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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필한 문장가 "글쓰기는 천재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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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절필을 선언한 고종석이 쓴 <고종석의 문장>입니다. '절필을 선언했는데 무슨 책이냐?' 하실 분들도 있겠습니다. 그 사연부터 밝히면 이번 책은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숭실대에서 진행하였던 '글쓰기 강연'을 묶어 <고종석의 문장>으로 펴낸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유명 저자인 고종석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남들보다 책을 적게 읽는 편이 아닌데도 독서 편향이 심하여 이미 잘 아는 작가들의 책만 주로 읽다보니 그리된 것 같습니다. 


<고종석의 문장>을 펼쳐들고 채 10여 쪽을 넘기기 전에 저자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저자야 말로 글자 그대로 '지식인'이더군요. '동서고금'의 철학, 역사, 문화, 교양에 두루 능통하였습니다. 


이미 절필을 선언하였던 저자는 이 강연을 통해 자신이 "글쓰기보다 말하기를 더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더군요. 


글쓰기 책의 서평을 쓸 때 가장 큰 부담은 좋은 책을 읽고도 글쓰기 실력은 별로 일취월장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입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타고난 재능 없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고종석의 강연을 여러 차례 무릎을 치며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만, 하루 아침에 제 글쓰기가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글쓰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말은 큰 위로가 됩니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모든 뛰어남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음악이나 수학은 재능을 타고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수학이나 음악과는 다릅니다. 충분한 훈련이나 연습으로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글이 나아집니다. 특히 산문가들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건 글쓰기가 재능에 달린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훈련에 달려 있다는 걸 뜻합니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본문 중에서) 


글쓰기라고 하는 것이 수학이나 음악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저자는 재능보다는 훈련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만년에 좋은 글을 남긴 저명한 작가들도 20대에 쓴 글을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런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흔히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이 제일이라고 합니다만, 저자는 그냥 많이 읽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잘 쓴 글을 많이, 반복해서 읽는 게 좋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좋은 글을 쓰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두 번째 비결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동문 - <상식>, <공산당선언>, <9월이여 오라>-은 모두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입니다. 첫 문장이 인상적인 <상식>과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었다는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 두 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옮겨보겠습니다. 


"아마도 아래 담겨 있는 의견들은 아직도 충분히 보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오는 게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보면 마치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조지 부시의 복제인 것처럼 생각도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여기서 뵙고 토마토가 제게 날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한 저의 믿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선동문 뿐만 아니라 <러브스토리>나 <이방인> 같은 소설들도 마찬가지라고 소개합니다. 


"스물다섯 살에 죽은 여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예뻤다고. 그리고 총명했다고. 그녀가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고." (본문 중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본문 중에서)


<러브스토리>와 <이방인>의 첫 문장인데, 매우 인상 깊었던 문장이라고 소개합니다. 특히 카뮈가 쓴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첫 문장에 반해서 읽었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아무리 보석같은 명 문장이라도 중간에 넣으면 주목받기 어렵다는 것이 저장의 주장입니다. 짦은 글이든 긴 책이든,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글쓰기,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중요하다


한편 글쓰기 강연을 묶은 이 책을 다른 책과 비교하여 특별히 대단한 책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제와 관련된 풍부한 지식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마르크스 저작인 공산당 선언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할 때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프랑스 대혁명이 끝나는 시기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마르크스의 저작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함께 들려줍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할 뿐 아니라 새롭게 알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문학에 문외한인 저는 <하늘의 뿌리>를 쓴 로맹 가리와 <자기 앞의 생>을 쓴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이며,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는 이야기가 소설을 읽는 것 못지 않게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는 도대체 이런 소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리 많이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글쓰기 이론 강의와 실전 연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론 강의를 조금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이론 강의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수사학과 논리학의 조화입니다. 글에는 논리가 있어야 하지만 잘 읽히기 위해서는 수사가 필요하다더군요. 저자는 잘 읽히는 글이 되기 위한 수사학을 '화장'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명확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지만 반드시 논리학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 하였습니다. 논리와 수사 중에는 논리가 앞선다는 것이지요.  


