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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치킨 먹고 해골표본 만들기

by 이윤기 200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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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숲 학교의 재미있는 해골의 방>이라는 긴 제목의 이 책을 제목만 보고 대안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아 보니 '자유학교 이야기'가 아니라 자유의 숲 학교의 '해골 방' 이야기였습니다.

그것도 그냥 해골의 방이 아니라 재미(?)있는 해골의 방 이야기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골이 재미있을 수 있지? 해적을 다룬 영화에 나오는 해골이야 재미있는 해골일 수도 있게지요.

그러나 해골을 직접 본 기억은 대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도 학창 시절에 어두컴컴한 학교의 과학 기자재가 있는 자료실에 들어가서 인체의 해골 모형 보았을 때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싫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다행인 것은 이 책을 펼쳐 읽으보면 해골 이야기가 별로 끔찍하거나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글쓴이의 진솔하고 따뜻한 마음이 문장마다 배어들어 있어서 인지 혹은 번역하신 분의 뛰어난 솜씨인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해골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 둘이 저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는데, 큰 녀석은 <작은 인디언의 숲>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무서움을 많이 타는 초등 5학년 둘째 녀석도 이 해골 이야기 책을 보면서는 무섭다는 말을 하지 않더군요. 전날 광주항쟁의 기록을 만화로 역은 <검정고무신과 함께하는 기영이의 5.18 여행>을 읽고는 잠을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고서는 책을 집에 두지 말라고 하던 녀석이었답니다. 사실 5.18이 훨씬 무서운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지만요.

책을 읽는 동안 놀라운 사실을 또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책을 쓴 사람들은 두 분 선생님이지만, 이 책 주인공은 선생님들과 함께 해골 표본을 만드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들 이야기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선생님보다 해골을 잘 만드는 아이들

선생님이 쓴 책에서 선생님보다 더 해골(골격) 표본을 잘 만드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첫꼭지 <뼈 고르기 삼인방> 요코, 우타, 아야코가 나옵니다. 이 아이들은 선생님도 모르던 틀니 세정제를 사용하여 뼈를 다듬는 방법을 알아냅니다.




다섯 번째 꼭지 <고래 뼈를 줍다 1>은 고래 뼈를 찾아 나서는 미노루의 이야기입니다. 미노루라는 아이가 훗카이도 해안에서 줄박이돌고래 뼈를 주워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이 미노루와 경쟁하는 마음으로 "미노루가 돌고래를 주워 온다면 난 고래 정도는 주워야지"라고 생각하며 고토로 고래 뼈를 주우러 나섰다가 사진만 찍고 돌아오지만, 같은 장소에서 미노루는 다섯 마리의 고래 뼈를 주워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제자와 경쟁하는 모리구치 선생님의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난 부분이라 더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덟 번째 꼭지 <물고기 머리뼈>에는 미노루보다 더 뼈고르기에 재능이 뒤어난 도모키가 나옵니다. 도모키는 "미노루도 어려워했던 물고기 골격 표본을 전문으로 하는 대단한 아이"입니다.

도모기카 물고기 표본을 만드는 이유는 아이들의 소질이 어떻게 개발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도모키가 물고기 표본을 만드는 이유는 자신이 물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도모키가 물고기 표본을 만드는 데 보이는 집념은 참 대단합니다.


집에서 먹는 생선 뼈로 표본 만들기

도모키는 가족들과 저녁을 함게 먹지 않고 매일 혼자 먹으며 물고기 골격 표본 만들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매일 시장에서 똑같은 생선을 사 먹으면서 반복하여 기초를 다졌던 것이다.

"열 마리 정도 먹으면 그럭저럭 짤 수 있게 돼요. 그런 후에 참치 머리를 사서 만들어보면 어느 뼈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대략 알아요."(본문 중에서)


물고기 표본을 잘 만드는 미노루 이야기에서도 모리구치 선생님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도모키는 물고기의 살을 완전하게 제거하고 뼈를 골라내기 위하여 익혀서 뼈를 골라내고 다시 짜맞추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려면 많은 기초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리구치 선생님도 지금까지 감히 써보지 못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골격표본 만들기에 흥미를 가진 의대생들 또한 도모키가 물고기 표본을 만드는데,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접착제'만을 사용하였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답니다.


<프라이드 치킨 뼈>라는 제목의 아홉번째 꼭지에는 다시 미노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노루가 졸업을 앞두고 '프라이드 치킨'으로 골격표본을 만드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골격표본을 만들고 싶어도 재료 구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사례입니다. "프라이드 치킨 아홉 조각으로 머리와 발을 제외한 닭 한마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번에도 모리구치 선생님은 미노루에게 "프라이드 치킨으로도 골격 표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모리구치 선생님, 야스다 선생님과 함께 해골(골격) 표본을 만드는 아이들에게서 '살아있는 교육을 경험'하는 '행복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노루는 독일의 표본제작 전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 독일어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아이들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할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두 분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의 존중하고 사랑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 독일 유학을 떠난 미노루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묻어납니다. 이를테면 "아무쪼록 미노루 같은 인재를 살리는 시설이 세계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말입니다.

이 책은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일본의 자유의 숲 중고등학교에서 생물교사로 근무하였던 모리구치 미쓰루 선생님과 야스다 마모루 선생님이 쓴 책 입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의 말 처럼 "텅빈 과학실이 해골의 방으로 바뀌기까지 15년간의 일들을 기록한" 책 이지만 그냥 해골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지루한 책은 아닙니다.


책을 읽다 보면 교사와 아이들의 따뜻한 '관계'를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이 재미있다고 했던 제 큰아이도 '아이들을 존중하는 교사의 모습'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책을 읽다보면 "아 ~ 나도 한 번 해골(골격) 표본을 만들어 볼까?"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책의 절반은 <골격표본 만드는 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고, 부록 <해골 도감>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프라이드 치킨 골격부터 이름도 낯선 쇠부리슴새, 래이산알바트로스 등 50여 종의 골격 표본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내키시면 프라이드 치킨을 한 마리 시켜먹고 나서, 프라이드 치킨 <해골 표본>부터 한 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