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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교육, 대안교육

인문학, 부자들만을 위한 학문 아니다 !

by 이윤기 200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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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번역되어 꾸준히 사회교육과 사회운동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 여러 자치단체와 대학, 사회교유기관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강좌를 개최하고 있는데, <희망의 인문학>에서 소개하고 있는 '클레멘트 코스'가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미국 학자 '얼 쇼리스' 교수이고, '클레멘트 코스'란 10여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일종의 '사회교육 실험'으로 빈민과 노숙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2007년에 이 책데 대한 서평을 <녹색평론>에서 읽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데, 마침 그 해에 <희망의 인문학>을 번역한 고병헌 교수(성공회대)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어, 국내에서도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강좌가 진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 쇼리스는 학교 교육이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전부터 인문학은 부자들을 위한 학문이었다고 한다.교육을 하는 곳에서 취업을 준비시키는 곳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인문학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부터  인문학은 록펠러 가문을 비롯한 부자 가문 자손들이 공부하는 '학문'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존의 방법은 '훈련'이라는 것이다. 직업이 없는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무료로 직업훈련을 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얼 쇼리스는 빈민들을 동원해 훈련시키는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 돕는 클레멘트 코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것과 입을것을 단순히 제공하는 것으로는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문학강좌는 공공근로나 사회적 일자리 그리고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 같은 제도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직접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그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함으로써 궁극적인 직업 훈련의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밑천으로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며 더 나아가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 이 책은, 인문학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데 이것야말로 진정한 부(富)이며, 이 '진정한 부'를 갖게 될 때 정치적 권력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위한 인문학

소설가, 사회비평가, 언론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얼 쇼리스는 미국의 한 중범죄자 여자교도소에서 한 여성수감자를 면담하면서 인문학강좌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8년 넘게 복역중인 여인을 만난 자리에서 얼 쇼리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 ?"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지이죠.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회 같은 것 말 입니다."


가난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부유한자들)이 누리는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 쇼리스는 클레멘트코스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배우는 인문학강좌를 들은 가난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얼 쇼리스가 시카고 대학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번째 크레멘트 코스를 17명이 이수하였는데, 그 가운데 16명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진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자리가 없는 한 명은 맥도날드에 취직하였다가 2주 만에 쫓겨났다고 한다.

"왜 쫓겨났죠?"
"노조를 만들려고 했거든요"


인문학강좌는 단순히 교양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자각시키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공안정권이 만들어낸 한국적 표현을 사용하면, 인문학 강좌는 '의식화'교육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려면 국방부 금서목록을 읽고 공부하면 되는 것이 지금도 현실인 것이 안타깝다.

아무튼, 민주주의의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요즘, 진정한 부(富)를 추구하는 인문학 강좌가 지역에서 개설된다. 필자가 일 하는 단체에서 아래와 같은 일정으로 개최하는 수요인문학이 바로 그 강좌다.

[장소 : 마산YMCA, 문의 : 252-9878, 9898, 담당 : 김막달 부장]


이 강좌는 가난한 사람, 노숙자만을 위한 강좌는 아니다. 그렇다고 부자들을 위한 강좌는 더 더욱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모든 생활인들에게 열린 강좌이다. 이제 개강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

 

희망의 인문학 - 10점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이매진
행복한 인문학 - 10점
고영직 외 지음/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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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어이없는 인문학 2009.04.01 13:40

    노조를 만들다 쫓겨났다는 말에 방점.
    인문학이란 결국 길들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후훗
    살아있는 인문학이란 삶과 결코 유리될 수 없는 것이며
    사이비 인문학자들이 온갖 사기술로 대중의식을 교란시킬 때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자체를 바꾸었고,
    이게 바로 살아있는 인문학이다.
    답글

    • 이윤기 2009.04.01 15:05 신고

      노조를 만들라고 종용하지 않았어요. 철학과 문학, 역사를 배운 젊은이가 노조를 만드는 길을 찾아갔을 뿐이지요.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단순한 부자 흉내내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 어찌하여 2009.04.01 13:50

    어찌하여 17명 중에서 쫓겨난 1명에게 관심이 쏠리고,
    어쩌면 쫓겨난 1명이야말로 인문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일까??
    답글

    • 이윤기 2009.04.01 15:06 신고

      노조를 만들다 쫓겨난 1명도, 그렇지않고 직장과 학업을 선택한 사람도 모두다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룸프 2009.04.01 22:55

    인문학이라;;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추천하고 싶군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소외와 가난은 쉽게말해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해도 없어지지 않고 더욱 심화되는 인종,지역,대륙간의
    심화되는 모순을 지적해야되지 않을까요?오히려 인문학수준에서 접근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는 가난의 세습과 숙명에 대하여 낭만적인 소재로
    미화시키기 보다는 사회에 대한 세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문을 초월하여
    인문학적인 언어로 엮어내는 작업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추천하는 상호부조론은 초반 딱딱한 진화론의 발전전개만 제외하면
    무난할정도로 학문적(사상적)이론에 인간의 정서가 잘 조화된 훌륭한 역작입니다. 무한경쟁을 모토로 삼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우리가 사는 현실이 옳바르게
    가고 있는것인가? 이런 질문을 한번쯤 진지하게 들게만드는 책입니다.
    답글

    • 이윤기 2009.04.02 13:33 신고

      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 검색해보니 번역본도 있고, 하승우씨가 쓴 해설서도 있더군요.

  • 나비부인 2009.04.02 09:23

    얼마전에 시사매거진 2580에서 노숙자와 철학자 인가 하는 주제를 다루었지요.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네요. 인문학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는 찬밥취급 받고 있지만, 저도 힘들때는 지루한 인문학 서적이 한번 더 보고 싶고, 저의 정신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걸요.
    답글