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나서서 태극기를 다 달라고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있는 것 같네요. 삼일절 여너 날 앞두었는데 시내 곳곳에 태극기가 달렸더군요.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 하다가 국기에 대한 경례 하는 장면을 보고는 애국심 운운하던 대통령이 집집마다 빠짐없이 태극기를 달게 할 모양이네요.
지난주 지방정부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애국가 제창' 순서에 내빈과 참석자들 모두 입술만 달싹이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기념일이나 정부 행사를 할 때 대통령은 애국가를 따라부를까? "
이런 생각을 한 까닭은 정부 공식행사에서 사용하는 애국가 합창(반주)을 따라부르기가 너무 어렵웠기 때문입니다.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 행사장에서 부르는 애국가는 왜 따라 부르기가 어려울까요? 한동안은 음치인 저만 어려운줄 알았는데, 가만히 관찰해보니 행사에 참가한 누구도 애국가를 제대로 따라부르지 못하더군요.
기껏해야 행사장에 울려퍼지는 애국가 합창을 '웅얼웅얼' 따라하는 것이 전부더군요. 기관이나 단체장들의 경우에도 별로 다르지 않아보였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애국가'부르기는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어떤 경우에는 '애국'이란 것을 해야하느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물론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어느쪽이든 다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행사장 애국가는 따라부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가만히 관찰해보니 행사장 애국가는 반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합창곡을 앰프를 통해 크게 틀어놓고 따라부르게 하는데, 이 합창곡이 '성악 전공자'들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따라부르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창시절에 애국가를 4절까지 배웠던 기억이 있고, 음치인 저만 빼고 친구들은 모두 큰 목소리로 잘 불렀었는데...정부의 공식 애국가는 따라부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공공기관이나 정부의 행사에 가도 애국가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큰 행사 때는 애국가 1절을 함께 부릅니다. 보통 사회자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애국가는 1절만 부르겠습니다. 큰 목소리로 함께 불러(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애국가를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작은 목소리로 노래의 흐름을 따라가며 웅얼웅얼 할 뿐이지요.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적어도 애국심 가득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모이는 행사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가득한 입학식이나 졸업식 행사장에서도 애국가를 큰 목소리를 따라 부르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학부모도그리고 내빈들도 애국가를 제대로 따라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뭐 광화문 광장 건너편에는 가끔 '불(?)타는 애국심'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사는 작은 도시에서는 그런 일 별로 없습니다.
아무튼 정부, 공공기관, 학교에서 행사 때 사용하는 애국가 음악은 '행정자치부'에서 만들어 배포한 것입니다.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다운 받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문제는 일반 국민들이 따라부르기 어렵게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들 수준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1절부터 4절까지 부르는 연습을 했던 국민들도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 있는 애국가는 따라부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애국가를 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심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애국가를 부르고 싶은 국민들을 위해서 보통 사람들이 따라부를 수 있는 합창곡을 배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태극기 달자고 설치는 바람에 삼일절에는 태극기를 다는 것도 싫어졌습니다. 국가기념일이나 정부 행사 때 애국가 제창 순서가 되면 대통령은 행정자치부 애국가 가락에 맞춰 얼마나 크게(제대로 따라) 부르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