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교육

작별 시간만 1시간 30분...대안학교 졸업식

by 이윤기 2016. 1. 19.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9일 둘째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경남에 있는 공립형 대안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 다녔던 아들이 3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였지요. 다른 학교보다 1달 정도 빠른 졸업식 이었는데, 시기만 빠른 것이 아니라 졸업식 분위기도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여러 내빈들의 뻔한 인사말이 없었는데도 졸업식 본 행사만 1시간 30분이 걸렸고, 선생님, 후배들과의 작별 인사에 또 1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첫째 아들 초중고 졸업식 세 번, 둘째 아들의 초중 졸업식 두 번 모두 다섯 번의 졸업식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긴 졸업식 행사는 처음이었습니다. 


졸업식이 얼마나 길었던지 아들 졸업식에 같이 갔던 가족들끼지 기념 사진도 한 장 못 찍고 그냥 왔습니다. 저희 가족 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졸업하는 아이와 함께 기념 사진을 못 찍은 여럿이었습니다. 둘째 손자 졸업식에 함께 가셨던 제 아버지도 "팔십 평생 살면서 이런 졸업식은 처음이다"고 하시더군요. 



태봉고 졸업식은 본 행사부터 조금 특이 하기는 하였습니다. 졸업생 모두가 단상에 올라가서 졸업장과 상장을 받았습니다. 상장은 성적이 좋은 친구들만 받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특기가 드러나는 상을 졸업생 모두가 하나씩 받았습니다. 저희 집 둘째는 방송부 활동과 졸업앨범 제작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받았더군요. 


또 특이한 것은 졸업생 모두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졸업생 전원이 단상에 올라가서 장학증서를 받더군요. 대학 진학을 안 하는 저희 아들도 소정의 장학증서를 받았더군요. 


4년 전 첫째 아들 졸업식에 갔을 때는 서울대를 비롯하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는 4년, 1년 대학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주는 대신 그외 아이들은 국물(?)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이 장학금을 성적이 좋은 소수의 아이들에게 몰아 주는데 태봉고등학교는 여러명의 졸업생 골고루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최소화 하였습니다. 저희 아들은 졸업식 당일까지도 자신이 장학금을 받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더군요. 


다른 점은 또 있었습니다. 내빈소개와 학교장 인사 그리고 운영위원장 인사 등은 짧았지만 송사와 답사는 길었습니다. 판에 박힌 뻔한 이야기 대신 생생한 추억과 경험이 담긴 송사와 답사는 듣는 이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전해주었습니다. 


재학생 대표와 졸업생 대표가 송사와 답사를 하는 동안 모든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환호하고 감탄하고 탄식하는 등 적극적으로 호응하였습니다. 



공식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세족식 이었습니다. 3년 전 아이들이 태봉고에 입학 할 때는 선생님들이 '3년 동안 아이들을 잘 섬기겠다는 마음을 담아" 아이들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졸업식 날은 "3년 동안 함께 했던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아이들이 선생님들 발을 씻어 주더군요.


학생 숫자도 작고 선생님 숫자도 작기 때문에 가능 했겠지만 모든 아이들이 모든 선생님들을 자리에 모시고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담아 '세족식'을 하였습니다. 


대안학교 중에는 세족식을 하는 하는 학교가 있지만 일반 학교 졸업식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행사입니다. 졸업식 날 선생님 발을 씻어줄만큼 고마운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세족식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무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자발적(?)인 작별 인사였습니다. 선생님 한 분 한 분과 포옹하고 짧은 때로는 긴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도 누구하나 재촉하지 않고 차례찰 작별인사를 나누더군요. 


미운정 고운정이 쌓인 선생님들과의 작별인사는 더욱 길었습니다. 사연이 많은 선생님이나 담인 선생님과 작별 할 때는 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여자 아이들 뿐만 아니라 덩치가 산 만한 남자 아이들도 눈시울이 벌겋게 되어 울다가 웃었다가 하면서 작별의 정을 나누더군요. 


선생님 한 분, 한 분과 오랜 시간 작별 인사를 끝낸 아이들은 곧장 교실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이 서 있는 줄이 끝나는 곳에 후배들이 다시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학생들이 서 있는 줄은 졸업식이 열린 체육관에서부터 교실로 가는 통로까지 건물 밖으로 계속이어졌습니다. 


재학생인 후배들은 선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건물 밖 통로에서 1시간 30분이나 추위를 견딘 것입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과 뜨겁게 포옹하고 때론 소리도 지르고 때론 손도 맞자고 때론 아쉬운 한 숨도 쉬었으며,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야 교실로 흩어지더군요. 결국 10시에 시작된 졸업식은 오후 1시가 훌쩍 넘어서 끝났습니다. 졸업식에 모인 가족들이 함께 가족 사진도 찍지 못했고 점심도 따로 먹고 각자 일터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참 따뜻하고 부러운 졸업식이었습니다. 한 주동안 졸업 주간 행사를 치르고 졸업식 전날 밤에도 학교 강당에 모여 마지막 이야기를 4시 30분이나 나눈 아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운 작별 인사 장면이었습니다. 이산가족이 만났다 헤어지는 것 같은 이별이더군요.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 대안학교에 보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