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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욕 잘하고 싶어? 세 가지만 기억해 !

by 이윤기 201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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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쯤 전에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쓴 김열규 교수로부터 '우리는 왜 욕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이지만 분명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 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하여 욕이 가진 긍정적 측면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욕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자와 해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평생 잊지 않을 또 다른 '욕'에 대한 중요한 기억이 하나 더 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을 말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하였던, 유언이나 다름없는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김대중 대통령)
  
그렇습니다.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는 소극적인 행동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마이뉴스> 송상호 시민기자가 쓴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라는 책 제목에 끌린 것도 바로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가 쓴 책 제목은 오래전 MBC <느낌표>를 통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전우익 선생이 쓴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를 쏙 닮았습니다. 혼자만 잘 사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지만, 욕도 마음대로 못하고 사는 세상은 재미가 없는 정도라 아니라 정말 견디기 힘든 억압적인 세상일 겁니다.

 

 

천민들과 어울렸던 예수도 욕 많이 했을 것
  
저자 송상호는 욕의 거장으로 예수, 김삿갓 그리고 춘성 스님을 꼽습니다. 목사 출신인 저자가 욕의 제왕으로 예수를 꼽는 것은 그의 신학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것을 걷어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고 한 요한복음 2:16 말씀을 민중의 언어로 옮겨놓습니다.
 
"야, 이 호로자식들아 내가 몇 번이나 말했냐. 여기서 장사하지 말라고. 귓 구멍에 좆 박아 났냐. 여기는 기도하는 집이지 느네 같은 잡놈들이 장사하는 곳이 아녀."
  
마태복음에 나오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하는 구절을 욕으로 번역합니다. '독사의 자식'이란 그 시대 최고의 욕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너그는 태생이 좆같아서 도저히 구제불능들이다. 너그들 속이 마귀 새끼들 속이니 오죽하겠냐, 이 시발놈들아."
 
예수는 당시 최고권력층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지옥의 판결을 받을 것이다"하고 독설을 퍼붓고 "마귀의 자식", "거짓의 아비"라고 몰아세웁니다. 저자는 창녀, 장애인, 여성, 노약자, 세리들과 어울렸던 예수가 그들을 속 시원하게 하는 욕을 하였기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약자와 술판을 벌이고, 약자를 대변해서 욕하던 예수, 강자에겐 끝없이 강하게 나가던 예수"는 민중들 속에서 욕을 배우고 아픔에 공감하고 강자들에게 토해 냈을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 술도, 욕도 못하고 근엄한 척 하는 자들이 목사질 한다고 나선 것은 모두 웃기는 짓꺼리라는 겁니다.

 
'촌철살인 욕쟁이' 김삿갓, '강호의 최고수' 춘성 스님
 
두 번째 거장은 김삿갓입니다. 그의 일화는 한국판 성인 잡지의 대명사였던 <선데이OO> 류의 잡지 혹은 <OO유머> 같은 잡지를 통해서도 수 없이 많이 재탕, 삼탕 되었지만 다시 봐도 탁월한 내공에 감탄하게 됩니다. 김삿갓을 깔보는 서당 생도들을 엿먹인 유명한 <서당욕설시>입니다.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 방 안에는 모두 높으신 분들 뿐이라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 생도는 모두 10명도 안 되는데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 선생은 나와 보지도 않는구나
 
더 기가막히는 것은 김삿갓 시를 패러디한 네티즌들의 기독교 욕설시 입니다. 

 
皆督乃早知(개독내조지) - 일찍이 모든 기독교를 알아왔지만
 
牧師皆尊物(목사개존물) - 목사들은 모두 잘난 체 하니
 
命薄諸未十(명박제미십) - 명이 짧아 채 십년도 안 되는데,
 
耶蘇來不謁(야소내불알) - 예수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구나
 
뜻을 새겨도 한글 음을 그대로 읽어도 과연 김삿갓의 후예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촌철살인의 작품입니다. 저자는 김삿갓의 행적과 언행이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까닭을 통찰력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관조하는 아웃사이더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거장은 춘성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워낙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대부분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제자였던 춘성스님이 산림법 위반으로 경찰에 잡혀가 취조에 답한 일화입니다.
 
