번에는 일행들 모두 자전거를 가져 가느라 대형 여객선인 카멜리아호를 타고 갔습니다.


작년 여름 광복 70주년 기념 청소년 백두산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오면서 인천에서 배를 타고 단동을 거쳐서 백두산을 다녀올 때 탔던 여객선과는 여러가지로 많이 달랐습니다. 



한-중을 오가는 배는 낡고 지저분하였는데, 한-일간을 오가는 중국을 오가는 배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쾌적하였습니다. 


중국을 오가는 배의 다인실은 30명씩 들어가는 큰 방에다 개인 공간을 구별하는 표시가 하나도 없었는데, 일본을 오가는 배의 다인실은 12~13인이 들어가는 작은 방이었고, 개인 공간을 구분하는 짐칸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다인실의 침구상태도 중국을 오가는 배에 비하여 훨씬 깨끗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목욕탕 시설이었습니다. 중국을 갈 때 탔던 배에도 샤워 시설이 있었지만 워낙 내부가 지저분하여 샤워장 입구에서 되돌아 나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으로 가는 카멜리아호의 목욕탕은 선상 온천을 연상케 하는 멋진 시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큰 유리창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욕탕에 몸을 담글 수 있으니 멋지지 않습니까?



더 럭셔리 한 호화 여객선도 수두룩 하겠지만, 중국을 다니는 여객선에 비교하면 후쿠오카를 다니는 카멜리아호는 쾌적한 조건을 갖춘 배였습니다. 


자전거를 배에 싣는 절차도 간단하였습니다. 중국을 갈 때는 짐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직접 끌고 좁은 통로와 계단을 지나서 배에 탑승해야 했는데, 카멜리아호는 자전거는 화물로 따로 탁송하고 짐만 들고 배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중국가는 배에 자전거를 싣고 갈 때는 선실 주변 로비의 빈공간에 그냥 자전거를 싣고 갔지만, 카멜리아호는 화물칸에 자전거를 적재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건 중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자전거 화물 탁송료를 똑같이 부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배에서 먹는 밥도 중국을 가는 여객선 보다 일본을 가는 여객선이 훨씬 훌륭하더군요. 아무래도 밥값은 중국을 가는 여객선이 좀 더 저렴했던 것 같은데, 1인당 1000엔인 카멜리아호의 뷔페식 점심 식사는 아주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갈 때는 도시락을 주문해서 다인실 선실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만,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올 때는 미처 도시락 준비를 못하여 카멜리아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은 사람들 모두 만족해하는 아주 괜찮은 식사였습니다. 


특히 자판기나 매점에서 판매하는 주먹밥이나 면 종류와 비교하면 가격대비 만족도는 카멜리아호의 뷔페식 점심 식사가 훨씬 나은 편이었습니다. 카멜리아호를 타고 여행하는 분들에게 도시락 대신 선내 식당 이용을 추천해드립니다. 



카멜리아호를 타고 후쿠오카를 다녀오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일본측 입국 수속이었습니다. 이번 여객선에 대한 평가와는 전혀 다른 것인데, 부산에서의 입국, 출국 수속에 비하여 후쿠오카 입국 수속이 너무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후쿠오카 입국 심사를 하는데 1시간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입국할 때마다 다시 지문 입력과 얼굴사진을 찍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더군요. 과거 일본 방문 때 지문을 입력했던 사람은 절차를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아무튼 지문입력과 얼굴사진 촬영은 멀쩡한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였습니다. 한국에 들어올 때 일본 사람들은 쉽게 쉽게 금방금방 입국 수속을 마치는 것과 확연히 비교가 되더군요. 


또 일본측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창구를 많이 열지 않아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해 오랫 동안 줄을 서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짜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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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니킴 2018.06.29 11:22 address edit & del reply

    단동훼리는 중국가는 배중에 제일 낡았고, 시설이 안좋습니다. 청도나, 위해, 천진, 연태가는 배는 크고 내부시설 깨끗합니다 ~.~

체인점 같지 않은 가고시마 소바 후키아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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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 - 가고시마 여행 ⑭ 가고시마 소바집 '후키아게앙'(吹上庵)  지난 봄에 다녀 온 야쿠시마 여행기를 7월 초에 써 놓고 깜박 잊고  '발행'을 하지 않아 4개월이나 지났네요. 뒤늦게 찾아 발행합니다. 


야쿠시마를 떠나 가고시마에서 1박 2일 동안 머무르면서 모두 네 번의 식사를 하였습니다만 호텔식과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들렀던 식당을 빼고나면 기억에 뚜렷이 남는 것은 두 번입니다. 야쿠시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와 가고시마에서 먹었던 점심과 그날 저녁 식사입니다. 


점심을 먹은 곳은 소바를 파는 식당 '후키아게앙' 입니다. 이곳은 길 건너편 사무라이 마을 근처에 있는 곳입니다. 혹시 가고시마에 가셨다가 다른 곳에 있는 '후키아게앙'이라는 식당에 갔었다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키아게앙'은 굉장히 고풍스러운 건물의 전통있는 식당처럼 보입니다만, 사실은 프렌차이즈 식당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가고시마의 다른 곳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식당이 있다고 하더군요. 일단 건물만 보면 굉장히 전통있는 식당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옥을 고쳐서 만든 한정식집 같은 분위기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지요. 식당 입구에 서면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라이 마을에서 봤던 집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 



크고 넓은 가게와 고풍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오래되고 전통있는 식당으로 보입니다. 아마 저희 일핻들도 대부분 그렇게 알고 식사를 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가이드 정선생님께 확인했더니 "보기에는 소박하고 오래된 소바집 같지만, 사실은 가고시마현 안에서는 상당한 점포를 가진 프렌차이즈"라고 하더군요. 


사진으로 봐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흔히 경험하던 프렌차이즈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음식 맛이 좋았습니다. 많은 인원이 들이닥쳤는데도 "메뉴를 통일하라"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소바를  먹어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소바만 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눈치가 빠르거나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았다면 '프렌차이즈'라는 것을 눈치 챘을 수도 있는데, 지역 특산물까지 판매하는 전통있는 식당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그리고 식사를 하고 나서 특산물 판매 코너를 살펴보는 손님들이 많이 있었고 사 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식당 건물은 고풍스러웠지만 내부는 현대식 시설을 깔끔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2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단체석을 차지하였습니다.


실내 장식도 굉장히 고풍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실제 사람이 살았던 전통 가옥이 아니라는 것은 한 눈에 드러났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그림과 장식품들이 오래 된 식당 같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희 일행이 앉았던 단체석 자리에는 식당 내부를 정자처럼 만들어 지붕쪽에 문살 같은 것을 얹어 놓았더군요. 


그리고 그 문살에서부터 커다란 쇠줄과 고리를 메달아 커다란 무쇠 주전자를 달아놓았더군요. 실제로 그 주전자를 이용해서 요리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내 장식과 분위기는 고풍스러웠습니다. 마침 뙤약볕이 막 내리쬐는 시간이어서 실내로 들어서기만해도 서늘하고 시원한 느낌이 나서 상쾌해지더군요. 




일하시는 분들이 저희를 안내한 자리는 다리를 내리고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단체석 이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가게 안에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가족들끼리 식사하는 손님들이 많았으며 빈 자리가 별로 없더군요. 메뉴판에 종류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 생기더군요. 


가이드 정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만, 대부분 사람들은 소바와 우동이 반반씩 있는 메뉴를 주문하였습니다. 두 사람에 한 접시씩 튀김도 시키고 어묵 같은 것도 주문하였습니다. 튀김은 특별히 맛있다고 하기 어려웠지만 어묵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느끼한 기름기가 덜하고 많이 괜찮았습니다. 


우동은 면발이 유난히 쫄깃쫄깃하였는데 소바는 생각보다 툭툭 끊어지고 좀 밍밍한 맛이었습니다. 소바가 맛이 별로라고 했더니 어떤 분이 '메밀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우리가 흔히 먹는 다소 쫄깃한 식감이 있는 메밀은 다른 종류의 전분이 들어갔기 대문이라고 하더군요. 메밀 성분이 많이 들어갈수록 쫄깃한 식감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위에 사진으로 보시는 우동과 소바가 저희 일행 대부분이 주문했던 메뉴이구요. 아래 쪽 사진에서 보시는 그릇이 많고 다양한 종류의 메밀 국수가 조금씩 담겨 있는 것이 8첩 메국국수입니다. 8개의 메밀국수 그릇이 높다랗게 쌓여서 나오는데, 그릇마다 함께 나오는 고명의 종류가 다 달랐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메밀 국수를 맛볼 수 있다는 것과 여러 종류의 고명이 담긴 화려한 비주얼이 분위기를 압도하더군요. 양이 좀 많은 분들이 시키면 딱 괜찮겠다 싶은 메뉴더군요. 아무튼 이곳은 프렌차이즈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프렌차이즈라는 것을 눈치 채기 어려운 사미센 소리가 들리는 듯한 고풍스런 분위기가 만점인 곳이었습니다. 



여행사에서 준비해 준 저녁 식사 장소도 프렌차이즈 식당이었습니다. 태국식 샤브샤브 MK 수끼라는 곳이었는데, 일본보다는 태국과 동남아에 많이 있는 식당이라고 하더군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만두, 어묵, 야채  등을 끓는 육수에 익혀 먹는 샤브샤브 요리점이었습니다. 아이패드로 주문을 넣으면 접시마다 조금씩 재료들이 담겨 나오더군요. 


주문하는 재미가 있었고 조금씩 먹어보고 입에 맛는 재료들을 추가로 더 주문해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음료와 아이스크림 등을 제외하고는 무한 리핑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행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는 식당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 역시 프렌차이즈 식당이었지만, 일행 중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샤브샤브 식당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고, 우동도 끊여 먹고 죽도 끊여서 먹고나니 절로 과식하게 되더군요. 아마 이날 저녁 가고시마 역전 포장마차에서 안주에 손길이 가지 않은 것도 MK수끼에서 과식을 한 탓인지도 모릅니다. 


