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후쿠오카로 자전거 여행을 갔습니다만 날씨가 너무 추워 계획 하였던 일정을 취소하고 온천을 하러 갔습니다. 후쿠오카 시내와 근처 바닷길을 달리는 라이딩 일정을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온천 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벳부, 유후인 등의 유명 온천을 다녀 오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12명이 단체로 움직이려다 보니 평일인데도 차표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터미널에 나가서 유후인 가는 차표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오전 차표가 모두 예매되어 우레시노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처음 가보는 장소이기도 하였고, 일본 3대 온천으로 손 꼽히는 장소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렀기 때문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차 출발 시간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근처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아침 산책을 하였습니다. 문을 열지 않은 애플샵과 신사 한 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떼우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텐진역 3층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우레시노행 시외버스는 공항을 거쳐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한국에서 가져간 드라마(응답하라 1988) 마지막 2회분을 보느라 차창 밖 풍경에는 관심을 두지 못하였네요. 우레시노 온천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멀었습니다.
텐진역에서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알고 갔는데, 막상 우레시노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2시간 가까이 지났더군요. 터미널에 있는 여행안내소에는 한글로 된 온천 소개 책자와 맛집 추천 팜플렛들이 있었습니다.
우레시노의 첫 인상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일본의 3대 온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크고 복잡한 관광지를 연상하였습니다만, 전혀 반대의 느낌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운 평일이기는 하였지만 관광객은 물론이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우레시노는 30여개의 온천이 있는 작은 온천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온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걸어서 30분이면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시내에 모여 있었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가게들도 한 십년 쯤 늦은 시간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재활용가게로 보이는 유행이 지난 물건들이 쇼윈도우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유후인이나 벳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온천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고른 온천은 와라쿠엔 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조건 중에서 '노천 온천'이 있어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른 장소입니다. 점심 먹는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이 '시이바산소' 온천을 소개해 주었습니다만, 걸어 가기엔 멀고 택시를 타고 가기엔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모아 마을에 있는 온천을 선택하였습니다.
고급 온천...와라쿠엔...온천욕은 고작 30분
온천 여관 안내 팜플렛을 보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당일 입욕이 불가능한 곳도 많았습니다. 결국 예약 없이 당일 입욕이 가능한 곳 중에서 노천 온천과 사우나가 있는 곳을 고르다보니 '와라쿠엔'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온천에는 일본인 여행객들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와라쿠엔을 찾는 일본인 여행객들은 저희처럼 잠깐 목욕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숙박을 하는 여행객들 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분들은 숙박을 하는 손님들을 훨씬 더 깍듯이 맞이 하더군요.
저희 일행은 모두 12명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온천을 하러 들어가면서 2시간 후에 호텔 로비에서 그 보다 늦으면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각각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10명의 남자들은 모두 1시간을 넘기지 못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가장 늦게까지 있었던 2~3명도 1시간을 채우지 못하였고, 급한 사람들은 30분 만에 온천을 마치고 나가버리더군요. 입욕료가 1인당 1천엔이 넘으니 본전 생각이 날 만도 한데 정말 빨리 온천을 마치고 나가더니 할 일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습니다.
와라쿠엔 같은 가격이 비싼 민간 온천 대신에 1인당 400엔이면 들어갈 수 있는 마을 공동온천 '시볼트 노유' 같은 곳을 그냥 지나친 것이 안타깝더군요. 저를 포함하여 목욕 시간이 짧은 남자들은 400엑 하는 '시볼트 노유' 정도가 딱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볼트 노유는 마을 공동 온천이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17세기에 하스노이케번이 운영하는 목욕탕으로 시작되었고, 다이쇼 시대(1924년)에는 독일인에 의해 '후루유 온천'으로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시설이 낡아 2005년에 해체하여 2010년에 다이쇼시대의 모습 그대로 재건축 하였다고 합니다. 혹시 다시 우레시노에 간다면, '시볼트 노유' 정도가 딱 맞을 것 같습니다.
남자들 중에는 제가 가장 늦게 나온 축에 속하였는데, 먼저 나온 남자 동료들은 마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결국은 무료 족탕을 하는 곳에 모였습니다. 비싼 온천에 들어가서 30분만에 나온 남자들이 할 일이 없으니 옹기종기 무료 족탕에 모여 앉아 온천 물에 발을 담그고 '수다'를 떨게 된 것입니다.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족탕은 따뜻한 온천물이 나오는 족탕과 증기로 발을 따뜻하게 하는 족탕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온천수가 나오는 족탕은 생각만큼 물이 따뜻하지 않아서 오랫 동안 앉아 있어도 이마에 좀 처럼 땀이 베이지는 않았습니다.
무료 족탕에서 시간 떼우는 남자들
하지만 나무로 상자를 만들어서 무릎까지 상자 속에 넣고 있으면 따뜻한 수증기로 족탕을 하는 시설이 있었는데, 인공으로 물을 가열하여 수증기를 보내는 기계 시설이 되어 있어 온도가 높았습니다. 처음엔 일본 아줌마들이 앉아서 수다 떠는 모습을 지켜만 보다가 막상 한 명이 발을 넣어보더니 "아주 따뜻하고 좋다"고 하자 너도 나도 자리를 채워 않아 채험해 보았답니다.
추운 날씨 탓일 수도 있겠지만 온천수 족탕 보다 증기 족탕이 더 따뜻하고 만족 스러웠습니다. 아래 사진으로 보는 것 처럼 6 ~7명 정도가 동시에 증기 족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2~3명이 앉아 있을 때가지는 온도가 낮아지지 않았지만 빈 자리 없이 꽉 채워 않으니 금새 온도가 낮아지더군요.
일찍 온천에서 나온 남자들 10명은 마을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리다가 결국 모두 무료 족탕에 모였습니다. 족탕에 둘어 앉아 수다를 떨면서 여러 사람이 비싼 온천에서 서둘러 나온 것을 후회하면 2시간을 꽉 채우고 나오는 여자 동료들을 기다렸습니다.
역시 목욕은 여자들이 체질 이더군요. 비싼 입욕료를 감안하면 여성들은 '와라쿠엔' 남성들은 대중목욕탕 '시볼트 노유'로 가야 되겠더군요.
동북아시아에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한파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이 꽁꽁 얼어 붙었더군요. 대만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 간 것도 아닌데, 수 십명이 한파로 목숨을 잃었고, 일본도 수십년 만의 한파라고 하더군요. 결국 자전거 여행을 왔다가 온천을 가게 된 것은 추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취소하고 온천 여행을 다녀온 것에 일행 모두가 만족해하였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사가현까지 다녀오느라 왕복 3시간 30여 분을 차에서 보내야 했던 것은 아쉬웠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고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이고 돌아오는 길이 행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