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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명, 평화

밑바닥까지 나를 착취할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다

by 이윤기 201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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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도 더 지났지요. 아마 지난 3월 이었을 겁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책 광고 한 줄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피로사회는 자기착취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신문에 실린 이 광고 카피는 한병철 교수가 쓴 <피로사회>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의 광고 카피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정말 힘들고 피곤한 일들에 파묻혀 새봄을 흘려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쭉 해오던 일이니 나태하게 할 수 없어 내가 아니면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하며 무작정 일에 매달려 지내던 때입니다.

 

아침 신문에서 '피로사회'라는 책 제목과 광고 카피에 확 끌리던 그 날 '자기를 착취하면서 피로사회'를 살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한병철 선생이 쓴 책입니다.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한병철 선생은 독일에서 철학, 독일문화,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지금은 카를스루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합니다.
  
2010년 처음 출간된 <피로사회>는 독일에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으며, 저자는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본문은 고작 60여 쪽(그것도 시집 크기의 문고판)의 짧은 에세이 분량에 불과하지만 자기착취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밑바닥까지 자신을 착취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저자는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성과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자신을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는데, 21세기는 병리학적으로 볼 때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성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비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서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모두 신경성 폭력 현상으로서 면역적 타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병철은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라고 주장합니다. 동질적인 것의 과다,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가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1세기는 푸코가 말하는 병원, 정신병자수용소, 감옥, 병영으로 이루어진 규율사회가 아니라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성과사회라고 합니다.
 
성과사회를 이루는 주체는 성과주체이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와 같다고 주장합니다. "예스 위 캔" 같은 복수형 긍정은 이런 사회를 보여주는 대표적 징후라는 것입니다. 과잉 긍정의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한다는 것이지요.
 
"소진성 증후군은 탈진한 자아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한 영혼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에랭베르에 따르면 우울증은 규율사회의 명령과 금지가 자기 책임과 자기 주도로 대체될 때 확산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과도한 책임 때문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자기노력 때문에 신경증 환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빠져든다는 것이지요.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만족감 성취감 혹은 행복을 느끼게 하면서 착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경증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과잉긍정의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한다
 
저자는 과다한 노동과 성과에 휘둘리는 현대인들은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나 깊은 사색적 주의력 같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잉활동, 노동과 생산의 히스테리는 바로 극단적으로 허무해진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롭고 빈둥거릴 수도 있는 그런 사회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주인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가 됨으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과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만 있고 하지 않을 힘은 없다면 치명적인 활동과잉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긍정성의 과잉이 바로 자기를 착취하는 동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동과잉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상태로 연결되고 자유로운 행동을 완전히 제약하는 결과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과잉 활동사회인 성과사회는 도핑사회로 발전해나간다고 주장합니다.

 
"외과의사가 신경향상제의 도움으로 좀더 정신을 집중하면서 수술할 수 있다면 실수도 줄어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외과의사 뿐만이 아닙니다. 보통사람들도 아로나민OO, O비콤S 같은 영양제, 비타민, 피로회복제, 자양강장제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핑사회'를 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극단적 피로와 탈진을 일으키고, 심리적으로는 과도한 긍정성으로 이어지며 영혼의 경색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기착취는 타자의 착취보다 더 가혹하다
 
한편, 한국어판 <피로사회>에는 피로사회에 담긴 생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강연원고 <우울사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성과주체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묶여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과사회를 규정하는 조동사는 프로이트의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이다."
 
성과주체는 외적인 지배에서 자유롭지만, 대신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기고 자신을 착취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착취는 기만적인 자유의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저자 한병철은 이런 상황을 자본주의적 착취의 진화라고 파악합니다. 타자에 의한 착취가 한계에 이르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자기 착취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타자에 대한 강제에 저항하는 방식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자자면 저자가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였듯이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사색적 삶이야말로 인간을 인간 본연의 존재로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내용들 때문에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낯선 이름의 외국 학자들과 예를 들어주는 생소한 외국 문학작품들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대목도 많았습니다만, "피로사회는 자기착취 사회"라는 새로운 혜안을 얻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아주 돋보이는 책입니다.

 

 


피로사회 - 10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