야쿠시마 2박 3일, 가고시마 1박 2일 모두 합쳐 3박 4일을 알차게 가득채워서 여행하고 온 것 같습니다. 일부러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들과 신기한 음식,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고 온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야쿠시마 - 가고시마 여행기는 오늘로 마치겠습니다. 야쿠시마는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장소입니다. 젊은 분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 나이든 분들에게는 조용한 휴식 장소로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관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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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空空(공공) 2015.11.19 09:2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다양한 메밀국수를 맛 볼수가 잇어 좋아 보입니다^^

    • 이윤기 2015.11.23 10:02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그런데 다시 갈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ㅎㅎ

일본 천황은 '항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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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해 백두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읽은 책입니다. 모두 세 권으로 된 이 책을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가기 전에 절반쯤 읽고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다녀온 후에 나머지 절반을 읽었습니다. 이런 저런 복잡하고 바쁜 일들이 많아 책읽기를 미루다가 어제 밤에 책읽기를 마쳤습니다. 


오래 전부터 집에 있었던 책인데 이번에 뒤늦게 아주 즐겁고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읽고 재미있다고 추천한 책이지만, 소설 읽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이번 광복 70주년 기념 청소년 백두산 자전거 순례를 다녀오면서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조정래 선생이 쓴 <정글만리>인데요. 어제 밤 3권을 읽다가 정신이 확 깨는 정말 놀라운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 내용 중에 중국 베이징 대학 사학과 학생들과 난징 대학 사학과 학생들이 '난징다투사' 현장을 탐방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일본 천황은 '항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세미나에서 한국인 유학생 송재형이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발표한 항복문을 인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글만리>에서 이 대목을 읽기 전까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일본 항복 선언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했으니 아무 조건없이 그냥 항복 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원자폭탄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폭격하자, 핵무기의 위력에 놀라 '조건 없이 항복'한 것으로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글만리>에 나오는 일본 천황의 항복문을 읽어보니 이건 암만 봐도 항복선언이 아니더군요. 이 항복 선언문을 읽은 보지 않은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전문을 옮겨 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선언문>


오늘날 세계의 대세와 우리 제국이 처한 조건을 깊이 숙고한 결과 짐은 비상수단에 의지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노라. 

짐은 우리 정부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우리 백성의 안전과 안녕뿐만 아니라 만국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황실 대대로 내려오는 엄숙한 의무인바 짐은 그 의무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노라. 


실로 짐은 일본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진심 어린 바람에서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뿐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근 4년을 끌어왔다. 그동안 짐의 육군과 해군은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국가의 종복은 근면을 아끼지 않았으며, 짐의 1억 백성도 섬김에 소홀함이 없었다. 다들 최선을 다해왔으나 세계의 대세 또한 일본의 이익과 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더욱이 적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폭탄을 새로이 사용해 무고한 생명을 무시로 빼앗기 시작했으니 그 피해가 실로 어디까지 갈지 헤아릴 수 없구나.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일본 한 나라의 파괴와 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 전체의 절멸로 이어질 것이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짐의 1억 백성을 구할 것이며, 또 무슨 낯으로 황실 조상님들의 신위를 뵈옵겠는가? 이것이 짐이 정부에 열강의 공동선언 조항에 응하라고 지시한 연유다. 


짐은 제국과 합심하여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힘써온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심심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에서 다쳤다거나 제 본분을 다하다 죽은 장교와 사병 뿐만 아니라 그 유족을 생각하면 짐의 가슴은 밤이나 낮이나 고통을 가눌 길이 없다.

짐이 가장 염려하는 바는 부상자와 전쟁 피해자, 집과 호구지책을 잃은 사람들의 후생복지다. 금후 제죽에 닥칠 고난과 시련은 분명히 녹록지 않을 것이다. 


짐은 그대들, 짐의 백성들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의 지시를 바다들여 어차피 불가피하다면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라 해도 인고하고 또 인고해 만세에 태평성대를 위해 길을 닦기로 다짐하였노라. 지금까지도 제국의 근간을 유지해 온 바 그대들의 한결같은 충정을 믿기에 짐은 항시 그대들과 함께 있다.


행여 감정이 격발해 공연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형제끼리 의견이 달라 갑록을박하며 소요를 조성해 정도에서 벗어나 헤매다 끝내 세계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각자 책임이 막중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명심하고 신령스러운 땅의 불멸을 항시 믿으며 세세손손 한 가족으로 지내라. 장래를 건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 정직하고 고결한 품성을 도야하며 굳은 의지로 밀고 나가 제국의 영광을 드높이고 진보하는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지어다.


소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우리들이 흔히 <항복선언문>이라고 알고 있는 이 연설에는 '항복'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뜻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정부에 통고하라고 지시 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항복선언이 아니라...종전 선언이었다


전쟁 책임자인 일본 천황은 '항복'을 한 일이 없고, "세계의 대세와 우리(일본)제국이 처한 조건을 깊이 숙고한 결과 짐은 비상수단에 의지해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 영국, 중국, 소련에 "공동선언 조항을 수락"하는 "비상수단"을 강구하였을 뿐 "항복"을 선언한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과 우익들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어디서 출발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천황의 연설문(황복문이라 볼 수없는) 읽어보면, 미국과 영국을 뺀 나라들과는 전쟁을 일으킨 일도 없고, 주권을 침해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나 난징대학살 같은 사건들을 대하는 일본 정치권의 망언이 바로 일본 천황의 8.15일 연설문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바로잡히기 어려운 까닭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을 기해 일본이 전쟁 중단을 선언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은 누구에게도 '항복'한 일이 없으며,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하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을 기해 미국, 영국과의 전쟁을 중단한 까닭 역시, '자국 백성들의 안위를 걱정한 조치이고,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힘을 기르기 위한 후퇴였을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공식 문서인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연설문에 그렇게 씌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연설문을 읽어보면 결코 '항복선언문'이 아니라 '종전선언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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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에스메시 2015.09.05 19:5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지구상에서 가장 독종!일본종자
    악랄하고 교활한 왜놈들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자취를 돌아보는 가고시마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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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 - 가고시마 여행 ⑬ 가고시마 여명관, 센강엔, 슈세이칸


야쿠시마에서 보낸 2박 3일 그리고 가고시마에서 보낸 1박 2일 여정의 마지막 방문지는 '여명관'과 '센강엔' '슈세이칸'입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가고시마 여명관과  센강엔 슈세인칸을 둘러보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4시간여 차로 후쿠오카 공항으로 이동하여 오후 늦게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넷째 날 오전 9시쯤 여유있게 호텔을 출발하여 가고시마 시립박물관 '여명관'을 먼저 방문하였습니다. 오전에 센강엔과 슈세이칸만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여유가 좀 있다 싶어서 계획에 없던 일정을 추가하였던 것이지요. 가고시마 역사 자료관 '레이메이칸(여명관)'은 메이지 유신 100년이 되는 1968을 기념하여 1983년에 개관한 종합 박물관입니다. 


가고시마의 역사, 민속, 미술, 공예를 소개하는 현재의 상설전시는 1996년에 전면적으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명관 부지는 에도시대의 츠루마루죠(성터)이며 지금도 수도, 돌담, 돌다리 등 유서 깊은 유물들이 남아 있고 마당에는 활화산이 뿜어내는 화산재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여명관'은 여느 지역 박물관처럼 민속자료들도 전시되어 있지만 여명관이란 그 이름대로 가고시마를 중심으로 시작된 메이지 유신에 관한 역사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본 근대화의 여명이 시작된 곳이 가고시마라는 뜻을 담았다고 하더군요. 


여명관에는 원시시대와 고대의 가고시마, 중세의 가고시마, 근세의 가고시마와 근대, 현대의 가고시마 모습을 자료와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전시는 막부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로 넘어오는 메이지 유신과 관련된 근대 역사와 자료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자랑스런 근대화 ...가고시마 역사자료관 여명관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등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던 인물들과 일본 근대화에 앞장섰던 가고시마 출신 인물들 그리고 근대화의 여명이 시작될 당시 가고시마의 모습 등도 전시되어 있더군요. 전시관을 둘러 보면서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근대화 과정을 아주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화와 식민지 침탈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고, 근대 문물이 도입되는 과정도 주체적이지 못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에 일어난 일들 중에 자랑 하거나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들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경험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네요. 


약 1시간 정도 여명관을 둘러보고 차를 타고 센강엔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센강엔은 가마쿠라시대부터 메이지 시대 초까지 약 700여 년간 남큐슈 지역을 통치해 온 사쯔마 번의 시마즈 가문 별장입니다. 이 별장은 사쿠라지마와 가고시마만을 중심으로 웅대한 이 정원은 임진왜란 60여년 후인 1658년에 시마즈가문의 19대 당주이자 2대 가고시마 번주였던 시마즈 미츠히사가 건립하였습니다. 


센강엔 내부에는 기암 <센진간>과 류큐 왕국에서 헌상한 누각 <보가쿠로> 등 류큐와 중국 등과의 교류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바다 건너 외국가 교류한 해양국가로서 사츠마번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센강엔 입구를 향해 걸어가면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건물은 쓰루가네 신사입니다. 이곳은 시마즈 가문의 역대 당주와 가족을 모시는 신사입니다. 16대 당주인 요시히사의 딸, 가메주(지메사아) 공주가 모셔져 있는 곳이라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가메주 공주는 아름다운 미모에 마음까지 상냥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어 가메주 공주처럼 몸과 마음이 예쁘지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이 신사를 참배하면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에는 온갖 신사가 다 있다더니 센강엔에는 고양이 신사도 있었습니다.  이 고양이 신사는 임진왜란 시에 고양이 눈을 시계 대신 사용한 것에서 유래하여 시간의 신으로 고양이를 모시는 흔치 않은 신사라고 합니다. 앞서 '심수관요' 편에서 소개하였듯이 이곳 사쯔마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공을 납치해와 사쯔마 도자기를 번성시킨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시마즈 가문의 별장이자 가고시마 외교의 상징적 공간 센강엔


센강엔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바로 거대한 대포입니다. 철제 150파운드포는 가고시마 연안에 배치되어 있던 최대 크기의 요새포를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당시 약 68kg의 철제 포탄을 3km 이상 날려보내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제철 기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포인데, 바로 옆에는 용광로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용광로 유적과 철제 150파운드포를 지나서 센강엔 정문을 향하여 5분 정도 걸어가면 주석문, 저택, 보가쿠로 등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흰색 주석을 사용한 중문은 19세기 말까지 정문으로 사용되던 문입니다. 지붕이 주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힌 주석 지붕과 주홍색문이 대비되는 아름다운 문인데, 일본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 주홍색문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주석문을 지나면 저택이 나타나는데, 시마즈 가문의 당주들이 사용했던 저택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류큐왕국에서 선물로 받은 보가쿠로는 17세기 초기에 류큐(지금의 오키나와) 왕이 상납한 정자입니다. 마루에 깔린 '센'이라고 불리는 기와는 중국 진나라 시대의 아방궁의 것을 묘사하였다고 전해지면 내부에 걸렸던 편액은 왕희지의 글을 모방한 것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습니다. 




