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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여의도 국회 맘에 안드시죠? 선거보다 더 좋은 방법 있어요

by 이윤기 201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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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니스트 칼렌바크, 마이클 필립스가 쓴 <추첨 민주주의>

내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 일하는 것 마음에 드시는가요? 만족스러운가요? 내 손으로 뽑았지만 내 손이 원망스러웠던 기억 많으시지요? 당리당략만 내세우고 잇속만 챙기며 부정부패에 연루된 의원들 보면 기가 막히지요?

선거때는 서민을 위해 일 하겠다고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되겠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막상 당선만 되면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의원들 뽑는 선거 싫으시지요?

그래서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분들도 많으신 줄 압니다. 아무리 좋은 후보를 골라찍어도 늘 나쁜 놈들만 당선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시지요.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것이 가장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하는 환상 혹은 고정관념을 확 바꿔주는 책입니다.

추첨 민주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제도에 처음 꽂힌 것은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가 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은 후입니다.

대항발전을 주장하는 탁월한 정치학자인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대의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아테네의 제비뽑기를 통한 대표 선출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대의제를 민주주의라고 일컫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선거에서 대표를 뽑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선거는 귀족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거를 하면 가장 유명한 사람, 가장 돈 많은 사람, 가장 사회에서 눈에 뜨이는 사람이 뽑히게 되므로 그것은 귀족이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서 만약 대표를 뽑는다고 한다면, 즉 민주적으로 대표를 뽑는다면, 그것은 제비뽑기라야 합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제비로 뽑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눈에 뜨이는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유명한 사람이 선출되는 게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선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비뽑기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며, 같은 사람이 계속 뽑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권력을 쥐고 타락할 가능성도 작다는 것입니다.

제비뽑기가 선거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선출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영감을 준 또 다른 책은 바로 아미쉬 공동체를 소개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아미쉬 공동체에서는 "목사와 집사를 교도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출"한다고 합니다.

세 명 이상의 교도들에게 추천받은 사람들 중에서 제비뽑기로 정하는데, 이는 "목사의 최종선택은 하느님이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제비뽑기에 의한 목사 선발을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름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아테네의 추첨을 통한 대표선출에 관하여 알게 되면서 선거의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과 불균등한 기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부터 크고 작은 여러 모임에서 '제비뽑기'를 통한 대표 선출을 제안해보았지만 번번이 '쓸데없는 소리' 취급을 받았습니다.


제비뽑기가 가장 바람직한 대의민주주의?

그러다가 운 혹은 우연 같은 느낌을 주는 '제비뽑기'라는 단어 대신에 '추첨민주주의'라는 훨씬 세련된 용어를 사용하는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추첨 민주주의>(어니스트 칼렌바크, 마이클 필립스 공저) 저자들은 선거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가장 바람직한 대의민주주의 방식으로 '추첨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생태 환경운동의 실천가이고, 마이클 필립스는 포틀랜드 주립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오랫동안 시민운동가로 활동해온 두 사람은 선거를 뛰어넘는 대안을 고민하면서 벌써 25년 전인 1985년에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들은 미국의 정치구조와 선거로 구성된 의회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면서 '추첨으로 구성하는 하원'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국민 전체의 축소판을 만들어 하원의 구실을 맡기자는 구상"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비뽑기로 대표를 뽑자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과학적인 통계기법을 사용하는 대의기구 구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제안입니다. 아울러 저자들은 현재의 하원은 전체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이 책에 있는 통계들은 모두 1985년 초판 당시의 통계입니다).

"성인 인구의 51퍼세트인 여성은 하원의 4.8퍼센트만을 차지한다. 인구의 12퍼센트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하원의 4.5퍼센트만을 구성한다. 인구의 6퍼센트를 차지하는 히스패닉도 하원의 2.56퍼센트만을 차지해 저대표되고 있다......이런 불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계층이 바로 변호사다. 변호사는 1983년 현재 전체 인구의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하원의 4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거의 모두 백인과 부유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 의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며, 국민의 의사와 국민들이 지지한 대표자들의 의사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의원들은 "선거에서 도움받은 기부자들이 시키는 대로 법안에 서명하고, 도장 찍고, 판단할 뿐, 다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회는 대기업에 고용된 2만 명의 로비스트들과 이익집단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회는 돈 많은 이익집단이 직접 통제하고 있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의회는 국민의 축소판이 아니다!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미국은 가장 적절한 대의 체계를 구성하는 방법을 자주 바꿔왔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미국 역사상 첫 번째 대의체계는 13개주에서는 자유롭고 백인이며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1860년에 이르러 재산요건이 사라졌지만, 일부 주에서는 1965년까지 인두세라는 형식으로 유지됐다. 해방된 아프리카계 노예들은 이론상으로는 1870년에 투표권을 부여받았지만, 여성들은 1920년까지도 투표권이 없었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실질적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한 투표법은 1965년에야 겨우 제정됐다."

미국에서 선거를 통해 대의체계를 구성하는 방식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다행히 그 방향은 국민의 권력이 의회에 더 잘 반영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새로운 대의체계 구성을 제안하기 위하여 아테네 모델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울레(시민대표 평의회)는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모든 아테네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회의 대의체였고, 일반적으로 아테네의 재정 복지에 관한 책임을 졌다. 1년의 임기동안 봉사할 500인으로 구성되는 보울레에 참여하는 사람은 아테네의 10개 부족에서 추첨을 통해 윤번제로 맡았다.......다른 국가의 군 복무, 탈영, 상속 재산의 낭비, 부모 학대, 매매춘 같은 경험은 보울레 구성원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시민들이 또 다시 추첨을 통해 선택된다면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세 번째부터는 금지됐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가 말한 제비뽑기가 맡기는 하지만 흔히 사람들이 제비뽑기에 대하여러가지는 선입견에 비해서 훨씬 정교하고 세련된 제도입니다. 이런 추첨을 통한 선출제도는 베네치아와 피렌체, 스위스에도 남아있었으며, 스페인에서도 바스크 공동체의 지도자 선출방식이었다고 합니다.

