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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스위스 국민 기본소득 297만원 부럽지 않은 까닭?

by 이윤기 2013.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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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위스에서 기본 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발의가 이루어졌다는 외신보도가 있었습니다. 12만만 명이(전체 인구 799만명) 넘는 스위스 국민들의 서명을 받은 국민발의안이 스위스 연방의회에 제출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국민발의안의 핵심 내용은 "헌법에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라는 조항을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성인인 국민 모두에게 한달 2500스위스프랑(약 297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고 합니다.

 

스위스에서는 국민발의안이 제출되면 2년 안에 국민투표를 해서 실시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기본 소득 도입'은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19개 국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100만명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기본소득 운동은 국제조직인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라는 조직이 결성되어 있고 한국에도 그 지부조직(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이 있다고 합니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어떠한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현금 소득을 말하는 것으로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정액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성장 사회로 가면서 실업율이 높아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소득 지급'을 반대 할 까닭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에 있어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가장 먼저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가 스위스라고 하는 것이 딱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최근 이 나라가 첨단 정밀산업과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부자 나라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출신 사회학자이자 변호사이면서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가 쓴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를 보면 스위스는 유럽 한 복판에 있는 범죄의 소굴, 세계적인 범죄자들을 위한 검은 돈 세탁소입니다. 이 책을 읽고 스위스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졌었답니다.

 

장 지글러는 이 책에서 자신의 조국인 스위스의 관료사회와 금융회사 수장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부패에 굴복하는 정치제도를 고발합니다. 스위스 은행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재산을 숨기고 싶은 세계적인 부자들이 재산을 빼돌리는 곳이고 마약과 무기 밀매로 돈을 버는 범죄자들이 돈 세탁을 하는 곳이며 제 3세계 독재자들이 조국에서 빼돌린 돈을 감추는 곳이라는 겁니다.

 

5초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이가 기아로 목숨을 잃는 나라, 또는 49억 명이 기아에 시달리는 제 3세계 독재국가의 지도자들이 국부를 빼돌려 축적한 재산들이 스위스 비밀계좌에 숨겨지고 있다는 겁니다. 또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같은 나라에서도 부패한 관료들이 빼돌린 국고와 탐욕스러운 기업들이 빼돌린 세금이 스위스 비밀계좌에 감춰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국부 유출 때문에 제 3세계에서는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으며, 이른바 선진국들에서도 하나 같이 일자리 불안이 커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급여가 삭감되고,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 장 지글러의 주장입니다.

 

아울러 유럽과 남미 그리고 중동을 연결하는 마약과 무기를 밀매하는 범죄네트워크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불법 자금들 역시 속속 스위스 비밀 계좌에 숨겨지고 이들 비밀 계좌를 거쳐 돈세탁을 마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위스 은행을 통해 깨끗하게 세탁된 돈 범죄자들의 돈은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파리나 뉴욕의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합니다. . 이 돈은 도쿄, 런던, 시카고 등지의 증권거래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뉴욕에 자리 잡은 시망 받는 기업들의 대차대조표에서 장기대출금으로 잡힌다는 것입니다.

 

장 지글러에 따르면 오늘날 스위스가 지구상에서 손 꼽히는 부자나라가 된 것은 모두 이 검은 돈을 숨겨주는 거래 때문에 가능하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국민소득을 분배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검은 돈을 숨겨주고 벌어들인 떡고물을 나눠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스위스에 기본소득 제도가 도입되어 국민 모두가 매 달 297만원의 기본 소득을 국가로부터 지급 받게 된다면 그 재원은 바로 이 검은돈에서부터 비롯될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지급 운동의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스위스와 같은 높은 기본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고혈을 빨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스위스에서 국가가 국민 한 사람에게 297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해준다면 결혼한 부부에게는 매월 594만원의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셈입니다. 스위스의 물가가 우리와 비교하여 얼마나 더 비싼지 모른지만 이 정도 소득이면 아무일 안하고 먹고 놀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위스에서 이런 이런 국민발의가 이루어진 것은  국가가 국민 한 사람당 297만원을 지급할 정도의 재원을 마련할 여지가 있으니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재원의 출처가 검은 돈을 숨겨주고, 검은 돈을 세탁해주고 벌어들인 돈이라면 어떤신가요?

 

사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리는 것도 모두 제 3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저임금 시장, 값싼 원재료 수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스위스 같은 국가적 범죄 집단의 일원으로, 부패한 나라의 부자 국민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