보가쿠로를 지나면 지나면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교쿠스이 정원이 나타납니다. 교쿠스이 정원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시를 짓고 즐기는 <교쿠스이 연회>가 열리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상류에서부터 흐르는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완성해야만 하는 것이 교코스이 연회랍니다. 센강엔의 교쿠스이 정원은 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이본에 있는 교쿠스이 정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합니다. 


한편 저택 뒤편의 바위에는 '센진간'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가장 큰 바위'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814년에 3900명 이상의 사람들이 3개월에 걸쳐서 새긴 것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센강엔은 이 지역이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 하였던 곳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센강엔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계곡을 따라서 연못과 화단을 조화롭게 배치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명한 NHK 대하사극 <아츠히메>의 촬영 장소였다는 소개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사무라이의 딸로 태어나 번주의 양녀가 되고 마침내 쇼군의 아내가 되는 줄거리의 드라마 <아츠히메>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었다고 하더군요. 



일본 그리고 가고시마 근대화의 자랑 '슈세이칸'


센강엔 건너 편에는 쇼코 슈세이칸이 있습니다. 슈세이칸은 에도 막부 말기에 이 지역에 만들어진 동양 최대의 근대 공장지역 입니다. 영주였던 '나리아키라'가 주도 하였는데, 부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기치를 들고 산업화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제철, 대포, 조선, 방적, 유리, 도자기 등을 근대적 방식으로 제조하였으며, 사진, 전신, 가스 등의 실험과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장소입니다. 


일본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라도 빨리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려면 서구의 근대산업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지요. 이곳 슈세이칸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방적공장인 <가고시마 방적소>가 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가고시마의 슈세이칸을 중심으로 번창하였던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사이고 다카모리, 오오쿠보 도시미치 같은 인물들이 탄생하였다고 평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고시마 사람들은 이 지역이 일본 근대화의 기수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더군요. 



슈세이칸을 둘러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나라, 우리 지역의 경우 이런 근대 산업 유산을 낡고 오래되어 없애야 하는 폐기물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도시를 개발하면서 근대 문화유산이나 산업유산을 보존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도시만 하더라도 슈세이칸과 같은 근대산업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 근대 산업 유산과 자원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목없는 정치, 경제 지도자들의 정책 우선 순위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부분 철거되고 있습니다. 


슈세이칸 같은 근대산업유산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고 우리들이 한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일본보다 더 괜찮은 나라를 한 번 만들 어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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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역전 포장마차 '야타이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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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마-가고시마 여행⑫ 역전 포장마차 '야타이무라'


야쿠시마 - 가고시마로 여행을 간다고 자랑을 했더니, 몇몇 지인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준 장소입니다.  가고시마에서 1박을 한다면 밤에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추천을 해주더군요. 일행이 여러 명이었지만 가고시마에서 밤 시간은 어려지 않게 '야타이무라'로 정해졌습니다. 


기후가 따뜻한 남쪽 해안 도시 가고시마는 풍부한 농수산물 덕분에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고시마 지역의 먹거리 문화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야타이무라'라고 하더군요. 야타이무라의 정식 명칭은가곳마 후루사토 야타이무라(鹿児島故郷屋台村)>입니다. 


가곳마는 가고시마의 사투리이며 후루사토는 고향을 뜻하고, 야타이(屋台)는 포장마차 혹은 노점을 뜻하고 야타(屋台)와 마을을 뜻하는 촌(村)의 합성어입니다. 야타이무라는 일정 구역을 지정하여 그 곳에 소규모 점포나 포장마차들을 모아놓은 장소를 뜻하니, 가곳마 후루사토 야타이무라(鹿児島故郷屋台村)는‘가고시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포장마차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고시마의 '야타이무라'는 2012년 해 4월 26일에 새롭게 오픈한 새로운 관광 명소라고 합니다. 각자 독특한 특징을 가진 25채의 소규모 점포 (야타이)와 소주 전문점이 위치한 이 곳에서는 신선한 제철 생선은 물론이고 가고시마 명물, 구로부타 (흑돈)요리나 라멘 등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들을 안주삼아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와 맥주 등을 즐길 수 있더군요. 


야타이무라는 뚜렷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만든 공간이라고 하더군요. 가고시마의 음식과 소주를 널리 알리면서,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가고시마 중심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가고시마의 관문인 가고시마 역에 지역 명소를 마련하고 젊은 기업가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으며  가고시마구르메(グルメ) NPO법인이 운영주체라고 하였습니다. 


이 법인에서 언론 홍보, 홈페이지 관리, 이벤트 기획, 입주자 모집, 세입자 회의 주관, 방범 소방 보건 위행 관리, 공용 화장실 관리, 가고시마 관광협회와 JR 규슈 등과 연계하여 재료와 음료 구입에 관여하는 등 운영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고시마 당국과 NPO범인이 안정된 운영을 위해 여러가지 지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이 유명해진 탓이기도 하겠지만 야타이무라는 운영자를 주기적으로 공개 모집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2012년에 입점한 주점의 3년 계약이 끝났고, 저희 일행이 방문하였던 지난 5월에는 2015년 4월부터는 새로 시작된 2기 야타이무라 포장마차였던 것입니다. 마침 새 단장이 끝난 직후에 이곳을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막상 '가고시마 야타이무라'에 가면 선입견이 깨집니다. 가고시마 포장마차 야타이무라는 우리나라처럼 리어카로 만들어진 이동식이 아니라 구멍가게 같은 소규모 점포를 모아놓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던 포장마차가 아닌 것이지요.  


가고시마 역 앞 큰 길가에 있지만 위치해 있지만 개발하기 애매한 공간을 활용한 선술집 동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산 오동동에 있는 일본식 선술집 '미나미' 보다 작은 술집 25개가 따닥따닥 붙어 있는 그런 곳입니다. (마산 분들은 아시겠죠?) 


저희 일행이 묵었던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에 가고시마 역이 있었는데, 가고시마 역 앞에 가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더군요. 일본어 문맹(?)인 저희 일행도 어렵지 않게 찾아갔으니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있겠더군요. 



저희 일행은 숫자가 많아 모두 같은 포장마차에 들어가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 하다더군요. 숙소를 출발 할 때는 모두가 함께 갔지만 야타이무라에 도착해서는 삼삼오오 흩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골목을 한 바퀴 둘러봐도 빈 자리가 없었고 빈 자리가 생기면 금새 손님이 채워지더군요. 


건물들이 마치 드라마 세트장이나 가건물 처럼 만들어져 있었고, 골목길이 좁아 더욱 왁자지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님들은 비좁은 가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테이블을 놓고 골목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안주를 만드는 공간도 매우 좁아 보였지만, 워낙 공간 활용을 잘 하는 일본인들이라 좁은 공간에도 있을 건 다있고 아주도 메뉴판에 있는 건 다 만들어내는 것 같더군요. 


얼른 보기에 굉장한 명소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도 빈 자리 하나 없이 손님으로 가득한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우리나라 포장마차촌과 비교해보면 일단 복잡하지만 깔끔하고 깨끗하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포장마차처럼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것이 아니라 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사용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설계하여 효율성 높였더군요. 




'가고시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표현에 맞게 여러가지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는데, 일본어를 모르는 저는 그런 느낌까지 알아챌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포장마차처럼 모두 비슷비슷한 가게인줄 알고 빈 자리가 있는 곳에 후배 둘과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간단한 안주와 맥주, 소주를 시켜서 가벼운 술자리를 마쳤습니다. 1시간쯤 지났을까요? 일행들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포장마차 촌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곳 포장마차는 인테리어가 비슷비슷하고 술은 가고시마 소주와 맥주를 주로 팔고 있었지만, 안주는 가게마다 다른 것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갔던 꼬지집이 안주가 가장 시시한 편이었습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가고시마뱀장어집, 가고시마흑돼지요리집, 가고시마 아마미 오시마의 향토요리 닭밥집, 오스미 가노야 식재료를 쓰는 주점, 흑돼지턱고기와 전갱이 고등어 요리를 내는 창작향토요리집, 온천수를 이용한 샤브샤브집, 차와 흑초로 키운 방어횟집 등" 다양한 안주를 팔고 있었더군요. 



일행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지 못했던 탓인지, 길게 앉아서 술을 마시지는 못하였습니다. '야타이무라' 오랫 동안 앉아서 길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의자나 탁자도 작고 좁았으며, 앞서 온 손님들도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자리를 비우더군요. 


2시간 가량 야타이무라에 있으면서 지켜보니 '자리 회전'이 굉장히 빠른 것이 특징이더군요. 오랜 시간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었지만, 대체로 짧은 시간에 가볍게 한 잔하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가끔 저희 일행들처럼 다른 가게로 2차륽 가는 분들도 있기는 하더군요.


일행 중 절반은 여행 마지막 날이라 삼삼오오 흩어져서 뒤풀이 시간을 갖게 된 것을 아쉬워 하더군요. 야타이무라에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못한 젊은 일행들은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숙소로 들어가 긴 밤을 지새우며 여행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屋台村写真3-500px.jpg

HP    http://www.kagoshima-gourmet.jp/

주소   가고시마시 주오초 6-4 (가고시마주오역 역전)

전화   +81- 99-255-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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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자전거 여행가를 만나 영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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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최광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최광철 선생님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있는 여행가입니다. 작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하여 독일, 프랑스를 거쳐 영국까지 유럽 3500km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세계 일주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그는 퇴직 공무원입니다. 원주시 부시장을 끝으로 평생 일하던 공직 생활을 마치고, 돈을 더 벌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세계 일주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 한국YMCA에서 자전거 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실무자들과 함께 원주에서 최광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 여행에 의미를 더 하고 싶다는 고민을 하던 중에 YMCA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특히 광복 70주년 이라는 의미를 담아 8월 2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동북아 4000km 자전거 여행은 '평화'를 주제로 하는 순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더군요. 