The National Assembly of the Korea.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The National Assembly of the Korea.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by golbenge (골뱅이)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배심원 뽑듯이 추첨하면 '좋은 의회' 구성할 수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배심원을 선택하는 시스템 속에 존속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배심원 명단을 추출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추첨으로 의원을 선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추첨으로 새로운 하원 435명을 선택하는 시스템은 단순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조작할 수 없다. 지역에서 각 카운티는 이미 법정에 나갈 배심원 명단을 제공하기 위해 배심원단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최근 배심원후보는 백인과 중산층에 편중되지 않도록 운전면허증 명부, 전화번호부 등 추가적인 근거를 통해 보완해서 선택하고 있다."

이런 종합적인 명부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기초적인 통계절차를 통해 435명의 이름을 무작위로 추출할 수 있으며, 선거를 통한 의원선출 방식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추첨 방식에서도 얼마든지 배제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무작위추출은 절묘하고 체계적인 방식이며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수학이론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수프의 맛을 알아내는 것으로 무작위추출이 충분히 체계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수프의 맛을 얼마나 정확하게 아느냐는 솥단지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수프가 완전하게 섞여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수프의 재료를 확인하는 것도 충분히 잘 섞은 후에 한 국자만 떠서 확인하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원에 포함돼 있는 435명은 국민을 정확하게 반영하기에 충분한 규모라는 것입니다. 만약 추첨을 통해 하원을 구성하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회가 구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원 회의장에 들어서면 50퍼센트 이상의 여성과 약 12퍼센트의 흑인, 6퍼센트의 히스패닉, 그리고 1퍼센트의 다른 인종으로 구성된 의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옷차림이나 태도 때문에 의원들의 전체적인 인상은 중간계급이나 노동계급 사람들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하원의 약 1/4은 블루칼라 노동자들로 채워질 것이고, 그중 일부는 지역 공동체 회의나 노조 집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익숙한 사람들일 것이다 만일 회의장 주변에서 간간히 사람들을 골라낸다면, 그중 10퍼센트 정도는 실업 상태에 있던 의원일 수 있다. 정리 해고된 노동자, 재봉사, 요리사, 트럭 운전사, 선원, 점원도 있다."

전에는 의원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더 많았을 의사나 치과의사, 학교관리자, 회계사, 부동산 중개업자는 한두 명에 불과할 것이며 과거 의회의 절반을 차지하였던 변호사 역시 한두 명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435명이라는 표본은 충분히 크기 때문에 채식주의자, 차가 없는 사람들, 캠핑족과 도보 여행자 그리고 불교도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전체국민이 모여야 하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면 추첨으로 선택된 전체 국민의 대의 체계를 만들면 된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선거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국민 전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의회를 계속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원이 완벽하고 이상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선거를 통한 의원 선출에 비해서는 훨씬 바람직한 대안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추첨 의회는 적어도 현재의 선출 의회보다는 유능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 의회처럼 법안을 읽어보지도 않고 투표할 가능성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며, 합리적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법안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또 회기 말에 200건의 법안을 토론도 없이 통과시키는 그런 일도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의회가 국방부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며 적어도 현재의 의회보다는 부패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선거공영제나 국민발안제, 전자민주주의와 비교하여도 추첨 민주주의가 훨씬 더 합리적이며 전체국민의 의사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추첨민주주의는 막대한 세금을 절약할 수 있으며, 선택된 의원들이 열심히 일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정치참여도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추첨으로 의회를 구성한다는 발상이 그저 신기할 뿐이고 국민들도 이 제도를 처음 접할 때는 놀라는 게 자연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이런 반응이 여성의 투표권이나 낙태의 합법화, 비행기나 식당의 금영 구역, 캔과 병의 강제 재활용 등의 대안을 처음 접하 사람들이 보인 반응과 같다고 생각한다."

추첨 민주주의가 등장하면 장기간 격렬한 정치 투쟁이 일어나겠지만 일단 추첨민주주의가 제대로 이해되기만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추첨민주주의가 미국 건국자들이 만한 '국민의 축소판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이 책 한국어판에는 옮긴이 손우정과 이지문이 쓴 두 편의 보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손우정은 선거의 비민주성과 사회통계를 활용한 추첨의 과학적인 결과가 국민 전체의 축소판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선발과정의 민주성과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또 이지문은 캐나다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 사례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점점 낮아지는 투표율로 인하여 대표의 위기, 참여의 위기, 책임의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추첨 민주주의'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다양한 추첨제 선출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추첨제를 한국사회에 도입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합니다.

여러 제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정당이나 노동조합 활동에서 집행부는 선거를 통해 뽑고 대의원은 추첨을 통해 선출하는 방법입니다. 이 책의 공동저자와 옮긴이들은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인 저는 추첨으로 의회권력을 대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추첨 민주주의 - 10점
어니스트 칼렌바크 & 마이클 필립스 지음, 손우정.이지문 옮김/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