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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선거는 결국 부자들만의 잔치라는데?

by 이윤기 2011.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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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명박의 권력은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나라당이 내홍을 겪고 있고 민주당은 시민사회 세력을 받아들여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하여도 진보, 개혁 세력은 박근혜 대세론에 맞설 후보조차 없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니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전문가 의견을 보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4년을 보낸 국민들이 2012년에 치뤄지는 총선과 대선에 거는 기대는 과거 그 어떤 선거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크다.

그렇다면 원래 선거란 어떤 것일까? 

오늘 소개하는 책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를 쓴 리처드 스위프트는 선거 때문에 유권자들이 "정치 슈퍼스타들의 어릿광대짓을 바라보는 청중, 곧 정치 소비자로 변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체제에 대한 선택에서 민주주의는 승리했지만, 대중의 불만은 점증하고 있다. 투표율을 비롯한 참여의 지표들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인다. 평범한 시민들은 정치 과정에서 멀어지고 있고,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항구적인 정치 계급이다. 돈과 돈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쉽게 민주적 정책 결정의 결과를 주조한다." -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선거 때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주기적으로 투표를 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갖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불만을 감지할 수 있는 첫 번째 지표는 바로 투표율이다.
 
미국에서는 50%에 조금 못 미치는 유권자들만이 가까스로 투표에 참여하며(2000년 대선 49.3%, 하원선거 46.6%), 캐나다에서도 역사 이래 최저투표율을 기록하였으며, 의무 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은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투표율은 지난 20년 동안 심각한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서유럽 15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유권자들의 정당 가입률은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 중반 사이 약 15년 동안 1/3 수준으로 하락하였으며, 한때 300만 명의 당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정당 중 하나였던, 영국 보수당 당원은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당원수가 줄어들면서 정치인들은 미디어 광고와 캠페인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점점 더 소수의 거액 기부자들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국의 예를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투표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2.6%만이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는 반면, 가구 딸린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38.2%가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정치는 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매개가 아니라, 점점 가진 것을 방어해야 하는 기득권층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투표권만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지은이 리처드 스위프트는 이러한 민주주의 위기 원인을 '유권자 소외'에서 찾고 있다. 득표율에 관계없이 최다득표자를 당선시키는 현행 선거제도는 군소정당의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간의 이념 차이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선거 운동 기간이 되면 '모든 유권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 난무하고, 이념과 정책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인물 중심의 선거를 하게 되며, 결국 "상대방이 얼마나 비열하고 하찮은 놈인가를 증명"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유권자들의 무관심이 이처럼 깊어지면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인민에 의한 지배'를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소수의 직업 정치 계급이 등장하면서 누구도 투표권을 빼앗아가지는 않지만, 투표권 행사가 갖는 의미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민의 삶에 핵심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은 인민들이 부분적으로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국민국가의 손을 벗어나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WTO와 같은 국제무역기구, IMF와 같은 국제금융조직이라는 '정치적 최상층'에게 맡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시장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핵심사회 의제를 인민이 결정한다면, 이미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서는 시장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사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개인과 기업에 권력을 부여하는 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마을, 모임에 관한 집단적 토의와 결정은 배제시키고 있다.
 
실제로 수천 개의 다국적기업들과 은행들이 지배하는 현대 경제는 지구적 범주에서 경제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약한 민주주의'로부터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약한 민주주의에서 인민주권은 사유재산권에 포위되어 있으며, 사유재산권은 공동체의 집단적 권리를 좌우하게 된다. 이런 이론은 소유권적 개인주의 개념에 기초한 '강한 시장 약한 민주주의' 모델이다" - 본문 중에서
 
강한 민주주의가 대중의 희망
 
리처드 스위프트는 이러한 약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서는 돌파구를 '강한 민주주의'에서 찾으려고 한다. 강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위기를 시민들이 '자치'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강한 민주주의는, 정치 공동체로서의 자치를 강조하며 민주적 정책 결정과정에서 권력의 평등을 중요시한다.
 
지은이의 주장에 따르면, 예컨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약화시키는 것에 저항하는 시민들, 인근 학교의 폐쇄나 거대한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주민들, 숲과 공원을 지키기 위해 모인 주민들, 유독성 화학 폐기물 무단 방출이나 무차별적인 산업용 벌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중단시키기 위해 모인 주민들, 이러한 민주적 분출은 독재나 약한 민주주의를 더 심화된 '강한 민주주의'로 전환시키기 위한 소중한 자원이다.
 
또한 선출된 의회와 공직자들의 권한을 넘어 버린 세계화의 힘과 행위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역시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세계화 이념을 토대로, 반세계화운동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경제적 민주화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제생활의 지속적인 민주화가 없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정치적 민주주의 수준마저도 침식당할 것이라는 것. 현재의 비민주적인 경제체제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저해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즉, 자본이 인민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자본을 통제하는 경제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강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가 참여를 높일 수 있다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를 쓴 리처드 스위프트는 민주주의가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길은 결국 참여와 자치를 통해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노점상 연합이나 걸스카우트와 같은 다양한 시민사회조직들, 평범한 인민들이 민주적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규칙을 만들고 회원을 정의하며 예산을 표결에 부치고 정책에 대해 논쟁하는 이들의 참여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결국, 현재 무관심한 유권자나 기권자들은 실제 참여 경험을 통해서만 변화되고 교육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적인 일에 대한 관심은 지금처럼 정책 결정이 일반 시민들 권한밖에 있는 한 결코 생길 수 없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처럼 정치에서도 학습과 경험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더 많은 참여를 가능케 하려는 이상은 단지 이상에 그치지 않으며, 다양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핵심 의제에 대한 국민투표, 개별 의원이나 전체 정부에 대한 소환, 다양한 투표 체제, 분권화, 마을 회의, 정치 계급이 안착되지 못하도록 하는 임기 제한, 연방주의 시민배심원 제도 등 민주주의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거의 끝이 없다." - 본문 중에서
 
뿐만, 아니라 선거제도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은 단순 다수대표제를 버리고, 비례대표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단순 다수대표제는 사표방지를 위해 전술적으로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에 자신의 희망에 따라 양심에 더 부합하는 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강한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아울러 리처드 스위프트는 강한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형태로 지방자치를 꼽는다. 이는 모든 결정을 직접 관계된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원리에 기초한 근본적 권력의 분산을 의미한다. 자주관리 극대화 정책은 민주적 실행을 풍부하게 하고 활성화시키며 교육하고 생명력을 갖게 한다.
 
지방의회가 아니더라도 공동주택에서, 작업장에서, 이웃에서 학교와 대학에서, 지방계획위원회나 환경자문위원회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방식으로 우리는 스스로 대표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늘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은 선거권 확대 투쟁에 버금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소수 전천후 대표자들이 독점하는 멀리 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신의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 책임을 지는 사람들과 정기적인 상호 작용을 갖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강한 민주주의에서는 현재 신자유주의하에서 탈정치화되어 있는 여러 의제들이 정치의 장으로 다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도시계획이나 신약 및 농업용 화학비료 승인문제 등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겨진 것들을 시민사회의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게 된다는 뜻이다.

이 책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가지 민주주의가 있다. 바로 약한 민주주의와 강한 민주주의다. 지은이는 강한 민주주의가 오늘날 위기를 맞은 민주주의의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에 지배당하는 약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인민들의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한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고 시민참여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뚜렷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 10점
리처드 스위프트 지음, 서복경 옮김/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