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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30년 시민운동 외길, 기록으로 남기다

by 이윤기 201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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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산 전점석이 쓴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

지난 2월말 30년 YMCA 운동의 외길을 걸어 온 한 시민운동가가 퇴임하였다.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YMCA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한 그는 진주와 창원YMCA에서 꼬박 30년을 YMCA 활동가로 살았다.

이마에 큰 점이 있는 그는 ‘전점석’이다. 그의 호는 ‘우산’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할 때 그 ‘우산’이다. 그의 중학교 동창인 시인 김효사 선생이 퇴임식을 앞둔 어느 날 아침 전화를 걸어와 대뜸 ‘우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그리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의 YMCA운동, 시민운동 30년을 가장 잘 표현한 호인지도 모른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우공이 산을 옮기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바꾸는 느리고 더딘 일에 헌신하였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로서 그는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일하였지만 늘 희망을 잃지 않았다.

자료정리, 꼼꼼한 기록의 산물

퇴임 후 6개월쯤 되었을 때 출판기념회 소식을 전해 들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1년 동안 창원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경험하였던 크고 작은 일들을 기록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창원에서 지역운동 경험을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과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그는 기록의 ‘달인’이다. 이미 그는 10년 전에 진주YMCA를 그만두고 창원YMCA로 옮겨올 때, 진주에서 겪었던 20년의 시민운동 기록을 <진주에서 지역운동하기>로 엮어냈었다. 당시 그 책을 읽은 많은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꼼꼼한 자료정리와 기록습관에 탄복하였다.

이번에 펴낸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과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도 메모와 기록 그리고 자료정리의 산물이다. 리더십 약 7~8년 전에 여러 명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웍샵에 참여하였다. 당시 웍샵과정에서 프랭클린 플래너를 소개받았는데, 대부분 2~3달 길어야 1~2년을 쓰고 그만두었다.

당시 교육참가자 중에 지금까지 꾸준히 플래너를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지역에서는 전점석 전 사무총장 외에 딱 한 명이 더 있다. 그는 늘 플래너를 들고 다니며 크고 작은 일들을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최근에는 아이폰을 장만하여 메모와 기록 그리고 사진도 찍어두는 모양이다.



살기좋은 도시, 친환경 생태도시의 꿈

이번에 낸 책에도 그런 꼼꼼한 기록과 자료의 분류, 보관으로 가능하였다. 두 권 책 중에서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은 일간 신문과 정기간행물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경남도민일보, 경남신문, 경남일보 같은 일간 신문에 실린 글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펴내는 <월간 소비자> 같은 정기간행물에 실린 글들도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다.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에 실린 글들은 사실 창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를 모은 책은 아니다.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고민, 녹색교통, 대중교통에 대한 고민, 친환경 건축에 대한 고민,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에 대한 고민,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고민과 단상을 풀어 쓴 책이다.

앞서 나열한 이런 고민들을 안고 선진 외국의 사례도 소개하고 있고, 다양한 새로운 제안과 대안을 제시하고도 하였다. 모두 시민운동가로서 저자의 오랜 경험과 통찰력을 담아 여러 언론에 쓴 글들을 다듬어 책으로 묶은 것이다.

실질적인 시민감사관제도의 도입을 위하여/ 성공적인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위하여/ 동네마다 소중한 자기역사를 남기자/ 단독주택에서 주거복지 문제/ 착한 건물 나쁜 건물/ 민관이 함께 만드는 생태주거단지/ 마산 돝섬에 도주가 없다/ 도청앞 중앙로에 시내버스가 없다/ 적은 돈으로 살기좋게 가꾼 꾸리찌바

이 책에 실린 60여 편의 칼럼 중 일부의 제목이다. 살기 좋은 도시,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주거환경, 동네와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중한 글들을 모아놓았다. 그가 직접 가 본 호주, 독일, 일본 등의 사례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책을 다시 읽으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 만약 이 책이 많이 팔려 재판을 찍는다면 꼭 그리했으면 좋겠는데 60여 편의 칼럼들이 시간 순으로만 실려 있다는 아쉬움이다. 비슷한 주제의 관련된 글들을 분류하여 엮었으면 더 좋았을 뻔하였다. 

첨예한 갈등 중재과정 모두 실명으로 기록했다

또 다른 책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 경남 민방사업자 선정 심사위원 참여, 창원 토월천변 도로확장문제 민관협의회 참여, 창원시 사회교육센터 위탁 관련 갈등 중재, 탄핵무효 촛불시위 과정에서 있었던 시민단체 간의 갈등, 창원롯데마트 건축심의 사례를 정리하였다.

특히 이 책에는 창원시와 환경단체, 창원시와 사회교육센터 위탁 시민단체 간의 첨예한 갈등을 민관협의회를 통해 중재한 경험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지역 시민단체와 창원시의 갈등을 민관협의회를 통해 풀어나간 경험과 2005년 9월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주관한 갈등관리 전문가 양성 워크샵에 참여한 계기로 여러 차례 갈등의 협상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 책에는 시민단체와 지방정부, 시민단체와 기업, 지방정부와 기업 간에 일어난 첨예한 갈등을 원만하게 협상을 통해 해결해나간 사례가 매우 자세히 소개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탄핵무효 촛불시위 과정에서 일어난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의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는 과정도 가감 없이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뿐만 아니라 전점석 전 사무총장이 쓴 글은 모두 실명으로 되어있다. 여러 가지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과 시민단체 간의 갈등을 상세히 기록하였기 때문에 실명으로 기록을 남기는 부담이 있었을 법도 한데 모든 관련자들의 발언과 행동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이것은 저자가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그만큼 자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사람들은 실명이 거명되어 기분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실명으로 거론된 사람들 중에는 거북하거나 불편한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렇지만 작은 지역의 역사라 하더라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참 중요하한 일이다.

