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운동 여행 연수/일본 자전거 여행

자전거,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을 건너다

by 이윤기 2012. 12. 5.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일본자전거 여행⑧ 70년 전에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해저터널을 만든 일본

일본 자전거여행 다섯 째 날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넷째 날 고쿠라역 근처에서 숙박을 하였기 때문에 아침에 전철을 타고 하카타로 이동하여 후쿠오카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입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넷째 날까지 한 팀으로 움직이던 일행이 이날 처음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열 다섯 명의 일행 중에서 6명은 자전거를 타고 모지항과 시모노세키항을 연결하는 간몬 해저터널을 관람하고 하카타로 이동하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들은 인솔자와 함께 여유있게 전철을 타고 하카타역으로 이동하는 일정으로 나누었습니다.

원래는 넷째 날 고쿠라에 일찍 도착해서 시모노세키항까지 연결된 간몬 해저터널을 둘러 볼 계획이었는데, 우사 신궁을 다녀오느라 계획보다 일정이 늦어져서 취소하였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활용해서 간몬 해저터널을 다녀오는 일정을 만든 것입니다.

후쿠오카항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배편을 예약했기 때문에 12시전까지만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면 되는 일정이라 충분히 시모노세키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일행 중 간몬해저터널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원하는 6명만 따로 한 팀이 된 것입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짐을 싸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7시 30분에 고쿠라역 근처에 있는 호텔을 출발하여 시속 20~ 25km 속도로 달렸습니다. 15명의 일행 중에서 비교적 자전거를 잘 타는 6명만 간몬 해저터널을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쿠라역에서부터 간몬 해저터널 입구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단순한 길이었지만, 비가 내리고 출근 차량으로 복잡한 길을 달리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GPS지도상으로는 대략 13~14km쯤 되는 거리였는데, 길을 물어가며 찾아가느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특히 자동차가 다니는 간몬 해저터널과 보행자나 자전거가 다니는 해저터널은 입구가 다른데,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표지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자동차가 다니는 해저터널 입구를 먼저 찾아갔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여섯 명이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길을 물었고, 자동차 터널에서 일하시는 분도 손짓 발짓과 그리고 일본어 단어를 섞어서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로 자전거가 갈 수 없다는 답을 듣고 대략 1km쯤 더 바닷가를 향해 달렸더니, 모지에서 시모노세키로 건너갈 수 있는 보행자용 해저터널이 나타났습니다. 정원이 40명이나 되는 커다란 엘리베이트가 설치되어 있고 엘리베이트를 타고 수직으로 아래로 내려가면 해저터널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인 간몬 터널의 길이는 약 3.5km. 일본 혼슈[本州]와 규슈[九州]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입니다.  1936년부터 1944년 까지 8년의 공사 기간을 거쳤으며, 잘 아시다시피 이 기간은 2차 세계대전 기간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고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벌이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국내에서는 이런 대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터널 시공법이 총동원된 대공사였으며, 1950년대에 인도용 터널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통영 해저터널이나 최근에 만들어진 부산과 거제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해저터널 구간도 마찬가지이지만 바다속을 지나는 해저터널이라고 해서 아쿠아리움처럼 유리로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터널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전거와 보행자가 걸어서 편리하게 시모노세키로 걸어서 건너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40명이 한 번에 탈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전거 여섯대와 사람 여섯명이 타고 내려갈 수 있었고, 모지항쪽으로 돌아올 때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몇 사람 더 함께 타기도 하였습니다. 오전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 터널을 개방하고 보행자는 무료이지만 자전거는 10엔(?)의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대략 10층 정도(엘리베이트에 표시된 층수 표시) 아래로 내려가면 반대편 문이 열리면서 터널로 연결이 됩니다. 아이폰 GPS에는 해저 15미터까지 내려간 것으로 표시가 되었는데 엘리베이트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난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해발 아래로 내려가는 경험을 한셈입니다. 해발 0미터에서 해발 -15미터까지 내려가서 바닷속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 다시 해발 10미터 지점인 시모노세키 바닷가로 올라갔다온 표시가 GPS기록으로 남았습니다.