자연언어와 인공언어의 차이, 언어의 불연속성 같은 주제들을 함께 다루고 있는데 어려운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학과 논리학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한국어 답게'입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단어를 많이 익혀야 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어는 의성어와 의태어 그리고 색채 어휘가 잘 발달하였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결하고 좋은 문장을 위한 몇 가지 원칙들도 강조합니다. 접속부사를 빼면 문장에 힘이 생긴다든지, 일본식 접미사 '적'을 뺄 수 있으면 빼라든지, 일본식 조사 '의'도 빼는 것이 자연스럽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간결한 문장을 강조하면서 일본어를 직역한 '~에의', '~로의' 같은 겹조사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한국어 답게 쓰기 위하여 한자어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합니다. 한자어 사용에 대해서는 길고 자세한 설명이 있었는데 다 소개할 수가 없으니 책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원칙에 대한 설명은 모두 구체적 사례를 들어 알아듣기 쉽고 친절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바른말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단어나 표현의 옳고 그름은 학자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쓰는 사람들(언중)이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걸으면 길이 되듯, 사람들이 하면 말이 됩니다. 어원이나 본디의 뜻 같은 것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그 말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입니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표준어에 대한 최종 심판관 역시 언중이라는 것이지요. 저자는 SNS에서 쓰이는 다양한 사회 방언 역시 한국어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파괴와 동시에 진화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박학다식한 저자의 '글쓰기' 강의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고 새로운 사실들이 등장하는데요. 그중에서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은 '훈민정음'에 대한 기존 상식을 깨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내용들입니다. 


저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첫 번째 이유는 조선을 건국한 이후 백성들을 잘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두 번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의 한자음이 중국인들의 한자음과 너무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중국어 발음과 가깝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에서 정음이라는 건 대체로 중국인들이 발음에 가까운 소리를 말합니다. 그 소리를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겁니다."(본문 중에서)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때 올바른 소리란 당대의 중국어 발음을 말한다는 것이지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기 때문에 중국어 원음에 가깝게 만들기 위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는 겁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백성을 잘 통치하기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쓰려면 꾸준한 독서로 지식과 교양 갖추어야 


한편 글쓰기는 잘 하려면 말과 글을 다루는 재주를 갖추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지식과 교양'이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저자의 강연에 글쓰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다양한 역사, 문학, 철학적 지식을 활용한 것도 바로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식과 교양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잠작하신대로 '독서'입니다. 


"첫 번째도 독서, 두 번째도 독서, 세 번째도 독서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책이나 읽는 게 아니라 좋은 책을 읽어야겠지요.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힘은 어떻게 키울까요? 그것도 독서를 통해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퇴고'입니다. 한 번 쓴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하는 것을 귀찮아 하는 탓에 워낙 오타를 많이 쓰는 저로서는 정말 따끔한 충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수강생이 쓴 글에 대한 고종석의 평을 읽으면서 제 얼굴이 달아 올랐습니다. 


"이 글을 쓴 이는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뒤, 자신이 쓴 글을 한 번도 다시 읽어보지 않고 남에게 보인 것입니다. 이것은 글쓰기의 무책임과 불성실이라고 비판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쓴 뒤에는 꼭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본문 중에서)


"오타나 맞춤법 잘못은 글쓴이가 자기 글에 애정이 없다는 징표일 수 있습니다. 글쓴이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글을 남이 사랑해주지는 않습니다." (본문 중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때는 그야말로 마음에 비수가 꽂혔습니다.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글을 세상에 내놓지 않기 위해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한 번은 꼭 다시 읽고 남에게 보이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좋은 문장 쓰는 법을 열심히 읽었지만 책 한 권 읽은 것으로 단번에  간결하고 좋은 서평이 써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렇지만 간결하고 좋은 문장을 쓰는 여러 원칙들 중 몇 가지는 제 글에도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위로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말을 믿고 아름다운 글쓰기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고종석의 문장 - 10점
고종석 지음/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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