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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명품'보다 무서운 유혹은 '싼것'

by 이윤기 201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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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습니다. 주말에 시장에 나가 일주일 먹을 것들을 사다보면 금새 5만원, 10만원이 넘습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보다 체감하는 물가가 훨씬 많이 올랐다는 것은 시장을 가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가가 비싼 것은 시장뿐만 아니겠지요. 대형마트를 가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가 비싸지면 결국 사람들은 '좋은 물건' 보다는 '값싼 물건'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물가가 다 올랐는데, 그 중에서도 올 봄에는 과일값이 많이 비싼 것 같습니다. 마트를 가도 시장을 가도 과일 한 봉지 장바구니에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에는 오천원으로 한 봉지씩 살 수 있는 과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만원은 줘야 과일 한 봉지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과일 값으로 체감하는 물가는 두 배로 올랐다는 것입니다.

 

채식을 하기 때문에 고기값을 아끼는 대신에 과일을 넉넉하게 사서 먹는 편입니다.

 

언젠가 서정홍 선생님 강의를 들을 때 우리농업을 살리려면 '과일을 덜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새겨 두었지만, 고기를 덜 먹는 대신에 과일을 많이 먹는 식습관을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렌지? Oh No~ 어륀지! by 정호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마트에서도 시장에서도 가장 싼 값에 살 수 있는 과일은 모두 수입과일들입니다. 딸기, 참외 같은 과일보다 바나나, 포도, 오렌지, 자몽 같은 과일이 훨씬 저렴합니다. 바나나, 포도, 자몽 같은 과일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은 kg당 가격 같은 것을 따져본 것은 아닙니다.

 

그냥 가족들이 1주일 정도 먹을 분량의 과일을 사는데 드는 돈을 비교해보면 딸기, 참외 같은 국산과일보다 바나나, 포도, 자몽 같은 과일이 싸다는 것입니다.

 

대형마트는 말할 것도 없고 재래시장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과일은 모두 수입과일입니다. 과일은 주로 시장통 노점상에서 살 때가 많은데, 노점에서도 대부분 바나나, 오렌지, 포도가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이유는 딱 한 가지 입니다.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수입 과일이 몸에 나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싼 값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올 봄에는 저도 수입과일이 많이 샀습니다.

 

칠레산 포도는 한 번, 미국산 오렌지는 여러 번, 필리핀산 바나나도 자주 구입하였습니다. 대게 봄에는 딸기와 토마토 그리고 늦봄이 되면 참외를 주로 사 먹었는데 올 봄에는 값싼 수입 과일의 유혹에 자주 넘어갔습니다.

 

게다가 바나나의 경우에는 '유기농' 바나나를 구입해도 별로 비싸지 않습니다. 생협이 아닌 그냥 유기농 가게에서는 수입 바나나를 판매하는데 8송이 한 묶음에 대략 4천원 정도입니다.

 

한-칠레 FTA로 국내 포도 농가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머리로는 기억하고 있지만 막상 값 싼 포도를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국내산 포도가 생산되지 않는 계절인데도, 사시사철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에 칠레산 포도가 싼 값이 팔리고 있으니 이를 외면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한-첼레 FTA가 체결될 무렵에 국내 포도 농가를 걱정하던 사람들 중에도, 이제는 "칠레산 포도 먹어보니 달고 맛도 괜찮더라"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도시 소비자들 중에 국내 농가를 걱정하는 분들 보다는 수입 과일에 남아 있는 '잔류 농약' 등으로 인한 가족들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이 분들도 '싼값'에 무력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말 차를 타고 섬진강 길을 달리다가 깜짝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다니다가 보면 길가에 큰 천막을 치고 과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파는 광경을 더러보게 됩니다.

 

섬진강 길을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서 보았을 때 노란 과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첫 눈에는 참외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참외가 많이 나오는 계절이 아니라는 생각이 뒤따라 왔습니다.

 

실제로 참외가 체철일 때는 참외를 쌓아놓고 팔고, 수박철에는 수박, 가을에는 사과, 배, 담감 등 그 때 그때 제철 과일을 쌓아놓고 파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차를 타고 가까이 지나가면서보니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과일은 참외가 아니라 오렌지였습니다. 캘리포니아 국도변도 아닌 섬진강 가에 캘리포니아 오렌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두가 결국 싼값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소비자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쉽게 싼값의 유혹을 떨치게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니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죄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소비자의 입장에서 싼 값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쉽게 손이 가는 것은 결국 싼 것이더군요.

 

좋은 물건의 유혹, 명품의 유혹, 비싼 물건의 유혹보다 더 물리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싼 물건의 유혹인 것 같습니다. 주말마다 차를 타고 대형마트에 몰려가는 것도 결국은 '싼 값'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싼값의 유혹을 이겨야 하는데 참 어려운 일 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