원주의 한 커피숍에서 어색한 만남을 시작하였습니다만, 자전거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새 마음을 열고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주로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하나는 작년에 다녀온 유럽 자전거 여행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8월에 출발하는 동북아 평화순례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동북아 평화순례는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시안에서 출발하여 단동까지 중국코스, 한반도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는 국내 코스, 그리고 히로시마에서 도쿄까지 가는 일본코스까지 대략 4000km의 대장정이었습니다. 다만 단동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가서 한반도 이북을 관통하여 남한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실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생각하는 대안 노선은 중국 시안에서 출발하여 단동까지, 단동에서 항공편으로 도쿄까지 이동한 후에 도쿄에서 자전거로 히로시마까지 순례를 한 후에 배로 국내(동해시)로 이동한 후에 임진각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그의 이번 종주는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는 순례 여행이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한국YMCA에서도 '수상한 부부'의 자전거 평화 순례 여행에 의미를 더 할 수 있도록 국내 일부 구간에서 YMCA 회원들돠 라이딩을 함께 하며 평화 순례를 응원하기로 약속 하였습니다. 





최광철 선생님은 순례 여행의 의미를 더 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통해 동북아 횡단 자전거 순례 여행을 함께 할 일본과 중국 부부를 모집하는 광고를 냈지만, 아직 참가자가 나서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여행 경비가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항공편을 제외하고 나면 큰 돈이 들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는 작년 유럽 여행에서 충분히 경험하였다고 하더군요. 유럽 자전거 여행을 해보니 교통비를 제외하고 나면 호텔에 숙박하지 않는 날은 하루 2~3만원이면 부부가 생활이 가능하였다고 하더군요.


이들 부부는 텐트와 코펠 등 간편한 캠핑장비를 자전거에 싣거나 매달고 유럽 여행을 하였다더군요. 각자 6개씩의 자전거 가방을 부착하고 석 달 넘는 기간 동안 대부분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자전거 코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와 밥을 해 먹었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들에 비하면 비용이 많이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1시간 30여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두 가지 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일본 - 한국 - 중국을 연결하는 동북아 청소년 자전거 평화 순례를 시작해 볼 수 있겠다 하는 것과 내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하여 중세의 길 로만틱 가도를 라이딩 한 후에 프랑크프루트 경유하여 귀국하는 2주 유럽 여행 코스입니다. 


당장 내년에 실행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꿈을 꾸기 시작하면 꿈은 이루어지기 마련이지요. 최광철 선생님과 헤어질 때 책 2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가 퇴임을 앞두고 출간한 회고록 <수상한 부시장>과 <수상한 여행>입니다. 유럽 자전거 여행기 <수상한 여행>을 재미나게 읽고 있으니 곧 서평으로 소개드리겠습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10년 만에 세계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최광철 선생님은 최직 6개월을 남겨두고 유럽행 비행기표를 먼저 예약해놓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다잡았다고 하더군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행은 특히 장거리 여행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안 되는 여러가지 이유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광철의 수상한 여행 : http://blog.naver.com/ckch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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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연하 커플...오백년 만에 만나 천년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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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노인' 조몬스기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 여행기④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야쿠시마의 원시림 속에는 '이름'을 가진 삼나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주었을 때 그 나무들은 '특별한' 나무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셀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자기만의 이름을 가진 나무는 흔치 않습니다. 삼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으로 부르는 이름은 원숭이, 사슴처럼 같은 종을 나타내는 이름이지 영이, 철수 같은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은 아니지요. 


물론 나를 포함한 예의없고 오만한 사람이라는 족속들은 나무의 풀과 이름을 모르면 그냥 '잡초'라고 퉁치기 일쑤입니다. 새로 만난 낯선 나무와 풀꽃의 이름을 알려고 애쓰는 대신에 그냥 뭉뚱그려 쉽게 '잡초'라고 칭해버리는 것이지요.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식물이나 사물이든 그 이름을 알고 나면 그 만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이 아닌데도 이름을 가진 경우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이른바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녀석들 뿐입니다. 고양이, 강아지를 비롯하여 원숭이나 쥐 심지어 뱀 같은 것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주인들이 모두 이름을 붙여주고는 하지요. 


아무튼 이름을 가진 나무는 흔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벼슬을 하사 받은 정이품송, 형태와 장소로 이름을 붙인 운문사 처진 소나무 같은 이름이 있고, 서울 서초구에 있는 천년향이란 향나무도 있으며, 경북 예천에 있는 황목근, 황만수처럼 이름 뿐만 아니라 호적에 이름을 올리고 재산을 소유한 나무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야쿠시마 곳곳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각각 제 이름을 얻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야쿠시마의 삼나무 중에서 수령 1000년 이상인 나무들만 '야쿠스기'라고 부릅니다. 


야쿠스기랜드에는 붓다스기, 후타고스키, 센넨스기 등 각각 제 이름을 가진 삼나무들이 있고, 조몬스기를 향해가는 숲에도 대왕삼나무, 부부삼나무, 삼대삼나무, 윌슨그루터기 등 각각 제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있습니다. 또 조몬스기를 만나고 하산 하는 길에 '시라타니운수계곡'에서도 이대삼나무, 구구리삼나무 등 이름을 가진 삼나무를 만났습니다. 



윌슨 그루터기


제 이름을 가진 대부분의 나무들은 나무가 생긴 모양이나 수령을 근거로 해서 이름을 붙였는데, 윌슨그루터기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윌슨그루터기라고 부르더군요. 야쿠시마의 원시 삼나무 숲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사람이 바로 윌슨 그루터기를 발견하였던, 미국의 식물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 박사라고 합니다. 


윌슨 그루터기는 약300년 전에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데, 1914년 윌슨 박사가 발견하여 야쿠시마에 자생하는 야쿠스기의 수령을 추정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윌슨 그루터기는 수령 3000년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벌목 이전에 높이 20미터 이상의 나무였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현재 그루터기의 둘레는 약 13미터나 되는데, 나무가 베어진 후에도 300여년이 넘도록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루터기 안쪽으로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고, 작은 신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윌슨그루터기는 바깥에서 보기에 둘레가 13미터나 되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루터기 안으로 들으서면 넓은 공간이 나타납니다. 


어른 20명은 둘러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이 있어서 지붕만 있다면 대피소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윌슨그루터기가 유명한 것은 3000년의 수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루터기 앉에서 하늘을 보면 하트모양으로 보인다는 것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윌슨그루터기에 도착하면 모두들 그루터기 안으로 들어가서 쪼그려 앉아 하트모양의 삼나무 그루터기에 비친 하늘을 사진에 담는 것은 필수입니다. 


야쿠시마 삼나무에 대한 벌목이 시작된 것은 16세기입니다. 당시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교토에 절을 짓기 위한 목재로 수천년 씩 자로 온 야쿠시마 삼나무를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벌목된 삼나무의 그루터기 중 하나가 바로 오늘날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윌슨그루터기입니다.


한편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오래된 삼나무는 삼대 삼나무, 대왕삼나무와 부부삼나무, 순산의 삼나무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삼대삼나무는 3대에 걸쳐 나무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할아버지 삼나무가 죽고 다시 그 뿌리와 줄기에서 삼나무가 자라나서 2대 삼나무로 자랐으며, 2대 삼나무에 뿌리를 내리고 3대 삼나무가 자랐다는 뜻입니다. 



삼대를 이어 2천년을 살고 있는 삼대 삼나무


삼대 삼나무의 할아버지 나무는  1200살에 벌목되었고, 이 할아버지 삼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다른 삼나무 씨가 뿌려져서 2대 삼나무가 1000년을 자랐는데 약  350년 전 2대 삼나무도 벌목되어 그루터기만 남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삼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350여 년을 자라면서 삼대 삼나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해발 500미터 이상 이상 산지에서 자생하는 야쿠시마 삼나무 중에는 2대 삼나무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16세기 이후에 수령 수천 년의 거목들이 잘려나가면서 잘린 삼나무 그루터기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삼나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두 번의 벌목을 거친 삼대 삼나무는 흔치 않다고 하더군요.


삼나무가 많은 일본의 일반적인 삼나무의 수령은 500년 남짓인데, 야쿠시마에는 수령 3000년이 넘는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쿠시마 삼나무는 영양분이 부족한 화강암 섬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장이 매우 느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굵기의 삼나무라고 해도 야쿠시마 삼나무의 나이가 훨씬 많다는 것이지요. 


야쿠시마 삼나무인 야쿠스키 중에서도  야쿠시마에서는 수령 1,000년 이상의 삼나무만을 ‘야쿠스기’ 라고  1,000 년 미만의 삼나무는 ‘고스기(小杉)’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야쿠시마 삼나무 야쿠스키에 대한 벌목은 에도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늘어났다고 합니다.  잘 썩지 않는 야쿠시마 삼나무의 특성 때문에 지붕 재료로 대량 고급되었으며 야쿠스기의 70%가 벌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무차별적인 벌목을 두 번이나 당하고도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야쿠스기가 바로 '삼대 삼나무'인 것입니다. 할아버지 삼나무와 아버지 삼나무, 손자 삼나무의 수령을 합치면 2000년은 훌쩍 넘는 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산할 수 있습니다. 7200년 된 조몬스기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못생긴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는데 조몬스기에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조몬스기에 버금가는 대왕 삼나무


대왕 삼나무는 기원삼나무와 함께 조몬스기에 견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 입니다. 수령 30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삼나무는 조몬스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삼나무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대왕삼나무라고 붙였겠지요. 안타까운 것은 조몬스기를 보러 갔다오는 길이 워낙 길고 멀기 때문에 대왕삼나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잠깐 발 걸음을 멈추고 사진 한 장을 남기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대왕삼나무는 조몬스기가 등장 한 이후에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무를 차별하는 것이겠죠 


제 이름을 가진 삼나무 중에는 부부 삼나무도 있습니다. 부부 삼나무는 두 그루의 삼나무가 가지를 뻗어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두 그루 중에서 한 그루는 뿌리 부분이 고사하였지만 옆으로 뻗은 가지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 받으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부부삼나무에 얽힌 애틋한 사연을 듣고나니 마음이 먹먹하더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란히 서 있는 이 부부 삼나무는 나이 차이가 무려 천 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그루 삼나무가 서로 가지와 가지가 맞닿기까지는 오백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야쿠시마 삼나무들은 5년에 30㎝씩밖에 자라지 않기 때문에 오백년이나 걸린 것이지요. 이들은 오래 살기 위해서는 천천히 성장해야 한다는 지혜를 체득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삼나무 - 아버지 삼나무 - 손자 삼나무로 대를 이어가며 2000년 이상 삶을 이어가는 삼대 삼나무도 대단하지만 나이가 1000년이나 차이나는 삼나무가 500년 만에 가지를 뻗어 연리목이 되어 한 그루가 다른 나무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년 연하 삼나무 커플...오백 년만에 만나 천년해로


