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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기타, 교양

아리랑의 유래, '님아 물 건너지 마시오'

by 이윤기 201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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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에서 오천 년 동안 겨레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를 모은 책 세 권을 출간했다. 월북 작가인 김상훈이 모아 엮은 겨레 노래 <청산에 살어리랏다>,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타박타박 타박네야>가 바로 그 책들이다.

 

오천 년 겨레노래를 집대성한 가요집인 이 책들은 각권이 500~6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2008년에 남한에서 출간된 <겨레고전문학선집>은 원래 북녘에서 엮어진 책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예출판사가 펴낸 <조선고전문학선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펴낸 것이다.

 

보리출판사 편집자는 우리 겨레가 갈라진 지 반백 년이 넘어서고 있지만, 함께 산 세월은 수천, 수만 년이기 때문에 "겨레가 다시 함께 살 그날을 위해, 우리가 함께 산 세월을 기억해야" 하기에 <겨레고전문학선집>을 남한에서 출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남과 북 양쪽에서 고전 문학을 되살리려고 줄곧 애써 왔으나, 이제껏 북녘 성과들은 남녘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는데, 보리출판사가 북녘 고전연구의 성과를 소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북녘에서 먼저 출간된 <조선고전문학선집>은 가요, 가사, 한시, 패설, 소설, 기행문, 민간극, 개인 문집들을 100권으로 묶어내었다고 한다. 고전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모두 볼 수 있게 한문으로 된 원문을 현대문으로 옮기거나 옛글을 오늘의 것으로 바꾸어 엮었다는 것.

 

<조선고전문학선집>은 홍기문, 리상호, 김하명, 김찬순, 오희복, 김상훈, 권택무와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성과물이라고 한다. 남한에서 <겨레고전문학선집> 시리즈로 이번에 출간된 세 권 <청산에 살어리랏다>,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타박타박 타박네야>는 전체 시리즈 중에서 35, 36, 37권에 해당되는 책이며, 겨레의 노래를 빠짐없이 담고 있는 '가요집'이다.

 

"'가요'란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옛날에는 '가歌'와 '요謠'를 나누어 '가歌'는 음악과 함께 부르는 노래, '요謠'는 음악 없이 부르는 노래로 해석하였다. '가요'라는 말이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곧 '가요'는 '노래'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 '우리나라 가요에 대하여'(문예출판사 편집부)에서

 

청산에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에는 '공무도하가'를 시작으로 향가, 고려가요, 경기체가, 신라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불린 참요까지 고대 가요, 양반을 풍자하거나 골려주는 아이들 노래, 19세기 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 부른 군인들 노래와 의병들 노래, 개화 운동과 함께 부른 노래, 그리고 지금도 널리 불리는 여러 형태의 '아리랑', 천지창조 신화를 담은 '창세가', 제주도 무가 '이공본풀이', 에밀레종 전설을 노래한 '봉덕가'에 이르기까지 307편이 담겨 있다.

 

겨레 노래는 우리 겨레가 수천 년 동안 불러 온 우리 노래의 원형인 고대가요로부터 시작되어, 그 정서는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고조선 때 남편을 잃은 여인이 '님아 물 건너지 마오' 외친 소리가 노래가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고려 가요 '가시리'로, 한말 '아리랑'으로, 그리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노랫말은 달라졌지만 노래에 담긴 정서는 변함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제 삶에 견주어 다시 불렀을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힘이 되어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겨레고전문학선집 35권인 <청산에 살어리랏다>에는 특히 양반과 토호들, 권세를 잡은 사람들, 그리고 지주들이 약탈을 일삼고 백성들을 곤궁에 빠뜨리는 현실을 풍자한 노래들이 마음에 사무친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끼닛거리가 없는 백성들의 한탄과 분노를 담은 노래, 부모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하면서 세상을 바라본 아이들 노래를 만난다. 특히 아이들 노래에는 아이들 눈에 비친 불합리한 사회 모습이 아이들 말로 표현되어 있다.

 

사리화(沙里花)

 

얄미운 참세 떼
날아가고 날아오네
한 해 농사 다 짓도록
놀기만 하던 것들
홀아비 피땀으로
혼자 지은 낟알을
밭고랑이 훤하도록
다 쪼아 처먹누나

 

우리 마을 지주 마름

 

우리 마을 지주 마름
독사같이 모질대요
피땀으로 지은 곡식
송두리째 뺏어가고
우리 부모 끌어다가
일을 시킨대요.

