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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불행하다

by 이윤기 2012.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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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발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자전거 탄 풍경(나무자전거)'이 부른 노래가사의 일부다. 그렇다면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말타기 놀이는 누가 시작하였을까? 연날리기는 누가 제일 먼저 했을까? 실뜨기는 누가 다 만들었을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놀이는 어떻게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을까?

 

우리 아이들에게서 점점 잊혀져가는 놀이를 보러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를 쓴 편해문은 멀리 인도에 다녀왔다. 편해문은 5년에 걸쳐 네 차례 인도를 다녀오며 그곳 아이들을 통해 가물가물하게 기억 속에 잊혀졌던 놀이를 다시 떠올린다.

 

이 책은 그러면서 학교와 학원 그리고 컴퓨터와 게임기, 텔레비전 화면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 하는 이야기이다.

 

그가 놀이를 찾아 인도를 다니며 쓴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잘 놀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도 어른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편해문은 아이들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잘 놀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난한 인도 아이들을 만나면서 잘 놀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편해문이 놀이를 찾아 떠난 인도에는 바로 한 세대 전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놀았던 놀이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연날리기, 자치기, 고무줄놀이, 실뜨기, 그네타기, 딱지치기, 뱀주사위놀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 땅에서 하던 것과 똑같은 놀이를 하는 인도아이들을 만난다.

 

한 세대 전의 우리 아이들처럼 해가는 줄 모르고 노는 가난한 아이들의 모습을…. 편해문은 행복하게 노는 인도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놀이와 노동은 다르지 않다

 

“나는 새삼스레 아이들이야말로 환경에 굴복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아이들이 어른과 크게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놓여있는 현실과 처지에 파묻히지 않을 힘이 있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꿈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인도를 다니며 인도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관찰하고 함께 놀면서도 늘 우리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한 세대 전 우리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때마다 왜 지금 우리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찾아내곤 한다.

 

그는, 한 세대 전만 하여도 아이들에게 일과 놀이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할 줄 아는 아이라야, 어른 일을 거들 줄 아는 아이라야 놀 줄도 안다는 것이다.

 

일을 모르는 아이, 일을 해보지 않은 아이는 노는 것도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를 도와 일을 하면서 힘을 기르고 제 한 몸 건사하는 능력을 온전히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놀이를 꼽으라면 나는 어른들이 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아이들이 보거나 따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밑천이 되는 놀이는 일을 통해서 배우고,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 힘은 놀이를 통해서 배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수없이 많은 패배와 수없이 많은 승리와 수없이 많은 죽음과 삶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놀이를 하든지 놀이를 익히기 전에는 수없이 지고 죽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술래잡기, 공기놀이,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같은 아이들 놀이는 어떤 놀이라도 몸에 익히기 전까지는 숱하게 지고 죽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죽고 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놀이를 익히고, 자꾸 자꾸 경험하면서 이기는 횟수 살아나는 횟수가 늘어나게 된다.

 

수 없이 지고 이기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놀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익힌 용기와 긍정적인 힘이 어른이 되어서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 편해문의 생각이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꿈을 찾아가는 힘도 놀면서 기를 수 있다고 한다.

 

“놀면서 수도 없이 지고 이기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언가에 패배했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그 패배를 넘어설 수 있을까. 나는 놀이가 패배와 죽음을 넘어서는 수많은 상황과 만나게 해주고 그것을 극복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본문 중에서

 

놀이를 연구해서 벌써 여러 권 책을 썼으니 편해문을 놀이 전문가라고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편해문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는 단순한 놀이이고, 아이들에게 좋은 놀잇감은 자연과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그는 놀잇감이 단순할수록 좋은 이유로 “아이들이 놀면서 채울 부분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컨대 공기놀이는 돌 다섯 개만 있으면 되는 놀이지만 여러 가지 재주와 솜씨를 다채롭게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놀이와 실뜨기 같은 단순해 보이는 놀이를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다 놀이가 지닌 열린 성격 때문이라는 것. 딱 한 가지 놀이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동네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놀 수 있는 놀이기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고 한다.

