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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가난한 집에 아이가 많은 이유(?)

by 이윤기 200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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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풍자문학의 거장  아지즈 네신이 쓴 <개가 남긴 한마디>를 소개 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의 작품 중 앞서 국내에 소개 된 바 있는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를 소개한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는 똥파리와 무화과씨앗 같은 작고 하잘 것 없는 것들의 삶에 빗대어 상을 바꾸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아지즈 네신은 처음에는 ‘베디아 네신’이란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44년 육군 중위로 퇴역한 뒤, 신문기자를 거쳐 저널리스트로 일하였는데, 당시 <카라괴즈> 등의 신문에 발표한 사회 풍자 소설과 콩트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915년에 태어난 그의 본명은 '흐멧 누스렛'이다. 90여 년 전에 태어난 아지즈 네신이 남긴 작품은 대략 50여 년 전 터키 사회를 풍자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21세기 한국을 풍자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정치와 교육, 종교, 문화, 사회 문제 등 여러 분야를 조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정치, 교육, 문화, 종교,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해박한 이해는 각 분야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부패와 부조리 악습과 폐단을 ‘풍자’를 통해 꼬집는 것이다.

아지즈 네신은 200개가 넘는 필명으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100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는 활발한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독재권력에 맞서 250번이 넘는 재판을 받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실천적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또한 당대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후에도 검소하다 못해 ‘구두쇠’ 소리를 들을 정도로 소박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책을 번역한 이난아는 터키에서 공부하는 동안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네신을 여러 번 보았는데,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한다.

동물과 식물에 빗댄 인간세상의 모습

네신은 검소하고 알뜰하게 생활하며 모은 재산을 모두 ‘네신 재단’을 설립하는데 바쳤을 뿐만 아니라 인세를 비롯한 자신의 모든 수입을 재단에 바쳤다고 한다. 자신이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네신은 전 재산을 부모 없는 아이와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하는 활동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아이들,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하여 전 재산을 바쳐 네신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도 여러 편 집필하였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역시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한다.

풍자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에 빗대서 재치 있게 비판하는 말이나 글을 말한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에서 작가는 동물과 식물의 삶에 빗대서 재치 있게 세상을 비판하 하며 인간의 삶을 비틀어 보여주고 있다.

제국주의를 고발하기도 하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른 바 없는 상황이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끝없는 도전, 그리고 인간들의 권력욕과 질투심,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네신은 작품을 통해, “자유와 평등, 화해가 꽃피는 세상, 인간이 존중받는 세상, 억압에서 해방된 새로운 인간상”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청소년을 위하여 쓴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는 촌철살인의 풍자보다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따뜻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제목으로 삼은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위대한 똥파리’를 비롯하여 모두 열네 편이 실린 이 책에서 ‘어느 무화과 씨의 꿈’은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살아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화과 열매에 씨가 많은 이유는?

‘어느 무화과 씨의 꿈’은, 세상 가치로 들여다보아도 하잘 것 없고, 스스로 생각해도 보잘 것 없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무화과 씨 이야기다. 달콤한 열매 속에서 자라던 무화과씨 하나가 어느 날 엄마에게 왜 이렇게 형제가 많은지 묻는다.

여러분은 무화과 열매 속에 왜 그렇게 씨가 많은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무화과나무는 열매 속에 자라는 ‘씨앗’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바깥세상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을 아주 많이 남기지.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종족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짓인 셈이지.” (본문 중에서)

그렇다. 무화과나무에는 수백 개의 열매들이 달리고, 그 열매들 뱃속에는 또 수백 개의 씨들이 들어있다. 그렇지만, 이 수백 개가 넘는 열매들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씨들 가운데, 온전히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것은 불과 몇 알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무화과 열매 대부분을 따서 먹기 때문에 어떤 해는 수많은 씨앗 중에서 단 한 알도 무화과나무로 자라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무화과 열매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열매가 달콤하여 사람이나 동물, 새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이 세상에 모든 생물은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뿔이 있거나, 가시가 있고, 뒷발질을 잘하거나 아주 빨리 뛰고, 가죽이 매우 두텁거나 이빨이 날카롭거나 모두 무기를 지니고 있단다.

“우리 무화과에게는 이렇게 특별히 몸을 보호하고 방어할 만한 무기가 없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씨들뿐이야. 가련한 뽕나무들도 우리와 처지가 똑같아. 그러니까 이렇게 쉼 없이 번식을 하는 것이지. 그것만이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본문 중에서)

힘없고 가난한 것들의 강한 생명력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특별한 무기가 없는 풀이나 나무 그리고 연약한 동물들은 모두 새끼를 아주 많이 낳은 방법으로 종족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토끼와 같이 연약한 동물들은 한꺼번에 여러 마리 새끼를 낳고, 무화과나 뽕나무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맺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

엄마인 무화과나무는 씨앗인 아이에게 이런 점은 사람들도 만찬가지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 사람에게 부는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무기 역할을 한단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들을 많이 낳을 수밖에 없단다.”(본문 중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가 제대로 돌볼 수 없어 죽어버릴 확률도 높고, 환경이 나빠 병에 걸릴 가능성도 높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도 없으며, 영양결핍으로 죽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엄마 무화과나무는 “대부분 무화과 열매가 달콤한 맛 때문에 사람과 동물들에게 먹이가 되지만, 무화과씨는 아주 튼튼하기 때문에 소화기관을 거쳐서 다시 배설이 되어도 씨앗이 나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것들의 생명력이 훨씬 더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엄마 무화과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씨앗은 어느 날 참새에게 먹힌 후에 배설물을 통해 밖으로 나와 큰 성벽 돌 틈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조금씩 자란다.

무화가나무가 새로 자라는 곳은 영주가 사는 대저택과 노동자마을 그리고 영주에게 벌 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감옥을 모두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였다. 바위틈 깊숙이 뿌리를 내린 무화과나무는 성벽과 대저택 그리고 감옥을 모두 무너뜨릴 만한 힘을 갖게 된다.

작은 무화과 씨앗이 세상을 바꾸다.

성벽에 가로막혀 각각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오랫동안 고민하던 무화과나무는 마침내 자신의 온 몸을 바쳐 성벽을 허물어 버리는 선택을 한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무화과 씨 한 알이 성벽과 대저택 그리고 감옥을 허물어뜨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면 그들도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면 그들도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벽을 허물 수 있게 되리라.”(본문 중에서)

성벽을 허물고 돌 더미에 깔려 죽은 무화과나무는 영주와 노동자 그리고 죄수들이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왜냐하면, 수많은 무화과 씨들이 있어 언젠가는 사람들이 하잘 것 없는 무화과나무에게서 벽을 허무는 힘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지즈 네신은 젊은 세대들에게 자연의 섭리와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들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언젠가는 허물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날카로운 풍자로 유명한 네신이지만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에서는 동화 같은 잔잔한 속삭임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감동과 재미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