해저터널 입구에서 가운데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고 터널 중간에 있는 혼슈와 큐슈의 경계지점에서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입니다. 대략 3.5km쯤 되는데, 절반은 내리막길이고 절반은 오르막길입니다. 시모노세키로 건너갈 때는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도록 되어 있고 끌고 가야한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그냥 타고 지나갔습니다. 당연히 절반은 패달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리막길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얕은 오르막이었습니다.

재미있었는 것은 터널 안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시모노세키로 건너갈 때도 운동복을 입고 터널 내부를 걷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중에 반대편으로 돌아올 때는 운동하는 사람들 숫자가 훨씬 늘어났고 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광객들도 많더군요.

마침 그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기 때문에 비를 맞지 않는 터널 안에서 운동을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비가 오지 않는 날도 터널을 걷는 시민들이 많이 있다는군요. 아무리 기계설비를 잘 해놨어도 터널 내부라 공기가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참 특이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모노세키로 건너가서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나눠마시면서 잠깐 땀을 식히고 기념 사진을 찍은 다음 해저터널을 통해 다시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바다 아래로는 간몬 해저터널이 있고, 바다위로는 간몬교가 큐슈와 혼슈를 연결해주고 있었습니다.

시모노세키에서 모지쪽으로 건너올 때는 터널 내부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자전거를 타고 올 수가 없어 중간 중간에서는 내려서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을 보러온 단체 관광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있더군요. 한 번에 40명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도 버스 1대에 타고 오는 관광객 숫자를 고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빠듯한 일정인데도 불구하고 간몬 해저터널을 꼭 보고 싶었던 것은 1930~40년대에 이런 대공사를 해낸 것도 놀랍지만, 불과 몇 년후에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터널을 만들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해저터널이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해저터널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가장 위험을 느끼는 구간이 바로 터널을 지날 때, 다리를 건널 때, 그리고 입체교차로를 지날 때였습니다. 최근 창원에서는 40억원을 들여 창원과 진해를 연결하는 안민터널 내부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 지역사회의 핫 이슈가 되기도하였습니다.

일부 언론과 시민들은 40억씩 들여서 터널 내부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하였고, 또 다른 일부 언론과 시민들은 40억을 더 들여서 소음과 매연을 막을 수 있는 캐노피를 설치하자는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는 무려 70년 전에 자전거와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별도의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자동차 중심의 문화가 공고하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경우에 거가대교와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도로의 터널에도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만드는 일이 없습니다.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보행통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통로 혹은 쾌적하게 다닐 수 있는 통로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은 깨끗하게 아스콘 포장을 하지만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통로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하수구 위로 만들어 놓거나 갓길 옆에 좁은 보행통로를 만들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보행통로라고 보기 어렵고 터널 보수 공사 등을 위한 작업 공간, 작업자의 이동 공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실 처음 터널을 설계할 때부터 보행자와 자전거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함께 만들면 추가 공사를 하는 것 보다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갈텐데, 여전히 자동차 중심의 터널만 만드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70년 전, 1950년대에 자동차용 해저터널과 별도로 보행자와 자전거가 이동할 수 있는 별도의 해저터널을 만든 일본인들의 발상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우리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일본의 앞선 교통문화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간몬 터널이었습니다.

4박 5일 일정의 일본 자전거 여행 마지막 날, 고쿠라역 숙소를 출발하여 간몬해저터널을 통해 시모노세키까지 건너갔다가 모지역으로 돌아오는 16.7km의 라이딩 그리고 전철을 타고 하카타역에 내려서 후쿠오카항까지 3.3km, 모두 합쳐서 20km를 자전거로 이동하였습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관련 포스팅>

2012/11/02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일본, 자전거 메고 전철 타기

2012/11/07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일본 아소산, 자전거로 가장 높은 곳을 오르다

2012/11/12 - [분류 전체보기] - 82살 할머니, 아소산 기슭에서 세계와 만난다

2012/11/14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해발 800미터 아소산 분지 넘어 오이타까지

2012/11/2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일본 여행, 자전거 시속 60km를 찍다

2012/11/26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70년대 추억 파는 마을박물관, 쇼와노마치

2012/11/29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일본 3대 신궁, 자전거 타고 우사신궁을 가다

2012/12/05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세계 최초의 해저터널을 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