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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착취와 특권이 자본주의 발전 핵심 동력?

by 이윤기 2012.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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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중세에서 산업혁명기까지의 사회경제사를 다룬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원제 : 15-18세기 물질문명 경제 자본주의/ 3권, 1979)의 저자입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대중의 일상생활, 즉 인구 의복 음식 화폐 등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사소한 것에서부터의 역사를 들여다보기를 시도한 책으로 평가 받으며, 인간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역사의 전면으로 내세워 시대별 사회 각층의 존재양식을 규명한" 책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사회학적, 경제학적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으로 평가 받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국내에 6권으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무려 4000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입니다.

 

6권 4000쪽이나 되는 책을 쓴 페르낭 브로델이 세계 역사학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아고 하는데, 이 정도 되는 책은 읽는 사람들도 대단하지요.

 

오늘 소개하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는 제목 그대로 6권 4000쪽으로 출간된 '물질문명고 자본주의'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페르낭 브로델이 1976 존스홉킨스 대학교 강연에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주제와 저술에 관하여 소개한 강연을 수정없이 엮은 책이라고 합니다.

 

주의력 뛰어난 독자라면 이미 발견하였겠지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1979년에 출간되었는데, 오늘 소개한 이 책은 1976년에 있었던 존스홉킨스대  강연을 엮은 책입니다.

 

자본주의의 탄생 역사를 탐구하는 책

 

이 책에서 독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 5단계 같은 것과 전혀 다른 방식의 경제사 접근을 만나게 됩니다. 저자는 "물질문명과 경제생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즉 물질생활은 인류가 이전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자신의 삶 아주 깊숙한 곳에 결합해온 것이다. 마치 우리 몸속의 내장처럼 깊숙한 곳에 흡수되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역사, 200~300년 혹은 1000년 전에도 있었을 역사인데, 어느 순간 우리 눈앞을 보면 오늘날에도 옛 모습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페르낭 브로델은 인간의 삶은 일상생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중요한 동인으로 도시화와 화폐의 역할에 특별히 주목합니다.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발전하였다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과는 크게 다른점입니다.

 

15세기부터 유럽의 인구변화, 농업, 기술, 도시, 화폐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시장경제라고 하는 바탕위에서 자본주의가 번성하였다는 것이지요. 15세기에서 18세기의 변화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15세기, 특히 1450년부터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 추세를 보입니다. 이 시기에 농산물 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반면,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는 덕분에 도시가 농촌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이 시기 경제 회복의 동력이 수공업 장인들의 상점, 좀 더 적절히 표현하자면 도시권 시장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유럽에서 시장과 도시의 형성 그리고 발전 모습에 관하여 짧지만 매우 설득력 있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통해 시장경제가 자유방임에 의하여 발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기만적인 부분, 환영에 불과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산업혁명 일어난다고 자본주의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산업혁명이 주도한 눈부신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이끌었다는 주장에도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아주 먼 과거라고 해도 현재와 완벽하게 단절될 수는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절대적 단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해 과거이 때가 묻지 않은 현재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삶으로 연장되고 또 누적됩니다." (본문 중에서)

 

페르낭 브로델은 18세기에 앞서서 오래 전부터 산업혁명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오늘날 산업혁명을 시도하는 저개발 국가들이 이른바 선진국의 성공 모델을 손에 쥐고도 산업혁명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라는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 원거리 무역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가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자본이 크기 때문에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더 큰 사업을 장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시장의 형성과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본 저자는 교환의 두 가지 유형에 주목합니다.

 

"교환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낮은 곳에 자리하는 교환이고 이러한 교환은 투명하기 때문에 경쟁의 힘이 항상 작용합니다. 다른 하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교환이고 섬세하며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본문 중에서)

 

자본주의는 첫 번째 영역이 아니라 지배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주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최초의 자본주의는 균등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의 최상층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수단을 순차적으로 혹은 한꺼번에 활용하여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단단히 구축해갔습니다. 상거래와 고리대금업, 원거리 무역을 주요한 디딤돌로 삼았고, 관료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안전하고 확실한 가치였던 토지도 활용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질서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하고, 국가가 자본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중립적이거나, 아니면 허약하거나 호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만들어 낸 모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물려받았을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긴 역사에서 보면 자본주의는 '밤의 손님'이라는 겁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자본주의가 당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주변부 착취 통해 발전하였다

 

자본주의가 시장이나 소비를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용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수직적 위계를 활용하여 발전시켰다는 겁니다. 페르낭 브로델은 일정한 지리적 공간을 가진 경제계(지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 경제권)라는 새로운 개념을 활용하는데, 경제계에는 중심부, 중간부, 주변부가 존재하며 주변부는 종속적인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규칙적인 위계 형성에서 활력을 얻습니다. 외곽의 주변부가 중간 지대를 먹여 살리고, 무엇보다 중심부를 먹여 살립니다."(본문 중에서)

 

"자본주의는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약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면 자본주의가 그렇게 드세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지역의 종속적 노동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원시공산제-노예제-농노제-자본주의 순으로 순차적으로 발전한다는 모델과는 전혀 다른 설명입니다. 아울러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은 도시 간 '중심부'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암스테르담,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제노바, 런던 같은 도시들의 역할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심부의 성장과 변화를 통해 페르낭 브로델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왜, 하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을까"하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강조합니다.

 

세계를 착취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을 키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는 풍부한 설명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긴 연구의 결론은 자본주의가 원거리 무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며, 본질적으로 높은 곳의 경제활동에서 비롯되며, 물질생활과 시장경제의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을 대변한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는 상부구조의 현상이며, 소수의 현상이고, 높은 곳의 현상입니다. 자본주의의 특권과 우위는 늘 선택할 여지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괄목할만한 연구를 통해 저자는 "자본주의의 특징과 강점은 이 술수에서 저 술수로, 이러한 형태에서 저러한 형태로 변화하는 능력"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머리가 백 개쯤 달린)히드라 이야기'라고 이 책의 부제를 붙인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 듯합니다.

 

옮긴이 해제부터 읽는 것이 더 좋다

 

옮긴이 김홍식은 해제에서 저자가 "자본주의는 어떤 생산양식이든 가리지 않고 결합하고 변형시켜서 높은 이익을 가져가기 위해 독점을 구현하는 존재, 카멜레온이나 히드라와 같은 존재"라고 결론 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접근을 시도하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는 4000쪽 6권의 방대한 분량 출간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해설서와 같은 책입니다. 존스홉킨스 대학 강연을 엮은 140여 쪽의 얇은 책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 때문에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옮긴이 김홍식이 쓴 '브로델이 들려주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해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르낭 브로델의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이라면 옮긴이 김홍식이 쓴 '해제'를 먼저 읽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 될 수 있습니다.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녹록치 않은 대 저작을 읽기 위한 해설서이기도 하지만,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자체만으로도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다른 역사, 사회학적 접근을 경험할 수 있는 굉장한 책입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 10점
페르낭 브로델 지음, 김홍식 옮김/갈라파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