삼나무를 껴안으면 아기를 잘 낳는다는 '순산 삼나무'도 있었다는데, 바쁘게 다녀오느라 순산 삼나무는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나무 뿌리 근처의 모습이 여성 생식기를 닮았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나무를 안고 나면 '순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 낳을 일이 없어 제 눈길을 끌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야쿠시마의 삼나무 숲에는 오래된 수령 1000년이 넘는 야쿠스기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야쿠스기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혼자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쿠시마 삼나무 야쿠스기의 특징은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라 품고 사는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높게 뻗은 '야쿠스기'들을 관찰해보면 다른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침엽수와 활엽수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나무가 함께 자란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작은 나무들을 품에 안고 기대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나이든 삼나무 야쿠스기의 넉넉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득 전우익 선생이 남기 책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하는 책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야쿠시마 삼나무 야쿠스기를 '신목'으로 여기는 것은 단순히 오랫 동안 살고 있는 고목이라는것 뿐만 아니라 햇빛과 바람길이 막힌 다른 나무들을 보듬고 함께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쿠시마의 시인이자 구도자인 야마오 산세이가 남긴 책들을 보면 그를 야쿠시마로 부른 것은 '조몬스기'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날마다 조몬스기를 생각하여 살았고, 조몬스기 역시 자신을 생각하면 살았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오래된 그 삼나무를  '성스러운 노인'이라고 불렀고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안심을 주는 스승으로 받아들였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는 조몬스기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더군요. 심지어 그는 자신이 죽으면 그 뼛가루의 1/3은 조몬스기 아래에 1/3은 가까운 바다에, 나머지 1/3은 묘지든지 어디든지 마음가는 곳에 묻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뼛가루가 조몬스기 아래에 뿌려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람마다 가슴에 조몬스기를 품고 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랜 시간의 결을 느끼고 보듬는 것, 오랜 세월을 살아 온 나무를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리하여 조금 더 겸손해지는 것, 자신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는 작은 나무들을 그루터기와 가지 곳곳에 품고 사는 것,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조몬스기가 오래 살고 있는 것은 느리게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빨리 죽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의 숲을 가득 채운 나이든 나무들, 성스러운 노인들이 전해준 오래된 지혜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 야쿠시마의 이름 가진 삼나무들 


조몬스기(縄文杉) 추정수령: 2,000년~7,200년

 메오토스기 (남편) 오른쪽(夫婦杉) 추정수령: 2,000년

 메오토스기 (아내) 왼쪽 (夫婦杉 ) 추정수령: 1,500년

 다이오스기(大王杉) 추정수령: 3,000년

 윌슨 그루터기(ウィルソン株) 추정수령: 2,000년

 니오스기(仁王杉) 추정수령: 불명

 산다이스기(三代杉) 추정수령: 500년

 아이코스기(愛子杉) 추정수령: 불명

 가와카미스기(川上杉) 추정수령: 2,000년

 기겐스기(紀元杉) 추정수령: 3,000년

 후타고스기(왼쪽)(双子杉) 추정수령: 불명

 후타고스기(오른쪽)(双子杉)

 구구리스기(くぐり杉)

 붓다스기(仏陀杉) 추정수령: 1,800년

 이와토스기(岩戸杉) 추정수령: 2,600년

 오다스기(小田杉) 추정수령: 2,500년

 덴추스기(天柱杉) 추정수령: 1,500년

 하하코스기 (엄마) (母子杉) 추정수령: 2,600년

 하하코스기 (아이) 추정수령: 2,600년

 미쓰네스기 (三根杉) 추정수령: 1,100년

 야마토스기(大和杉) 추정수령: 3,000년~4,000년

 반다이스기(万代杉) 추정수령: 3,000년

 못초무타로(モッチョム太郎)

 못초무하나코(モッチョム花子)

 오도스기(大洞杉)

 다이류스기(大龍杉)

 하치혼스기(八本杉)

 야요이스기(弥生杉) 추정수령: 3,000년

 산본아시스기(三本足杉)

 산본야리스기(三本槍杉)

 부교스기(奉行杉)

 덴보다이스기(展望台杉)

 구구리스기(くぐり杉)

 나나혼스기(七本杉)

 샤라노오스기(しゃらの大杉) 추정수령: 1,600년

 시라타니오스기(白谷大杉)

 산본스기(三本杉)

 다이코스기(太古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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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살 먹은 노인 상상이나 해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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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노인' 조몬스기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 여행기 ②

7200년의 시간을 온몸에 새기고 사는 조몬스기를 만나고 왔습니다. 추정 수령 최고 7200년인 삼나무 조몬스기는 큐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남쪽으로 100km쯤 떨어진 야쿠시마 깊은 숲속에 살고 있습니다. 야쿠시마는 울릉도 3배 크기의 작은 섬입니다만, 1만 4천년 전 바다가 융기하여 만들어진 섬 중앙부에는 해발 1936미터나 되는 미야노우라다케가 우뚝 솟아 있고, 18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조몬스기는 살고 있는 곳은 야쿠시마의 최고봉 미야노우라다케로 가는 여러 길 중 한 곳입니다. 야쿠시마의 최고봉 미야노우라다케는 해발 1936미터인데, 수령 7200년의 '성스러운 노인'(야마오 산세이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조몬스기는 이 숲속 해발 1280미터 부근에 자생하고 있습니다.  야쿠시마의 숲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에니메이션 '원령공부'의 배경이 되었던 신비로운 숲이기도 합니다. 


조몬스기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모두 12명입니다. 12라는 숫자가 가지는 상징성이 여러가지가 있지요. 예수의 제자도 하필 12명이었고,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도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시계는 12시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떤 낱개가 꽉찬 숫자가 12이기 때문에 연필은 12자루가 한 다스입니다. 


약 2년 전 오마이뉴스 오름 기사로 올라 온 후배 박상현의 야쿠시마 여행기를 읽은 날 조몬스기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여길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7200년을 살아 온 성스러운 노인의 부름을 받은 것이겠지요. 마음이 통하는 선생님니자 선배님께 조몬스기를 보러가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꼭 함께 가보자고 하더군요. 




2년 전부터 버킷 리스트에 올랐던 '조몬스기' 만나기 


그 선배와 조몬스기 이야기를 나눈지 2년 만에 그분이 속한 산행모임(학봉산악회) 회원들의 처음 떠나는 해외원정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산악회는 회원은 6명이 전부이고 산악회라는 이름은 좀 거추장스러운 작은 모임입니다. 마침 학봉산악회 회원들이 제가 활동하는 단체 회원들이 대부분이라 저희 단체 회원들 중에 몇 사람, 그리고 지인들 몇 사람을 모았더니 12명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여행사의 안내를 받을 만한 숫자를 맞추다보니 12명이 되었는데, 일부러 의미 부여를 하자면 조몬스기가 12명만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이 '성스러운 노인'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원하기만 해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여행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시간과 건강과 돈이 있어야 하고 좋은 길동무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황금연휴도 아닌 평범한 4월의 어느 날 우연이라면 우연에 가까운 사람들 12명이 인연을 맺어 조몬스기를 만나러 갔으니 각자 '성스러운 노인'의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날은 경건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무슨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왕복 10시간 산행이라는 무게감 때문에 모두가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아무리 길고 어려운 길이라고 하더라도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장소였다면 그런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을겁니다. 어쨌든 10시간을 무탈하게 걸어야 조몬스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경거망동을 할 수 없었고 다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다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복 10시간 산행이 주는 긴장감...그리고 경건한 마음


새벽 4시에 일어나 옷을 갈아 입고 밤에 챙겨두고 잤던 짐을 간추려서 4시 30분에 숙소 앞 마당에 모였습니다. 숙소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는데, 해안가 마을의 아침 공기가 싸늘하였습니다.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나왔던 사람들은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버스를 기다렸지요. 4시 45분에 정확히 버스가 도착하였습니다. 


10여분 차를 타고 이동하여 야쿠스기랜드에서 내렸습니다. 이곳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이른 새벽 시간이지만 앞서 버스 한 대가 등산객들을 가득 싣고 올라갔도, 우리 일행은 두 번째 버스를 타고 해발 600미터 지점에 있는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갔습니다. 20분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30분쯤 달렸을 때 사진과 다큐 영상에서 여러 번 봤던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서둘렀지만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5시 40분이 넘었더군요. 산행 길 중간에 화장실이 자주 없기 때문에 모두들 화장실을 다녀오고, 아침 도시락을 먹고 출발하였습니다.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지만 장거리 산행을 앞둔 날이라 주먹밥 두 개를 꼭꼭 씹어 삼켰습니다. 몇 시간 후에는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게 해줄 에너지가 될 거라고 믿으면서. 


조몬스기를 향해 가는 길은 기찻길입니다. 오래 전 삼나무 벌목이 한창 일 때 산에서 베어낸 삼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철로를 깔았더군요. 지금은 삼나무 벌목이 완전히 금지 되었지만 여전히 철로는 남아 있었습니다.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이 철로 침목을 밟으며 걷거나 철로 침목위에 삼나무 판자를 깔아 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걷는 길이 약 8.1km인데 여간 피곤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철로 위에 놓인 침목은 사람의 보폭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놓여있기 때문에 마치 보폭이 맞지 않는 계단을 걷는 것 처럼 부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왕복 16km 이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찾아 본 산행기나 다큐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것 만큼 힘든 산행은 아니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텐데 10여 차례 정도 산행 연습을 하고 온 탓도 있을 것이고, 예상보다 가파르고 힘든 길이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쿠시마에 다녀오신 분들이나 야쿠시마 여행을 계획했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섬은 사슴, 원숭이 그리고 비가 많아서 삼다도입니다. 야쿠시마는 평지의 연평균 강수량이 4000㎜, 산지의 평균 강수량은 8000㎜, 최고 10000㎜가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1년 365일 중에서 360일 이상 비가 온다는 곳이 바로 야쿠시마입니다. 그런데 저희 일행이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던 날은 다행히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1년 내내 비 오는 섬...마침 비가 오지 않아 덜 힘들었다


만약 비가 왔다면 철길 위 삼나무 판자를 걷는 일이 몇 배는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철길이 끝난 후에 약 2.5km 정도의 가파른 산길을 걷는 것도 그날 만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쿠시마 여행 준비물에는 우산이 필수품이고, 조몬스기 산행 준비는 비옷이 필수 장비에 속하는데 이날은 우산도 비옷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왕복 20km가 넘는 길을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무거운 우의를 입고 걸었다면 맑은 날 같은 여유로운 산행이 되기는 어려웠을테지요. 


