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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교육

9시 등교? 부모 출근시간도 9시 지켜주나?

by 이윤기 201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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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등교? 등교시간 늦춘다고 충분히 잘 수 있나?


경기도교육청과 충북 교육청이 9시 등교를 실시한다고 예고하면서 크고 작은 논란일 일고 있습니다.  “이재정 교육감이 오는 2학기부터 9시 등교 시행을 지시했다. 김병우 충북 교육감 역시 0교시 보충수업을 폐지하고 조기 등교를 금지했다”고 여러 언론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재정 교육감은 전부터 “아이들이 충분히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나와 9시부터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소신을 가지고 9시 등교를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15일 수원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토크콘서트'에서도 이재정 교육감은 "2학기부터 9시 등교를 시작할 생각"을 밝혔다고 합니다.


9시 등교는 학생들에게 아침밥과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라고 합니다. 9시 등교를 찬성하는 분들은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늦춰 최소한의 수면을 보장해주고, 아침밥도 먹고 학교를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권적인 조처라고 합니다.



진보 언론인 민중의 소리는 "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고 외쳤던 중고등 학생들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아침밥도 굶고 등교하는 자녀를 안쓰럽게 지켜봐야했던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라고 보도하였더군요. 


하지만 한국교총을 비롯한 보수단체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등·하교 시간은 학교장 고유의 권한인데 교육청이 획일적인 정책 추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더군요. 


아울러  교육감이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일선학교 입장에서는 강요나 다름없으니 강제적인 추진 중단을 촉구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좀 더 현실적인 이유에서 9시 등교를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있습니다. 바로 맞벌이 부부들입니다. 맞벌이 학부모들은 "아침밥을 먹이고 준비물을 챙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해야 안심할 수 있는데, 당장 2학기부터 9시 등교가 현실화 되면 부모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출근해야 하는 공백 상태가 생긴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선거에 전국에서 출마한 진보교육감을 지지하였고, 여러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9시 등교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조건에서 시행하는 9시 등교가 별로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서열화와 입시교육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와야 급여를 많이 받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나라(학력간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에서 등교시간만 9시로 바꾼다고 아이들이 공부시간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교육감 지지하지만 9시 등교는 반대 !


앞서 인용한 민중의소리에 따르면 OECD 국가 중에서 중고등학생들을 가장 적게 재우고 공부는 가장 많이 시키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OECD 국가들의 일주일 평균 학습시간은 33.92시간인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49시간으로 15시간이나 더 공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7시간30분으로 다른 나라보다 1시간정도 짧아 수면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장시간 학습과 수면시간 부족은 9시 등교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8시에 등교(중학생의 95%가 8시 - 8시 30분 등교)해도 아이들이 지금처럼 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지 않고 밤 11시 이전에 잘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8시간 이상 잘 수 있습니다.


따라서 9시에 등교한다고 해서 '학습시간'이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어쩌면 학교 근처에 새벽반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룰지도 모릅니다. 중고생들이 9시에 등교하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줄어들지 모르지만 결국 그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업 수완이 좋은 학원들은 아침에 1시간 혹은 1시간 30분쯤 하는 수업을 만들 것입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침에 1시간쯤 과외 공부를 시키고  바로 학교로 등교 시켜주는 학원에 아이를 맡기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맞벌이 가정 아이들은 아침에도 학원 가야 할 수도


아울러 9시에 등교한다고 해서 수면 시간이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5당 6락'이니 '4당 5락'이니 하는 입시공부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데 등교시간만 늦춘다고 아이들이 잠을 더 잘 수 있을까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질 가계소득은 해가 갈 수록 줄어들고, 맞벌이 부모들 가정은 늘어나는데 부모의 출근(노동) 시간은 늦춰주지 않으면서(혹은 9시 출근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등교 시간만 늦추면 부모가 모두 출근하고나서부터 9시에 맞춰 등교하는 시간까지 도대체 아이들은 누가 책임진다는 말인가요?


아이들의 등교시간을 늦추려면 부모의 출근시간도 늦춰줘야 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출근시간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라도 늦춰주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직장 출근 시간은 9시로 정해져 있지만, 9시에 맞춰 출근하는 직장은 없습니다. 


노동법에 대로 하루 8시간 노동만 할 수 있도록 출근시간 9시를 지키지 않는 사업자들부터 먼저 처벌하거나 혹은 조기 출근 금지법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학교 등교시간을 9시로 늦추려면 부모들의 출근 시간도 9시까지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을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데 단순히 등교 시간만 늦춰 장시간 학습과 입시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구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부모와 학교 어느 곳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날 뿐이겠지요.  


제가 사는 경남의 박종훈 교육감은 "개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행정정으로 추진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고 해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9시로 늦춰지면 교사들의 근무조건은 나아질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학생들의 학습시간이 줄어들고 수면시간이 늘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