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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옆집 아줌마, 빵집 아저씨가 시민운동의 희망

by 이윤기 201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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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은 흔히 ‘위기’ 혹은 ‘희망’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개념을 사용한다. 시민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학자부터 진보주의자에서 보수주의자까지 다양하며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이런, 저런 이유를 소신 있게 주장한다.

 

커뮤빌더란?

커뮤빌더는 커뮤니티 빌더를 부르기 쉽게 약칭한 조어(造語)이다. 커뮤니티 빌더는 생활현장에서 시민으로서 자주성과 책임을 자각한 개인 및 가정을 구성주체로 하고, 지역성과 각종의 공통목표를 가진 개방적이면서도 구성원 상호간에 신뢰감을 갖는 집단을 의미한다.

“평범한 시민으로 시민운동에 참여했지만 지난 수년간 자신의 삶터에서 대안적인 가치를 실천하며 각박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갔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자고 격려하는 평범하지만 우리에게 용기가 된 사람” 그가 바로 ‘커뮤빌더’ 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위기를 말하지만, 시민운동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소개되는 박원순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늘 시민운동은 우리시대의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최근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서 엮어낸 책 <여럿이 함께>에도 ‘시민운동은 블루오션이다’라는 그의 강연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시대의 커뮤빌더>를 쓴 김기현 역시 시민운동에 희망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말하는 블루오션 시민운동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시민운동, 혹은 사회운동을 추동하는 전업활동가와 다른 생활인인 시민운동가들에게서 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였다.


김기현은 시민운동의 희망을 일구는 이 사람들을 ‘커뮤빌더’라고 부른다. 전환기 시민운동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커뮤빌더는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우선 생활인이다. 논리와 언어가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일상의 문제를 중심으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반 발 앞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커뮤빌더는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커뮤빌더는 생활인 속에서 성장한, 우리 중 한 명이다.” -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커뮤빌더는 시민운동이 전업이 아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인간다운 사회, 공동체적인 사회, 자연친화적인 사회, 공익적인 목표를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시민운동은 이미 특별한 소수가 하는 운동이 아닌 지금, 같은 눈높이로 생활인들을 통합시키는 커뮤빌더의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해졌다.


시민운동이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시민운동가에 의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커뮤빌더 없이는 운동이 지속될 수 없으며 널이 퍼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말하자면, 위기의 시민운동, 전환기의 시민운동은 이제 ‘커뮤빌더’들에 의하여 새로운 희망의 싹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옆집 아줌마, 농민, 빵집사장님 전하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지역희망찾기 시리즈로 나온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는 지은가 평범한 생활인으로 처음 시민운동에 참여하여, 지역운동의 든든한 지도력으로 자리매김한 네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저자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평범한 생활인이 지역운동과 시민운동의 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 겪은 크고 작은 계기를 읽어내는데 주목하였다.


도대체 무엇이 평범한 아줌마, 아저씨들을 유별난 시민운동 지도자로 만들었을까? 김기현이 만난 네 사람 모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로 소개하는 박혜연,  변희종 두 아줌마가 시민단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사회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면서부터이다.

 

빵집 주인이었던 김형도씨는 어린이날 행사에 도넛 봉사를 맡으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 놓았다. 농민인 박상섭씨는 동네 선배 소개로 찾아간 의료생협에서 무료 건강검진을 받고 위암 판정을 받은 것이 시민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네 사람이 가진 공통점은 모두 평범하였다는 것과 참으로 우연히 시민운동과 만났다는 것이다. 학생운동가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도 아니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평범한 주부, 동네 빵집 사장님, 그리고 평범한 농민이었던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이 시민운동의 리더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은이 김기현은 바로 이점에 주목하였다. 책을 쓰게 된 것도 “항상 전문가에게 끌려 다니는 시민운동이 자존심도 상하고 싫어서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소리를 발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부모로 YMCA와 인연을 맺은 박혜연씨는 주부 사진클럽, 청소년상담실 자원봉사자를 거쳐서 1983년 생활협동조합 창립과 함께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98년부터 재활용 ‘녹색가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녹색가게는 9년째 교복물려입기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2006년에만 교복 1000여점, 체육복 200여점, 참고서, 문제집 200여 권이 녹색가게를 통해 위탁판매 되었다고 한다.


2003년부터는 재활용운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재활용 패션쇼’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평범하고 나이든 주부들이 주축이 되어, 평범한 의류와 소품으로 멋지게 리폼해 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행사이다. 처음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열린 패션쇼는 지금은 일반시민들도 널리 참여하면서 시민과 함께 하는 행사로 변화하고 있다. 그녀는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어린시절 꿈을 이렇게 이루어가고 있다.


“그냥 10년 후에도 자원봉사자로 남고 싶어요. 자원봉사자로 부담 없이 즐겁게, 오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끊어지지 않고 오래 해야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지 제가 대단한 아이디어가 있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예요. 작은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하면서 영역을 넓혀 가면 언젠가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야금야금 가야지, 열정만 가지고 집착하면 오래 못 가요.” - 본문 중에서


시민운동은 “열정만 가지고 집착하는 운동이 아니라 야금야금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녀 생각이다. 박혜연씨를 인터뷰 했던 지은이는 그녀에게서 모성과 소박함, 부러움이 느껴진다고 한다. 넉넉한 품으로 우리사회를 안는 그녀의 별명은 ‘느티나무’라고 한다.