“흔히 우리 지역에는 기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앞으로 나가기가 바빠서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여유가 부족하기도 하다. 시민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지역운동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를 위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잘잘못을 되짚어보는 자기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저자가 직접 밝힌 출판의 변이다. 객관적인 평가와 자기성찰을 위해서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책을 썼다는 것이다. 추천의 글을 쓴 사회학자인 경남발전연구원 이은진 원장은 기록은 사회적 책임, 공적인 책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기록은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표현"

“기록은 자신이 한 일을 정리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표현이다. 즉 내가 하는 일은 주위에서, 그리고 후세에 누가 읽게 되기에 사심보다는 공공적인 의식을 더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은, 기록을 무시하는 사람에 비해 공적인 활동에서 책임감이 크고 공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

크고 작은 일들이 마무리 될 때마다 그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지만, 이 두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 위하여 9권의 수첩과 먼지 쌓인 수십 권의 파일을 뒤적이고 여러 관련자들에게 검토를 받아 공적인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한편 이 책에는 성격이 조금 다른 글이 두 편 더 포함되어 있는데, 한 편은 저자가 2006년 시도경찰청 시민인권보호단의 일원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한 소감을 적은 ‘25년 만에 찾아간 남영동 대공분실’ 이라는 글이다.

25년 만이라는 것은 저자가 1981년 5월에 영문도 모른 채 부산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불범 감금된 상태에서 1주일 이상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의 소회와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저자의 단상이 잘 드러난 글이다.

또 다른 글 한편은 ‘창원YMCA 친환경 건축’ 과정을 정리한 글이다. 창원YMCA 재임기간 동안에 세운 이 건물은 ‘제 4회 대한민국 생태환경건축 대상 설계부문 우수상’과 ‘제 8회 경상남도 건축대상제 우수건축전부문 은상’을 수상한 지역의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물이다.

이 글에는 2006년 4월 토지구입계약부터 2년 8개월 동안의 건축과정과 건축을 위한 모금 과정이 자세한 기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을 직접 본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세한 기록에 놀란다. 마치 조선시대 사관이 왕실의 역사를 기록하였던 것처럼, 누구누구가 어디서만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결정을 하였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젊은 60대다. 한겨레에 칼럼을 쓰는 김선주 선생이 활기찬 노년을 살아가려면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하여 나이를 계산하라고 권하였는데 저자에게 딱 어울리는 셈법이다. 블로그를 만들어 네티즌들과 소통하고 아이폰으로 무장하고 페이스북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디지털 60대이다. 최근에는 경남지역의 소비자운동 단체의 10년 활동을 정리하는 역사책을 집필 중이다. 그의 30년 시민운동과 꼼꼼한 자료정리와 기록이 새로운 시민운동의 자료로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전점석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치밀함과 꼼꼼함이다.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과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 두 권은 전점석 사무총장의 30년 YMCA 운동과 시민사회운동 보고서이다. 많은 후배들이 그가 몸으로 보여준 모범 때문에 이 두 권의 책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저작권 포기한 카피레프트 도서, 녹색출판 마크 받은 환경도서

아울러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과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은 책 내용뿐만 아니라 출판과정에 있어서도 특별한 책이다.

우선 이 두 권은 모두 환경보호를 위하여 재생종이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인증하는 녹색출판마크를 사용하였다. 녹색출판마크를 사용하려면 80% 이상의 재생지를 사용하여야하는데 이 책들은 100% 재생용지로 제작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출판기념회 날 현장 판매된 책들은 모두 신문으로 만든 재활용 쇼핑봉투에 담아주었다. 

다른 한 가지는 이 책들은 모두 ‘카피레프트’이다. 블로그에 쓴 글들은 ‘출처표시 및 동일조건변경 허락 2.0’ 표시가 되어있는 경우를 더러 보았지만, 카피레프트 표시를 한 책은 처음 보았다. 이 책에는 “인용, 복제, 배포, 전송, 전시, 방송, 개작 등에 자유롭게 활용”하라고 되어 있다.

다만 저자의 블로그(http://jjseuk.tistory.com)에 올라와 있는 최신파일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이 책이 모든 내용은 그의 블로그에 최신파일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책을 사지 않아도 다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용, 복제, 배포, 전송, 전시, 방송, 개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의 결단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출판사의 결단이기도 하다.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과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을 펴낸 ‘푸른복지’ 출판사는 사회복지 현장과 시민운동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책을 시리즈로 출판하고 있는 곳이다. 복지 현장의 현장지식, 암묵지식, 방법지식을 알리기 위하여 책을 내며 오직 현장 복지인의 책만 출판한다.

저자에게 인세를 지불하지 않는 조건으로 책을 만들어내고, 책을 판매하여 거둔 수익은 모두 다른 활동가의 책을 만들어내는데 다시 투자된다는 것이다. 전점석 전 사무총장의 책 뿐만 아니라 푸른복지에서 출판하는 책은 모우 고지율 100%, 재생지만 100% 사용한다. "나무를 새로 베지 않고 출판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출판 방식 때문인지 2010년에만 5권의 사회복지 현장 활동가들이 쓴 책을 출판하였고, 2011년에도 6권이나 새 책을 출판하였다. 뜻이 서로 잘 맞는 좋은 저자와 좋은 출판사가 만나서 소중한 시민운동 경험이 두 권의 책으로 엮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환경수도 창원으로 가는 길 - 10점
전점석 지음/푸른복지
갈등을 넘어 화해로 가는 길 - 10점
전점석 지음/푸른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