"당신 주소가 뭐야?"
 
"우리 엄마 보지다."
 
"그럼 당신 본적은?"
 
"우리 아버지 자지다."
  
춘성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평생 옷 한 벌로 살다간 진정한 무소유의 실천가였으며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화전을 일구었다고 합니다. 한겨울 찬방에서 14일간 눕지도 먹지도 않은 채 정진하였으며 조선총독부 형사는 물론이고 육영수, 박정희 앞에서도 거침없이 욕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의 욕이 빛난 것은 그의 삶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수행자들과 불자들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하였기 때문에 그의 거침없는 욕이 오히려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욕도 수준이 있다... '욕 고수'가 되고 싶으면?
  
저자는 인간에게 욕이 꼭 필요한 세 가지 이유를 듭니다. 첫째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 둘째는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 셋째로 사람은 모두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실패를 경험하면 욕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욕은 약자가 강자를 향해 휘두르는 역전의 칼이라고 합니다. 욕을 하는 순간만큼 약자는 강자가 되어 욕으로 상대를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욕은 강자가 하지 않는다. 거의 모두 약자가 한다. 욕은 가해자가 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한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욕을 한다. 설마 나라님이 인터넷에 앉아 욕질이나 할까. 잘나가는 판검사 나리와 국회의원이 그럴까."
 
결국 욕은 약자의 무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라님이 판검사, 국회의원이 욕질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엔 나라님도 판검사 나리와 국회의원도 인터넷을 보면서 욕질을 많이 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국민의 욕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자서 욕을 많이 할거라는 겁니다.

 

또 욕에도 수준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수의 욕은 남의 신체적 장애나 상처를 의도적으로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기 위해하는 욕이라고 합니다. 중수의 욕은 우리가 흔히 쓰는 "씨발놈", "개새끼" 류의  욕인데 욕을 할 만한 상황에서 하는 욕이며, 고수의 욕은 김삿갓의 욕이나 마당놀이의 욕처럼 시대의 아픔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욕입니다.

 
최고수의 욕은 예수님처럼 목숨 걸고 하는 욕, 비뚤어진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욕,  춘성 스님처럼 삶이 받쳐주는 내공 위에서 쏟아내는 욕입니다. 욕의 수준을 구분해보면 욕은 그 자체로 수준이나 격이 있다기보다 욕하는 사람에 따라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욕 한번 시원하게 해보고 싶은 분께, 이 책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바로 욕과 SNS의 관계 그리고 <나는꼼수다(나꼼수)> 현상을 설명한 부분입니다. 그는 2011년 4월 27일 혜성처럼 등장한 <나꼼수>가 욕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나꼼수> 흥행의 첫째 이유를 욕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냥 웃기는 차원을 넘어 웃음을 폭발시킨 것이 바로 욕 때문이라는 겁니다. 욕이 섞인 새로운 전달 방식이 내용을 뒷받침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욕이 일반 언어보다 4배나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존드웨일 박사의 연구 결과를 뒷받침 한다는 겁니다.

 
만약 정부가 사람들이 욕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면 프랑스 시민혁명, 조선의 농민봉기,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욕'이야말로 사람들의 사회적 비판 에너지를 결집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겁니다.
 
송상호는 자신이 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세 가지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욕에 대한 새로운 시선, 욕에 대한 당당함을 체득하고 나면 욕 좀 할 줄 아는 욕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책에는 우리나라 거장들의 욕,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욕은 스스로 진화한다는 것과 욕에도 격과 수준 있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알려줍니다. 욕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유머들, 그리고 흔히 쓰는 뜻 모르고 사용하는 욕에 대한 정확한 뜻 풀이도 담겨 있습니다.

 
사전을 자주 인용하고 있고, 문학작품에 나오는 수 많은 욕들을 비교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자는 욕도 최소한 문화적 코드는 맞아야 할 수 있고, 상징법 과장법 등을 사용하여 표현력을 넓혀야 수준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욕이라도 한 번 제대로 속 시원하게 해보고 싶은가요? 이 책을 추천합니다.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 - 10점
송상호 지음/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