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휴대폰 통화 때 전자파 계란도 익힌다?

by 이윤기 2012. 4. 4.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서평] 베페 그릴로가 쓴 <진실을 말하는 광대>②

엊그제 베페 그릴로가 쓴 <진실을 말하는 광대> 일부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도 같은 책을 이어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2012/04/02 - 나는꼼수다, MBC에 출연하면 시청률은?

엊그제는 주로 V데이 운동(Vaffa-day, <나는꼼수다> 식으로 표현하면 '씨바 데이'쯤 될까?)을 중심으로 베페 그릴로의 반정부, 반부패 활동에 관하여 소개드렸는데요.

오늘은 물, 환경, 교통, 관계, 성장으로 관심이 확장된 '파이브 스타'운동과 관련이 있는 엣세이와 칼럼 두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관심 영역이 점점 넓고 깊게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글이 바로 자동차 속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과속 매우 값싼 죽음의 경제학'이라는 글입니다.

자동차 속도와 관련해서는 미국 대선에도 출마했던 유명한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가 GM 자동차의 품질 불량과 기술적 하자를 고발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글이 먼저 생각나는데요.

흔히 사람들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자동차의 성능에 하자가 있거나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경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페 그릴로는 뛰어난 성능을 가진 자동차가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기 전만 하여도 운전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동차의 성능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속도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페 그릴로는 이 글에서 자동차 속도에 비례하여 사망하고가 증가하는데, 왜 정부는 자동차 속도를 더 규제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자동차, 빠른 속도에서는 안전하지 않다... 속도를 늦춰라  

짧은 이 글은 자동차문화와 관련한 아주 인상 깊은 내용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베페 그릴로는 '과속 매우 값싼 죽음의 경제학'이라는 글을 통해 이탈리아에서 매년, 매일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한 해에 약 7000명의 사람이 이탈리아의 도로 위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루로 치면 대략 20명, 정말 충격적인 숫자다. 더군다나 다치거나 영구적인 불구가 되는 사람은 한 해에 약 7만 명에 달한다. (줄임) 최근 30년간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대략 20만 명에 달한다."

베페 그릴로의 말처럼 도로에서는 매일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자동차 보급이 많이 된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공통된 모습일 것입니다. 그는 도로가 늘어나는 것만큼 무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자동차 회사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의 자동차를 사라고 '광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도위반이 가장 큰 사고원인이지만 빠른 속도의 자동차 광고를 규제하거나 제조과정에서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동차에 의한 경제적인 죽음은 전쟁에서의 죽음보다 가치가 없지만, 자동차 때문에 발생하는죽음은 전쟁터에서지뢰를 밟고 죽는 것 보다 훨씬 그 숫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시속 220km로 질주하는 뛰어난 성능의 자동차 광고가 끝날 때마다 영안실에는 젊은 시신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자고 제안합니다. 자동차 속도를 3km만 줄여도 매년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5000~6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감속으로 얻게 되는 경제적 효과는 자그마치 200억 유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시내 주행속도가 30km에서 50km로 증가하면 교통사고 사망은 8배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왜 못해봤을까요? 왜 과속에 의한 교통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였을까요? 베페 그릴로는 이 글을 통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은 분명히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자동차 회사가 산업을 지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일까요? 혹은 국민들의 인식 문제일까요?  여전히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속철도를 새로 더 만들고,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만들겠다는 관료와 정치인들만 수두룩 합니다.

다음주가 국회의원 총선거인데, 어떤 정당도, 어떤 후보자도 교통사고 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하는 후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 녹색당이 있었군요. 녹색당이라면 다를 수 있겠네요.) 아니 어쩌면 그런 공약을 해서는 결코 당선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휴대전화기 '전자파' 계란도 익는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있습니다. 전자파의 위험을 경고하는 '달걀껍데기 속의 뇌'라는 글에는 가까운 거리에 휴대전화 두 대를 통화 상태로 두고 계란을 올려놓으면 마치 전자레인지 처럼 계란을 익힌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몇 명의 과학자들이 실험했다. 먼저 도자기로 된 계란 받침에 날계란을 얹어서 두 개의 휴대전화기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이 전화기들은 서로 통화 상태로 두었다. 처음 15분 동안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25분 후 계란의 껍데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40분 후 계란의 흰자 부분이 익었다. 65분 후 계란이 완전히 잘 익었다."

저자는 휴대전화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이탈리아 사람들의 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통신회사들은 휴대전화 사용 시 방출되는 전자파의 유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한 꺼번에  30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였던 프란체스코 대통령은 휴대전화 전자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비꼽니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것에 비하면 강도 짓이 더 안전하다

그는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일자리에 관하여 이야기 하면서 젊은이들이 현대판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노동자들 산재는 사고가 아니라 범죄라고 주장합니다. 노동자 안전에 대한 투자는 기업의 이윤을 줄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곧 자본가들의 소득 증가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06년 한 해 동안 건설현장에서 죽은 246명의 죽음과 사망원인을 일일이 열거한 후에 차라리 아프가니스탄이나 레바논으로 일하러 가는 것이 덜 위험할 것이라고 풍자합니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것에 비하면 은행이나 주요소를 습격하는 것은 위험한 축에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산업현장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산재사고 보다 더 무서운 해고 살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없는 대목입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산재는 사고가 아니라 '범죄'이며, 해고는 그냥 범죄가 아니라 살인과 같은 중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광대>는 풍자와 독설로 가득합니다. 베페 그릴로는 블로그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매년 1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대중들과 직접 소통합니다. 이탈리아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닮은꼴입니다. 특히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명박스러운' 혹은 '2MB' 같은 지도자들이 많은 것은 정말 닮은꼴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베페 그릴로는 세상의 부패와 거짓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과 조롱을 퍼붓는 공연으로 뜨거운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 일부입니다.  아쉬운 것은 이탈리아에 대한 부족한 사회 역사적 배경지식, 그리고 문화의 차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번역 때문에 기발한 풍자와 독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광대 - 10점
베페 그릴로 지음, 임지영 옮김/호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