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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귀농 = 전원생활'이라는 환상을 깨라

by 이윤기 200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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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자연을 그리워하고 땅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꿈꾼다. 그리고 또 그 중에 여럿은 도시를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간다. 설령 농촌을 떠나온 적이 없는 사람들도 땅과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쫓아서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나이가 들면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금만 자세히 들어보면 귀농보다는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꿈인 경우가 허다하다.

소일 삼아 고추, 상추, 깻잎, 쑥갓 따위를 가꾸는 텃밭을 일구면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명상도 하고 산책도 하며, 커다란 통유리로 된 거실과 파란 잔디가 심어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교수를 그만두고 변산 공동체를 일구는 윤구병 선생이 쓴 어느 글에서 전업 농민이 되어서 "하루에 4시간 육체노동을 하고, 하루에 4시간은 정신노동을 하는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부부와 같은 삶을 기대하는 귀농은 꿈같은 이야기"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전국 귀농운동본부가 펴낸 <귀농 길잡이>는 귀농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 귀농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 귀농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 이제 막 귀농을 꿈꾸는 사람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귀농고수'들, 이 책안에 다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전국귀농운동본부와 더불어 귀농을 실천하고 있거나 구체적으로 농촌살이에 대한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강호의 고수(?) 혹은 초야에 묻힌 고수(?) 23명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글쓴이들 대부분은 전국귀농운동본부를 비롯한 전국 10곳에서 열리는 귀농학교의 단골 강사이거나 귀농운동본부가 계절마다 한 번씩 만드는 <귀농통문>에 글을 실었던 분들이다. 이미 자신과 가족들의 '농촌살림'을 소개하는 책을 따로 내신 분들도 여럿 있다. 책을 읽어보면 첫 느낌은 우선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를 떠나서 농촌에서 생태적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귀농자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텃밭 한 떼기라도 가꾸며 아니 그 보다 못하면 옥상 화분에다가 고추 몇 포기라도 심어가며 '도시에서의 생태적인 삶'을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두루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귀농 백과사전'이라는 생각이 딱 꽂혔다. 귀농 철학에서부터 구체적인 논농사, 밭농사, 농촌살림, 집짓기, 집 고치기, 아이들 교육과 건강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물농사, 도시농업, 가축 기르기, 양봉, 장 담그기, 효소 담그기 등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뿌리내리려는 초보들에게 꼭 필요한 모든 것을 담으려 노력한 마음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농사짓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글에서 평생농사만 짓고 살아온 경기도 양주의 김준권 농부님은 농사를 짓는 힘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즐거움"에서 나온다고 한다. "(도시의)직장에서는 나이와 능력 같은 조건을 견주어 퇴출시키지만, 농사는 쉬고 싶으면 쉬고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농업"이라고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 속에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훨씬 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귀농 관념(?)주의자들에게 고함

김준권 농부님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네 가지 개척정신으로 '4W'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 째는 길(Way)이 아니면 갈 수 없기에 반드시 길이 있는 땅이 있어야 하며, 두 번째는 반드시 물(Water)이 있어야 하며, 세 번째는 노동력(Worker)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인(Wife)이라고 한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농촌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 귀농 관념주의(?)인 나의 귀농 꿈은 농촌에서 태어난 뒤로 결혼 전까지 농촌에서 도시에 있는 일터를 다닌 아내에게 여지없이 깨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4W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Wife'라고 생각한다.

이 때 부인은 배우자라고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고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길'(Way)을 함께 갈 '배우자'(Wife)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먼저 귀농의 꿈을 꾸기 시작하든지 배우자가 이 길을 함께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많은 귀농자들의 충고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귀농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다.

귀농 관념주의자들에게 던지는 이진천 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의 충고 역시 뼈아프다. 그가 귀농운동을 통해 부닥치고 깨지며 얻은 귀농, 준비에서 정착까지 아홉까지 비결을 보면 아내 표현처럼 귀농관념주의자라는 것이 더 분명해진다.

이진천님의 아홉 가지 비결 중에서 귀농 준비 단계의 비결만 살펴보면, '지금 당장 도시농업을 시작하라''귀농교육을 받고 원하는 정보를 모아라''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시대와 호흡하라''도시의 편리함은 잊어라' 등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귀농통문>과 생태적 삶을 꿈꾸는 책과 글을 찾아 읽고 말씀을 듣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구나. '결국 철학적 고민을 가지고 시대와 호흡하는 일'만 하고 있었으니 귀농 관념주의자가 맞기는 맞다.

생태적 귀농을 위한 5가지 조건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이병철 이사장은 마중 글에서 생태적 귀농을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따져볼 것을 권한다.

첫째, '귀농'이란 '농'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농'을 '업'으로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농적 삶, 곧 모든 생명의 근원자리인 자연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둘째, 귀농은 삶의 '전환'이다. 직업이나 직장 또는 생계수단을 농업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어야 한다. 생태적 삶이 내가 원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삶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넷째,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의도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발을 땅에 딛고 스스로의 손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할 의식주, 교육, 문화의 자립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다섯째, 자연과 함께 사는 법, 조화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몸에 밴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의 도리에 따라 단순성을 회복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귀농운동보부가 펴낸 <귀농길잡이>는 스물세 명 귀농자들의 생각과 삶을 엿봄으로써, 귀농 관념주의자들을 현실의 농촌, 농사, 농부의 삶으로 끌어내리고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귀농 철학책이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삶의 전환을 위한 판단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새롭게 귀농의 꿈을 키울 만한 이야기도 너무 많이 있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가꾸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사실 시골에 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서 편안하고 행복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키 작은 나무까지 내려와 있는 하늘, 질리지 않게 눈동자에 담아둘 수 있는 푸르름, 들을 가로지르는 바람, 가문 날의 비 한 줄기, 잘 마른 빨래, 누군가 두고 간 밑반찬, 이웃과 눈을 맞추면 인사하는 내 아이들, 함께 일하다 웃는 싱거운 웃음 한 자락, 그런 것들로 인한 만족감은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추둘란 농부님의 글 중에)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자연과 조화되는 바른 삶을 살자면, 정현숙 농부님의 장과 효소 담그기, 최한실 농부님의 나물 캐기, 장영란 농부님의 나물 먹기와 같은 농가살림을 배울 수 있는 글이나 양희창 선생의 교육이야기, 김광화 농부의 홈스쿨 이야기 같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고민, 김남수님의 침뜸, 양동춘님의 발포요법과 같은 내 몸 돌보기는 위한 글들은 당장 귀농을 꿈꾸지 않는 이들에게도 참 유익하다.

23명의 필자 중에서 많은 분들이 성공하는 귀농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몇 년을 살았는지, 몇 년을 더 살 것인지 하는 것을 헤아려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사는 도시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 앞으로 또 몇 년을 더 살아야 하는지를 날마다 헤아려보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삶, 가슴 따뜻한 행복한 삶을 위한 꿈을 꾸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귀농길잡이> 전국귀농운동본부 엮음/ 소나무 - 340쪽,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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