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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 정치

공선옥, 우리시대 마지막 전사 출신 정치인 이학영

by 이윤기 201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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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시민운동가였던 이학영이 정치를 시작하고 난 뒤 문인들 중에서도 그의 정치 진출을 지지해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원규 시인, 박남규 시인이 북 콘서트에 참가하여 이학영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이야기하였구요.

[관련포스팅] -  이원규 시인, 돌아보면 언제나 그가 있었네...

최근에는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공선옥 작가가 새로운 시민정치를 내걸고 현실 정치판에 뛰어든 이학영을 지지하는 글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공선옥 작가는 10여년 전에 순천에 살고 싶다고 불쑥 이학영 시인을 찾아간 것이 첫 만남이었다고 합니다. 이원규 시인은 김남주 시인이 '순천에 가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이학영을 소개하였다고 했지요.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 순천에 가면 꼭 만나야 할 사람이거나 혹은 부담없이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살 가운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친정 큰오빠같은'사람, 맑고 고운 이학영 이 정치를 한다는 소릴 듣고 '아이구'하는 소리가 먼저 나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좋은 일이라고 여긴 것은 남다릅니다.

"우리시대가 '전사'출신 정치인을 만나기는 이학영으로서 마지막일것이며, '시인' 출신 정치인을 만나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닐른지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습니다.
'전사'로서의 그 불굴의 의지로, '시인'으로서의 그 '눈물 많은 영혼으로 하는 정치를 저는 꼭 보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언제 또 한번 이런 전사, 이런 시인을 정치인으로 가져보는 행운을 누려볼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냥 운동권 출신이 정치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공선옥 작가가 말한 '전사' 출신 정치인이란 그저 그렇고 그런 운동권 출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민전 '전사' 김남주 시인이 쓴 시에 등장하는 바로 그 '전사'였습니다.

전사

일상 생활에서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간 엄수가 규율엄수의 초보임을 알고
일분 일초를 어기지 않았다
그리고 동지 위하기를 제몸같이 하면서도
비판과 자기비판은 철두철미했으며
결코 비판의 무기를 동지 공격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조직생활에서 그는 사생활을 희생시켰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일을 기꺼이 해냈다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먼저 질서와 체계를 세워
침착 기민하게 처리해 나갔으며
꿈속에서도 모두의 미래를 위해
투사적 검토로 전략과 전술을 걱정했다


이윽고 공격의 때는 와
진격의 나팔소리 드높아지고
그가 무장하고 일어서면
바위로 험한 산과 같았다
적을 향한 증오의 화살은
독수리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
그리고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의 준비에 착수했으며
그때마다 그는 혁명가로서 자기 자신을 잊은 적이 없었다.


공선옥 작가는 편지 끝에 이학영의 동지 김남주를 생각하며 썼다고 밝혔더군요. 그렇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그런 '전사' 출신 정치인은 어쩌면 우리시대에 이학영이 마지막 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토요일 밤, 아프리카 TV 망치부인 시사수다방에 출연한 이학영 시인이 털어놓은 민청학련 사건, 남민전 사건 그리고 그후 시민운동가로 살아 온 삶에 비춰보면 김남주 시에 나오는 '전사'의 모습이 여러 번 겹쳐지더군요.

실제로 그는 " 이름 빛내지 않았고 모양 꾸며, 얼굴 내밀지도 않았다" 는 표현에 딱 어울립니다.
"동지 위하기를 제몸같이 하면서도",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가리지 않았다 "는 표현도 딱 떨어졌습니다.

아울러 공선옥 작가는 시인 출신 정치인을 만나는 것은 처음일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시집나부랭이를 낸 정치인이야 더러 있겠지만,  '눈물 많은 영혼'을 가진 시인은 흔치 않겠지요.

그는, 우리시대 사람들이 또 한 번 이런 전사, 이런 시인 출신 정치인을 가져보는 것은 행운이라고 하였더군요. 정말이지 따뜻한 영혼을 가진 작가 공선옥이 행운이라고 여기는 그런 정치인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선옥 작가 편지 전문]

이학영 선생님 정말 반갑습니다.

십년 전인지, 그보다 더 전인지 언젠가 제가 순천에 살고 싶다고 초면인 선생님을 불쑥 찾아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못나게 산 누이를 다른 식구들은 다 구박하는데도 유일하게 감싸주는 친정 큰오빠같이 살갑게  맞아주셨던 그날이 왜 그렇게 오래 잊히지 않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날, 비조차 오는데 또한번의 '살아보겠다고 애쓰던 짓'에 실패를 하고 그래도 또 어떻게 새끼들 데리고 살아보겠다고 나선 길이었던가 봅니다. 

제가 살던 그곳 곡성에서 '가차운 곳'이 순천이라서였겠지만, 그곳을 가 살고자 맘냈던이 하마 이학영선생이 거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어떤 '힌트'처럼 다가왔던 것일까요.

하여튼지간에 그날,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새끼들 줄래줄래 데리고 가서 집을 알아봐달라고 하고 밥도 먹고 선생댁에서 잠도 자고 나왓던것이 생각납니다.

그때 그 곱던 사모님, 왠지모르게 기대고 싶던 그 어여쁜 올케같던 사모님도 많이 생각나고요. 한길이었는지 새길이었던지, 하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제 그 아이들도 다 컸겠군요)도 생각나고요.

정갈한 거실에 꽂혀있던 시집과 오래묵은 '말'지도 생각나고요. 그렇게 고운것 투성이였던 이학영선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페로움만 잔뜩 끼쳐놓고 저는 또 소식한자도 주지 못한 채 순천을 비껴 뜬금없이 여수에서 살았더랬습니다.

그 사이에도  아무것도 챙겨준것 없고 무심함으로 일관하며 어줍잖은 제 앞가림에나 코박고 살 적에도 저는 이학영 선생이 함께하는 '순천작가회의' 사람들이 보내오는 그 귀하디 귀한 '사람의깊이'라는 책을 염치도 없이 꼬박꼬박 받아보곤 했습니다. 거기에 실린 또 금쪽같던 시들 속에서 '이학영 시인'의 시를 만나는 기쁨을 홀로 누렸습니다.

그 '친정 큰오빠같은'사람이, 그 '시인'이, 그 맑고 고운 사람이, 이제는 덜 힘들었으면 했는데,  이제나 좀 편히 살면 좋겠는데 굳이 고생길을 가신다는 소식을 저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같은 학부형이었던 인연을 가진  춘천 이재욱선생으로부터 전해듣고 아이고, 하는 소리가 먼저 나왔더랬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참 좋은 일입니다.

우리시대가 '전사'출신 정치인을 만나기는 이학영으로서 마지막일것이며, '시인' 출신 정치인을 만나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닐른지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습니다.

'전사'로서의 그 불굴의 의지로, '시인'으로서의 그 '눈물 많은 영혼으로  하는 정치를 저는 꼭 보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언제 또 한번 이런 전사, 이런 시인을 정치인으로 가져보는 행운을 누려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동지, '김남주 형'이 많이 생각나는 2012년 1월, 눈이 많이 쌓인 아침입니다. 
 
공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