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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구하기 힘들다는 허니버터칩 책상마다 놓인 교실

by 이윤기 201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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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가시면 단원고 꼭 가보세요. 정부합동 분향소에서 참배만 하고 가지 마시고 꼭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을 들렀다 가시기 바랍니다. 지난 토요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와 가족대책위를 방문하였을 때, 재욱 엄마의 권유로 두 곳을 더 들렀습니다. 


한 곳은 경기미술관에 있는 대책위 TF 사무실이었는데, 그곳에서 해수부가 만든 특별법 시행령이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해수부가 만든 시행령은 한 마디로 진상조사 자체를 포기하고, 진상조사 특위를 무력화 시키는 법이라는 것이 가족대책위의 입장이었습니다.(그때만 해도 아직은 비공식 입장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일요일 저녁 대책위 전체 회의를 거친 후에 월요일부터 반대 시위와 행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이야기, 인양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진상 조사를 방해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바로 사고를 일으킨 범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대책위 분들을 만날 때마다 한결 같이 듣는 이야기는 딱 한가지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기미술관을 나와 차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안산 단원고등학교로 이동하였습니다. 단원고등학교 2층과 3층에 있는 옛 2학년 교실은 2014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춰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커다란 추모 공간이었습니다. 


책상마다 사진이 놓여 있었고 꽃과 화분 그리고 수많은 사연이 담긴 쪽지와 편지지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책상위에 아무 것도 없는 자리는 살아남은 아이들의 자리였고, 책상위에 온갖 추모 물품이 가득한 곳은 모두 작년 4월 16일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자리였습니다. 


그 구하기 힘들다는 허니버터칩이 책상 마다 놓인 교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반 아이들 모두에게 허니버터칩을 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발렌타인 데이에 놓였을 것 같은 쵸콜렛도 있었고 화이트 데이에 놓였을 것 같은 사탕도 있었으며, 빼빼로 데이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르는 빼빼로도 있었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 선생님들을 그리워하는 글귀도 정말 많았습니다. 여러 교실에 반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젊고 고운 선생님들도 교사의 꿈을 못다피우고 떠나신 분들이더군요. 




저희 일행이 단원고 교실을 둘러 보는 동안에 많은 분들이 함께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젊은 신부님도 계셨고,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여러 명이 교실을 차근차근 둘러보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을 둘러보고 있을 때, 재욱 엄마가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시더군요. 일행들 모두 각자 스마트폰으로 추모 글귀와 교실 풍경을 부지런히 찍었지만 우리 일행 중 누구도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은 이곳에 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찍었을겁니다. 


그런데 재욱엄마가 먼저 단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선 일행의 표정이 모두 굳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재욱 엄마가 한 마디 하시더군요. "아이들도 굳은 표정으로 사진 찍으면 싫어할 겁니다. 괜찮습니다. 웃으면서 찍으세요. 웃어세요" 그러고보니 책상위에 놓인 아이들 사진은 모두 하나 같이 활짝 웃는 사진들이었습니다. 



저희 일행이 단원고 교실을 둘러 보는 동안, 저희를 맞이하여 대책위 할동을 소개할 때는 담담하고 결기 있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소개를 해주셨던 아버님 한 분이 단원고에 오셨습니다. 


활동 소개를 마치며 학교에 가면 "우리 아들 한 번 찾아봐 주세요" 하고 당부 말씀을 하셨던 분이 정작 본인은 아들이 있는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를 서성거리고 계셨습니다. 여전히 아들 교실을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사고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아이들을 땅에 묻을 수도 없고, 가슴에 묻을 수도 없는 것이 그 부모들이더군요. 



저희 일행이 단원고등학교를 떠날 때 재욱 엄마가 하신 말씀이 귓가에 선명합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쉽게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고 지난 1년 동안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단원고등학교를 출발하여 안산을 떠나오는데, 1986년 어느 봄 날 광주 망월묘역을 처음 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광주와 망월 묘역의 스산한 기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억울한 죽음들을 집단적으로 마주하던 날의 분노와 슬픔이 다시 생각나더군요. 어쩌면 세월호 사고는 2014년에 일어난 또 다른 광주 학살 사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