철로를 따라 걷는 길도 최소한 올라갈 때는 지루할 틈은 없었습니다. 바위 굴을 지나면 계곡을 건너고 조금 더 걷다보면 거대한 삼나무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인적이 좀 드물다 싶으면  이 섬에 사람보다 많이 산다는 사슴이 내려와 길 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요. 


그날 만난 사슴은 '성스러운 노인'이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성스러운 노인'이 한국에서 불러들인 12명의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이 어디까지 오고 있는지 보고오라고 심부름을 보냈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침 7시가 넘으면서 따뜻한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였고,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 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발 720미터 지점에 있는 쿠스카와 분기점 근처의 휴식처에서 화장실 가는 줄이 길어 꽤 오래 쉬웠지만, 철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는 '오카부 등산로' 입구까지 2시간 30분만에 도착하였습니다. 


당초 예상보다는 약 1시간 정도 빨리 도착하였는데 모든 것은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철길이 끝나는 오카부 등산로 입구에는 열차를 정비하는 창고 같은 건물이 있고 건물 2층에는 마지막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삼나무 벌목이 한 창일 때 만들어진 철로는 폐철로인줄 알았는데, 이 날 작은 기관차가 운행하면서 선로 보수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카부 등산로 입구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고 9시 정각에 조몬스기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남은 거리는 2.1km 여기서부터는 완만하고 편안한 트레킹코스가 아니라 가파른 산길이 시작됩니다. 지리산과 비교하자면 그래봐야 중산리 코스로 올라가면서 로터리 산장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보다는 덜 가파르고 수월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수령 2000년이 넘는 삼나무들이 수두룩한데다가 하트 모양의 하늘 사진으로 유명한 윌슨 그루터기를 비롯하여 삼대삼나무, 부부삼나무, 대왕삼나무 등 제 이름을 가진 유명한 삼나무들이 뛰엄뛰엄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때마다 숨을 돌리고 사진도찍고 하면서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가장 가파른 길은 오카부 등산로 입구에서 윌슨 그루터기까지 가는 약 600미터 구간이었고, 윌슨 그루터기를 지나고나면 오르막길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짧은 내리막길도 나타나 걸음을 가볍게 해주기도 합니다.



산신령처럼 기다리고 있는 '성스러운 노인'


윌슨 그루터기를 출발하여 1시간쯤 걸었을 때 길이 험해 아래를 보고 걷던 고개를 힐긋들었더니 작은 계곡이 흐르는 윗쪽으로 커다란 삼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습니다. 직감으로 '조몬스기'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겠더군요.(사실은 사진으로 너무 여러 번 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조몬스기를 보호하기 위한 전망 데크와 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공사를 해놓은 것을 보니 조몬스기가 분명하더군요. 


눈 앞에 서 있는 조몬스기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고 사진으로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크고 웅장한 삼나무였습니다. 높이 25.3미터 둘레 16.4미터 건물 한 층 높이를 3미터로 계산하더라도 나무의 높이는 건물 8층이 넘는 높이입니다. 둘레 16.4미터는 키 170센티 정도 되는 어른이 10명이 손을 맞잡아야 나무를 감쌀 수 있는 크기입니다. 


오랫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성스러운 노인'과 만났습니다. 추정수령 7200년, 그 노인의 이름이 조몬스기인 것은 신석기 시대인 조몬시대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단군시대부터 통틀어 우리 역사를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이 성스러운 노인은 그 이전부터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의 눈과 마음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 7200년입니다.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로 드러난다고 하는데, 7200개의 촘촘한 주름이 새겨진 성스러운 노인의 나이테에는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인간의 역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몬스기의 72000겹 나이테에는 인간의 역사, 지구의 역사, 생명의 역사, 자연의 역사가 꼼꼼히 기록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긴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일행들을 기다리는 20여 분 동안 '성스러운 노인'과 마음을 나누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의 나이 앞에 그의 주름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야쿠시마에 살았던 농부이자, 철학자이자 구도자였던 시인 야마오 산세이가 조몬스기를 '성스러운 노인'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우리가 만나서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풀이든, 나무이든, 바위나 돌이든, 바다이든, 사람이든, 곤충이든 다 가미" 라고 하였더군요.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가미란 정령 혹은 작은 신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예컨대 그는 진심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는 세상만물에는 모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7200년을 살고 있는 조몬스기의 부름을 받고 1977년에 야쿠시마로 귀농하여 25년 간 이 섬에 살다가 떠난 야마오 산세이는 '성스러운 노인' 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이야기를 쓴 그의 시 중에는 낭독하는데만 무려 25분이 걸리는 장편시도 있습니다.


성스러운 노인


야쿠시마 산 속에 한 성스러운 노인이 서 있다

그 나이 어림잡아 7천 2백 년이라네

딱딱한 껍질에 손을 대면

멀고 깊은 신성한 기운이 스며든다

성스러운 노인

당신은 이 지상에 삶을 부여받은 이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그곳에 서 있다

그것은 고행신 시바의 천년지복의 명상과 닮았지만

고행과도 지복과도 무관한 존재로 거기 서 있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당신의 몸에는 몇 십 그루의 다른 수목들이 자라고 당신을

대지로 알고 있지만

당신은 그것을 자연의 섭리로 바라볼 뿐이다

당신의 딱딱한 껍질에 귀를 대고 하다못해 생명수 흐르는

소리라도 듣고자 하나

당신은 그저 거기 있을 뿐

침묵한 채 일절 말하지 않는다


야쿠시마의 깊은 숲 속에 자리잡은 그 날부터 7200년 동안 단 한 발짝도 내 딛지 않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성스러운 노인 앞에 서면 수 없이 많은 말을 내 밷으며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작 100년도 못살면서 왜 그렇게 아웅다웅 살아왔는지,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살았는지, 왜 가까운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지 못했는지 하는 후회의 마음도 들었습니다. 




20여분 후에 일행이 모두 올라오면서 침묵의 시간은 깨졌습니다.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12명 모두가 조몬스기를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을 축하하고 격려하면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조몬스기 바로 위쪽 휴식장소로 옮겨 준비해 온 도시락을 나눠먹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야쿠시마는 조몬스기와 야마오 산세이의 섬


야쿠시마 여행을 도와 준 가이드 정 선생의 안내보다 빨리 조몬스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여러 사람이 쓴 조몬스기 여행기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도 더 빨리 도착하였습니다. 걸음이 느린 사람도 있고 체력이 약한 사람도 있으니 일행 모두가 도착하려면 12시는 되어야 할거라고 예상하였는데, 이른 점심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하고도  11시 30분 되었을 때 하산 준비가 끝났습니다. 


슬슬 욕심이 생겼습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한 아카카와 등산로 입구로 가는 중간지점쯤에 있는 쿠스카와 분기점에서 산을 하나 넘으면 시라타니운스 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산을 시작하면서 슬슬 바람을 잡았습니다. 


"야쿠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시라타니운스 계곡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원령공주에 나오는 그 숲이 바로 시라타니운스 계곡이다", "파란 이끼와 계곡 물 속에 사슴이 서 있는 그 장면이 바로 시라타니운스 계곡이다." "원래 왔던 길 보다 1시간만 더 걸으면 시라타니운스 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다"


이렇게 열심히 바람을 잡았더니 제일 먼저 일행의 여행 안내를 책임지고 있는 여행 가이드 정선생의 OK 싸인이 났습니다. 모두가 원하면 아침에 예매해둔 차표를 손해보더라도 코스를 변경해줄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행 중에는 평소에 많이 걷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고,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는 사람들도 있어서 모두가 코스를 변경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울러 "시라타니운스 계곡은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두고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구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쿠스카와 분기점(해발 720미터)까지 내려왔을 때, 네 사람이 의기투합하였습니다. 가이드 정선생과 8명은 아침에 왔던 코스대로 하산하여 야쿠시마 공항 근처의 온천으로 먼저 가 있기로 하고, 택시 1대에 맞춰 탈 수 있는 네 사람은 시라타니운스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였습니다. 


시라타니운스 계곡 주차장에 4시 30분까지 도착해야 막차를 탈 수 있고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2시 40분에 쿠스카오 분기점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시라타니운스 계곡으로 향했습다. 예정에 없던 코스를 변경하여 시라타니운스 계곡으로 내려와서 겪었던 모험담은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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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식 2015.05.07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기대가됩니다.
    ^^

7200년 된 삼나무 조몬스기...성스러운 노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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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블로그에 처음으로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다른 글을 쓰면서 시를 소개한 일은 있지만 온전히 시 한 편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대신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는 시는 야마오 산세이가 쓴 <성스러운 노인에게>입니다. 성스러운 노인은 일본 후쿠오카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라고 하는 섬에 살고 있는 7200년 된 삼나무 조몬스기를 말합니다. 


어제는 야마오 산세이가 쓴 <더 바랄게 없는 삶>이라는 책을 소개해 드렸구요. 오늘은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에 번역되어 있는 그의 시 '성스러운 노인에게'를 소개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시간이면 저는 조몬스기를 만나러 야쿠시마의 숲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최단거리까지 가도 조몬스기를 보려면 산길을 5~6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더군요. 아침 5시에 길을 나설 예정이니 7시쯤 등산을 시작한다면 12시쯤에는 조몬스기를 만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숲에는 수령이 1000년이 넘은 삼나무만 2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성스러운 노인 조몬스기는 7200년[각주:1] 된 나무라고 합니다.  사진만으로는 그 위용을 짐작하기 어려우실텐데 뿌리 둘레만 43미터, 몬통 둘레 16.4미터, 높이는 25.3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일본영화 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에니메이션 <원령공주>에 나오는 숲이 바로 야쿠시마의 숲이라고 하네요. 오늘은 깊은 숲속에 있는 성스러운 노인의 부름을 받고 조몬스기를 만나러 갑니다. 





