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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책으로 읽는 국수 다큐... 삶과 문화가 보인다

by 이윤기 201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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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미영이 쓴 <대한민국 누들로드> 

<대한민국 누들로드>를 선택한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맛있는 국수집을 많이 알게 될 것이고, 맛있는 국수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국수를 좋아합니다. 국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라면, 짜장면을 말할 것도 없고 잡채나 스파게티까지 면으로 된 것은 다 좋아하는 입맛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와 제 개인블로그에는 제 입맛에 잘 맞는 맛집을 몇 군데씩 소개하기도 하였지요. 

<한겨레 21> 연재 기사에서 시작된 이 책은 그냥 단순히 맛있는 국수집을 소개하는 맛집 리뷰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기원전 3천 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국수의 세계 전파 과정을 담은 대작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아류입니다.

우리나라 각 지방마다 있는 다양한 국수를 소개하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맛있는 국수를 만드는 비법은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냥 흔한 맛 집 이야기는 아니고 다큐멘터리와 맛 집 이야기의 중간쯤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밤 뜨거운 온돌에 앉아 먹는 시원한 동치미막국수는 별미였고, 보릿고개 시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국수의 흔한 재료가 돼준 메밀은 하늘의 선물이었다. 국수가 3천 년을 이어온 인간의 욕망을 담아낸 음식이라는 말은 전국 팔도에서 국수를 치대고 뽑고 삶았던 시간을 따라가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간단한 요깃거리로만 여겨지는 국수 한 그릇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보인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금씩 잊혀져 가지만 사람들이 추억하고 싶어하는 국수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전국의 팔도의 국수집을 통해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엿보고, 사람들이 왜 그런 국수를 만들어 먹었는지 그 지역 자연환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맛집 기사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

실제로 이 책은 지역적 특색을 가진 평양냉면, 함흥냉면, 춘천막국수와 같은 지역 특색이 있는 국수를 두루뭉술하게 소개하지 않습니다.

맛집을 소개하는 신문기사처럼 고성의 백촌막국수, 평창의 현대막국수, 철원의 철원막국수 하는 식으로 상호를 모두 공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원조인지, 음식 맛은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습니다.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서울, 제주도로 나누어 모두 50군데의 이름난 국수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별 유명 국수집 소개와 함께 각각의 지역별로 국수와 함께 먹는 요리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경우 메밀국수, 함흥냉면, 올챙이국수, 콧등치기국수, 칡국수, 막국수를 지역별로 소개한 후에 곁들여 먹는 음식들도 함께 소개합니다.

메밀전, 닭갈비, 편육 같은 음식들을 막국수와 함께 먹는다는군요. 저자는 막국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돼지고기 편육이라고 평가하였더군요. 또 편육이나 수육 대신에 두부와 김치에 농주를 곁들여져도 금상첨화라고 하였습니다.

경상도의 국수로는 안동의 누름국수, 포항 모리국수, 진주냉면, 김해 물국수, 부산 밀면, 의령소바, 산청어탕국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산밀면이나 의령소바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국수입니다.

또 경상도는 다른 지역에 비하여 국수에 곁들이는 음식은 취약하다고 합니다. 의령 메밀 소바를 소개하면서 의령 망개떡을 소개하고 있고, 포항의 모리국수에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근처 양조장에서 파는 '집집이 동동주'와 시큼한 막걸리를 권합니다. 산청의 어탕국수에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생선튀김을 곁들여 보라고 합니다.

전라도 국수로는 군산 팥칼국수와 해물칼국수, 김제 도토리 칼국수, 담양 비빔국수와 선지국수, 보성의 팥칼국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국수는 팥칼국수입니다. 다른 지역에도 국수 전문점을 중심으로 팥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생기고 있지만, 아직은 전라도가 제대로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팥칼국수, 해물칼국수를 소개하는 전라도 편에서는 삼색만두, 대통암뽕순대, 약달걀과 같은 독특한 음식들이 있다고 합니다. 선지국수와 대통암뽕순대, 칼국수와 삼색 만두, 잔치국수에는 멸치국물과 한약재를 넣은 물에 삶아낸 약달걀이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전라도는 국수보다 국수에 곁들이는 음식들이 더 푸짐한 것 같더군요. 


   
지역별 국수와 푸짐한 곁들이 음식들

충청도에도 특별한 국수들이 있습니다. 제천의 토리면, 충주의 사과국수, 옥천의 생선국수, 대전의 평양냉면과 칼국수, 금산과 예산의 어죽과 칼국수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토리면과 사과국수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된 국수입니다. 토리면은 메밀국수위에 도토리묵을 얹은 국수이고, 사과국수는 밀가루 반죽에 사과즙을 넣어 만든 국수인데 맛은 그냥 밋밋한 모양입니다.