변희종씨 역시 아이를 인연으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변희종씨는 50개 등대, 3백여 촛불이 활동하는 광명Y 등대생협의 ‘커뮤빌더’이다. 광명Y 등대생협은 조합원을 촛불이라 부르고 5~7명으로 모인 공동체를 ‘등대’라 부른다. 그녀가 참여하고 있는 광명Y 등대생협은 촌지 없애기 캠페인, 북한 쌀100가마 보내기, 마을별 기초의원후보자 토론회, 러브호텔방지 조례 개정운동, 시의회 방청 및 의정평가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어야 진짜 공동체


변희종씨는 등대활동 초기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연말이면 이사하는 사람,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서 슬그머니 등대가 없어지고, 촛불들 간에 서로 재미있게 끈끈한 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활동하던 등대가 지속되지 못해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변희종씨는 교육분과 활동을 통해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저는 낯선 곳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도 잘 안하고, 거의 듣고만 오는 편이었어요. 그러다 말 안 한 사람 한 번씩 시키게 되면 몇 마디하고, 들으면서 내 생각과 비교하며, ‘나조 바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같이 활동했던 분들이 많이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니까 조금씩 저를 드러내고 말도 더 하게 됐던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갈등도 커지는 법, 변희종씨는 공동체 속에서 여러 가지 갈등을 겪으면서 조정하고 해결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나는 열심히 하였는데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내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 서로 다른 의견으로 충돌할 때, 내 진심을 몰라줄 때, 내가 추천한 사람이 리더가 되지 못했을 때, 내 의견이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와 같은 툭 터놓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맞이했었다고 한다.


변희종씨는 “밤새 토론하고 속 얘기를 하면서 갈등이 있던 사람과 얘기하다 울고” 하면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하고 따뜻하게 안아줘야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자신이 조정자로서 성장하는데, 자기성찰과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 말은 했어야 하는데 하는 되새김을 많이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변희종씨의 이야기를 통해, “한 명의 시민운동가 지도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 명에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산 반송에서 ‘희망세상’이라는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형도씨는 빵집 주인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반송에 빵집을 차린 그가 봉사활동에 경험하며 시민운동가로 성장하는 데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솔직히 제가 반송이 낯설어서 세미나도 하고, 어린이날 행사도 하면 많은 사람을 알고 장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이날 도넛을 만들다 보니까 할 일이 생겼고, 피곤한데도 마음은 뿌듯하고 해서 조금씩 발을 디뎠어요.” - 본문 중에서


그는 지속적인 회원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할이 없으면 도태되고 역할이 있으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의 역할 찾기는 ‘희망세상’이라는 봉사모임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센터운영’에 참여하여 더욱 빛났다. 반송2동 주민자치센터에 참여하여 ‘반송발전 100대 실천과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김형도씨는 주민자치센터활동에 참여하면서 기존에 있던 것을 관례를 깨는데 주목하였다고 한다.


“관례대로 합시다. 이 말이 제일 무서운 말이잖아요. 관계를 깨는 데 목적이 있었어요.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관례대로는 안 하고 한 번씩은 토론을 하고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본문중에서


그는 지금 전국에서도 드물게 주민자치센터가 닫힌 구조를 깨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에너지를 결집하는 곳으로,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고 동네 문제를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장으로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반송 2동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것.


온 국민이 소모임 활동을 해야 한다


안성의료생협 박상섭씨,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그는 “어디 가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다만 같은 처지에 있는 조합원을 위해 목소리를 내자는 마음”으로 생협이사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는 임원을 맡지 않았으면 조합 활동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거라고 회고 한다. 안성지역 커뮤니티 빌더로 성장한 박상섭씨는 의료생협 활동이 활성화 된 것은 소모임 활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소모임 활동을 온 국민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의료생협 활동을 하면서 담배도 끊었고, 체조교실은 농번기 때만 잠깐씩 빠지며 6년 동안 딱 한 번 빼고 매번 꼬박꼬박 포크댄스에 참여했다고 한다.


<우리시대의 커뮤빌더>에서 소개하는 지극히 평범했던, 네 사람의 지역운동가들은 다양하고 독특한 경험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운동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변희종씨가 말하는 지도자론은 모름지기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면 꼭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때로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이 일이 기쁘고 즐겁다는 기운을 전파해야 해요. 반대로 힘들다, 일이 많다는 불평이 들리면 ‘저 사람 생협 이사되더니 바쁘고 힘들어졌네. 나는 절대 생협 이사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이 들어버리거든요. ‘나 이사되니까 바쁘고 힘들지만 너무 기뻐’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내면에 그런 마음이 있어도 어렵다는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 이글은 2007년 10월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조금 고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커뮤빌더 - 10점
김기현 지음/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