성스러운 노인


야쿠시마 산 속에 한 성스러운 노인이 서 있다

그 나이 어림잡아 7천 2백 년이라네

딱딱한 껍질에 손을 대면

멀고 깊은 신성한 기운이 스며든다

성스러운 노인

당신은 이 지상에 삶을 부여받은 이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그곳에 서 있다

그것은 고행신 시바의 천년지복의 명상과 닮았지만

고행과도 지복과도 무관한 존재로 거기 서 있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당신의 몸에는 몇 십 그루의 다른 수목들이 자라고 당신을

대지로 알고 있지만

당신은 그것을 자연의 섭리로 바라볼 뿐이다

당신의 딱딱한 껍질에 귀를 대고 하다못해 생명수 흐르는

소리라도 듣고자 하나

당신은 그저 거기 있을 뿐

침묵한 채 일절 말하지 않는다

성스러운 노인

옛날 사람들이 악이라는 걸 모르고 사람들 사이를 선이

지배하던 때

인간의 수명은 천 년을 헤라렸다고 나는 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선과 같이 빛나고 신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이윽고 사람들 사이에 악이 끼어들고 동시에 인간의 수명은 

점점 짧아졌다

그래도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백 년 오백 년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지금은 그도 사라지고 없다

이 철의 시대에는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백 살이 고작이다

옛날 사람들 사이를 선이 지배하고 사람들이 신과 더불어

말하던 때의 일을

성스러운 노인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은 오로지 그곳에서 고요한 기쁨으로 있을 뿐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안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으며 그리고 살아있다는 사실뿐

그곳에 있으며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성스러운 노인

당신 발밑 대지에서 맑은 물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유일하게 보여준 마음 같았습니다

그 물을 두 손으로 떠올려 나는 성스러운 것인 양 마셨습니다

나는 떠올렸습니다

법구경 구십 팔

    마을에서나 또 숲에서나

    낮은 곳에서나 또 평지에서나

    고귀한 사람이 머무는 곳 그곳은 즐겁다

법구경 구십 구

     숲은 즐겁다 세인이 즐겁지 않은 곳에서 탐욕을 버린

     사람은 즐거우리라

     그는 욕망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숲은 즐겁다 고귀한 사람이 머누는 곳 그곳은 즐겁다

성스러운 노인

당신이 침묵하고 말하지 않기에

나는 당신의 숲에 사는 무구한 백성이 되어

종을 울리며 당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1. 조몬스기에 대한 수령은 3000여년 정도라고 하는 새로운 검증 결과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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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4.26 03: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감동입니다.
    책뿐만 아니라 시도 가끔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간의 숲에서 깨닫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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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야마오 산세이가 쓴 <더 바랄게 없는 삶>


7200년 된 삼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 가고시마 남단에 있는 야쿠시마라는 섬에 7200년 된 삼나무 죠몬스기가 살아 있는 신령스러운 숲이 있다고 합니다. 흔히 우리 역사를 반만 년 역사라고 하는데, 우리 역사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삼나무 죠몬스기가 살고 있는 숲이 있는 섬 야쿠시마. 


죠몬스키를 만나러 가는 야쿠시마 여행을 앞두고 야쿠시마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다 24년 간 이 섬에 살다 2001년에 삶을 갈무리 한 야마오 산세이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쓴 책을 찾아봤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책이 네 권이나 있었는데 두 권은 절판이 됐길래 판매 중인 두 권을 구입했습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더 바랄 게 없는 삶>입니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에 살았던 그는 야쿠시마로 이사 한 후 농사를 지으며 시와 글을 쓰고 살았는데, 그는 그런 야쿠시마에서의 삶을 '더 바랄 게 없는 삶'이라고 했더군요. 제목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야쿠시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최성현은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마을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더군요.


"일본 열도 남쪽 끝에 있는 작은 섬 야쿠시마. 그 섬의 바닷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쓸 만큼 시냇물이 맑은 마을. 논밭을 빼고는 정글 같은 숲에 둘러 싸여 있는 마을. 한사리 때면 바다에 나가 조개를 줍고 굴을 따는 마을. 성가실 만큼 자주 사슴과 원숭이가 출몰하는 마을.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낚시를 놓아 뱀장어를 잡는 마을. 가구 수가 적어 사람이 귀한 마을." - 본문 중에서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쓴 야마오 산세이는 서른 일곱 살에 도쿄에서 야쿠시마 섬의 이 마을로 이사해 살다가 예순 둘의 나이로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시인이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이며, 책 후반부에는 그가 암에 걸려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가는 이야기도 나와 있습니다. 


사람보다 사슴과 원숭이가 많은 섬


책은 야마오 산세이의 삶을 잘 드러내는 시 한 편으로 시작됩니다. 제목은 '왜'인데 '아버지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시입니다. 그 일부만 읽어봐도 그의 사람됨을 짐작하게 하는 시인데, 제법 길기는 하지만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전문을 옮겨봅니다. 


- 아버지에게


왜 너는 도쿄 대학에 갈 생각을 안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물었다

저는 와세대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때 나는 

키에르케고를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 공부할 사이가 없었다.


왜 너는 대학을 그만 두냐고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방자하게도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졸업장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고

중학교만 졸업한 

아버지의 길에도 거스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왜 너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냐고

올 삼월에 암으로 죽은 친구가 물었다

그 친구는 깊은 연민과 힘을 가지고

평생을 사랑 하나로 일관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디나 다 중심이고

또 거기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있으니

정부 따위는 필요없는 게 아니냐고 대답하지 않고

너 또한 아나키스트일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왜 너는 

도쿄를 버리고 이런 섬에 왔느냐고

섬 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었다

여기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무엇보다도 수령이 7200년이나 된다는 죠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 속에서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정말 그랬다

죠몬 삼나무의 영혼이

이 약하고 가난하고 자아와 욕망만이 비대해진 나를

이 섬에 와서 다시 시작해 보라고 불러 주었던 것이다


왜 그대는 

지금도 외롭고 슬프냐고

산이 묻는다

그 까닭을 저는 모릅니다

당신이 

저보다도 훨씬 외롭고 슬프고

훨씬 풍요롭게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그 까닭을 저는 모릅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은 야마오 산세이가 자신의 삶을 회고 하면서 나무와 숲과 자연에 관해 쓴 수필집입니다. 가쥬마루라는 나무 이야기, 흙, 풀, 암대극, 벚꽃 같은 자연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입니다. 산문 사이사이에는 그가 쓴 시들이 담겨 있어 더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앞서 소개한 시를 읽으면서 짐작했겠지만, 그는 아나키스트이자 자연주의자입니다. 그는 나무와 풀, 바위와 돌을 비롯한 모든 것들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때때로 섬에 있는 돌을 육지의 친구들에게 선물했다고 하는데 그냥 평범한 돌이 아니더군요. 


"내가 여행 길에 가지고 나가는 돌은 그것으로 적어도 지상 천오백 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돌에 친화력을 느끼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야쿠시마의 돌에만 이런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을까요? 지질의 역사를 조금만 알고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어디서나 이런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돌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7200년 된 삼나무가 살고 있는 숲


그는 섬에서 자생하는 꽃과 나무에 관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계절에 어느 곳에 가면 어떤 꽃이 피는지 알고 있더군요. 꽃의 모양과 향기는 물론이고 어떻게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고 있는지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가 가려고 하는 7200년 된 삼나무 죠몬스기가 있는 숲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장소는 '야하즈타케'라 부르는 동굴 신사였습니다. 높이 6~7미터 폭 6~7미터 깊이 30미터 가량의 동굴이 그대로 신사라고 하더군요. 건물은 없고 동굴의 끝에 신을 모신 작은 시설이 있을 뿐인데, 시인은 해마다 설날이면 가족과 함께 이곳에 예배를 다녔다더군요. 


"동굴은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주거지였을 것이 틀림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안에 들어가면 몇 백만 년에 걸쳐 내게 이어져 온 유전자가 안도를 하는 듯 이유를  알수 없는 소박한 신성감에 젖어든다는 점이다." - 본문 중에서


"그 동굴의 암석은 바다 밑에서 수억 년의 시간과 지상으로 융기하기 시작한 이후로도 적어도 천사백만 년이란 시간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인류가 이 지상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야마오 산세이는 이 동굴을 '6500만 년'의 시간을 간직한 동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삶의 끝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눈으로 자연을 보는 시인에게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바위나 돌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모두 신령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가장 재미있었던 글은 '뱀장어와 아들'이라는 수필이었습니다. 저수지에서 거대한 뱀장어를 잡는 큰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섬에 살면서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깨뱀장어 낚시하는 법을 배워가는 추억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잡는 재미도 재미지만 섬을 떠나 자립해 가는 자식들도 반드시 함께 데리고 가서 보는 사이에 절로 배우도록 해 왔다. 그 덕분에 이제까지 자식 넷을 모두 이 섬에서 키워 내보냈는데, 모두 거거따기와 뱀장어 잡는 기술만은 익히고 갔다." - 본문 중에서


자식들에게 아버지와 함께 한 작은 수렵의 기억이 그들의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된 막내가 뱀장어 잡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였을 어린 시절 '수렵'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자연에서만 대물림 되는 수렵의 추억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 수렵 체험은 부자가 함께 한 추억이면서 동시에 수렵을 함께 하는 '동지' 사이에서만 생길 수 있는 특별한 동지애를 나누는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아버지와 아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 세상의 진보와 생명의 순환에 관한 시인의 이야기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개인으로 태어나 성장하고 마침내 죽지만 그 생명은 조상에서 자손으로 이어져 가는 양상에서 한 발도 진보하지 않고 다만 순환할 뿐이다. 휴대폰이 없었던 천 년 전의 인간도 현재의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태어났고 성장했고 마침내 죽었다." - 본문 중에서


천 년 뒤의 인간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문명의 이기를 갖는다 하더라도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는 순환의 법칙에서는 진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사람에게는 그리고 자연에게는 진보라는 숙명과 동시에 순환내지 회귀라고 하는 또 하나의 숙명이 내재돼 있다는 것입니다. 


