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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아이들은 모두 언어의 천재다

by 이윤기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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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이 부른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아이들이 쓴 시에 곡을 붙인 백창우가 만든 어린이 노래, 아이들의 입말을 들어주는 박문희 선생님의 마주이야기 교육, 이오덕 선생님의 삶이 담긴 글쓰기 교육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물론 각자 다 다른 이유와 계기가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추콥스키가 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읽다 보면, 그들이 모두 이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아니면 적어도 80년 전 러시아 아동문학작가였던 추콥스키처럼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쓰는 말과 글을 이처럼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사람은 추콥스키가 처음이었음에 분명하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는 러시아 아동문학을 창시한 코르네이 이바노비치 추콥스키가 아이들의 언어세계와 언어교육 그리고 동화, 동시에 관하여 쓴 책이다. 막심 고리키의 권유로 아동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한 추콥스키는, 훗날 '러시아 아이들은 추코 아저씨의 <악어이야기>로 큰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러시아 아동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러시아 어린이들에게 '추코' 아저씨는 우리나라의 방정환과 같은 인물이었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는 아이들이 쓰는 말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입말과 동화, 동시를 이해하고자 시도한 책이다. 이 책에는 '아이한테서 배운다'는 밝고 낙천적인 지은이의 교육사상이 담겨있다. 1925년에 쓰인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린이 언어발달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아이들은 어떻게 언어를 익히는가?


인간의 언어발달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언어학자가 아닌 아동문학가인 추콥스키는 아이들이 쓴 글과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을 오랫동안 분석하고 관찰하여, 아이들이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아이들이 언어를 익히는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 단계에는 직관적 언어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편배달부를 '편지꾼'이라고 부르거나 아빠 이마에 생긴 주름살을 보고 "아빠가 구겨진 거 싫어"라고 말하는 것, "대머리 아저씨는 맨발 머리를 가졌다거나, 박하사탕이 입 안에 바람을 불게 한다거나, 여치의 남편은 남치라거나 하는 것"은 모두 직관으로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어른을 모방하는 방법으로 언어를 익히지만, 직관과 함께 '유추'하는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말을 할 때마다 이해력, 인식력, 기억력과 같은 능력이 드러나 어른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이 언어를 쓸 때 나타나는 재능은 모방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단어는 전부 어른이 하는 말을 듣고 알게 된 규칙에 따라 창조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말, 제대로 가르치기


두 살에서 다섯 살 시기는 언어발달이 깜짝 놀랄 만큼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다가 여덟 살이 되면 언어에 대한 민감성이 많이 둔해진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지적활동이 활발히 일어나지만, 모국어를 익히는 것은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나이에 훨씬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는 단어는 첫돌 무렵에 열 개가 채 안 되다가, 두 돌이 될 무렵에는 250개에서 300까지 늘어나며, 세 돌이 되면 수천 개에 달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일 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아이는 기본이 되는 언어 '창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뒤에는 언어를 축적하는 속도가 아주 느려진다." (본문 중에서)


이 시기 아이들은 탐구심이 왕성하고, 자기 과시본능이 강하할 뿐만 아니라 모방을 통한 창의적인 언어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가는 시기라고 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 시기 아이들의 언어발달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특징은 '기발함'이다. 때로 부모들은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이가 만들어낸 기발한 어휘를 즐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이의 언어발달을 가로막는 결과가 된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맛깔스런 단어를 만들어 낼 때 드러내 놓고 기뻐하기만 하면 오히려 자만심과 자기만족감만 강화시켜주게 되기도 한단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독재자처럼 막거나 혹은 무조건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나무라지 않으면서 실수하는 것을 바로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지나치게 엄격해서 계속 말을 고쳐 준다면 아이들이 감정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를 억누르게 되면 정서적, 정신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하게 된다. 교사가 에둘러, 조심스럽게, 너무 고집스럽지 않게,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개입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한편, 입말을 중심으로 말을 익히고 점점 더 많은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어휘력이 풍부해지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들의 정신발달은 어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임무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런 뜻에서 아이들이 말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이 생각을 잘하도록 가르친다는 뜻도 된다." (본문 중에서)


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를 쓴 추콥스키는 40여 년 동안 아이들이 하는 말과 표현을 모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가 모은 아이들의 말과 표현 중에서도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모아져있다. 


