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토 마나부가 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배움의 공동체'를 주창한 저명한 일본의 교육학자인 사토 마나부가 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교육 방법'에 관한 이론과 사례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교육방법학은 '교육실천의 기초가 되는 지식을 제공하는 학문'입니다.
저자는 교육방법을 '교육 실천의 학문'이라는 협의의 교육학으로 좁혀서 고찰합니다. "교육의 실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지식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교육방법학이라고 정의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교사가 실천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활용하는 지식과 견식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아주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론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랑말랑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와 같은 책도 아닙니다. 방송대학에서 교육방법을 강의했던 교재를 바탕으로 수정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론서를 바탕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초반부는 약간 지루합니다.
제일 먼저 구미와 일본을 비교하여 교육의 발달과정과 그 특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구미에서 교육의 발달은 지식교육을 목표로 발달하였고 교회와 가정이 주도하였으며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동아시아적 특성이기도 함)의 경우 인재육성(기술인력)을 목표로 발달하였으며, 국가가 교육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일제수업 양식이 고착되었고, 정답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자라 잡았다는 것입니다.
또 행동주의, 인지주의, 활동주의와 같은 학습이론을 두루 살펴보고 수업 연구를 위한 질적연구와 양적연구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특히 교실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대한 흥미있는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습이론을 바탕으로 교육의 실천적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교육과정의 조직'과정,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수업 개혁에 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흥미롭습니다.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나요?
사토마나부 교수는 매우 인상적인 첫 질문으로 독자들을 만납니다. 일본의 경우(한국도 비슷하겠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1만 2000시간의 수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만 2000시간의 수업 중에 단 한 시간이라고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 바로 첫 질문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이런 인상적인 질문을 받고 한참을 기억해보았지만, 정말 특별했다 싶은 수업에 대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특별히 좋았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그분의 어떤 수업이 특별했다하는 그런 기억은 없더군요.
여러분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기억에 남는 그런 인상적인 수업이 있었던가요? 사토 마나부 교수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졌지만 기억에 남는 수업을 떠올릴 수 있는 학생은 대략 30%에 못 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예컨대 학교를 졸업하고도 기억에 남을 만한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은 교사와 학생을 모두 지치게 만들 것이라는 답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지내는 교실을 관찰해보면 '드라마가 있는 수업'이나 '활기찬 수업'으로 배우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작은 일들을 쌓아가면서 가치 있는 교육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상적인 작은 경험들을 바꾸는 것이라 바로 교육개혁, 교실 혁명이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교사와 아이들이 만나고 부대끼는 교실 관찰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 사이에는 항상 어긋남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그대로 아이들에 의해 학습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교사가 가르치는 것과 아이가 배우는 것이 일치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본문 중에서)
예컨대 좋은 교사는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 사이에 어긋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통찰하며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 사이의 의미 관계를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업이라는 세계는 (중략) 살아 있는 교사가 살아 있는 아이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생물과 같은 세계이다. 교사와 아이의 숨결이나 몸짓이나 거동, 나아가서는 말 하나하나가 교실의 공기와 관계를 바꾸고 아이의 학습 경험의 깊이와 풍성함을 규제한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교육 방법을 배우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교실을 하나의 소우주로 인식하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성찰하고 수업을 창조적으로 재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미 세계의 교실이 변하고 있다는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수업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핀란드 교육이 크게 주목을 받은 일이 있는데, 저자인 사토 마나부도 비교적 상세하게 핀란드 교육을 살펴봅니다. 그는 핀란드 교육의 특징으로 핀란드 사람들은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공통 교양에 관심이 높고, 평등한 교육제도를 가지 있으며, 교사의 질이 높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제도와 평생학습제도가 정착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자주 일본과 독서량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걱정하는데, 사토 마나부 교수는 핀란드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보다 5배 이상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는 것과 핀란드인들이 어렵지 않게 여러 언어를 익힌다는 것 등을 사례로 듭니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구미 국가들이 수백 년에 걸쳐 달성해 온 근대화 과정을 국가주의의 효율과 경쟁을 원리로 한 학교교육을 통해 급격하게 이루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개성과 창조성을 찾아보기 힘든 일제수업 양식이 지배적이며 정답과 효율이 중시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모방양식과 변용양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는데,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보셔야 합니다.
저자는 개성과 창조성이 발현되는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실 공간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교실에서 대화적 의사소통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아이가 대등한 입장에 서서 협력하여 진리를 탐색, 탐구하는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중략) 대화적 의사소통이 성립된 교실에서는 그 기반에 '서로 들어주는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배움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자 대화이며, 친구와의 대화에 의한 발돋움 및 점프이다.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하는 배움은 대상 세계와의 대화와 타자와의 대화, 자기와의대화를 통해 새로운 만남과 대화적 실천을 창출하는 행위이다." (본문 중에서)
사토 마나부 교수는 대화적 의사소통이 일어나면 서로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배우는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서로의 협력에 의해 달성되는 더 높고 더 풍성한 배움인 호혜적 배움이 실현된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를 공부와 배우의 차이로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나는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서 찾는다. 공부는 어떤 것도 매개하지 않는 어떤 것과도 만나지 않고 어떤 것과도 대화하지 않는 배움이다. 공부는 시험을 준비하며 오직 암기하고 기억하는 활동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거기에는 만남도 없고 대화도 없다." (본문 중에서)
프레이리가 전달에서 대화로의 전환을 강제기 하였듯이 배움은 만남과 대화로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대화에 의해 지식이나 기능을 표현하고 음미하며 공유하는 것이 바로 배움이라는 것입니다.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아시나요?
사토 마나부가 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는 바로 이런 점들에 주목하면서 수업을 디자인하고, 수업을 평가하는 방법과 수업을 분석하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언어와 사회'를 중심으로 살펴 본 수업연구인데요.
저자는 교실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일컬어 '교사는 암묵적 규약에 익숙한 원주민이고 아이는 규약에 낯선 이주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학력에 언어 사용에 차이가 있으며 중산계급과 노동계급의 경우도 언어 차이가 뚜렷하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실언어가 중산계급 아이들에게 유리하다는 결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교가 계급이나 계층, 인종이나 성의 차이를 재생산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연구들도 다양하게 살펴봅니다. 근대 학교제도의 보급으로 사람들 스스로 배우는 능력과 저항하는능력이 무력화되었다는 이반 일리치의 지적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목표중심의 교육과정 대신 주제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계단형 교육과정 대신 등산형 교육과정으로,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학습과정을 경험하고 좁고 깊게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울러 이런 수업설계를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주창합니다. '작업활동'과 '모둠 협동', '표현 공유'라는 세 가지 요소를 도입하여 수업을 개혁하고, 교사들 간의 동료성을 구축하여 상호 탐구 활동과 협력학습을 실현해야 하며, 학부모와 시민이 교육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학교란 끊임없이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가 문제를 공유하고 그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연대하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또 교사들에게는 "한 명 한 명의 교사가 전문가로서의 전체성을 되찾고 교내에 서로 배우고 서로 성장하는 동료성을 구축"하는 것이 교사와 학생이 서로 배우는 관계로 바뀌는 교실 개혁의 출발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유럽의 복지국가에 비하여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평생교육 시대입니다. 교사는 학교에만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 그들 중에 좋은 교사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사토 마나부 지음, 박찬영 옮김/살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