숲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은 사람이라는 순환보다 더 큰 자연의 순환에 둘러싸여 있을 때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7200년 간 살고 있는 죠몬스키가 있는 야쿠시마의 숲에서 생명의 근원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를 경험하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야마오 산세이가 그랬던 것처럼. 


더 바랄게 없는 삶 - 10점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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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영유권 주장에 반대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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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우리땅일까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대마도 여행기를 포스팅하다보니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고, 페이스북으로 공유한 글에도 비슷한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분들의 주장은 비슷합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우기니 우리도 대마도를 우리땅이라고 맞 받아치자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제가 사는 마산에서 그런 움직임이 구체화 되었던 일도 있습니다. 


지난 2005년 3월 18일 옛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對馬島-) 조례를 제정하였습니다. 일본 시마네 현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하자 그에 맞서는 의미로 대마도의 날 조례를 만든 것입니다. 



당시 마산시의회는 제 109회 임시회를 열고 '대마도의 날 조례'안을 긴급 상정해 30명의 의원 가운데 출석의원(29명) 전원 찬성으로 졸속(?) 가결하였습니다. 


당시 만든 조례를 보면 "쓰시마 섬이 한국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며 영유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산시의회는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폐기 촉구 결의안을 논의하다가 급선회하여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하였으며, 외교통산부는 '불필요한 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제를 요청하였지만, 조례로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마산, 창원, 진해시 통합 이후인 2012년 12월 11일에 창원시의회가 기본 마산시의회에서 제정된 '대마도의 날 조례'를 일부 수정하여 '창원시 대마도의 날 조례'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다시피 아무 실효성이 없는 선언에 불과한 조례입니다. 



대마도 사람들이 한국인을 싫어하는 까닭?


실제로 대마도를 여행하다보면 한국인에 대하여 배타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식당이나 술집 중에서 한국인 손님을 거절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여행사에서 정해 준 식당이 아닌 곳에서 자유식을 하려고 나가보면 식당이나 술집 중에 '한국인 출입금지'라고 붙여 놓은 곳이 더러 있습니다. 


또 이런 안내문을 붙여 놓지 않은 곳 중에도 막상 자리가 있냐고 물으면 한국인 손님을 거절하는 곳도 있습니다. 처음엔 약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마도 관광객의 90% 이상이 한국인이고, 이즈하라를 시내를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인 관광객인데 왜 이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하여 적대적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요.


하지만 그 답을 짐작해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들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 때문이었더군요. 옛 마산시의회처럼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는 무리수를 두는 자들이 있었고, 실제로 대마도 여행 가이드 중에는 "한국인이 지금보다 더 많이 대마도에 여행을 가다보면 우리땅이 될 수 있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들도 있다더군요.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할까?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세종대왕 시절에 대마도를 정벌한 것을 두고 '대마도가 우리땅'이라고 우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대마도가 누구 땅이냐 하는 문제를 독도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도 합리적인 사고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상 대대로 대마도에 살고 있는 대마도 주민들이 과연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섬 독도와 달리 대마도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일본에 속하고 싶은지 한국에 속하고 싶은지는 당연히 대마도 주민들이 결정할 문제고, 그들은 결코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마도 주민들이 '한국에 속하고 싶다'고 주장해도 한국땅이 되기 어려운 일인데, 대마도 사람들 중에 누구도 한국인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데 우리끼리 우리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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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동산전공지 2015.02.02 19:34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 역사에 대마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은 기술되어 있습니다. 일본정부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국민들에게 각인시켜 국제적 분쟁을 초래하기 위함입니다. 대마도 영유권 반대라는 접근 방식이 좀 아쉽네요. 저라면 실소유하고 있기때문에 일본땅인건 맞지만 대마도 주민 의견까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2. 후니아빠 2015.02.03 10:47 address edit & del reply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이 그당시 우려했던 일입니다.
    대부분 일본일들은 독도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불필요하고 맞지않는 대응으로 문제가 더 크게 될 것을 우려 했습니다. 순간의 감정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지요.
    마산문화원과 시의회는 중국의 동북아공영에 조금만 관심이나 지식이 있었다면 이런 어린석은 짓은 안했을겁니다.

  3. 와까리마셍 2016.08.04 15:56 address edit & del reply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다!

  4. 와까리마셍 2016.08.04 15:58 address edit & del reply

    닙뽕들이 대마도 빼앗길까바서 독도를 걸고넘어지는 것이무니다.

  5. 김학환 2017.01.20 07:28 address edit & del reply

    뭘잘 모르시네요, 그러면 말이요 중국이 오끼나와 주변도서
    다이워다오섬을 자국영토라고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거든 요, 우리는 무능한 정치인의 방관이 있습니다,

  6. 김학환 2017.01.20 07:31 address edit & del reply

    또 일본은 캄차카 반도 북방4ㅐ의섬 자국영토라고 우기잖아요, 대마도 사람이 좋아하건 말건
    그건 그다음 문제같아요 혹시 당신조상 친일파 아닌가요,

  7. 김학환 2017.01.20 07:31 address edit & del reply

    또 일본은 캄차카 반도 북방4ㅐ의섬 자국영토라고 우기잖아요, 대마도 사람이 좋아하건 말건
    그건 그다음 문제같아요 혹시 당신조상 친일파 아닌가요,

  8. 김학환 2017.01.20 07:38 address edit & del reply

    야이 병신아 마산의원들이뭐졸속처리한거냐
    말도 안디는 왜놈들은 독도영유권에는 말이된다 고생각하나

  9. 김학환 2017.01.20 07:38 address edit & del reply

    야이 병신아 마산의원들이뭐졸속처리한거냐
    말도 안디는 왜놈들은 독도영유권에는 말이된다 고생각하나

  10. 한경택 2017.01.25 09:21 address edit & del reply

    한국이 일본보다 잘 사는 국가인가요?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은 선진국, 한국은 중진국입니다.
    당연히 대마도 주민들에게 양자 택일을 하라고 한다면 일본이라고 하겠죠.
    대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향후 중국의 국격이 지구촌 유일의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르면 대만국민들은 하나의 중국을 외칠 것입니다. 역사는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대마도 한국땅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준비를 해야죠. 마산시의회 화이팅~

    • 이윤기 2017.01.25 13:29 신고 address edit & del

      한경택님 말씀처럼... 잘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면 쓸데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실효성도 없는 '대마도 조례' 같은 것을 만들지 말고,,, 일본보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지요.

대마도...장엄한 바다 풍광 쓰쓰자키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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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쓰자키 전망대 ! 이번 대마도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쓰쓰자키 전망대였습니다. 굽이진 길을 돌아 넓게 트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이 절로 쏟아져 나온 곳이 바로 쓰쓰자키 전망대였습니다. 


쓰쓰자키 전망대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자전거 라이딩을 하러 대마도에 왔을 때는 히타카쯔에서 출발하여 이즈하라까지 내려 온 후에 체력이 바닥나는 바람에 도저히 한나절 만에 쓰쓰자키 전망대까지 다녀올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포기하였 일이 있습니다. 


올해도 연수 계획을 세우면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몇몇 회원들과 하루 일찍 대마도로 가서 1박 2일 일정으로 쓰쓰자키까지 다녀올 계획이었습니다만, 자전거를 운반해주는 오션플라워호의 운항이 중단되어 있어 계획을 포기하였지요. 



다행이 여행사와 의논하여 만든 일정에 둘째 날 쓰쓰자키 전망대 관람이 포함되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 타쿠미 식당에서 소바만들기 체험을 마치고, 차로 이동하면서 대마도 돌지붕창고 시이네 이시야네 (椎根 石屋根)를 슬쩍 보고 지나친 후에 쓰쓰자키로 이동하였습니다. 



전망대 입구에서 내려 걸어서 경사진 진입로를 올라 갈 때는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만, 쓰쓰자키 해변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절벽이 바람을 막아주었습니다. 쓰시마 최남단 해변이 보이는 곳에는 바다위에 작은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바다 물에 닿은 햇빛을 반사되면서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하였습니다. 



쓰쓰자키는 쓰시마 최남단에 위치하고 대한해협 서수도와 동수도가 만나는 곳입니다. 쓰쓰자키 전망대에서 바로보는 남쪽 바다는 조류가 빠르고 암초가 많아 예로부터 험한 항로였다고 합니다. 바다가 험한 대신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어부들이 위험을 부릅쓰고 고기잡이에 나서는 바다이기도 하였답니다. 



지금도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쓰쓰자키 전망대 동쪽 바다에는 양식장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은 "저런 바다에서 자라는 물고기라면 양식이라도 자연산에 가깝겠다"고 하더군요.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것만 아니면 양식 어류라 하더라도 정말 깨끗한 물에서 자랐다는 것은 인정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쓰자키 전망대는 포대, 관측소, 참조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실제로 여러 전쟁에서 쓰시마 방어요새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쓰쓰자키 전망대를 돌아나오는 산책길에는 낡은 창고 건물이 남아 있는데, '탄약고'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더군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남남동 방향의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큐슈 본토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쓰쓰자키 전망대 앞 바다와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바위섬들 그위로 쏟아지는 햇빛과 바다에 부딪쳐 부서지는 신비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연신 셔터를 눌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제 사진 기술과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육안으로 보이는 그 신비로운 모습을 카메라도 담아낼 수가 없더군요. 정말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만 도리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는 그 신비로운 순간들은 마음에 담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다음에 다시 가도 이런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만약 차를 타고 오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대마도 특유의 오르막 내리막길을 달려서 왔었다면 그 감흥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대마도 최남단 쓰쓰자키 전망대롤 보러 갈 생각입니다큰 호텔은 없지만 '쓰쓰'라는 마을에 민숙이 있다고 하더군요. 



점점이 떠 있는 바위섬들의 끝에는 등대가 서 있었습니다. 저 등대가 아니면 가까운 해안을 따라 가는 배들이 암초를 만나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더군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바다가 토해내는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바다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쓰쓰자키 전망대를 돌아나오는 산책길에 커다란 창고가 남아 있었는데 '안내문'에 따르면 탄약 창고라고 되어 있더군요. 러일전쟁의 흔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러일전쟁'은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더군요. 대마도 곳곳에 대승을 거둔 러일전쟁의 기념물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던 러시아 '발틱 함대'를 전멸시킨 전쟁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산대첩'이나 '명량해전'을 생각하는 것처럼 '쓰시마 해전'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대마도 여행을 가시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쓰쓰자키 전망대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봄에는 유채가 만발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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