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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네비게이션'이 사람을 '길치'로 만든다.

by 이윤기 2009.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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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양산에 있는 해운자연농원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인원이 많아  승합차 한 대에 다 탈 수 없어 승용차 한 대를 포함해 두 대의 차로 나누어타고 갔습니다. 늦게 도착한 차 한대는 운전이 서투른데다 기계치인 후배가 자기 차를 운전해서 왔습니다. 

마산에서 출발해서 양산으로 오는 길에, 아무 이유없이 남해고속도로에서 내려 '김해시'에 진입했다가 다시 돌아나왔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마지막 양산 IC 진출로에서는 '하이패스' 차량 출입로로 진입하여, 경보기가 울리고 직원이 뛰어나오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마산으로 돌아오는 길엔 제가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양산 해운자연농원에서 마산까지 오는 길은 네비게이션이 없어도 얼마든지 찾아 올 수 있는 길이라 자신있게 후배 네 명을 태우고 출발하였습니다. 저도 자주 다닌 길이 아니고, 최근 몇 년 동안은 이 근처에 와 본적 없는 길이지만 충분히 잘 찾아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 사진은 글 내용과 관련이 없음



마침, 점심시간이라 양산 IC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전에 가까운 식당에 들러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원래 차 주인인 후배가 빌려온 네비게이션으로 마산 사무실 위치를 찍었습니다. 이제부턴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만 잘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국도를 따라 대략 10여분을 가니 '양산 IC' 진입로가 나오더군요. 네비게이션도 여러 번 양산 IC로 진입하라는 안내를 하더군요.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뽑아 고속도로로 진입하였습니다. 얼마 안가서 곧바로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왼쪽은 대구, 양산 방향이고 오른쪽은 부산방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당연히, 오른쪽 부산방향으로 진입하는 것이 맞습니다. 톨게이트에서 티켓을 뽑고 가속을 시작하여 50~60km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네비게이션은 왼쪽으로 진입하라고 안내를 하는 겁니다. 불과 2~3초 사이에 순간 막 헷갈렸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어 왼쪽으로 가는 것이 맞나"
"아닌데, 원래 부산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을 텐데"
"에이~ 그래도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것이니 왼쪽이 맞겠지."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 후에 결국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대로 진입하였습니다. 인터체인지의 굽은 길을 따라 빙~돌아서 본선에 진입하는 순간 모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 뿔싸 세상에나 거꾸로 진입한 겁니다. 고속도로는 U턴을 할 수 없으니 다음 톨게이트까지 그냥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네비게이션이 엉터리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후배는 자기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잘 못 입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확인을 하였습니다. 다시 확인해봐도 목적지는 마산공설운동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목적지는 '마산'인테 옵션에서 빠른 코스 대신에, '추천 코스'가 선택되어 있더군요.  할 수 없이 10여 km를 더 달려서 통도사 IC까지 갔습니다. 그럼, 당연히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가 다시 부산방향으로 진입하라고 안내해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네비게이션은 국도를 따라서 양산IC 방향으로 내려가라고 안내를 하는 겁니다. 그 때 후배가 경로를 검색해보더니, 목적지는 분명히 마산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에 있다는 것입니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운전하면서 네비게이션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확인할 길도 없고, 네비게이션을 계속 국도를 따라서 달리라고 안내를 하고 있을 뿐이고... 그럼 다시 출발 장소인 양산 IC로 돌아가야하고... 결국 저는 후배에게 네비게이션을 끄라고 했습니다.

'네비'없어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니, 그냥 이정표만 보고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통도사 진입로 근처에서 차를 유턴시켜서 톨게이트로 다시 진입하여 부산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양산IC를 지나서 대저분기점을 지나 김해를 거쳐 마산까지 무사히 잘 내려왔습니다.

햇갈리는 '네비' 덕분에 다른 차보다 30분쯤 늦게 도착이 늦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후배가 안쓰러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네비'가 엉터리 안내를 하였을 수도 있고, 후배가 조작을 잘못하였을 수도 있고, 옵션이 '추천코스'로 되어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네비'가 없었으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네비를 믿었다고 실컷 헤맸다는 것입니다. 아예 제가 모르는 초행길이었다면, 틀린 줄도 모르고 계속 '네비'가 시키는대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운전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네비가 없을 때는 잘 다녔던 길도, 네비를 달고나면 네비로 찍어서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길치'가 되어가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네비'없이는 전에는 잘 가던 길도 못찾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기계문명의 편리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원래 사람이 할 줄 알수 있었던 일을 기계가 대신해주시 시작하면, 결국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는 것 입니다. 사실 이런 예는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저만 전자계산기와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암산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주산을 했고,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데...지금은 까다롭지 않은 계산도 계산기가 없으면 미덥지가 않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부터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습니다. 이젠 가족들 전화번호도 못 외웁니다. 기냥 단축번호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요.

네비게이션이 결국 사람이 가진 기억력, 방향감각, 이정표 찾기와 같은 능력을 모두 감퇴시키는 것이지요. 어쩌면, 나중엔 네비가 오류를 일으켜서 틀린 길을 안내해도 틀렸는지 맞는지도  모르고 그냥 끌려다니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