"타조는 기린-새입니다."

"칼은 포크의 남편이야?"

"바다는 물가가 하나밖에 없고 강은 물가가 두 개야."

"온통 깜깜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그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 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달을 만들고 남은 걸로 만드는 거야."


추콥스키는 이런 표현은 아이들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이런 표현을 찾아내려면 아이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어린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중심에 두고 말하기 교육을 하는 교사들이 있다. 박문희 선생님을 비롯한 '마주이야기 교육'을 하는 유치원 교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추콥스키가 소개한 것과 같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이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교사나 부모들은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아이들 입말을 중심으로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을 글로 옮겨서 마주이야기 책을 엮어내기도 하고, 백창우 선생과 같은 작곡가가 곡을 부쳐 어린이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추콥스키가 찾아낸 아이들 말은 '마주이야기'와 참 많이 비슷하다. 


아이들 시를 이해하려면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쓴 추콥스키는 아동기가 시작될 무렵 모든 아이들은 '시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훨씬 더 나이가 들어야 산문체로 말하는 법을 익히게 되며, 아이가 하는 옹알이에는 운문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같은 음절이 반복되는 단어(마마, 빠빠, 까까, 찌찌)는 리듬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반복과 리듬이 있는 단어를 좋아하며, 깡충깡충 뛰거나 달리면서 노래를 만들어내고, 뜻이 없어도 리듬이 있고 가락이 있는 단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는 아이들 언어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짓는 시를 추콥스키는 '무의미시'라고 부른다. '무의미시'에는 바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자발적이고 즉흥적이다 ▲ 노래라기보다 가락이 있는 감탄사에 가깝다 ▲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손뼉이나 춤과 함께 입 밖으로 나온다 ▲ 리듬은 장단격(혹은 강약격)일 때가 많다 ▲ 짧다, 두 줄이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반복적이다 ▲ 아이들 사이에서 전염성이 있다.


무의미시에는 사실이 아닌 내용이 담기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아이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한다. 바로 김광석이 만든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떠올리게 하는 시 들이다.


개구리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어부의 무릎에 앉고,

생쥐는 고양이를 잡아

쥐덫에 넣고 가뒀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에는 이런 시들을 비판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추콥스키의 반론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리로 가득차고, 당연한 것을 싫어하며 변형된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표현 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 바로  러시아 전래동요라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래동요를 살펴보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물에 부적당한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세대와 세대를 건너서 아이들에게 검증된 것이 바로 전래동요라는 것이다. 전래동요에는 아이들 마음에 닿은 언와와 리듬이 담겨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고집해서는 곤란하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시에서 교육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사물의 정확한 관계를 알면 알수록 놀이로 그것을 어긋나게 만드는 것을 더 재미있고 우습게 느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광석 노래처럼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나 '하늘을 나는 돛단배'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래가 결코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추콥스키의 주장이다.


최근 우리 전래동요를 되살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작업을 하는 편해문의 노래 작업이나 이런 노래와 시를 아이들에게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는 보리출판사가 만드는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를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러한 어린이 문학에 대한 접근을 통해 추콥스키는 존 로크를 필두로 하는 교육 실용주의에 강하게 반대한다. 아이들에게 어른스럽고 학문적인 것만을 강요하는 실용주의가 아이들을 가엾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지구의를 사 주었는데 아이가 대륙과 대양을 설명하는 데는 관심도 없고, 지구의를 뱅뱅 돌리고 던지고 받으며 놀기를 더 좋아한다면, 아이한테 필요한 것은 지구의가 아니라 공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신체 발달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발달을 위해서도 세 살짜리 아이한테는 지구의 보다는 공이 훨씬 도움이 된다." (본문 중에서)


추콥스키는 이 책을 통해서 어른이 보기에 무의미한 것들이 어린이 발달에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는 뒤죽박죽시, 허무맹랑한 이야기, 옛날이야기,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삶에 대한 현실 인식을 강화하기 때문에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리라 유용한 지적도구라는 것을 명신하고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콥스키는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마지막 장을 '처음으로 시와 동화를 쓰는 작가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로 할애하였다. 80여 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오늘날에도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려고 하는 작가들과 어린이들에게 좋은 시와 동화를 들려주려고 하는 부모와 교사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되기에 충분하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 10점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홍한별 옮김/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