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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제대만큼 기쁘고 반가웠던 훈련소 수료 !

by 이윤기 2014.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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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말 공군에 입대한 아들이 지난 금요일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2박 3일 특별 외박을 다녀갔습니다. 진주에 있는 공군 부대에서 수료식을 마치고 나올 때는 마치 제대를 하는 것처럼 기뻤지만, 짧은 2박 3일 만에 다시 부대로 돌려보낼 때는 다시 훈련소에 보내는 것처럼 서운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들의 훈련소 생활은 6주였습니다. 훈련소에 있는 동안 두 번은 전화 통화를 하였고 매주 훈련소에서 찍은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았으며, 가족과 친구들이 돌아가며 인터넷 편지를 보내고 군사우편도 몇 차례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내는 울컥울컥하였고, 훈련소에서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점점 늘름하고 어젓해지는 아들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습니다. 


훈련소 수료식을 보러 가는 날은 전날부터 마음이 많이 설레었습니다. 점심은 집에 와서 먹을 계획이었지만 이것저것 간식을 챙겼습니다. 아들이 보내 온 군사우편에 통닭, 쵸코파이가 먹고 싶다고 씌어 있었기에 하루 전날 미리 후라이드 치킨을 예약하였습니다. 

 

 

과일과 쵸콜릿 그리고 아들이 부탁한 후라이드 치킨과 쵸코파이를 챙겨들고 일찍 훈련소로 갔습니다. 1시간 전에 도착하였지만 부대입구에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의 공군 입대 동기가 무려 1500여명이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생애 첫 경험 공감

 

1500여명이 한꺼번에 훈련소 수료식을 하는 날이니 적게 잡아도 1000여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공군 훈련소에 몰려들었을테니 차량 정체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마산에서 차로 40여분 걸리는 거리였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온 부모님들은 새벽일찍 출발했을 겁니다.

 


 

부대 입구의 넓은 잔디 연병장에서 수료식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연분홍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바람이 불때마다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졌습니다. 매월 훈련병들이 입대하니 1년에 12번은 수료식이 있을텐데, 이렇게 멋진 계절에 수료하는 것은 4월에 수료하는 훈련병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연병장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에 또 다시 한 참을 걸어서야 수료식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들이 속한 소대 바로 앞쪽 스텐드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데, 저도 긴장이 되더군요.

 

 

20여분 후에 멀리서 훈련병들의 우렁찬 군가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시 후에 연병장 입구에 훈련병들이 들어오더군요. 1500여명의 젊은 훈련병들이 대대, 중대, 소대별로 우렁찬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입장하였는데, 모두 똑같은 군복을 입었지만 아들이 속한 소대가 본부석 앞을 지날 때 첫 눈에 아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음 짠하게 하는 군기 바짝든 모습...

 

6주간의 군사훈련으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더군요. 이른바 '군기'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훈련병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어 생기는 것이니까요. 쉽게 말해 자존감은 무너지고 바짝 쫄아 있는 모습인 것이지요.  

 

훈련소를 마치는 1500여명의 훈련병들이 연병장을 가득채우자 길지 않은 수료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대장의 인사와 훈련성적이 좋은 병사들에 대한 포상 그리고 훈련병들의 군가 제창과 수료식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마침내 6주만에 아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6주보다 훨씬 긴 시간을 헤어져지냈었지만, 군대에 있었던 6주간의 헤어짐은 그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아들이나 아비나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애달픔과 그리움의 시간을 보낸 탓이었을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저를 부둥켜 앉고 한 참동안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반가움과 애틋함에 울컥하였고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수료식에 함께 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껴안았을 때도 한 참 동안 포옹을 풀지 못하였습니다. 다 큰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슴에 안겨 뜨거운 정을 나눈 것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는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들은 쉰 목소리로 훈련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쉼없이 들여주었습니다. 

 


행군, 화생방 훈련, 유격 훈련, 사격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오래 전 군생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인 아버지와 남자인 아들이 서로가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훈련소 경험을 통해 애틋한 부자의 정을 나누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훈련소에서 돌아와 지낸 2박 3일은 예상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귀대를 앞둔 일요일 오후, 아들 녀석은 "처음 입대하는 날 보다 더 기분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요. 처음 입대하던 날은 막연한 두려움만으로 훈련소에 갔었지만, 이번엔 구체적인 경험으로 학습된 긴장과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훈련소에 비하여 생활수칙은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더군요. 4주 동안 특기 교육을 받는데, 부대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품목이 훈련소보다 많이 늘어났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교육대에 있는 4주 동안은 주말에 면회도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2박 3일, 금새 지나갔습니다. 일요일 오후 7시로 정해진 귀대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더니 30여분 전에 부대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아들 녀석은 최대한 씩씩한 모습을 보이며 "잘 다녀오겠다"고 하며 짧은 포옹을 하고 난 뒤 거수 경례를 하고 부대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집에선 한 번도 거수경례를 하지 않았는데, 아마 부대 앞이고 훈련소 조교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가족들이 부대 정문 앞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더군요. 가장 힘든 훈련소 생활이 끝났지만 그래도 아들을 들여보내는 엄마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앞으로 여러 차례 휴가를 나오면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겠지만 6주 훈련을 마치고 2박 3일로 다녀간 특별 외박은 6주간 기다리고 기대했던 것에 비하여 참 짧았습니다. 훈련소 수료식은 마치 군대를 제대라도 하는 것처럼 기쁘고 반가웠지만 고작 2박 3일만에 다시 부대로 돌려보내는 마음은 다시 서글프고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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