충청도 국수와 함께 먹는 음식으로 꼬치갈비, 인삼튀김, 피라미 튀김 등을 소개합니다. 메밀국수에 도토리묵을 얹은 토리면에는 꼬치갈비가 생선국수에는 도리뱅뱅이와 피라미 튀김이, 국수와 밥을 함께 말아내는 금산 어죽에는 인삼튀김이 제격이라고 합니다.

팔도의 국수가 다 모이는 경기도와 서울 국수는 냉면, 막국수, 칼국수, 잔치국수 등 전국의 모든 국수가 모여 있답니다. 경기도의 경우 서해안을 끼고 있어 식재료가 풍성하고 다양하며 실향민 많이 모여 살던 지역을 중심으로 유명한 이북 국수집이 많다고 합니다.

한편, 서울의 경우 음식점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정도랍니다. 전통의 맛을 강조하는 국수집들도 많이 있지만, 오히려 젊은층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메뉴, 외국의 면요리를 차용한 신메뉴가 꾸준히 개발되고 실험되는 곳도 서울이라고 합니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 곁들이는 음식도 종류가 많습니다. 막국수와 냉면에는 편육이나 고기완자가 칼국수에는 해물파전, 납작만두 등이 곁들이는 음식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합니다.

바다 건너에도 유명한 국수집들이 있는데, 서귀포 밀면, 고기국수, 회국수, 성게국수 그리고 우도의 땅콩 국수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서귀포 밀면이나 고기국수는 모두 돼지고기 수육과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회국수는 싱싱한 제철 횟감으로 만든 비빔국수 종류이고 성게국수는 성게알을 고명으로 올린 국수입니다.

우도의 콩국수는 콩대신 섬에서 많이 나는 땅콩을 갈아 만든 국수가 별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모양은 콩국수와 비슷한데 땅콩의 기름기가 더해져 개운한 맛이나 시원한 맛은 덜하지만, 고소한 맛과 향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름난 국수집마다 사연 없는 곳 없네...

또 국수와 관련된 인물 인터뷰로는 재미있는 읽을거리입니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만화가 박인권,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을 만납니다. 한복려 원장에게서는 국수에 관한 문헌속 기록, 궁중요리로 먹던 국수, 서민들이 먹던 국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국내 최초로 국수 소재의 만화 <국수의 신>을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박인권과의 인터뷰에서는 국수 만화를 연재하게 된 계기, 3년 간의 취재기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국수, 우리나라 국수의 특징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미각의 제국>을 쓴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과의 인터뷰에서는 음식 맛을 표현하는 법, 음식 맛을 평가 하는 기준 혹은 방법, 맛좋은 국수를 만드는 재료의 차이를 구별하는 법, 국수와 잘 어울리는 김치맛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작은 토막 정보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집에서 해 먹는 국수 레시피 편에서는 소고기육수, 닭고기 육수, 멸치다시마 육수, 조개국물과 같은 재료별 육수 만드는 법, 칼국수, 비빔국수, 냉면 등 국수 종류에 따른 고명과 양념 만드는 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국수공장 견학 이야기, 계절별로 생각나는 국수집,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진 국수집 등을 차레차례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경남 지역 국수집들은 대부분 직접 가서 국수를 먹어 본 집들이었습니다.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맛은 괜찮은 집들이더군요.

국수 따라 방방곡곡을 다지며 건져낸 국수와 국수집에 얽힌 사연이 잘 스토리텔링 되어 재미있는 읽을거리이기는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아닌 평범한 손님들이 식당에 갔을 때도 똑같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내놓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책에서 소개한 식당 중에는 이른바 맛 집으로 소문이 난후 손님이 몰려들자 음식 맛도 떨어지고 손님을 대하는 것도 예전만 못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 손님 많은 유명 맛집은 이래도 되나?)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유익한 정보입니다.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한 덕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맛집 정보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큐레이터가 걸러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행운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소개하는 팔도의 국수집들은 신뢰도 높은 언론사, 한겨레 21 기자를 지낸 김미영의 '큐레이션'을 거친 식당들이라는 것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모든 종류의 국수를 다 좋아하기 때문에 타지로 갈 때마다 이 책에 소개한 국수들을 하나씩 찾아가 먹어보는 호사를 누릴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누들로드 - 10점
김미영 지음/브레인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