 

아울러 자연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놀잇감이라야 단순해도 놀이의 상상력을 펼치기에 좋다고 한다. 돈을 주고 사는 장난감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야 진짜 놀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산 장난감은 금세 싫증내고 커다란 장난감 상자로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제 손으로 찾아낸 놀잇감, 제 손으로 만든 놀잇감은 아이들에게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된다는 것이다.

 

한 세대 전 어른들이라면 어린시절, 공기 돌 다섯 개를 애지중지하며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일이나 비석치기하던 비석(돌)을 방에까지 들고 가서 소중하게 보관했던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대 이쯤 되면 독자들의 반론이 있을 법 하다. 옛날에 하던 놀이를 아이들과 함께 해봤는데 시시하고 재미없어 하더라는 반론 말이다.

 

전래놀이가 재미없는 진짜 이유?

 

놀이 혹은 전래놀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박물관에서도, 학교나 단체에서도 이런 저런 축제 행사에서도 전래놀이를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도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회원축제 때, 투호놀이, 자치기, 비석치기 같은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반갑게 다가서는데 비하여 아이들은 아무 관심이 없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치려고 해도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한 번 해봐. 재미있다니까?”라고 말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분명히 엄마, 아빠의 기억에는 재미있었던 놀이가 틀림없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재미가 없다.

 

세상의 많은 엄마, 아빠 곧잘 이렇게 생각한다. “아! 컴퓨터 게임과 같은 자극적인 놀이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은 비석치기 같은 놀이를 시시하게 생각하나봐?” 하고 말이다. 그런데 놀이전문가 편해문의 해석은 다르다. 어느 단체에서 준비한 전통놀이마당을 둘러봐도 아이들이 놀이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도대체 놀이의 재미를 경험해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치기나 비석치기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못 걸려도 두 시간은 걸리는 놀이인데 비석 하나 쓰러뜨리고 도장 받고, 다음 놀이로 넘어가는 이런 것을 어떻게 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본문 중에서

 

비석치기나 자치기에 규칙을 익히고, 기술을 익히는 대는 사실 두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형이나 누나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규칙을 익힌 후에도 상당한 시간 동안 놀이판에서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자치기나 비석치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민속놀이마당은 백화점 시식코너처럼 펼쳐져 있으니 아이들이 그 재미를 알 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 때 다시는 민속놀이를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비석은 돌멩이가 아니라 '나의 분신'

 

편해문은 놀이의 진정한 맛은 비석치기를 할 때, 동무가 던진 비석에 내 비석이 쓰러질 때, “내 온 몸과 마음이 뒤로 ‘꽝’하고 자빠지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을 느낄 수 있어야 놀이의 참맛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에 꼭 드는 비석을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비석치기의 참 맛을 아는 것 아이라는 것이다.

 

“비석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러지는 셈이다. 딱지치기도 마찬가지다. 딱지가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뒤집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이에 미치는 것이다. 이렇게 비석은 바로 나의 분신이다. ” - 본문 중에서

 

그래서 딱지와 내가 하나가되는 아이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다음과 같은 시가 나올 수 있다는 거다.

 

딱지 따먹기

 

딱지 따먹기를 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 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 강원 사북초등 4년 강원식(1984)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삶을 배워간다는 것이 편해문의 생각이다. 어린 시절 놀이판에서 ‘깍두기’ 노릇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익히고, 이기고 지는 경험을 통해서 평화를 배우며, 심판이 없는 놀이판에서 ‘판’을 깨지 않고 놀 수 있는 ‘공동체’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대부분의 불행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편해문의 여정을 따라 인도아이들이 맨얼굴, 맨몸짓, 맨손, 맨발이 되는 노는 모습을 쫒아가다 보면, 그의 카메라에 잡힌 인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담긴 사진을 넘기다 우리아이들을 떠 올려보면,  “문명이라는 것이 아이들을 얼마나 기운 없고 생기 없고 웃음을 잃게 만드는지” 깨닫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틀림없이 편해문의 지적대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빼앗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돌려주어야 하는지 쉬이 알게 된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 10점
편해문 지음/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