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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외상의 공동체성과 신용카드의 단절성

by 이윤기 201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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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 기사가 블로그에 쓴 글(스물 넘게 공짜 커피 베푼 굴구이 '선창 카페')을 읽다가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 속 글귀를 만났습니다. 이 글은 김훤주 기자가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회원들과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즐기기’ 행사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을 쓴 글입니다.

 

진동 광암 바닷가길을 걷다가 화장실을 좀 빌리려고 굴, 가리비 따위를 굽거나 쪄서 파는 '선창 카페'라는 곳을 갔는데, 여러 가지 글 귀들을 써붙여 놓은 독특한 인테리어(?)와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에 대하여 쓴 글입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편하게 사용하게 해주었고 봉지 커피를 공짜로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난로에 장작을 넣어 실내를 따뜻하게 하고 고구마까지 난로에 얹어주며 요기를 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해주는 사연이었는데, 블로그에 쓴 글과 사진을 보다가 맨 마지막에 있는 사진 한 장에 저는 딱 마음이 꽂혔습니다. 그날 이 자리에 있었던 분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더군요. 저는 웃음이 나오는 대신에 생각의 확장이 일어났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 사연과 함께 '카드는 안되나 외상은 됩니다"라고 쓴 글을 보는 순간 '신용카드에는 없는 공동체성이 외상에는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상보다 신용카드가 훨씬 더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냥 외상 거래는 언제 돈을 떼일지도 모르는데, 신용카드 회사가 소비자와 판매자(기업) 사이에 보증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도 외상입니다. 다만 대면 관계에 있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 간에만 가능했던 외상거래에 금융회사기 끼어들어 외상 거래의 범위를 전지구적(비자, 마스타 카드)으로 넓혀주고, 익명의 사람들이 외상거래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는 대신에 수수료와 이자를 챙기는 시스템입니다.

 

결국 판매자는 수수료를 내고, 소비자는 이자를 내서 카드 회사를 점점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지요. 애초에 재벌 회사가 카드 사업을 할 수 있었던 탓이기는 하겠지만 카드회사 치고 재벌 회사 아닌데가 있나요.

 

외상 장부만들 수 있어야 공동체의 일원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을에서 '외상'이 가능했던 시절에는 마을 공동체도 살아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에 새로 이사를 오면 그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골 마을이라면 말 할 것도 없었겠지만 공동체의 결속력이 약한 도시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붙임성이 좋은 사람과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그 기간이 많이 차이나겠지만, 어쨌은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마을 공동체의 일에도 참여하고 대소사에 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적당한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첫 번째 계기는 어쩌면 동네 구멍 가게 혹은 반찬(부식) 가게에서의 외상거래가 아니었을까요?

 

어떤 사람이 새로 마을에 이사를 와서 동네 구멍 가게나 반찬 가게를 드나들면서 주인과 안면을 트고, 고향이 어디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외상 거래'를 트게 됩니다. 외상 거래를 하는 가게 주인은 마을 사람들의 형편도 대충 다 알 수 있게 됩니다.

 

때때로 외상값을 떼이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만, 외상값을 떼여서 가게 문을 닫는 일은 없었습니다. 외상값을 떼먹는 사람보다는 성실하게 거래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유대가 살아있는 곳에서만 외상거래가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외상 거래에는 공동체성이 살아 있었습니다. 외상값은 늦게 갚는다고 해서 '이자'를 달라고 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외상값은 늦게 갚는다고 해서 강제적인 힘을 동원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인심 좋은 주인이라면 정말 힘든 이웃에게는 떼먹힐 각오를 하고 외상을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김훤주 기자가 쓴 글을 읽어보면 선창 카페 주인도 그런 사람입니다. 까짓것 정말 갚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라면 떼여도 좋다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화장실도 봉지커피도 난로 장작과 고구마도 그냥 내줄 수 있는 마음이니 외상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겠지요.

 

돌이켜보면 외상이 있던 그 시절이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을공동체에서 외상이 사라지고 동네마다 편의점이 밀려들고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마을에 이웃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카드는 안되나 외상은 됩니다"라는 글귀를 생각해보면 공동체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용카드 거래를 통해 외상으로 팔지는 않지만, 주인과 안면을 트면 얼마든지 외상도 줄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 거래 대신에 마을에서 외상장부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지역 화폐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외상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