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비자

사장님, 메뉴 통일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by 이윤기 2013. 9. 4.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4명이 4가지 음식 주문하면 욕 먹을 일인가?

 

지난 여름 있었던 일입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지난 여름이라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후배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습니다.

 

원래는 창동 사거리에 있는 자주가는 피자&파스타 가게(전에 블로그에 포스팅 하였던)로 갈 생각이었으나 예약이 밀려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여기저기 의견을 주고 받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냉면, 모밀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마산 시내를 잘 아는 사람이면 상호들어도 알 만한 옛 남성동 파출소 부근에 있는 식당입니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지만 딱히 마산 시내에 냉면이나 모밀국수 같은 여름 면음식을 잘 하는 곳이 없는 탓에 가끔 모밀국수를 먹으러 가던 곳입니다.

 

창동 거리에서 저녁 먹을 장소를 정하느라 의견을 주고받다가 제가 문제의 이 모밀 국수집을 추천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시원한 냉면이나 모밀국수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더니 다수가 찬성 하였습니다.

 

 

퇴근 시간을 조금 앞당겨 나왔더니 아직 식당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습니다. 가게에 생각보다 빈 자리가 많더군요. 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두 테이블에 네 명씩 나누어 앉아서 각자 음식을 주문하기로 하였습니다.

 

한 쪽 테이블에는 4명이서 세 가지 메뉴를 주문하였습니다. 돌우동 2개, 모밀국수 2개, 만두 1개를 주문하였지요. 그런데 다른 테이블에서는 메뉴가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밀국수, 냉면, 유부초밥, 해물칼국수 등의 주문이 나왔고, "이렇게 주문하면 주방에서 싫어 한다"면서 두 사람씩 같은 메뉴로 통일하려고 했으나 결국 메뉴가 합쳐지지 않았습니다.

 

어쩔수 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약간 기가 죽은 채로(왜 이래야하는지....참) 주문을 하였습니다. 4명이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만두를 추가하여 나눠 먹기로 했더니 모두 5가지 메뉴가 되었습니다. 일 하시는 분에게 '모밀국수, 냉면, 유부초밥, 해물칼국수, 만두'를 달라고 주문했더니 인상이 확 달라지더군요.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만 했습니다. 메뉴를 '통일'(?)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방에 주문을 넣으면서 하는 말이 우리를 질색하게 만들었습니다.

 

"만두 하나, 모밀국수 하나, 냉면 하나, 해물칼국수 하나, 유부초밥 하나, 4명이 5가지 시켰다. 참 황당하다.......이거 다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있나? 이모야 해물칼국수도 되나? "

 

이 말을 자기들 끼리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식당에 있는 손님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하는 겁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가 없더군요. 그냥 일어나서 식당을 나오고 싶었지만 다른 테이블에 앉은 동료들이 그냥 저녁을 먹고 나가자고 싸인을 보내더군요.

 

그래서 식당을 나오는 대신에 우리도 네명이 둘러 앉아 대놓고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물론이고 일하는 사람들 다른 테이블 손님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이야기를 하였지요.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지 말 걸 그랬다."

"그래 두 명씩 와서 두 테이블에 앉았으면 각자 다른 메뉴를 시키고 만두 하나 추가해도 아무 소리 안 했을거다."

"지금이라도 두 명씩 다른 테이블에 옮겨 앉을까?"

"어떻게 우리가 한테 다들리도록 황당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따위로 해도 장사가 잘 되니까 그렇겠지"

 

한 참을 기다렸더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다른 음식들은 괜찮았는데, 주문할 때 "칼국수도 되나?"라고 물었던 칼국수 맛은 엉망이었습니다. 후배가 주문한 칼국수 국물에서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는겁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국물을 한 숟갈씩 먹어봤는데, 오래된 바지락을 넣고 끓인 때문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이런건 주인불러서 따지고 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해물칼국수를 시켰던 후배가 꼬치꼬치 따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냥 먹고 가자고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음식을 시킨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였고, 시킨 음식을 나눠먹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4명이 2명씩 두 테이블에 앉았으면...아무말도 안했을거 아닌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음식값 계산이 잘못되어 다시 식당에 가서 7000원을 돌려 받아야 했습니다. 고의로 그랬는지 실수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서로 대놓고 싫은 소리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고의로 그랬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지요.

 

사실 여럿이 밥을 먹으러 가면 이 식당에서만 이런 무언의 무언의 압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럿함께 밥을 먹으러 가면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는 대신에 대표 메뉴 몇 가지를 정해서 주문을 통일하는 것이 아주 당현한 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아주 고급식당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다르지만, 대중 음식점에서는 당연히 메뉴를 통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습니다. '메뉴를 통일해달라"고 주인이 싫은 소리를 할까봐 아예 손님들이 먼저 나서서 메모지를 들고 몇가지 메뉴를 골라서 손을 들게 하지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줄여서 빨리 밥을 먹고 가겠다는 손님의 이해와 같은 메뉴를 여러가지 만들면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주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생긴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빨리빨리' 먹고 나가야 하는 우리나라 손님들의 자발적인 선택도 크게 한 몫 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 참 불공정한 거래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앞서 주고받은 대화처럼 두 명이 식당에 가서 두 가지 음식을 시키면 메뉴를 통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네 가지 음식을 시키면 가짓수가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계산법이지요. 앞서 말했듯이 네 명이 각자 다른 음식을 주문하게 할 요량이면 두 명씩 따로 따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해야 눈총을 받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손해가 됩니다.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야 더 많은 손님을 동시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해보면 네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네 가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전혀 불평할 일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여덟 명이 여덟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덟 명이 와서 테이블 네 개를 차지하고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한 것과 비교하면 손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식당 사장님들 꼭 기억 좀 하시기 바랍니다.

 

20명, 30명 단체 손님와서 각자 다 다른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면 메뉴를 통일하라고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래 기다려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것인지,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어도 같은 메뉴를 주문해서 빨리 먹고 갈 것인지는 주인이 압력을 넣거나 강요할 일이 아니라 손님에 선택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