 

사흘을 굶어서 아가는 울고요

 

사흘을 굶어서 아가는 울고요
엄마는 비칠비칠 나물 캐러 갔는데
지주가 와서는 빚을 내래요
지주놈은 독사, 바위 밑에 살모사

삼년을 일궈서 만든 뙤약밭
기장과 수수가 한두 알씩 달렸는데
그것이 제 땅이라 몽땅 앗아가 버리니
지주놈은 독사, 바위 밑에 살모사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는 농사 노래를 중심으로 농부가, 나무꾼 노래, 풀무 노래, 뱃노래, 해녀 노래 등 일 노래들, 명절이나 절기마다 놀이마당에 모여 부른 '쾌지나 칭칭 나네' '강강수월래' '윷 노래' '떡 타령' 같은 노래들, 그리고 가까이에 흔히 있는 동식물에 제 마음을 담아 부른 노래, 국토 산하를 노래한 것 463편이 담겨 있다.

 

"일노래는, 고된 일을 노래로 이겨 내야 했기에 다른 노래들보다 장단이 빠르고 흥겹지만,  흥겨움 속에 담긴 노랫말에는 고된 세상살이가 담겨 있기도 하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부른 '배따라기'에는 파도에 휩쓸려 배가 뒤집히고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동무들 여럿이 죽고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뱃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고, '뱃노래' '나무꾼 노래' '해녀 노래'들에서 그네들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노래 가운데 가장 많은 농사 노래는 계절에 따라 농사짓는 순서로, 논 가는 노래, 모 찌는 노래, 모 심는 소리, 논 매는 노래, 새 쫓는 소리, 벼 베는 소리가 실려 있는데, 힘든 일을 견디게 해 주는 신명이며, 마을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었던 농부가를 비롯한 농사와 관련된 노래가 정겹다.

 

<타박타박 타박네야>는 여인네와 어머니들 삶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살이 노래와 '길쌈 노래'로 대표되는 여성들 일노래, 사랑과 이별 노래, '자장가' '둥개야' 같이 아이 달래는 노래, 아이들이 부모를 그리는 노래, 아이들끼리 놀면서 부르는 동요까지 418편이 담겨 있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이 책에 있는 노래를 부른 주인공들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손 마를 새 없이 일을 하며 식구들 건사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이다. "시집살이 삼년에 미나리 꽃처럼 하얗게 새어버린" 여인네도 있고, 중이 되어 떠나는가 하면 당차게 시집 식구들에게 대항하는 며느리도 있다. 어디서고 편히 말할 수 없었던 속내를 노래 속에 담아 불렀다.

 

시집살이 못 할레라

 

뒷동산이 높다 하나 시아비보다 더 높겠소
사자 범이 무섭다 하나 시어미보다 더 무섭겠소
고초 후초 맵다 하나 시누이보다 더 맵겠소
해와 달이 밝다 하나 시누이보다 더 맵겠소
외나무다리 건너가기 의심 조심 많다 하나
이내 사는 시집보다 의심 조심 더 많겠소 중략)

 

잠 노래

 

잠아 잠아 오지 마라
시어마니 눈에 난다
시어마니 눈에 나면
남의 눈에 절로 난다.

 

잠 노래

 

잠아 잠아 오지 마라
요내 눈에 오는 잠은
말도 많고 흉도 많다.
잠 오는 눈을 쑥 잡아 빼어
탱주나무에다 걸어 놓고
들며 보고 날며 보니
탱주나무도 꼽박꼽박

 

"잠아 잠아 오지 마라" 아무리 빌어도 잠은 쏟아지고, 일거리는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일할 때는 오던 잠이" 막상 잠자리에 들면 잠이 오지 않더라는 마음이 드러나는 안타까운 노래도 실려 있다. 또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들도 겨레고전문학선집 37권, <타박타박 타박네야>에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맨 끝에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던 노래와 자장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겨레 노래 시리즈를 역은 김상훈은 남에서 반평생, 북에서 반평생을 보낸 시인이라고 한다. 1919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학도병을 거부하고 원산철도공장으로 끌려가 징용살이를 하였단다. 항일 활동을 하다가 1945년 1월에 붙잡혀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징역을 살았으며,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한국 전쟁 때 종군 작가로 전선에 들어갔다가 북에 남았으며, 북에서는 시를 쓰는 한편, 예부터 내려온 민간의 노래를 정리해 '가요집'을 엮었고, 우리 역사의 한시들을 골라서 '한시집'을 엮어내는 등 고전 문학을 오늘의 세대에게 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촛불집회에 쏟아져 나온 '명박산성가'와 같은 다양한 노래들에 담긴 백성들의 정서와 절절함 그리고 풍자는 어느날 갑자기 뇌리를 스쳐간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모인 것이 아니라 오천 년을 이어오는 겨레 노래에 담긴 정서가 오늘날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정권에 대한 저항 정서로 피어난 것이다.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겨레고전문학선집> 3권을 확인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 10점
김상훈 엮음/보리


옹헤야 어절씨구 옹헤야 - 10점
김상훈 엮음/보리


타박타박 타박네야 - 10점
김상훈 엮음/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